오스트리아의 국도는 편도 1차선, 통행이 늘어도 길을 넓히거나 편리하게 펴지 않고 옛길 그대로를 고집한다. 오래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눈 덮인 산과 그 아래 초록색 초원과 노란 민들레가 어우러진 절경이 계속 이어져 나중에는 그냥 ‘흔한’ 풍경이 되어 버린다.
알프스 산맥이 이어지는 티롤 지방 엘마우Ellmau 마을의 민박집. 새벽 다섯 시 반, 시끄럽게 재잘대는 새 소리에 잠을 깼다. 이미 해는 떠 있다. 어젯밤 내내 내리던 비는 그치고, 첩첩산중 하얀 물안개가 사방에 무겁게 내려 앉아있다. 그 시각 민박집 주인 쉴트Shild 씨는 집과 붙어있는 우사에서 우유를 짜느라 분주하다. 쉴트 씨의 본업은 농부다. 농업학교를 나와 ‘농민자격증’이 있는 그는 우유를 생산해 “전통으로의 회귀zuru¨ck zum Ursprung”라는 상표로 팔고 있으며, 농가 민박도 함께 한다.
‘제2의 다리’, 농가에서의 휴가
쉴트 씨뿐 아니라 이곳 농민들은 대부분 소농으로, 농업소득과 농업 보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농산물 가공이나 직판, 그리고 농가 민박 등을 함께 한다. 이들은 이것을 온전히 설 수 있는 ‘제2의 다리’라고 한다.
이곳에는 ‘농가에서의 휴가’가 있다. 농가 민박은 대부분 ‘가정경영전문학교’에서 전문 교육을 받은 안주인이 담당하는데 인테리어나 편의시설, 침구관리 등이 호텔 못지않다.
호텔만큼 쾌적하고 호텔보다 정겨운 ‘농가에서의 휴가’는 5월이면 벌써 8월까지 예약이 다차는데 이 중 80% 이상이 단골손님이다. 그러니까 해마다 찾아오고 또 일주일 이상 쉬다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농촌은 한두 번, 잠깐 관광하는 곳이 아니라 계속 찾아가는 마음의 고향이라는 인식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수십 년 왕래하다 보니 자녀들끼리 결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농가에서의 휴가협회’가 발간한 홍보책자에는 자연생태, 어린이 교육이라든가 장애우 치료, 노인요양이나 건강증진 등 지역 농가 민박의 특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우리에게 흔한 ‘농촌체험’을 하는 곳은 없다. 대신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부와 똑같이 일한다는 뜻이다.
“농촌에서 무슨 관광을 합니까, 농촌은 옷깃을 여미고 겸손히 와서 조용히 쉬었다가는 곳입니다. 농민에게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독일 농업 전문가 황석중 박사의 말이다.
농민에 대한 존경심, 아름다운 농촌을 지킨다
이러한 농가 민박은 지역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농가 민박은 일정한 침대 개수를 넘을 수 없고 저녁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지역의 식당이나 상인들과 상생하기 위한 것이다. 농촌을 아름답게 지켜주는 농민은 정말 고마운 존재라고 그들은 말한다. 농촌의 소중함을, 농민에게 존경심을 어려서부터 배우고 자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농민이 농촌을 떠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정겨운 민박집 주인 부부와 이별의 인사를 나누고 가다가 뒤를 돌아본다. 관광이 아니라 농가에서 의 휴가다. 다시 오고 싶은.
글ㆍ사진 신수경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