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금창영
의문이 들었다. 기후위기라는데, 인류가 멸종할 수도 있다는데. 그럼 큰일인데. 더구나 몇몇 과학자의 주장이 아니라 전 국민의 90% 이상이 지금이 기후위기 시대라는 것에 동의한다고 하고, 몇몇 언론에서는 기후위기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농민이며, 이들이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하는데, 왜 내 주변의 농민들은 그대로 살고 있을까? 유독 내 주변의 농민들만 무감각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래서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지난 2022년 6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약 8개월간 전국에서 다양한 면적, 다양한 작물, 다양한 방식으로 농사짓는 농민 20여 명을 만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책 《모두를 살리는 농사를 생각한다》는 그 과정을 담고 세상에 나왔다.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유기농, 관행농, 시설농업과 노지농사, 대농에서 소농까지. 각자 다른 방식과 생각으로 농사짓는 그들은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농사에서 기후위기는 기존의 어려움에 한 가지가 더해진 것뿐이다.
농사수익은 형편없지만, 원래부터 그랬으니 참을만하다. 한 달 이상 장마가 이어지면 덕분에 집에서 쉬고, 오전 9시만 되어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더워지면 어쩔 수 없이 쉬기도 한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누구를 탓할 생각도 없다. 봄이 되면 오만 가지 싹들이 올라오고, 당근이 만세를 부르며 일렬로 줄을 서고, 그동안의 불안과 상관없이 솜털을 단 감자 싹이 보이면, 세상 어떤 것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을 맛본다. 거기에 지금 감자 한 박스가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2023년 환경부 발표를 보면 2022년 우리나라가 배출한 온실가스는 6억 5450만t이다. 2030년까지 4억 3660만t까지 줄여야 한다는데, 그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정부는 농민들에게 지열히트펌프, 일사량 감응 전자동 변온관리시스템, 온풍난방기 배기열 회수장치, 축열물주머니 이용 보온장치를 달면 ‘저탄소 농축산물’ 인증을 주겠다고 한다. 농민에게 몇천만 원에서 몇억 원에 이르는 설비를 할 자금도 없지만, 이런 설비를 생산하고, 가동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에너지를 사용해야 할 텐데, 이 방법으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농민의 의식이나 농사법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주변에서는 ‘탄소를 저장하는 농사를 해야 한다’, ‘식량위기가 올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사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게 어떤 건지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또 하나, 농사야말로 경험을 쌓아가며 하는 일이니, 현장 농민들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얼굴과 옷차림이 말끔한 청년이 찾아와서 ‘기후위기 시대이니 이제부터는 이렇게 농사지으세요, 그러면 지원금을 드릴게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덥석 따라 하기는 쉽지 않다.
농민은 자신이 사는 마을, 자신의 농지, 자신이 재배하는 작물에 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다. 그러니 방법도 농민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경운을 적게 하고 비닐 멀칭을 줄이고, 비료나 농약의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확실하고, 의미 있는 방법 아닐까? 도시에 사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1회용품 사용과 마트 가는 횟수를 줄이고, 육식을 줄이는 것이다. 내가 사는 인구 10만 명도 안 되는 홍성군에서 키우는 가축의 숫자가 427만 마리다. 한편에서는 축산오수와 냄새로 인한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불행이 나만 비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세상은 희망이 없다. 지금, 모두를 살리는 농사를 생각할 때다.
필자 금창영: 농민
충남 홍성군에서 130여 가지 작물을 자연농업 방식으로 농사지으며, 지역에서 ‘홍성자연농학교’를 9년째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두를 살리는 농사를 생각한다》(2023, 목수책방)에 참여해 기후위기 시대 농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제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