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업이 건재하고 농가가 튼튼해지려면

이정환

  최근 정부, 정치권, 농민단체가 모두 쌀값 지지를 위한 시장격리와 대체작물 지원 문제에 매달리는 사이, 채소와 밭작물은 대부분 재배면적이 감소하고 가격은 치솟고 있다. GS&J 인스티튜트가 2005년 이후 주요 작물별 재배면적과 가격 추이를 분석한 결과, 지난 15년간 콩 재배면적이 36% 감소하고 가격은 73% 상승하였다. 건고추 재배면적은 44% 감소하고 가격은 39% 상승했으며, 마늘 재배면적은 20% 감소하고 가격은 25% 상승한 가운데, 한편에서는 매년 6만ha 규모의 농지를 휴경하고 있다. 쌀은 초과 생산인데, 다른 농산물은 재배면적이 줄어 가격이 상승하고 휴경지는 늘어나는 ‘한국 농업의 모순’이 1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농업이 ‘쇠락 경로’에 진입하였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밥상을 지키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위험한 상황을 소비자는 피부로 느끼고 있을까.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추진한 ‘농어업·농어촌 정책 국민 인식조사’를 보면, 소비자의 61%가 “매일 마주하는 밥상을 앞으로도 지금처럼 유지할 수 있을까 불안하다”고 하였다. 불안한 이유에 대해 78%가 “국내산 농산물이 부족하거나 가격이 폭등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런 소비자의 불안을 잠재우려면 어떤 해결책이 필요할까?
  말할 것도 없이 우리 농업이 건재해야 하고, 이를 담당하는 농가가 튼튼해야 한다. 그러나 농가의 존재 자체가 밥상 농산물 공급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다. 농가가 시장수요에 따라 농산물을 생산하고 그 결과로 농가소득이 증가해야 한다. 따라서 정책은 단순히 농가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농가의 생산활동을 제약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데 중점을 두어 농업생산과 농업소득이 선순환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그런 요소가 여럿 있지만 농가는 다른 산업에서 상상할 수 없는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농산물은 제조업 제품보다 가격 변동성이 1.5배나 크다. 특히 밭작물과 채소는 가격 변동성이 높아 쌀의 두 배가 넘는 데다 단수 변동성도 쌀의 1.5배를 넘는다. 위험은 폭탄과 같은 것이다. 농가는 이를 피하려고 가격이 좋을 농산물, 작황이 좋을 작물을 잘 찍어야 하는 투기적 행동에 내몰리고 가격은 더 널뛴다. 투자와 생산 규모를 줄이고, 드디어 농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100가지 지원보다 개별 농가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위험을 관리해 주어야 소비자가 원하는 농산물이 생산되고 농가가 유지된다. 그래야 젊은 농업인도 들어올 엄두를 낼 것이다. 앞의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농가의 60% 이상이 소득을 높이기 위해 작목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가격과 작황 위험만 벗어날 수 있다면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밭작물과 채소 재배는 늘리고, 벼 재배를 줄이는 농가가 적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 농정이 위험관리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50여 년 전부터 가격손실보전제도(PLC 등)에 의해 주요 농산물 가격이 기준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그 부족분의 85%를 보전한다. 또한 작물보험 제도로 대부분 작물의 거의 모든 면적이 흉작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이런 기초 위에 1996년에는 작황과 가격위험을 동시에 커버하는 수입보험(Revenue Insurance)제도, 2014년에는 수입 감소를 보전하는 수입손실보상제도(ARC) 등을 도입해 경영 안전망을 더 촘촘히 짰다.
  쇠락 경로에서 농업을 구하려면 미국이 50여 년간 고심하며 다듬어 온 위험 완충 장치를 벤치마킹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현실적 여건과 시급성을 따져 일의 순서를 정해야 한다. 작물재해보험 대상 농산물이 67개로 확대는 됐으나 가입률은 매우 낮다. 우선 대부분 농업생산이 작물보험의 품 안에 들어오게 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동시에 혹심한 가격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줄 가격손실보전제도를 빨리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여건을 갖춰 다음 단계 안전망 제도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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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필자 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한국농업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농업 부문 계량모형 개발을 시작으로 농지, 인력, 쌀과 한우, 통상 문제 등을 주로 연구하며, 농민신문과 내일신문 등에 고정 칼럼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