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 가을

 글·그림 남도현

ⓒ남도현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벼가 익어갈수록 농기계는 바삐 움직인다. 평소 못 보던 콤바인이 동네 논으로 향한다. 벼를 베면서 탈곡까지 해주는 기계는 이 시기 농민에게 매우 유용하다. 옆집 사는 어르신이 중고 콤바인을 장만했다. 중고 같지 않게 새것처럼 번쩍이던 콤바인은 다음날 하루 만에 고장 나 버렸다. 그것을 보고 다른 이웃이 새것을 사기에는 비싸고, 중고를 쓰면 잘 망가진다고 얘기해주었다. 농기계 수리 업체가 손본 후에도 콤바인은 여러 번 망가졌다. 그럼에도 이웃 아저씨는 농사일을 멈추지 않는다.

  콤바인이 지나간 논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논에는 래핑 된 볏짚이 쌓이고, 마을 도로에는 흙 도장이 곳곳에 찍혀있다. 마을 공동 벼 건조장에는 수확한 벼가 담긴 포대가 가득하다. 동네 벼는 전부 건조장으로 모인다. 거대한 건조기 두 대가 먼지를 뿜으며 벼를 모두 거둬 말릴 때까지 쉬지 않고 작동한다. 이장님은 건조장에서 오는 벼를 받고, 수분율을 확인하고, 말린 벼를 빼고, 다시 말릴 벼를 넣는다. 우리 동네 벼뿐만 아니라 옆 동네 벼도 들어온다.

  이장님은 추수가 끝나면 여행을 갈 것이라고, 웃음을 띠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 해는 겨울로 저물지만 농민에게는 가을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조장에서 작업하는 이장님 입가에 입김이 하얗게 번진다. 겨울이 오고 있다.

  배추는 쌀쌀한 날씨가 되어야 속이 찬다. 우리 가족도 배추 수확을 앞두고 분주하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장인어른은 “농사 실력은 고추와 배추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배추는 키우기 쉽지 않은 작물이다. 모종으로 키울 때부터 밭에서 수확할 때까지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날이 더워서 잎이 녹아버리거나, 해충 피해가 생기거나, 매년 변하는 기온의 영향으로 속이 덜 차기도 한다. 한 해 수확이 아쉬워도 직접 키운 배추로 만든 김치를 먹으며 “역시 우리 배추가 맛있다”고 기운을 차려본다.

  맛있는 음식은 기운을 북돋는다. 가을에는 거두는 것들이 많아 맛있는 디저트도 다양하다. 밤으로 만드는 밤조림, 몽블랑, 밤바스크치즈케이크부터 단호박타르트, 고구마파이, 사과파이, 감푸딩이 있다. 소중한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우리의 가을도 풍성해지기를 기원한다.

필자 남도현: 농부부구판장 대표
강원 원주시 부론면에서 아내와 함께 유기농 농사를 짓고 시골 카페 ‘농부부구판장’을 운영하며 직접 생산한 유기농 농산물과 지역 생산물로 제철 디저트를 만든다. 시골 정착기를 담은 만화책 《풀링》(2023, 인디펍), 아내가 쓰고 필자가 그린 그래픽노블 《한 남자》(2025, 인디펍)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