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김진한

방치된 풍경 속에서 자산 찾기
귀농을 준비하며 전국을 돌아다닐 때는 하나하나 생각할 게 참 많았다. 작물과 땅, 살림집과 이웃, 그 외에도 이것저것 살피기에 바빴다. 방문하는 마을 수가 제법 늘어나자, 마음이 이끌리는 곳들의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주민들이 함께 돌보고 아끼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이었다. 어느 마을은 돌담을, 또 어느 마을은 저수지나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모였고, 축제나 농악이 마을의 구심점이 되는 곳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 무언가를 ‘지역 자산’이라 부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즈음부터는 어떤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그만의 자산을 탐색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밀양 감물리에서 만난 지역 자산은 다랑논이었다. 산비탈에 기대어 층층이 쌓아 만든 계단식 논인 다랑논은 ‘농부가 아로새긴 대지의 예술’이라고도 불린다. 생태적 삶, 공동체적 삶을 꿈꾸며 귀농을 선택한 내게는 다랑논의 특성이 마음에 들었다. 논농사는 공동체가 필요한 대표적인 농사인데다, 소농을 지향했기에 대규모 영농을 할 수 없는 계단식 형태의 땅이 안성맞춤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랑논에 스며들기로 마음먹은 지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다랑논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보다는 빈손으로 귀농하는 입장에서 다랑논의 쓸모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에 다랑논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며 내버려둔 바람에 곳곳이 비어 있거나 방치되어 있었다. 가난한 귀농 청년이 자리 잡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농지를 구하기 수월했고, 임대료도 낮거나 아예 없었다. 경지 특성상 소형 농기계가 더 적합해서 장비 마련에 드는 부담도 적었다.
하지만 예상만큼 모든 것이 쉽지는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낮은 효율성이었다. 쌀농사는 기계화율이 높지만, 다랑논은 땅이 반듯하지 않아 생산성이 떨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쌀 소비량도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지켜야 할 가치를 마음에 새기기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는 여러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귀농 초기에는 경제적인 관점만으로 해결책을 찾다 보니 다랑논의 가치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떠나야겠단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다랑논은 아름다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랑논만의 장점도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석연료를 쓰지 않아도 산비탈의 경사에 기대어 자연스레 물을 댈 수 있었고, 작은 경지 덕에 낡고 작은 농기계로도 충분히 농사지을 수 있었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기 어려운 환경은 저절로 자연농업으로 나를 이끌었다. 말과 글로만 알았던 생물 다양성이 매일 매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건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즈음, 이런 풍경을 나누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다랑논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도 싹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과 협업해서 활동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마을의 어른들은 “나이가 많아 농사를 올해까지 지을지, 내년까지 지을지도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마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낯선 청년이 못 미덥기도 했을 터다. 하지만, 감물리에서 공동체를 일궈온 신부님이 “젊은 사람들이 농사를 이어가야 한다”며 다랑논 2500평을 선뜻 내놓았고, 몇몇 어르신들은 휴경 중인 다랑논을 임차료 없이 내어주셨다. 그즈음 뜻을 같이하는 청년들을 만나, 2019년 ‘다랑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처음 한두 사람이 모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금세 여러 사람이 모였다. 토종 종자를 찾는 청년 농부, 다랑논의 생태 가치를 조사하는 대학원생, 생물 다양성에 관심을 둔 학생들이 마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랑논에서 농사를 지으며 서로 일손을 돕고, 주기적으로 모여 토종 볍씨를 공부했다. 다랑논마다 품종별로 다른 토종 벼를 심었는데, 수확철이 되면 다랑논 풍경은 찬란한 비단 물결 같았다. 대학에서 다랑논을 연구하는 교수들은 밀양 다랑논만의 전통 수리 체계를 알려주었고, 국가중요농업유산이나 자연공존지역 같은 제도도 알게 되었다.
다랑논 보전 활동을 위해 실태 조사에 나선 대학원생은 한여름에 논 한 뙈기 한 뙈기를 돌며 지적도를 만들었다. 조합원들과 농사를 짓다가 도롱뇽이며 가재며 남생이가 물길 따라 들어올 땐 다 같이 일손을 놓고 둘러보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바람에 벼가 쓰러질까 걱정했던 마음은 추수 때 한껏 베어 든 볏단 속으로 사라졌다. 조건은 열악해서 빈 축사에 앉아 밥을 먹고 일을 마치면 제대로 씻지 못한 채 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래도 힘든 줄 몰랐으니 돌이켜보면 그때가 푸릇한 청년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다랑논에 깃든 사람들의 풍경 그리기
다랑논을 지키기 위해 도시민과 함께한 프로젝트도 있었다. 바로 ‘다랑논 공유 프로젝트’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쉽게 말하면 텃밭 중심의 주말농장을 논농사 방식으로 바꾼 셈이다. 마을에는 연로하신 분이 많아 농기계가 들어가기 힘든 작은 논은 더 쉽게 방치되었는데, 그런 땅을 빌려 부산, 대구, 김해, 창원 등 인근 도시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1년 동안 볍씨 파종하기부터, 모심기, 김매기, 추수하기까지 네 과정을 함께 했다. 2019년 시작된 이래로 매해 50~100여 명 이상이 참가했다. 지역의 초등학교나 각종 단체에서 참가하는 사례도 꾸준히 이어졌다. 코로나 시기에는 참가 희망자가 두세 배 늘어나 당황했던 적도 있다.
참가자들이 관계인구로 발전하는 경우도 생겼다. 두세 해 참여했던 분이 그다음부터는 봉사자로 도움을 주었고, 나아가 조합원이 되기도 했다. 귀농을 준비하며 꾸준히 마을과 관계를 맺거나 근처 마을에 귀촌하는 분도 나타났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여러 사람이 모이자 프로젝트도 풍성해졌다. 토종벼의 볏짚을 구하러 다랑논을 찾아왔던 공예 전문가는, 새끼줄부터 갖가지 공예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쌀로 누룩이나 막걸리를 만드는 전문가는 수업뿐만 아니라 맛있는 참과 마실 거리를 제공했다. 생태 교육 전문가는 다랑논의 생물 다양성 교육과 조사를 도와주었는데,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다. 산의 첫 물을 받아 쓰는 다랑논에서 먼 바다까지의 관계를 살피기 위해 해양 쓰레기 전문가를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일 년에 네 번만 모였던 프로그램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관계의 접점도 그만큼 넓어져 갔다.


넓고 멀리 흘러가는 물길 살피기
다랑논 공유 프로젝트를 체험한 경남도청 공무원의 제안으로, 경남 지역 곳곳의 다랑논과 공유 프로젝트를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산지가 많은 경남에는 다랑논도 많이 남아 있어, 남해군, 함안군, 산청군, 통영시, 거제시 등의 지역과 연대할 수 있었다. 다랑논의 형태는 비슷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을마다 특색 있는 이야기가 가득했다. 지리산의 다랑논은 물은 넉넉하지만 땅에 돌이 많아 개간하기가 어려웠고, 통영의 바닷가 다랑논은 물을 대기 힘들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물길을 세심히 살펴야 했다. 논둑의 재료와 도랑, 다랑논과 엮인 마을의 이야기를 살피다 보면 각기 다른 다랑논만의 개성이 드러났다.
다랑논 네트워크를 꾸려가면서, 일본과 대만의 다랑논 농부와 학회에 연결되기도 했다. 일본 다랑논 학회는 1990년대부터 지속해 온 일본의 다랑논 보전 활동을 소개했다. 일본 역시 초기에는 농가와 도시민의 개인적 연결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기업, 지자체, 여러 시민단체 등으로 참여 주체를 넓히며 활동을 확장해 왔다. 일본 다랑논 학회는 직접 한국을 방문해 경남의 다랑논 마을을 둘러보기도 했다. 대만에서는 젊은 기획자가 ‘도시민의 참여를 이끄는 다랑논’을 주제로 체험,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다랑논을 소재로 한 컬러링 북 등,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흥미로운 상품 개발 사례도 있었다. 학자, 활동가, 농부가 한데 모인 소통의 자리는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뜨겁게 이어졌다.
2025년에는 일본 히로시마의 다랑논 보전 활동에 참여하는 고등학생과 연결되었다. 일본 역시 다랑논 보전을 위한 도농 연대 프로그램이 있지만, 고령화로 인해 전처럼 활기를 띠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학생은 밀양의 다랑논과 생태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연락을 해왔고, 6개월간 이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여름방학을 맞이해 한국을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낙동강을 따라 펼쳐진 논을 소개하며, 다랑논의 생태적 책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후에 이 내용을 일본 다랑논 학회에 응모해 학회지에 실렸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이런 만남은 소소하고 일회적일 수도 있지만 자주 보기 힘든 고구마꽃처럼 반가운 일이다.
관계를 이어가는 힘 키우기
물론 그간의 과정에서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상황은 더 나빠졌다. 고령화로 인한 지역 소멸, 면 단위의 생활 기반 시설 붕괴,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생산성 악화…. 농촌을 둘러싼 거대한 물결은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다랑논 보전 활동을 이어왔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농부는 더 줄어들었고 방치된 땅은 더 늘어났다. 친해진 분들이 귀농·귀촌에 대해 물으면 예전에 비해 선뜻 답하기도 조심스럽다. 정주 환경이 마땅치 않아 살 만한 거처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청년들이 다랑협동조합의 문을 두드릴 때는 쩍 갈라진 논에 물을 대는 것만큼이나 기쁘지만, 역시 밝게 답하기에는 마음이 무겁다. 시골살이에 희망을 품은 몇몇 분들과 2~3년간 함께 노력해 봤지만 뿌리를 내릴 여건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몇 년 함께 고생한 사람들이 결국 떠나갈 땐 죄스러운 마음까지 들곤 했다.
다랑논과 함께한 10년, 지금 나에게 가장 큰 화두는 다랑논에서의 지속 가능한 생계 기반이다. 다랑논이 농업 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선, 외부의 지원 외에도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여전히 상황은 녹록지 않지만, 다랑논의 미래 가치만큼은 확신한다. 농업이 기계화, 규모화되는 현실에서 전업 농부가 아니고서는 농촌을 경험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느슨한 공동체를 꿈꾸는 이곳에는 누구든 찾아올 수 있다. 화석연료와 화학비료,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아도 지속 가능한 농업이 있다. 산책하듯 거닐며 생물 다양성을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공간도 매력적이다. 치유와 돌봄을 나누는 농업의 오래된 미래도 이른 봄나물처럼 군데군데 싹을 틔우고 있다.
다랑논과 거기에 깃들어 살아가는 농부,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어 간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셈이라 무엇 하나 빠져서는 이뤄질 수 없다. 장자의 나비처럼 다랑논이 우릴 지키는지, 우리가 다랑논을 지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관계를 맺어가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묵묵하게 관계를 이어가는 힘을 키우려는 자세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스며들듯 뿌리내리는 나무처럼.

필자 김진한: 다랑협동조합 대표
청년일 때 다랑논에 들어와 어느덧 중년을 바라보고 있다. 다랑논의 가치를 확장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관계의 장으로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 마을이 저마다의 자산을 찾아 지속 가능한 관계인구를 품는다면, 지역 소멸의 속도도 늦출 수 있으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