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가는 무궁화호의 시간

하승우

  무궁화호는 전국 약 200개의 역에 정차하는 가장 ‘보편적인 열차’다. 그동안 무궁화호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운행되는 고속철도가 닿지 않는 곳을 이어주는 미세혈관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2028년까지 보유한 무궁화호 차량의 대부분을 폐차하고 ITX-새마을과 비슷한 전동차인 EMU-150(ITX-마음)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차량은 아쉬운 마음으로 떠나보낼 수 있지만 노선이 사라지는 건 조금 다른 문제이다. 새로 대체되는 차량수가 기존 무궁화호 차량수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어서, 무궁화호의 폐차로 노선이 줄어들 가능성도 크다. 무궁화호 노선 대부분이 흑자를 내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수익을 내지 못하면 문을 닫는 것이 당연시되는 시대이지만,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세운 문명의 기본 원칙이다. 먹거리가 기본권이듯 이동권도 기본권이다. KTX와 SRT의 통합 명분이 철도의 공공성의 회복이었는데, 무궁화호가 이렇게 사라져도 괜찮을까. 가장 저렴한 무궁화호를 이용했던 승객들은 이제 어떤 수단으로 이동해야 할까.

  물론 도로가 계속 건설되고 자동차 수도 계속 늘어나니 당장 이동할 수단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등록된 자동차의 수가 2,651만 대(2025년 말 기준)이니 인구 2명당 1대씩의 자동차를 소유한 셈이다. 대중교통이 점점 더 줄어드는 농촌의 자동차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서 내가 사는 충청북도의 경우 8년 동안 약 24만 대가 늘어났다. 인구가 2만 2천 명 정도 늘어나는 동안 자동차는 24만 대가 늘어났으니, 인구 증가 속도보다 자동차 증가 속도가 열 배 이상 빠른 셈이다.

  문제는 이동권과 관련된 중요한 결정들이 이용하는 사람들의 뜻과 무관하게 내려지고, 이런 결정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 정치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몇 년 전부터 유럽은 기후위기에 대비하면서도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비행기 대신 철도 이동을 권하며 다양한 할인 요금제를 만들고 있다. 한국에서는 반대로 농어촌 주민들이 이용하기도 어려운 공항이나 고속철도를 더 만들자는 공약들만 논의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저렴한 열차 노선의 소멸은 그동안 무궁화호를 함께 이용했던 봇짐을 든 어르신들이나 외출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더는 보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기차는 기차역과 분리될 수 없는데, 기차가 서지 않으면 그 역은 어떻게 될까? 무궁화호가 서는 역들조차 조금씩 무인역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앞으로는 더 많은 기차역이 기능을 잃을 것이다.

  목적지까지 빠르게 관통하는 것이 도시의 속도라면, 농촌의 속도에는 주변에 대한 관심이 들어 있다. 빠르지 않기에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풍경들도 사라질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이 그냥 없어지지 않고 관련된 시공간을 변형시키듯, 무궁화호의 사라짐도 우리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텅 빈 플랫폼과 기차역은 쇠락한 지역의 상징이 되고, 농촌은 생활공간이 아니라 고속열차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과거 통일호 차량이 무궁화호로 편입·승격되었듯이 무궁화호의 기능도 새로운 체계 안에서 충분히 유지될 수 있다. 무궁화호가 서는 역에서도 사람들의 일상이 이어진다. 기차가 서지 않는다면, 일상과 지역은 어떻게 달라질까. 무궁화호의 시간은 결국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시간이기도 하다.

필자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
충북 옥천군으로 가족들과 이주한 지 13년차인 정치학자이다. 2021년부터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엮어 《무궁화호를 위하여》(한티재, 2026)를 펴냈다. 무궁화호를 타고 도보 여행을 하는 것이 취미이고, 독학으로 베이스 연주를 연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