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업, 전환의 현장에 가다

글·사진 지현영

더 흐로터 페르레이딩 농장의 농기계. ©대산농촌재단

전환의 갈림길에 선 네덜란드 농업
  네덜란드는 세계적인 농업 강국이다. 좁은 국토와 높은 토지 가격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첨단 온실농업과 정밀농업, 집약적 생산 체계, 효율적인 물류·유통망을 결합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권의 농식품 수출국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더 많이, 더 싸게’ 생산하는 농업 방식의 성공은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위기를 키웠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집약적 축산과 화학비료 남용은 과다한 암모니아 배출과 질소 침적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왔고, EU 회원국 중 가장 먼저 ‘생태적 수용력의 한계’에 직면했다. 이제 네덜란드 농업은 생산량 확대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전환의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2018년 “2030년 순환농업 전환”을 선언하고, 화학비료·농약 투입 최소화, 양분의 순환적 활용, 해외 사료 수입 의존 탈피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집약적 축산구조와 보조금 흐름은 그대로 둔 채 기술 혁신으로 오염만 줄이려는 데 머물러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정책적 흐름과 무관하게 오래전부터 토지를 망가뜨리는 방식의 농업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스스로 대안을 실험해 온 농가들이 있다. 이들은 토양을 살리는 유기농업이 체계적인 경영과 정밀농업, 유통 단계 최소화와 판로 확보를 함께 갖춰나갈 때, 현실성 없는 이상이나 틈새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대규모 농업 현장에서도 충분히 작동 가능한 방식임을 보여주었다. 이번 2026년 대산농업연수에서 방문한 네덜란드의 두 농장이 바로 그러한 사례였다.

연수단에게 자신의 농장을 소개하는 코르넬리스 모설만 씨. ⓒ대산농촌재단

정밀농업과 유기농업이 함께 간다, 비-요피라 농장
  네덜란드에서 만난 비-요피라(BI-JOVIRA) 농장의 코르넬리스 모설만(Cornelis Mosselman) 씨는 1982년생 농부다. 그는 20년 전 축산업을 하던 아버지로부터 농장을 물려받았다. 그가 처음부터 유기농업을 했던 것은 아니다. 주변의 대규모 농가들과 마찬가지로 기존 관행농업의 방식에 충실했다. 그런데 대형 트랙터에 눌려 농장의 흙이 점점 딱딱해지고, 5일마다 제초제를 뿌려도 곰팡이와 병충해는 오히려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 그는 의문을 품게 된다. “나는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선 모설만 씨는 토양, 자연, 경관을 돌보아 후손들도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를 갖게 되었고, 2018년 유기농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3m 폭의 스트립(strip) 단위로 다양한 작물을 교차 재배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농장이 네덜란드 전역에서 주목받게 된 계기는 3m 폭의 띠 재배 농법, 즉 스트립 농법(Strokenteelt)이다. 거대한 단일 경작지에 한 가지 작물만 심는 대신, 정확히 3m 폭으로 나눈 긴 띠 형태의 밭에 서로 다른 작물을 번갈아 심는 방식이다. 다양한 작물을 심으면 단기적으로는 효율이 떨어져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작물마다 토양에서 끌어당기고 되돌려주는 유기물이 다르기 때문에 땅의 회복력을 높이고, 병충해 확산을 막으며, 생물다양성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다. 유기농으로 전환한 지 8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땅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곤충과 새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고, 열악한 날씨를 버티는 작물들의 힘도 강해졌다. 실제로 우기가 길었던 2021년, 농장은 주변 농가와 비교해 우수한 수확량을 달성했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유기농은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고개를 저었다. 대형 기계, 제초제와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농업은 농부로서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발휘할 수 없다. 예측 불가능한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지력을 키우고, 작물을 다양화하며, 농부가 현장의 변화에 맞춰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해야 한다.

자율주행 잡초 제거 로봇, 에코봇.

  50ha에 이르는 큰 경작지를 유기농으로 관리하기 위해 농기계의 사용은 불가피하다. 다만 그는 기계가 땅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토양의 10% 미만만 기계가 진입하도록 바퀴가 지나가는 경로를 3m 간격으로 고정하고, 밭의 구조 자체를 그에 맞게 설계했다. 이를 위해 새로운 농장 구조에 맞는 소형 농기계로 전환했으며, 기계를 직접 고안하기도 했다. 최근 들인 장비는 자율주행 잡초 제거 로봇이다. 인공지능이 작물과 잡초를 구분하고, 작물에는 손상을 주지 않은 채 금속 핑거로 잡초만 긁어낸다. 그는 이런 기술이 더 발전하면 대규모 유기농업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아직까지 기계에 대한 보조금 기준이 관행농업에 맞춰져 있어, 유기농업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핵심은 기계화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토양은 살리고 노동 부담은 덜어줄 기술을 선택하는 것에 있다.

타이니하우스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현재로서는 생산 비용이 높은 유기농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높은 질을 내세워 대형유통업체와 직접 거래한다. 그러나 그는 농산물 생산자와 소비자가 단절되어 있는 네덜란드의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소비자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는 무명의 생산물들을 공산품처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생산자와 직접 연결될 때 소비자도, 생산자도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모설만 씨는 도시와 농촌을 잇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지역 정부의 시범사업 허가를 받아 1ha 부지에 ‘타이니하우스’라 불리는 소형 주택 10채를 짓고 임대했으며, 입주자는 에너지기업 전직 임원, 병원 관리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 조건은 단순하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지속 가능한 농업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홍보, 자원봉사 등 각자의 방식으로 기여해야 한다. 수익사업으로 기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임대사업은 농가에 안정적인 수입을 만들어주고 있다. 2024년부터는 사람들이 농업과 농촌을 경험하는 공간을 늘리기 위해 2.5ha의 땅에 ‘먹는 숲(Voedselbos)’도 조성한다. 먹는 숲이란, 숲의 수직적 다층 구조를 모방해 비료나 농약없이도 스스로 순환하게 하는 생태계 모방 농업 모델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토양의 비옥도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모든 땅이 산출물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비자들과 시민들이 농촌과 연결되며 그 중요성을 경험하는 공간을 남겨놓는 것은, 미래 세대가 건강한 토양에서 지속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모설만 씨는 개인의 결단에 의지해서는 이러한 전환이 지속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많은 농부들이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다른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는 정부 재정이,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기존의 방식에 맞춰 설계된 정책의 대대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농업 철학과 신념이 투철한 이 농부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농장의 주인인 알렉스와 아네커 부부 ©AGF.nl / Anne Jansen

유기농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더 흐로터 페르레이딩 농장
  알렉스 판 호테엄(Alex van Hootegem) 씨는 5대째로 이어진 승계농이다. 호테엄 씨는 25살부터 아버지와 함께 관행농업을 시작했으나, 사람들에게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점점 더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또한 앞 세대가 구축한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찾고 싶었다. 마침, 스스로를 미식가로 지칭하는 그의 아내 아네커(Anneke) 또한 어느 날 유기농 채소를 먹어보고는 “이게 진짜 맛이다!”라는 충격을 받게 되었고, 땅의 힘이 담긴 진짜 채소를 생산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합심하여 유기농 전환을 결심하게 되었고, 농장 이름을 ‘더 흐로터 페르레이딩(De Grote Verleiding, 거대한 유혹)’으로 바꿨다. 변화에 대한 유혹을 느꼈던 남편과 맛에 대한 유혹을 느낀 아내의 마음이 만나 관행농 방식과 결별하게 되었다.
  145ha의 넓은 땅에서 다양한 작물(콩, 감자, 고구마, 당근, 양파, 셀러리 등)을 유기농으로 재배하기 위해 알렉스는 원격으로 조정 가능한, 규격화된 정밀농업을 도입했다.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데 인센티브가 있었냐고 물으니, 그가 전환할 당시에는 없었다고 했다. 오로지 그의 결단과 투자에 의지한 전환이었다. 2010년부터 호테엄 씨의 농장은 경운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토양 비옥도를 높이기 위해 상시적으로 녹비작물을 활용한다.
  대규모 농장을 유기농으로 경작하는 것 외에 그의 농장이 유명한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다. 2002년부터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유기농 온라인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만 해도 농민이 직접 웹사이트를 만들어 직거래를 하는 것은 매우 앞서나간 시도였는데, 이 부부는 직판을 하게 되면, 보다 정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농산물의 신선도도 올라갈 것이라 생각해 시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웹사이트에서는 자신의 농장 생산물뿐 아니라 인근 지역 3~40개의 농장으로부터 농산물을 공급받는다. 배송을 위해 트럭 3대를 직접 운영하며, 인근 50km 반경까지 주문을 받고 있다. 제품은 파란색 플라스틱 통에 담아 배달하고, 통은 다시 수거한다. 배송 비용은 4.99유로(약 8,700원)이다. 한 주에 약 500개의 배송이 이루어지며, 1년 매출은 200만 유로(약 35억 1,200만 원)에 달한다. 여기에 소비자들이 직접 채소와 과일을 선택하도록 토요일마다 여는 농장 내 직거래 장터를 포함해, 이들의 거래 중 90%는 BtoC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독보적인 유기농 온라인 마켓의 성공 요인을 물어보니, 생산자들과도, 소비자들과도 유대감을 형성하며 잘 교류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호테엄 씨는 유기농산물이 소수의 엘리트가 향유하는 ‘고급’ 농산물로 인식되는 것이 불만이라고 지적했다. 관행농산물과 공정한 가격으로 경쟁한다면, 유기농산물의 수요는 지금보다 훨씬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시장이 화석연료의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반영하여 그 가격을 책정했을 때 네덜란드인들은 재생에너지를 선택했습니다. 관행농산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관행농산물이 토양 오염과 생태계 파괴라는 비용을 사회에 떠넘기지 않고 스스로 책임진다면, 유기농산물보다 저렴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처럼 관행농산물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을 제대로 치를 때 유기농은 농산물의 원칙이 될 수 있습니다.”
  시장의 규칙이 공정하게 바뀐다면 유기농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표준이 될 수 있다는 것. 5대째 이어 온 농장을 지키면서도 앞 세대가 만들어 놓은 길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 그의 말이기에 더욱 힘이 느껴졌다.

농산물은 파란색 플라스틱 통에 담아 배달하고, 통은 다시 수거한다. ⓒ대산농촌재단

유기농업, 구조화된 설계가 함께 가야 한다
  네덜란드는 농업의 기계화·규모화·효율화·전문화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식량 부족을 겪던 나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농업 강국으로 도약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유럽 공동농업정책(CAP)의 형성과 설계에도 깊이 관여했다. 그러나 높은 생산성과 집약적 농업 방식은 토양과 수질 오염, 생물다양성 감소, 질소 배출이라는 생태적 위기를 불러왔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제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생산·유통·소비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는 교착 상태에 놓여 있다. 앞서 살펴본 두 농장은 이러한 교착 상황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다만 이들은 정책이 체계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라기보다는, 비상한 감각과 대단한 인내심을 가진 농부들이 스스로 일궈낸 예외적인 현장에 가깝다. 두 농부는 생태적 이상과 경영의 실용성 사이에서 나름의 균형점을 찾아냈지만, 그들 스스로도 구조적 전환 없이 이러한 사례가 널리 확산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한국 농정은 여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네덜란드의 현 상황은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단기적인 산출량만이 아니라, 토양의 회복력과 물 관리, 생물다양성, 농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까지 포함해 생산성의 조건을 장기적인 방향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다. 두 농장의 사례는 생태농업과 유기농업도 일정한 규모와 경영 기반을 갖출 때 경제적 자립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러한 사례가 예외에서 원칙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정부가 보조금 방식 등 기존 제도를 전면적으로 재편하고, 유통의 단순화, 안정적인 소비시장 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한국은 아직 네덜란드처럼 농업의 규모화와 수출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고, 동시에 생태농업의 사회적, 제도적 기반도 아직 넓게 확립되지 않은 상태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지고 방향을 설정해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필자 지현영: 서울대학교 환경에너지법정책센터 변호사
2017년부터 기후·환경·에너지 및 ESG를 의제로 자문, 소송, 연구 등의 일을 해왔다. 영농형 태 양광 연구를 계기로 농촌과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최근에는 공동체가 어떻게 주도적인 에너지 전환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