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탐조책방 이야기

글·사진 박임자

아파트 단지 정원에서 새끼를 키우는 직박구리.

아파트에서 새를 본다고요?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던 2020년, 우연히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다. 30년 동안 정원을 벗어나 본 적 없는 한 화가의 이야기였다. 화가는 정원에서 살아가는 개미의 움직임을 관찰하거나 낯선 돌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낸다. 놀라웠던 건 영화가 끝나면서 화면이 축소되는 순간 드러난,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손바닥만 한 정원의 크기였다. 그토록 작은 정원의 무엇이 화가를 그토록 몰입하며 행복하게 했을까?

탐조를 시작한 아파트 단지의 풍경.

  코로나19로 온 지구가 뒤숭숭하던 그때, 내 삶에도 조용히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10년 가까이 놀이치료사로 일하던 나는 코로나19로 3개월가량 일을 쉬게 되었다. 처음엔 통으로 주어진 하루가 참 좋았다. 그런데 하루이틀 지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바이러스로 공포에 휩싸인 일상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TV에서는 연일 집 밖은 위험하다고, 사람과의 접촉은 위험하다고 보도했다. 답답한 마음에 ‘아파트에서 새나 볼까?’ 하고 쌍안경과 핸드폰을 챙겨 들고 아파트 단지로 나섰다.
  쌍안경을 들고 나오기는 했지만, 아파트에서 대단한 새를 만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평소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닐 일이 없었기에 어디에 가면 뭐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았다. 그때, ‘찍-’ 하고 직박구리 소리가 들렸다. 소나무에 앉아 주거니 받거니 합창을 하는 직박구리 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참새의 쨉쨉거리는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놀이터에서 모래 목욕을 하고 있는 참새가 보였다. 참새는 이내 들킨 걸 알았는지 휙 하고 건물 위로 날아가 버렸다. 그 순간, 멀리 까치가 날아가는 게 보여 따라가 보니, 2층 높이쯤 되는 일본목련 나무의 가지에 둥지를 짓고 있었다. ‘까치가 저렇게 낮은 곳에도 둥지를 짓나?’ 생각하며 한참 둥지 짓는 모습을 관찰하다가, 나무 아래 산철쭉 뒤편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 살금살금 다가가 살펴보았다. 곤줄박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땅콩 하나를 부리로 물고는 날아가려던 찰나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곤줄박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휙 하고 날아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곤줄박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아침도 안 먹고 어디 가서 아직 안 들어오냐는 엄마 맹순 씨의 전화였다. 시간을 보니 4시간이 지나 있었다. 잠깐 아파트를 돈 것 같았는데 벌써 4시간이 지났다고? 믿기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 밥을 먹고 다시 아파트 단지로 나왔다. 작은 나뭇가지를 옮겨 둥지를 짓는 멧비둘기와, 산수유 열매를 따 먹으며 연신 노래를 부르는 직박구리를 만났다. 그렇게 오후가 또 순식간에 지나갔다. 집에 들어와 생각해 봤다. 새 종류가 많았던 것도 아니고 평소에 보기 힘든 새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재밌고 신이 났을까? 집에 돌아와서도 들뜬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마치 모험에서 보물을 찾아온 것처럼 말이다.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미지를 탐험하는 사람처럼 쌍안경과 사진기를 들고 단지로 나섰다. 정원이 화가에게 온 우주였던 것처럼, 나에게 아파트 단지는 그런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새 먹이대에서 홍시를 먹고 있는 동박새들
모이를 쪼아먹는 참새들.

1년 동안 아파트에서 새를 관찰하면 몇 종의 새를 만날까?
  그렇게 며칠 동안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다가 같은 아파트 2층에 사는 언니를 꾀어서 아파트 베란다에 새 먹이대를 만들어 주고 먹이를 먹으러 오는 새가 있으면 사진으로 찍어 기록해 달라고 부탁했다. 새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언니는 귀찮아하면서도 냉장고에 있는 홍시를 한 개 내놓고 물도 한 그릇 떠 놓았다. 누가 오겠나 싶었는데, 그릇을 내놓자마자 직박구리가 찾아왔다. 오후엔 동박새가 찾아와 홍시 옆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동박새는 홍시를 먹다 물그릇에서 목욕도 했다. 다음날 언니는 못 보던 새가 왔는데 예쁘다며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홍여새였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탐조인이 있다면 누구나 “대박!”하고 외칠 일이었다. 혹시나 새가 날아가 버릴까 봐 겉옷만 대충 걸치고 달려갔다. 홍여새 두 마리가 홍시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유리창 안에서 눈만 살짝 내놓고 홍시 먹는 모습을 정신없이 관찰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홍여새와 동박새와 직박구리는 돌아가며 홍시를 먹어 치웠다. 그 후로도 2층 베란다 새 먹이대엔 수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텃새인 동박새와 박새, 쇠박새, 곤줄박이, 참새, 직박구리, 멧비둘기, 까치와 오색딱다구리뿐만 아니라 노랑지빠귀, 콩새, 되지빠귀 같은 겨울철새들도 방문했다.
  17층에 함께 사는 엄마 맹순 씨 베란다 새 먹이대에는 방문객 숫자는 적었지만 마치 한 반 친구처럼 직박구리, 멧비둘기, 박새, 까치가 매일 찾아왔다. 새들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다는 걸 알게 된 맹순 씨는 직박구리가 좋아하는 사과, 멧비둘기가 좋아하는 해바라기씨, 참새가 좋아하는 쌀과 물 한 그릇을 내놓고는 매일 찾아오는 새들을 보며 일기를 썼다. 나는 익숙해진 아파트 단지 정원을 매일 돌며 새들을 관찰해 아파트에서 만난 새 목록을 작성해 나가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30종 가까이 늘어났다. 언니의 2층 베란다는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고, 나는 매일 같이 현관문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오늘은 어떤 새가 왔는지, 뭘 하다 갔는지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그 전엔 없던 일이었다. 가까이 살긴 하지만 어디가 아프거나, 자동차가 문제가 생길 때나 연락을 하던 우리의 핸드폰은 매일 울려댔다. 어느새 우리 아파트에서 관찰한 새는 40종이 넘어갔다. 서해안 섬에나 가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솔새 같은 나그네새가 우리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우르르 내려앉은 날이었다. 우리만 알고 있기엔 너무 중요한 일 같다는 생각이 들어, 1년 동안 관찰한 새를 모아 아파트 새 지도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프로젝트 모임 ‘아파트탐조단’을 만들고 2020년, 한 해 동안 관찰한 새로 세계 최초의 아파트 새 지도를 만들었다. 새 그림은 맹순 씨가 그려주었다. 이후로는 전국의 아파트에서 새를 관찰하는 분들과 함께 새를 기록해 나가고 있는데, 2026년 현재까지 162종의 새가 기록되었다.

도시에서 새와 함께 살아가기
  그렇게 만난 새들을 SNS에 올리기 시작하니, 도시 아파트에 이렇게 많은 새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나 역시 도시 탐조를 처음 시작할 즈음엔, 평소에 보기 힘든 신기한 새들이 아파트에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도시에서 살아가는 새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들은 겨울철 물 마실 곳이 없어 옥외 배관에 맺힌 고드름으로 목을 축이고, 구멍 뚫린 나무가 없으니 보일러 연통 안에 둥지를 틀기도 했다. 도시화로 건물은 많아지고 자연은 줄어드니 새들은 인간이 만든 도시로 찾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도시에 새들을 위한 배려는 턱없이 적었다.
  2021년 문을 연 탐조책방은, 국내 1호 탐조 전문 독립서점이자 ‘도심에서 새를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매달 도시민과 함께하는 탐조 활동이 이어진다. 3~4월에는 짝짓기 철을 맞은 뿔논병아리의 구애 현장을 찾아가고, 5월은 파랑새, 뻐꾸기 등 여름철새를 만난다. 6월에는 매년 우리나라를 찾아 집단 번식하는 백로류를 만나기도 한다. 새를 관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목공예로 새를 만들거나 책방으로 새 전문가를 초청해 도시 새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인공 새집 만들기’는 책방이 문을 열 때부터 시작한 프로젝트다. 박새나 참새, 곤줄박이는 구멍이 있는 큰 나무에 둥지를 트는데, 도심의 나무들이 충분히 굵지 않아 번식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다 보니, 아파트 실외기에 둥지를 틀어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에 나무로 만든 새집을 설치하는 이 일은, 우리가 사는 도시의 선주민이었던 새들에게 안전한 보금자리를 되돌려주기 위한 시도다. 새를 사랑하는 일은 우리가 사는 환경을 바꾸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인공새집에 둥지를 지을 재료를 물고 온 참새.

  처음 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탐조는 자연으로 가서 새를 만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도시 아파트에서 탐조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도시에서의 탐조는 일상을 더 풍요롭게 채워준다는 사실이다. 새를 관찰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도시를 야생동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삶을 꿈꾸게 되었다.
  요즘 아파트는 새들의 소리로 가득하다. 인공새집에서 박새, 쇠박새, 곤줄박이, 어린 참새가 번식을 끝내고 나와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부모에게 먹이를 조른다. 먼 곳에서 날아온 파랑새, 꾀꼬리, 뻐꾸기, 새호리기, 솔부엉이, 소쩍새 같은 여름철새가 도착해 짝을 찾기 위해 노래를 하기도 한다. 오늘도 도심 속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을 하며, 나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이웃, 새를 만난다.

필자 박임자: 탐조책방 대표, 생태문화기획자
2020년 아파트 탐조단을 만들고 세계 최초의 아파트 새 지도를 만들었다. 2021년 경기 수원시에 국내 1호 탐조책방을 오픈하고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탐조를 알리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저서로는 《맹순 씨네 아파트에 온 새》(피스북스, 202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