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소를 키웁니다, 건강한 우유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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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숙 농업회사법인(주) 아침미소 대표이사
(제34회 대산농촌상 농업경영 부문 수상자)

  제주 한라산 해발 400m, 안개비가 조금씩 내리던 목장은 이제 막 비가 갰다. 너른 목초지에선 얼룩소와 저지 소, 제주 흑우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카메라를 들고 소들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호기심 많은 젖소 ‘아린’이가 슬그머니 다가와 렌즈 앞을 서성인다. 빗물 맺힌 풀잎을 부지런히 뜯어 먹고 왔는지 수염과 코가 촉촉이 젖어 있는 모습이다. 행복한 젖소가 만드는 건강한 우유가 있는 곳, 아침미소목장의 싱그러운 아침 풍경이다.

아침미소목장은 한라산 중턱,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전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제주 낙농의 풍경을 바꾸다
  양혜숙 씨는 1983년 남편 이성철 씨와 함께 시부모님께 작은 목장을 물려받아 낙농을 시작했다. 목장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치면서였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우유 소비량이 감소하면서 원유 쿼터제가 도입됐고, 일정 물량을 초과한 원유는 생산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정산됐다. 양혜숙 씨는 당시 상황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냉각실에 가면 축협에서 우유를 가져가고 붙여 둔 집유 전표가 있었어요. 우리가 배정받은 물량 300L만 제값이고, 나머지 물량 몇 리터 얼마, 표시가 되어 있었어요. 그걸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울었던 적도 많았죠. 그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양혜숙 씨는 그때를 계기로 유가공으로 눈을 돌리고 적극적으로 교육을 찾아 나섰다. 제주의 여성 낙농인들과 함께였다. 당시에는 목장의 실질적인 관리를 담당하는 이들이 대부분 아내, 여성이라, 착유 시간에 자리를 비우는 것을 반기지 않는 남편들이 많았다. 이에 양혜숙 씨는 도청을 찾아가 “여성 농업인들이 교육을 받고 싶어도 육지까지 나가기 어려우니, 강사를 초청해 제주에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해달라”고 요청했고, 2002년부터 낙농육우협회 제주 여성분과위원회를 조직해 유가공 교육에 나섰다.
  2006년 대산농업연수에서 독일과 스위스 고산지대의 낙농 현장을 직접 확인하며 목장형 유가공에 대한 확신은 더욱 깊어졌다. 드넓은 알프스 초지에서 농민이 직접 짠 우유로 버터, 치즈, 요구르트를 만들고 체험 목장을 운영하는 모습이 깊은 영감을 줬다. 연수에서 돌아와서는, 축협 낙농부녀회의 선진지 연수를 이끌고 목장형 유가공 연구회에서 자연치즈 연구·개발에 앞장섰다.
  당시 함께 모여 배움을 나눈 덕인지, 현재 제주의 낙농가 20곳 중 5곳이 목장형 유가공을 실천하고 있다. 비율로 보면 전국에서 손에 꼽힐 만큼 높은 수준이다.

아침미소목장은 연간 242톤의 유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모든 제품의 원재료는 무항생제 인증, 세균수 1A등급 원유를 사용한다. ⓒ대산농촌재단

교육으로 길을 열고 품질으로 신뢰를
  아침미소목장의 유제품은 ISO22000, GOLD HACCP 등 높은 품질과 위생 인증을 거쳐 전국에 납품된다. 과거 양혜숙 씨가 유가공 연구에 매달리던 때, 자연치즈 콘테스트에서 아홉 번 수상하며 품질을 증명해 낸 것이 시작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대형 프랜차이즈 회사에 납품을 시작했고,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기업과의 거래는 자연스럽게 법인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평생 생산에 전념해 온 농민에게 경영과 마케팅은 영 낯설었다. 양혜숙 씨는 밤낮 없이 교육에 매달리며 돌파구를 찾았다.

  “처음엔 브랜드니, 트렌드니,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똑같은 과정을 세 번, 네 번씩 듣다 보니 이해가 갈 수밖에 없었어요. 몇 번씩 교육 받으러 찾아가니 그만 오란 말도 안 하더라고요.”

  이후, 목장의 성장세를 눈여겨본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하루 3만 개의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대규모 공장 설립을 권유해 왔다. 양혜숙 씨는 소들의 건강을 위해선 적정 수준의 두수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안을 거절했고, 이로 인해 거래가 뜸해지면서 판로를 잃는 어려움이 찾아왔다.
  양혜숙 씨는 교육을 통해 익힌 안목으로 고급 유제품 시장을 직접 공략했다. 목장의 까다로운 위생 인증과 품질을 내세운 유제품으로 제주 전역의 농협에 찾아가 입점을 제안했고, 온오프라인으로 판매망을 다각화했다. 품질 하나를 믿고 시장을 개척해 온 그의 노력은 2019년, 국내 유가공 낙농가로서는 이례적인 해외 수출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목장에서 유기농으로 직접 재배하고 있는 쥐보리풀(이탈리안 라이그라스).

소가 행복해야 낙농업의 미래가 있다
  아침미소목장의 젖소들은 한라산 중턱, 8만 평의 초지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쥐보리풀을 먹고 자란다. 평균 하루 착유량도 25~30L로, 유기농 수준의 적은 양을 유지하며 무리하게 늘리지 않는다.

  “곡물 사료 비율을 높이면 우유 생산량은 늘어나지만, 억지로 늘리진 않아요. 우유를 많이 만들어내진 않아도, 젖소들과 오랫동안 같이 살기 위해서예요.”

  아침미소목장은 국내 목장 최초로 ‘자유방목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다. 동물이 사육 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겪지 않고 본래 습성대로 살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인증 제도인데, 가장 핵심 기준은 사육 면적이다. 소들이 좁은 축사를 벗어나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야외 방목장이 있어야 한다. 아침미소목장의 방목장 규모는 인증 최소 기준의 10배(마리당 157㎡)에 달한다.

  “행복한 젖소에게서 건강한 우유가 나온다”는 철학은 소들의 건강한 삶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인 젖소의 수명이 평균 3산(세 번의 출산) 정도인 반면, 아침미소목장의 젖소는 5~6산까지 건강하게 살아간다. 소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높아지는 체세포 수도 12만 이하로, 이는 국내 1등급 원유 기준(1ml당 20만 이하)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이원신 아침미소목장 총괄이사는 양혜숙 씨의 자랑이자, 든든한 동반자다.

믿고 기다린 시간, 대를 잇다
  2017년, 인천에서 경찰로 근무하던 첫째 아들 이원신 씨가 제주로 돌아왔다. 치열한 도시에서의 삶이 늘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던 차에 숨을 고르듯이 찾은 고향이었다. 돌아온 원신 씨는 팔을 걷어붙이고 예약제로만 운영하던 체험 목장을 누구나 올 수 있도록 전면 개방했다. SNS에 목장 사진을 올리고, 야생화를 심고, 농기계가 지나가라고 밀어뒀던 20필지 밭의 돌담도 다시 세웠다. 도시민이 찾아오는 ‘제주다운’ 목장을 만들겠다는 목표였다. 그렇게 하나둘 목장에 사람들이 찾아와 이제는 연간 35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되었고, 아침미소목장이라는 브랜드도 커졌다.
  10년, 농업의 대를 잇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양혜숙 씨는 제주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자녀와의 갈등으로 결국 목장을 접는 사례를 익히 봐왔다고 말했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생각은 정말 달라요. 부모 세대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몸으로 해왔고, 자녀들은 그렇지 않죠. 농업을 하면서도 인간적인 삶을 누리고 싶은 거예요. 저는 부모님들이 믿고, 기다리고, 정말 많이 참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양혜숙 씨는 자신이 처음 치즈를 만들 때를 떠올렸다. 실패를 거듭하다 못해 남편에게 우유를 달라고 하는 것조차 미안했던 그 시절이,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흡족한 치즈를 만드는 순간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그는 안다. 서툰 시작이라도 잘 견디고 버티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아들을 믿고 기다렸다. 그렇게 함께 목장을 이끌어간 끝에, 현재 이원신 씨는 아침미소목장의 총괄이사를 맡아 26명의 직원과 함께 ‘청년이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서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이원신 씨는 목장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답했다.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린 비전을 현실화하는 중이에요. 농가에서 시작했지만, 대기업이 만든 상하목장처럼 ‘진짜 농업 기반 브랜드’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싶어요. 앞으로는 제주에만 갇히지 않고, 내륙으로, 세계로 뻗어 나가는 아침미소목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양혜숙 씨는 든든한 아들, 고마운 남편이 곁에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산농촌재단

다시, 목장으로
  양혜숙 씨가 처음 IMF를 맞이했던 때처럼, 2026년 낙농업계엔 어려운 상황이 찾아왔다. FTA 체결에 따라 단계적으로 인하되던 유제품 관세가 올해 미국산을 시작으로 사실상 전면 철폐되며 ‘우유 무관세’ 시대가 본격화되고, 수입산 멸균 우유가 저렴한 가격에 밀려올 것이다.
  양혜숙 씨는 지난 40년간 기틀을 다져놓은 목장과, 변화를 이어갈 자녀를 믿고 경영 일선에서 한발 벗어나 다시 목장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목장에서 좋아하는 까망베르 치즈를 만들어 수익금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작년까지 초등학교에서 진행하던 ‘찾아가는 우유 교실’은 목장에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멸균 처리된 수입 우유가 대체할 수 없는 신선 우유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평생을 동고동락해 온 소들, 든든한 아들과 고마운 남편이 곁에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양혜숙 대표. 그가 만드는 우유처럼 부드럽고 정직한 힘으로, 아침미소목장은 또 한 번 파고를 넘는다.

글·사진 조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