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어떤 시대인가

2015년 1월부터는 쌀 시장마저도 완전히 개방된다. 각종 FTA, TPP 등에 의한 추가적인 농산물시장개방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로써 우리의 농업은 무한경쟁의 시대로 내몰리고 있다. 다가오는 미래세대에게 과연 우리의 농업과 농촌을 얼마나 넘겨줄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수입 농산물이 범람하고, 농가 소득은 줄어들며 농촌은 점점 공동화되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는 과연 어떤 시대일까. 단순히 무역을 자유화하기 위해 관세를 없애고 보조금을 낮추는 것만이 무역 자유화 시대일까. 우리 시대가 어떤 시대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통찰하지 않고서는 농업과 농촌, 농민 문제를 제대로 볼 수가 없으며 올바른 대안도 내놓기 어렵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는 30여 년이 지난 현재 우리 사회에 경쟁지상주의 (일등지상주의)와 물신주의에 의한 인간소외 현상을 만연시켰다. 모든 가치의 핵심이 물질이다 보니 물질 이외의 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찾아보기 어렵고,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공생 · 공존의 시대가 아니다. 상대의 것을 빼앗고, 이기고, 밟고, 넘어뜨려야만 살 수 있는 척박한 시대로 전락했다. 농업 · 농촌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자유무역과 성장만이 능사인 양 온 사회가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성장은 지체되어 있고 소득 계층 간, 세대 간 갈등은 심해지고 있다. 위정자들의 도덕성이나 청렴성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되었고, 대기업은 수십조 원의 돈을 곳간에 쌓아놓고 있으나 대다수 국민 특히, 저소득층과 중 · 소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밥 벌어 먹고살기가 어렵다. 청년 일자리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고 취업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세계화 시대의 농산물 시장 개방은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선진 농산물 수출국과 농업 관련 다국적기업들의 거짓된 명분은 보기 좋게 무너진 지 오래되었다. WTO 체제가 출범한 지 20여 년이 지난 현재 인류의 기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70억 세계 인구 중 제3세계의 인류 50억 명 이상은 식량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농산물 국제시장은 다국적 기업이 무역과 유통을 장악하고 있어 매우 불안정한 구조로 되어 있다. 국가 간, 개인간 소득 격차는 양극화로 고착화 되고 있다. 선진국은 자국의 기업이나 국민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있고 인류 공영의 가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학계는 물론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오늘날의 기능화 된
경제 논리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학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경쟁보다는
협동을, 물질보다는 인간의 행복을, 자연의 파괴보다는 생태환경의 보존을 추구하
는 이론의 등장이 필요한 시대임을 명심해야 한다.

뭐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고 식량 주권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음에도 이 나라 대부분의 지도자와 학계는 오로지 성장이요, 개방이요, 자유화라는 인식에 함몰되어 있다. 우리도 농산물을 수출하면 된다거나, 농업을 성장 동력으로 육성할 수 있다거나, 농업 관련 산업을 육성하면 경쟁력을 가질수 있다거나, 엘리트 농민을 육성하면 얼마든지 개방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외치는 자들은 십중팔구 간신배이거나 농업을 팔아먹을 자들이다. 되지도 않을 것을 되는 것처럼 호도하여 일신의 출세만 추구하는 염치없는 자들임을 명심해야 한다.
개방화, 세계화, 자유무역으로 대표되는 우리 시대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배경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 신고전학파 경제 이론은 현재의 자본주의 국가들의 양극화, 성장의 지체, 실업률의 증가 등을 초래했다.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공적 자금의 투입으로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분배의 불공평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학자들은 기존의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을 맹신하고 있으며 절대 진리인 줄 착각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정책이나 농업정책이 현실과 부합할 리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학계는 물론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오늘날의 기능화 된 경제 논리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학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경쟁보다는 협동을, 물질보다는 인간의 행복을, 자연의 파괴보다는 생태환경의 보존을 추구하는 이론의 등장이 필요한 시대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만 농업 · 농촌이 보이고 농민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필자 윤석원: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산업경제학과 교수. 한국농업정책학회 회장, WTO국민연대상임집행위원장, 대통령 직속 농업·농촌대책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농업문명의전환』(2011, 교우사), 『농산물 시장 개방의 정치경제론』(2008, 한울), 『한미FTA와 한국의 선택』(2007, 한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