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_2012 벼가 춤추는 풍경
“와 무슨 풀들을 이렇게 심어놨지?”감탄하던 이가 안내문을 읽고 나서 머쓱해하며 입을 다문다.
돼지찰옥천, 들렁들치기, 조동지, 졸짱벼, 앉은뱅이……. 2012년 6월, 조금 낯설긴 하지만 재미있고 친근한 이름을 가진 우리 토종 벼 15종이 계단마다 총총하고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감자를 심어놓은 동그란 주머니텃밭에선 하얀 꽃이 활짝 피었다.
“이제는 농사다”라는 테마로 벼 상자 화분과 감자, 강낭콩 등이 자라는 이곳은 서울의 한복판, 문화의 대명사인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이다. 계단 아래는 커다란 철판에 강낭콩 잎들이 만들어낸 미륵상의 얼굴이 보인다. 계단 중간에는 매향리에서 가져온 폐 폭탄이 벼와 어우러져있다. 그리고 그 폭탄 역시, 생명을 품고있다.
길을 건너면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도 상자논이 즐비하다. 세종문화회관이 계단논(?)이라면 이곳은 넓은 평야다. 세종대왕이 인자하게내려다보고 있는 가운데 토종 벼를 비롯해 전국에서 재배하는 다양한 벼가 상자 논에서 쑥쑥 자라고, 대형 밥그릇이 엎어진 듯 보이는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조형물의 이름은 ‘지구를 담는 그릇’이란다.
세종문화회관이 계단 논(?)이라면 이곳은 넓은 평야다. 세종대왕이 인자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가운데 토종 벼를 비롯해 전국에서 재배하는 다양한 벼가 상자 논에서 쑥쑥 자라고, 대형 밥그릇이 엎어진 듯 보이는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조형물의 이름은 ‘지구를 담는 그릇’이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벼들은 일제히 춤을 춘다. 가만히 앉아서 눈을 맞추니 수줍은 초록 빛깔이 너무나 예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풀처럼 보이는 이 아이들이 자라서 곡식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더군다나 둔한 눈썰미로는 도통 다른 점을 찾기 어려운 이 아이들의 이름이 모두 다 다르다니.
둘_파머스마켓 또는 농부시장
세종대왕과 인사하고 광화문을 향해 걷다가 오른쪽 횡단보도를 건넜다. 토요일만 문을 여는 ‘서울 농부의 시장’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맛있게 먹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
그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에서부터 떡볶이와 오미자차가 반긴다. 수십 개의 부스에서는 쌀은 물론이고 형형색색의 버섯, 닭이 오늘 낳은 달걀과 텃밭에서 방금 수확한 오이며 피망, 토마토, 된장 등이 가득하다. 자신이 직접 생산하고 가공한 농산물과 수산물에 전국에서 올라온 농민들이 자신의 지역과 이름을 내걸고 ‘당당히’ 농업을 팔고 있다는 장면이다. 시장답게 먹거리 역시 풍성하고 수공예품 등 아기자기한 코너와 문화공연도 펼쳐져 눈과 귀와 입이 모두 행복해진다.
또한 농부의 시장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민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공정무역이 왜 중요한지, 생명을 살리는 농업은 무엇인지, 평화를 위한 작은 움직임이 왜 필요한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농부학교’에서는 전문가를 초청해 ‘전통된장’등 다양한 정보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외국에서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일주일에 한 번만 문을 여는 이러한 파머스마켓이 소비자들의 환영을 받아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모스스트리트 마켓은 농산물 뿐 아니라 다양한 공산품과 문화상품을 팔고 있는데, 농민들은 파머스마켓에서 얻는 수익이 일반 매장에 납품하는 것보다 많아 선호한다. 뉴질랜드 역시 파머스 마켓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대부분 전문 지배인을 고용하여 시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파머스마켓이 늘어나는 이유는 생산자가 소비자를 직접 만나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소비자는 농산물을 생산한 농민과 직접 만나 교감하면서 신뢰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농부 시장은 단순히 농산물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휴식의 형태로, 문화를 교류하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2년 도심 한복판, 한국에서 열린 농부의 시장이 무척 반갑다. 그런데 생생한 유정란 40개, 천적을 이용한 유기농토마토 2팩, 오이와 피망 몇 개를 장바구니에 넣고 여름날 광화문 거리를 활보해보니,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부의 시장이 제대로 자리 잡고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셋_도시농업: 농촌에서만 농업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도시농업 원년을 선포하는 행사가 치러졌다. 제1회 도시농업박람회. 이 행사는 베란다 텃밭, 옥상 텃밭 등 요즘 도시민들에게 새로운 트랜드로 부상한 도시농업을 알리는 행사였다. 어린이들의 모내기 행사와 유기농의 중요성을 알리는 퍼포먼스가 펼쳐졌고, 각 부스에서는 도시농업에 필요한 정보와 기구, 자료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홍보관 2층에는 상자텃밭과 화분에서 자라는 다양한 채소를 만날 수 있었다.
도시농업의 원조는 독일. 의사였던 슈레버 박사가 몸이 아파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똑같은 처방을 내렸는데, “햇볕을 쬐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흙에서 푸른 채소를 가꾸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독일의 클라인가르텐(작은 정원이라는 뜻)은 도시의 한복판에 만들어진 작은정원들의 숲으로 이름이 나 있다.
미국, 캐나다에서는 사회단체가 개인의 집 마당이나 학교의 공터를 이용하여 텃밭을 가꾸고 여기서 재배한 채소를 도시 회원들과 나누는 CSA 움직임이 활발하다.
2012년, 옥상텃밭, 베란다 텃밭같은 이름으로 들어온 한국의 도시농업은 농민과 소비자를 한층 가깝게 해줄 것이다. 도시농부가 많아질수록 우리 농촌과 농업의 가치에 대한 인식도, 농업에 대한 이해도 커질 것이라 기대한다. 소비자는 또다른 이름의 ‘농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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