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빌더 케제 티롤 치즈공방
떠들썩한 알프스의 목동 축제를 본 적이 있는가.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진 알프스 지역은 사실, 겨울이 길다. 풀이 자라는 시기(5월~9월)에는 마을 초지의 풀로 겨울 양식인 건초를 만든다. 소들이 모두 마을에 있다면 풀이 모자라기 때문에 어린 소나 젖을 짜지 않는 소, 건유우를 높은 산지로 올려 보낸다. 5월에 산으로 올라가 여름을 지내고 더는 풀이 자라지 않는 9월 말, 전통 의상을 입은 목동들이 소떼를 몰고 내려오면, 동네 농악대가 환영의 풍악을 울리고 마을 사람들은 한바탕 축제를 연다.
“그동안 잘 살아줘서 고맙다, 잘 키워줘서 고맙다”는 의미다. 이렇게 소는 풀 먹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든다. 풀만 먹인 소는 곡물사료를 먹인 소에 비해 우유 생산량이 적지만, 건강한 소가 생산한 우유는 최고 품질의 치즈를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일 뿐 아니라, 소들의 배설물은 그대로 초지의 양분이되는 폐쇄적 순환으로, 수백 년 이상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전통이다.
알프스 산맥이 이어지는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 험난한 산과 골짜기가 많은 지역이다. 심지어 ‘거친 황제 Wild Kaiser’라는 뜻의 ‘빌더 케제’ 라는 이름의 산도 있다. 원래 지형대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골짜기 깊숙이 들어가면, 더욱 황홀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런 풍경 사이, ‘지붕위의 젖소들’로 유명한 빌더 케제 치즈공방이 있다. 티롤 지방의 전통가옥을 그대로 유지, 보존한 곳이다. 주변 고산 지대 초지 3만여 ha에서 50여 농가가 ‘풀만 먹여 키운’ 젖소에서 생산한 우유를 치즈 마이스터는 비싼 가격에 사서 20여 종의 고품질 치즈를 생산한다. 매일 700개씩 생산하는 까망베르를 비롯해 2013년 오스트리아 치즈경진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그로세 스팅커Grosser Stinker’ 까지. 아침부터 찾아오는 사람들은 다양한 종류의 치즈를 맛보고, 유리창너머 마이스터가 치즈를 만드는 과정도 확인한다. 지역에서 생산한 다양한 농산물 가공품, 전통 의상을 입은 직원이 가져다주는 오렌지 빛깔 상큼한 유청 음료도 맛본다. 빌더 케제 치즈공방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역민이지만, 관광객도 많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 많은 유럽 국가의 농업농촌 지원정책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오스트리아는 농지 면적에 따라 농업보조금을 1ha당 160유로로 정하고, 고산지 500유로, ‘조건 불리 지역’ 인 티롤 지방은 800유로를 지원한다. 농사짓기 매우 힘든 지역이라는 뜻이다.
농업만으로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운 농민은 농산물 가공이나 농가 민박도 함께 하는데, 농가 민박의 경우 소득이 연간 3천 유로를 넘지 않아야 한다.(2014년 기준) 정해놓은 규모를 넘으면 농민이 아니라 숙박업자, 가공업자, 식당업자로 구분되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들의 보조금 정책은 스타 농민을 키우거나 잘하는 사람에게 더 잘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농민이 농촌을 떠나지 않고 농업을 지속하며 살 수 있도록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과 ‘동등’하게 해주는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농민이 없으면 티롤의 경치가 사라진다’는 말에 공감하는 그들은 ‘상생’을 당연하게 여긴다. 농민이 아름다운 문화경관을 지키며 농사를 지으면서 ‘적정한’ 규모로 농산물 가공이나 농가민박과 같은 이른바 ‘제2의 다리’를 찾는 사이 농민이 지키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지역 특산품의 가치도 커진다. 농산물 소비와 일자리가 늘어나며, 식당 등 지역의 상권도 활발해진다. 아무도 떠나지 않고 자기의 일을 지속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렇듯 그들 농업 정책의 핵심은 소농이 전국에 골고루 존재하게 하는 것,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지속 가능한 농촌”이다.
글 •사진 신수경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