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야
지속 가능성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의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은 한 마디로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대외적으로는 농산물 시장 개방, 대내적으로는 농업구조조정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인이 가져다준 충격으로 농민층은 전반적인 하향분해 속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농업의 생산적 기능도 꾸준히 축소되었고 농촌이 갖고 있던 지역사회 공동체 역시끊임없이 약화되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악순환의 구조에서 맴돌고 있다.
그래서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의 지속 가능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한 반복하여 재생산되고 있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순환의 연결고리 가운데 어느 한 지점을 끊어내고, 지속 가능한 선순환의 고리로 전환하기 위한 획기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핵심 처방은 농가소득에 있어
그렇다면 지속 가능을 위한 처방의 핵심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농가소득 보장에 있다고 본다.왜냐하면, 지금 현재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소득’이고, 지금 농민의 최우선 관심사도 ‘소득’이기 때문이다.
시장 개방과 농업구조조정으로 대다수 농민의 삶의 질은 악화하고 살림살이는 더욱 어려워졌다. 도농 간 소득 격차, 농촌의 양극화, 농민의 빈곤화는 더욱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정부의 농업정책은 이문제를 완화하거나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소수의 부농과 대농을 제외한 대다수 중소 가족농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특히, 대도시와 수출산업 위주의 성장전략을 고수하는 경제정책과 재벌과 대기업에 더욱 많은 혜택을 주는 분배정책으로 농촌과 농민의 전반적 삶의 질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의 확대 등과 같은 공약은 사실상 폐기된 가운데 전반적인 재정능력의 한계로 도시와 농촌의 삶의 질 격차를 줄이기는커녕 더욱 확대하는 역주행이 이어지고 있다.
농가소득은 지난 2005년 이후 최근 10년간 대체로 3천만 원〜3천4백만 원 정도에
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농가소득 가운데 농사를 지어서 벌어들이는 농업 소
득은 1천만 원 수준으로 1995년 이후 20년째 멈춰 있다. 농업정책의 최대 과제는
농정의 가장 기본이 가격정책과 소득정책을 제대로 구성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
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취약한 가격정책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농정의 기
본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농업과 농민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소득의 문제이다. 농가소득은 지난 2005년 이후 최근 10년간 대체로 3천만 원〜3천4백만 원 정도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있다. 대표적 가격지지정책인 추곡수매제도가 폐지된 이후 농가소득의 정체현상이 장기화되고 있는것이다. 농가소득 가운데 농사를 지어서 벌어들이는 농업소득의 장기 침체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농업 소득은 1천만 원 수준으로 1995년 이후 20년째 멈춰 있다.
농가소득 및 농업소득의 장기 침체는 농가부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005년 이후 농가부채 총액은 큰 변동이 없지만 그 대신 농가부채에서 생산성 부채가 줄어들고 소비성 부채가 증가하는현상을 보인다. 즉, 농업의 전망이 어둡기 때문에 농업에 대한 생산적 투자는 감소하고, 그 대신 부족한 소득으로 가계의 생계유지 및 생활 영위에 필요한 돈을 빌려 부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빚내서 살아가는 인생이 농민의 삶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농업과 농민이라는 말을 입에 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농가의 소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농가의 소득에 직접 관련된 핵심정책이 가격정책과 소득정책이다. 따라서 가격정책과 소득정책은 농업정책의 처음과 끝이다.
따라서 앞으로 농업정책의 최대 과제는 농정의 가장 기본이 가격정책과 소득정책을 제대로 구성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취약한 가격정책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농정의 기본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입만 열면 강조하는 창조농업, 6차 산업화, 수출농업, ICT 융복합 스마트팜 같은 것들은 처음부터 농민의 관심을 끌 만한 깜냥 자체가 되지 못했다. 그저 생색내기나 전시행정 혹은 극소수 농민 몇몇에만 그 떡고물이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식량주권이나 다원적 기능 혹은 지속가능한 농업 같은 대안적 담론들 역시 아직은 농민들의 피부에 찰싹 들러붙지 못한다. 미래에 기대해볼 만한 대안으로서 관심은 있으나 지금 당장 현실이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가격정책과 소득정책의 균형 잡힌 병행이 중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농업정책은 가격정책과 소득정책을 균형 있게 병행하고 있다. 이에 반해한국의 농업정책은 과거에는 추곡수매제도로 대표되는 가격정책 위주로 운영되다가 2005년 이후에는 가격정책이 사실상 무기력하게 되고 직접지불제도로 대표되는 소득정책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가격정책과 소득정책 가운데 하나만을 취사선택하여 중점적으로 운영하는 농업정책의 심각한 불균형이 농가의 살림살이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농가소득과 농업소득의 장기 침체는 직접지불제도와 소득정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소득정책과 아울러 가격정책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여 균형 있게 시행할 때 더욱 효과적으로 농가의 소득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농가의 살림살이를 개선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최근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농가당 월 20만 원을 지급하는 소득정책을 제시하고,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와 같은 가격정책을 제시한 것은 농가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요구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농가소득 보장에는 턱없이 부족한 현행 직접지불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편하여 농민에게 직접 일정액의 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사회적 보상 차원에서도 매우 정당하다.
농민이 농사를 지으면 농산물을 공급하는 것 외에도 환경, 생태, 건강, 문화, 지식 등 다양한 편익
을 우리 사회에 제공한다. 그 편익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연간 약 27조 원 내지 42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은 편익을 공짜로 누릴 뿐 정당한 대가를 제대로 농민에게 지불하지 않는다. 이러한 편익을 공짜로 누리지 말고 최소한의 보상이라도 해 주어야 한다. 농가당 월20만 원을 지급하는 소득정책은 바로 이러한 최소한의 보상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는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맹목적 신앙으로 개방 일변도로 내달렸고, 이 과정에서 농민과 농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제단에 바쳐 왔다. 개방으로 인한 농민의 피해를 지원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저 생색을 내는 정도에 그쳤던 것이 사실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동안 농민들이 개방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희생당한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보상을 해주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농가당 월20만 원을 지급하는 소득정책은 농민의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만약 당신의 월급이 20년 동안 그대로 묶여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라.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지. 이와 같은 고통이 농민에게 가해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농산물 가격정책에 있다. 농산물 가격이 폭락할 때 정부는 매우 무능하다. 가격폭락의 피해는 거의 그대로 농민에게 돌아간다. 반대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할 때 정부는 매우 유능하다. 신속하게 외국에서 농산물을 수입하여 가격을 떨어뜨린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의 농업소득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만약 당신의 월급이 20년 동안 그대로 묶여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라. 그것이 얼마
나 끔찍한 고통인지. 이와 같은 고통이 농민에게 가해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농산물 가격정책에 있다. 농민과 소비자 모두 가격폭락도 원하지 않고, 가격폭등
도 원하지 않는다. 농민에게는 가격폭락을 방지할 수 있는 최저가격제도가 필요하
고, 소비자에게는 가격폭등을 방지할 최고가격제도가 필요하다.
농민과 소비자 모두 가격폭락도 원하지 않고, 가격폭등도 원하지 않는다. 농민에게는 가격폭락을 방지할 수 있는 최저가격제도가 필요하고, 소비자에게는 가격폭등을 방지할 최고가격제도가 필요하다. 농산물 가격이 최저가격(하한선)과 최고가격(상한선) 사이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농산물 가격정책이다. 이것이 농민들이 요구하는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도의 가격정책이다.
생산비를 보장하는 최저가격의 운영 그리고 적정한 수준의 가격 안정대 유지. 이 두 가지가 제대
로 작동하면 농민의 농업소득은 늘어나게 되어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보유하고 있는 이 가격장치가 우리나라에서는 없다. 이 가격장치를 만들자는 것이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도의 가격정책이다.
방향은 확실하게, 실행은 단계적으로
소득정책과 가격정책은 현행 농업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방향과 목표에 해당한다. 방향과 목표를 분명하게 새로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사회적 합의 도출과 필요한 재원의 확보 등과 같은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여 실행은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먼저 현행 제도의 개편을 통해 소득정책과 가격정책의 규모를 양적으로 확대 시행하고, 그다음 단계로 제도의 개혁을 통해 소득정책과 가격정책의 질적 수준을 전환하는 것이다.
소득정책의 경우 우선적으로 현행 쌀 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와 밭 농업 직접지불제도를 각각 확대하되, 그다음 단계로 직접지불제도의 전면 개편을 통해 농가 단위로 직접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또한, 가격정책도 우선 현행 중앙정부의 최저가격보장 제도를 대폭 확대하고, 지방자치단체가 부분적으로 중앙정부의 부족한 정책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도입하되, 그다음 단계로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와 같은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특히 현행 최저가격제도에서 대상 품목을 확대하고, 최저가격을 생산비 기준으로 올리고, 계약재배 면적을 대폭 확대하면, 농민들이 요구하는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도와 거의 유사한 제도가 된다는 점에서 단계적 접근의 실효성도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농민이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한다면 농업도 농촌도 앞으로 지속하기 어렵다. 또한 우리의 밥상도 먹거리도 더는 지키기 어렵다. 결국 농업과 농촌의 지속 가능을 위해서는 농민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득을 보장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방법이 소득정책과 가격정책을 농민의 눈높이에 맞게 바꾸는 것이다.
가격정책과 소득정책은 농정의 기본
정부의 농업정책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댈 수 있겠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은 농민의 삶의 질과 살림살이가 될 것이다. 즉, 농민 삶의 질이 이전보다 개선되고,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면 부분적인 문제점들은 제쳐놓고서라도 전반적인 농업정책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반대로 농민의 삶의 질이 악화하고,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졌다면 부분적인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농업정책은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농업정책은 이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도외시한 채 창조농업, 6차 산업화,수출농업, ICT 융복합 스마트팜 등과 같은 단편적인 정책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대다수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을 포괄하는 일반적 정책이 아니라 차별화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개별농가(경영체)의 경영전략을 지원하는 틈새정책 혹은 부가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부가적인 틈새 정책은 어디까지나 농정의 기본이 제대로 작동하는 토대 위에 부가적으로 추가될 수 있는정책이지만 정부는 마치 이것이 정책의 중심이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앞으로 농업정책의 최대 과제는 농정의 가장 기본이 가격정책과 소득정책을 제대로 구성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취약한 가격정책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농정의 기본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식량주권과 먹거리 기본권을 키워드로 농업과 먹거리의 대안 패러다임을 연구하고 있으며 다수의 매체에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