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행복해야 진짜다

권윤주 양평가루매마을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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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여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이다. 긴 모내기 준비 끝 모내기를 끝내고 숨을 돌릴까 싶으면, 이것저것 나고 자라는 밭작물을 돌봐야 하고, “풀은 베고 돌아서는 동안 또 자란다.”는 말처럼 인정사정없이 자라는 풀도 관리해야 한다. 농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일거리다. 하물며 밥 먹는 것까지도.
“농번기에는 점심밥 챙겨 먹는 게 큰일이죠. 더군다나 노인들은 혼자 밥 해먹기가 쉽지 않아요. 점심 한 끼라도 힘을 덜 수 없을까 고민했죠.”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가루매마을 위원장 권윤주 씨(59, 제24회 대산농촌문화상 농촌발전 부문 수상자)는 마을 사람들의 뜻을 모아 ‘따뜻한 한 끼 밥상’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열었다. 운영주체는 부녀회가 중심이 된 협동조합이 하고, 공간은 낮 시간에 비어있는 마을회관을 이용한다.

배 과수원의 풀은 모두 베지 않고 구역을 나눠준다. 벌레들이 다른 풀로 옮겨가 나무로 올라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배 과수원의 풀은 모두 베지 않고 구역을 나눠준다. 벌레들이 다른 풀로 옮겨가 나무로 올라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배를 돌볼 시기를 놓쳐 병이 왔다는 권윤주 씨. 친환경 과수는 이래저래 어렵다.
배를 돌볼 시기를 놓쳐 병이 왔다는 권윤주 씨. 친환경 과수는 이래저래 어렵다.

하루 한 끼, 따뜻한 밥을 나눈다
부녀회원 10여 명이 돌아가며 식당 경영을 책임지는 행복공동체 ”따뜻한 한 끼 밥상” 식당은 생선, 멸치 등 마을에서 생산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곤 마을 농산물로 제철 밥상을 차린다. 가져온 농산물은 일반 소매가격으로 사주고, 식당에서 일하는 수당은 별도로 받으니 농민 입장에서도 반길 일이다. 게다가 나와 내 이웃이 정성스레 키운 건강한 먹거리가 아닌가.
“농민들도 점심은 식당에서 먹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어느 식당이나 식재료가 비슷하고 대부분 중국산이에요. 농사를 지으면서 정작 우리가 생산한 것은 먹지 못하는 겁니다.”
한 끼 가격은 6천 원. 마을과 주변 농민들뿐 아니라, “도와주는 셈 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오겠다던 주변 회사 사람들까지 매일 찾는다. 밥을 먹는 이도, 밥을 하는 이도 모두 행복한 사업이다.
“매일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요. 남은 밥은 식혜로 만들어놨다가 후식으로 내죠. 그날 남은 반찬은 노인정이나 마을의 독거노인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마을 그리고 지역의 힘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따뜻한 한 끼 밥상’의 시스템은 역사가 깊다. 40여 년간 친환경으로 배농사를 지어온 권윤주 씨가 2001년 양평군 지평면 옥현 2리 이장을 맡으면서,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마을, 평균 연령 70세가 넘는 고령화 마을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행복한 공동체 한 끼 밥상은 지역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의미에서 시작했다.
행복한 공동체 한 끼 밥상은 지역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의미에서 시작했다.

권윤주 씨는 소비자와 함께하는 ‘배꽃 축제’와 ‘배따기 축제’를 주민과 함께 했다. 이 행사를 시작으로 서서히 주민이 주도하는, 자생적 체험마을의 틀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오랜 준비를 거쳐 드디어 2007년, ‘가루매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농촌체험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체험행사가 있으면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가져와 음식을 만들었고, 농산물 가격과 음식을 만드는 노동의 대가를 같이 가져갔고, ‘행복한 수레’라는 이름의 1인 농산물 판매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농산물을 판매했다. 체험사업으로 주민들이 모이면서 마을은 활기를 띠었고, 농가 소득도 자긍심도 크게 커졌다.
가루매 마을의 성공은 양평군 농촌체험마을 협의체인 물맑은양평농촌나드리(이하 양평나드리) 사업으로 이어져 양평군 전체로 확산됐다. 양평 나드리는 양평군 체험마을의 동반 성장과 발전을 이끌고, 농촌체험지도사 양성으로 양평군 농촌체험 핵심인력을 도시민과 마을, 관과 마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지원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해 말, 권윤주 씨는 2012년부터 맡아온 양평 나드리 이사장직을 내려놓고 현재 경기도 휴양마을협의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경기도 내 체험마을은 98개. 생각이 다른 리더의 마음을 모아 함께 발전하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의 과제다.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오랜 시간 마을과 지역을 이끌며 수많은 갈등과 대립을 겪으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갈등은 나쁘지 않다’는 것.
“갈등 없이 문제없이 한 사람의 지도자가 이끄는 마을이 좋은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지도자에 의존하면서 주민 스스로 자신을 개발할 기회와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적게 되죠. 갈등을 하면서 더 좋은 방향을 찾게 됩니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요.”

농민이 행복해야 농촌이 지속 가능하다
권윤주 씨는 이제 우리 농촌이 소득만 올리는 것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농민의 삶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농가소득이 높아지면 삶의 질도 높아져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양평군 체험마을이 28개가 있는데, 전체 관광객 180만 명을 목표로 이야기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농민이 더 행복해졌나?그건 다시 생각해야 하는 거지요.”

농촌체험은 이제 바쁜체험에서 쉼이 있는 휴양으로 가고있다.
농촌체험은 이제 바쁜체험에서 쉼이 있는 휴양으로 가고있다.

다른 지역에서 보면 양평은 부러운 곳이다. 한 마을에 연간 몇만 명이 온다는 것은 지역의 작은 마을들엔 꿈같은 일 일지 모르지만, 하루 수백 명씩 손님을 치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쓰레기가 넘쳐나고 농민은 쉴 수가 없다.
“마을 사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이제 체험의 형태도 바뀌어야 합니다. 마을 주민 3명이 체험을 운영한다면 적정한 체험객은 100명 안팎이에요. 더 늘리면 사람이 일의 노예가 되는 겁니다. 농민이 자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적당해야 한다는 거죠.”
이를 위해선 농민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다각적 장치가 있어야 하고, 농민들의 협력과 연대도 필요하다고 권윤주 씨는 말한다.
“농촌에서는 혼자만 잘살 수 없어요. 공동체 안에서 배려하고 함께 잘 사는 것. 그게 중요하죠. 소농이 강해지면 농촌도 강해집니다.”
바쁜 농촌‘체험’에서 다시 쉼이 있는 ‘휴양’으로, 농촌을 둘러싼 환경과 농촌 관광의 중심축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는 한 가지는 “농민이 행복한 농촌만이 지속 가능하다”는 진리다.

신수경 편집장 / 사진 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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