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으로 이끄는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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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준 (사)청도한재미나리생산자연합회 회장
(제32회 대산농촌상 농업경영 부문 수상자)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驚蟄, 경북 청도군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바깥은 아직 나뭇가지가 앙상한 겨울인데, 한재골 비닐하우스에는 푸릇푸릇한 햇미나리가 가득했다. 농가를 지날 때마다 갓 수확한 미나리를 차락차락 씻어내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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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과 차가운 물에도 쑥쑥 자라는 미나리는 한재골의 ‘효자 작목’이 되었다.

생으로 먹는 미나리
  한재골에서 나고 자란 박이준 씨는 어린 시절부터 토종 미나리를 맛보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줄기 아래쪽이 연한 자줏빛을 띠고, 속이 실하게 차 있으면서도, 특유의 향이 진하게 맴도는 재래종 미나리다.
  “옛날부터 도랑가에 미나리가 조금씩 있었어요. 그걸 캐다가 나물도 하고, 김치도 담가서 먹었죠. 여기서 살다가 시내로 나간 사람들도 봄철마다 미나리를 뜯으러 왔어요. ‘이것 좀 키워주세요’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농민들이 미나리를 갖다가 농사짓기 시작한 거예요.”
  1992년, 그는 노지에서 키우던 미나리를 비닐하우스로 옮겨 안정적인 생산체계를 이루었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미나리가 지역에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변 농가에도 적극적으로 추천하였다.
  “여기는 물 빠짐이 아주 좋아요. 지하수를 끌어와 밤새 틀어놔도 아침에 잠그면 물이 쫙 빠져요. 미나리는 매일매일 새로운 청정수만 마시면서 자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재 미나리는 생으로 먹어도 되는 거죠.”
  여느 작물과 달리, 척박한 땅과 차가운 물에도 쑥쑥 자라는 미나리는 한재골의 ‘효자 작목’이 되었다.

박이준 씨는 한재골에서 미나리 농사짓는 130여 농가가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박이준 씨는 한재골에서 미나리 농사짓는 130여 농가가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130여 농가를 하나로 만든 힘
  1993년에는 미나리 농민 17명이 모여 작목반을 만들었다. 반장을 맡은 그는 ‘이왕 하는 김에 확실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농민들이 고품질 미나리를 생산하도록 철저히 관리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아침마다 농가를 돌면서 잘하고 있는지 살폈어요. 나쁜 종자는 최대한 걸러내고, 화학 농약이나 제초제는 쓰지 않고, 작기 중에 수확은 한 번만 하고, 출하할 때 상품의 무게가 덜 나가지 않도록 신경 썼어요.”
  이듬해, 한재 미나리가 전국 최초로 미나리 무농약 재배 품질 인증을 획득하면서 소비자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1000㎡ 정도였던 총 재배 면적이 해마다 두세 배씩 늘어났다.
  “여기저기서 작목반이 생기니까 한 동네에서도 가격 경쟁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90년대 후반에는 우리 지역 작목반을 하나로 묶었어요. 그때는 내가 직접 트럭을 끌고 농가마다 수확한 걸 모았지요. 90여 명이 농사지은 걸 팔아야 하니까, 서울부터 부산까지 홍보하러 많이 다녔어요.”
  2009년에는 130여 농가를 조직하여 (사)청도한재미나리생산자연합회를 설립했다. 자체적으로 품질 기준을 엄격하게 세우고, 총 7개 작목반으로 세분화하여 반별 품질관리자를 지정했다.
  “매년 총회를 열어서 산지에서 파는 미나리 가격을 정해요. 농민도 소비자도 손해 보지 않도록요. 우리가 가격을 준수하지 않으면 소비자가 등을 돌릴 거예요. 한 번 외면받으면 그 지역은 다시 살아남기 힘들어요.”
  그를 필두로 지역 농민들이 ‘한재 미나리’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한재골은 매년 65ha 면적에서 1200t 넘는 미나리를 생산하는 ‘미나리의 고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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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업 씨 농장에서 미나리를 베고, 다듬고, 세척하는 과정. 2024년 기준, 한 재 미나리의 산지 가격은 1kg에 1만 2000원이다.
윤수업 씨 농장에서 미나리를 베고, 다듬고, 세척하는 과정. 2024년 기준, 한재 미나리의 산지 가격은 1kg에 1만 2000원이다.

‘없어서 못 팔아요’
  이날, 한재골에는 봄비를 맞으면서도 미나리를 사기 위해 이곳저곳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똑똑, ‘사장님, 미나리 있어요?’ 묻고, ‘오늘치는 다 팔렸어요’ 답하는 대화가 계속 들렸다. 박이준 씨의 휴대 전화도 온종일 불이 난 것처럼 울렸다.
  “방금 전화한 사람은 벌써 20년 된 고객인데, 얼마나 통이 큰지 30단부터 주문해요. 어제 세 박스를 보냈는데 또 보내달라고 전화한 거예요.”
  그는 전국 각지에 있는 단골을 줄줄이 외우면서 넉넉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없어서 못 파는 한재 미나리지만, 한때는 팔지 못해서 걱정이었다.
  “우리는 미나리를 생으로 먹어도 된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변두리에 수챗물 고인 미나리꽝을 떠올리니까 못 먹는 거예요. 초기에는 미나리 생산량이 많지도 않았는데, 농협에 납품하고 나서도 물량이 한참 남았어요.”
  그는 한재 미나리를 알리는 일이라면 두 발 벗고 나섰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 진행하는 시식 행사에도 직접 나서고, 방송 출연이나 신문 인터뷰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나리의 품질을 알아본 지인들까지 홍보에 힘을 실어주면서 판매의 물꼬가 트이게 되었다.
  “어느 날은 백화점 바이어가 집까지 직접 찾아와서 ‘여기서 생산하는 미나리 몽땅 주십시오’ 하는 거예요. 자기가 이렇게 팔아달라고 사정한 적은 처음이래요. 그 사람을 트럭 조수석에 태우고 농가를 돌면서 두 박스, 세 박스씩 되는대로 실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직거래 소비자, 대형 유통업체, 한재 지역 식당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재 미나리를 내보내고 있다.

2013년 KBS  촬영 당시 찍은 기념사진. 아들은 아버지를 이어 미나리 농사를 열심히 짓고 있고, 영양학을 전공한 큰딸은 식 당을 차려 미나리 요리를 내놓고 있다. 살림꾼으로 평생 가족을 알뜰히 살피던 아내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2013년 KBS <한국인의 밥상> 촬영 당시 찍은 기념사진. 아들은 아버지를 이어 미나리 농사를 열심히 짓고 있고, 영양학을 전공한 큰딸은 식당을 차려 미나리 요리를 내놓고 있다. 살림꾼으로 평생 가족을 알뜰히 살피던 아내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누군가 받아서 우리 조직이 더 잘 되면 좋겠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한재골에 계속 찾아오고, 농가도 식당도 다 같이 잘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새로운 봄을 기다린다. 미나리가 서로 기대어 추운 겨울을 나듯이, 한재골 사람들이 힘을 합해 서로 도우면서 맞이할 ‘더’ 따뜻한 봄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