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과 소비자를 잇는 ‘상생’의 유통

손우기 신선미세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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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은 늘 바쁘다. 농사만 지어서는 살기 힘들어진지 이미 오래여서 농산물을 가공하고 소비자와 직거래도 하고 체험과 민박도 해야 한다.
“농민은 맘 편하게 농사만 지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농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렇게 속내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6차 산업화에 성공한 농민들도 비슷하다. ‘슈퍼 농민’을 권하는 사회. 하지만 모든 농민이 그 일을 다 해내야 ‘먹고 살 수’있다면, 농업은 지속 가능할까. 농민은 건강한 농사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소비자는 적정한 가격에 좋은 농산물을 먹을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시스템이 지속 가능한 농업의 주춧돌이 아닐까.

‘농민이 있어야 유통이 있다’는 신념으로 손우기 대표는 농민과 상생의 길을 걸어왔다.
‘농민이 있어야 유통이 있다’는 신념으로 손우기 대표는 농민과 상생의 길을 걸어왔다.

농산물 유통 40년, 선진농업기술을 농민에 전수하다
손우기 신선미세상 대표(65, 제25회 대산농촌문화상 농업경영부문 수상자) 40여 년간 농산물 유통을 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 고향인 경북 상주를 떠나 서울로 온 그는 청과물 도매상을 하던 작은 아버지를 도우면서 농산물을 배웠고, 1978년 태양농산을 창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농산물에 대해 잘 모르고 돈 벌겠다고 시작했죠. 산지를 다니면서 농민을 많이 만났는데 농사 열심히 지으면 뭐해요, 판로가 없는 거예요. 농산물 내가 팔아줘야겠다, 생각했죠.”
손 대표는 1991년 송이버섯을 일본으로 수출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보다 앞선 일본의 농업 시스템과 기술을 많이 접했고, 그것을 농민에게 전수하려고 노력했다. 딸기 재배기술도 그중 하나다.

소농에게 시설자금을 지원하고, 약속한 날에 농산물 대금을 지급하는 등 농민의 안정적인 생산을 돕는다.
소농에게 시설자금을 지원하고, 약속한 날에 농산물 대금을 지급하는 등 농민의 안정적인 생산을 돕는다.

“일본 바이어가 12월에 딸기를 생산해 보내달라고 하는데 당시 우리에겐 그런 기술이 없었어요. 우리 농민들도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일본에서 기술자를 수차례 초청해 곡성군 딸기 농민에게 재배 기술을 전파했어요. 처음엔 농민들도 잘 안 따라주고 교육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데다 나중에 유통망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실익은 별로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잘했다 싶죠. 지금은 다 12월에 딸기 먹잖아요?”
밤새 장거리를 달려 현장에 가서 농민에게 고품질 농산물 생산기술을 전수하고 현장을 돌보고, 다시 서울로 와서 경매하는 강행군을 하며 손 대표는 조금씩 사업을 넓혀갔다. 대형유통업체에 납품을 하게되면서 이제 안정이 되는가 싶었는데 IMF가 터졌다. 하루아침에 대기업 납품처가 문을 닫는가 하면 납품 대금이 어음으로 돌아왔다. 냉장고에 쌓여가는 재고품, 하소연할 곳 없이 어려운 시간의 연속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현장에서 출하 전 농약 잔류 검사를 하고 냉장 시스템으로 농산물을 운반한다.
현장에서 출하 전 농약 잔류 검사를 하고 냉장 시스템으로 농산물을 운반한다.

정확한 대금 지급과 소농에 시설 지원, ‘농협보다 낫네’
2008년, 크고 작은 굴곡을 넘어 남양주시로 사업장을 옮긴 후 손우기 대표는 농민과 상생하는 유통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산지 중간 상인 없이 농민과 직거래하고, 약속한 날에 정확하게 농산물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했다. 자금이 부족해 기반 시설을 갖추지 못한 소농에게 시설자금을 먼저 지원하고 농산물을 판매하고 나면 분할해 상환토록 하는 한편, 연간 생산량의 20% 이상 가격을 보장했다.

채소와 나물을 더 손쉽게 먹을 수 있도록 손질하는 전처리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채소와 나물을 더 손쉽게 먹을 수 있도록 손질하는 전처리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농산물은 시세가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어요. 농민들에게 적어도 생산량의 20%는 시중 가격에 상관없이 연중 같은 가격을 제의 했어요.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는 시기에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가격이 보장되니 농민들이 믿고 따라와 준거죠.”
처음엔 작은 회사라 못 미더워했던 농민들이 “농협보다 낫다”며 협력 농가로 들어왔다. 딱 1년 반 만이었다.

학교 급식 공급에 도입된 특별한 유통 시스템
신선미세상㈜은 2015년에 민간 농업경영체로는 처음으로 경기도 학교급식 공급업체로 선정되어 경기도 800여 개 농가와 함께 경기도 1,060여 개 학교 급식에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급식 공급 방식에 그간 지역에서 쌓은 신뢰와 함께 오랜 경영의 노하우를 접목했다. 학교 급식에 들어가는 농산물 가격은 농민이 참여하는 가격 심의 위원회에서 결정하고, 농산물 구매 손익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잔류 농약 검사를 농업 현장에서 사전 시행해 공급 전에 문제를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농산물을 냉장차에 수거하여 신선함을 유지하고 농민의 운송비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등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신뢰를 구축했다.
“지난 여름 식중독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국적으로 일부 농산물이 납품 거절을 당해 농민들 피해가 많았어요. 우리는 기존 40여 개 유통망을 이용해 학교 급식에서 남는 농산물을 일반 농산물로 유통해서 농민의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었죠.”

손우기 대표는 후배들이 농민과 상생하는 유통을 발전적으로 이어 나가리라 믿는다.
손우기 대표는 후배들이 농민과 상생하는 유통을 발전적으로 이어 나가리라 믿는다.

농민과 유통은 함께 가는 동지
손우기 대표는 단순한 농산물 유통을 넘어서 농민들과 새로운 품종 개발과 상품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
“밖(외국)에 나가서 보면 새로운 것이 많아요. 새로운 품종 개발이나 상품화는 작은 유통회사가 하기에는 역부족이에요. 시간이나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그래도 앞으로는 중장기 연구를 지원하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 농민은 좋은 농산물을 만들고 또 저희는 잘 팔 수 있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잖아요.”
손 대표는 학교급식을 넘어 공공급식, 특히 노인의 먹을거리 문제에 관심이 크다.
“이 지역에도 밥을 못 먹는 노인들이 정말 많아요. 급식에서 조금 짧거나 못생겼다고 반품된 농산물을 노인 급식을 하는 곳에 보내고 있어요. 노인 급식이 정말 시급해요. 앞으로 직접 도시락 등을 만들어서 어르신들에게 나눌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손우기 대표는 농민과 상생하는 유통이 농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굳게 믿는다.
“농민은 참 힘들어요. 채소가 폭등했다는 말은 농민이 돈을 벌었다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농민들이 망가지고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농산물 유통은 돈이 많아서 하는 일은 아니에요. 우리가 잘해서 소비를 많이 끌어올리고 농민이 더 잘 살고 더 많은 농민이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투박한 말투 속에 그는 진심을 담는다. 그 진심은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뎌온 후배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동지인 농민에게도 닿을 것이다. ‘상생’의 농업은 그렇게 가능하다.

신수경 편집장 / 사진 김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