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장학생 2017 동계연수기
돌, 바람, 바다, 올레, 여행 등…. 제주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다. 한국 속 작은 ‘외지’로 인식되는 섬나라 제주. 지난 2월 21~23일 2박 3일간 대산장학생 13명은 장학생 동계연수로 가시리마을, 무릉외갓집, 제주올레, 귀한농부영농조합법인, 물뫼힐링팜 등을 찾았다. 제주의 색을 담은 ‘농農’의 이야기를 대산장학생들의 목소리로 담았다.
외딴 마을의 재미난 변신, 가시리마을
가시리는 과거 제주 4·3사건 피해가 컸던 마을로 이전에는 바깥세상과 단절된 중산간 마을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한 이장님의 적극적인 태도가 출발점이 되어 정부 지원사업에 잇달아 선정되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가시리 마을사업의 특별한 점은 추진위원회와 마을 주민들이 끈질기게 소통하며 소득사업에 앞서 주민 역량강화 사업과 주민 문화사업을 먼저 실행했다는 것이다. ‘시간을 더하다’라는 마을 이름에 걸맞게 돈보다는 행복, 성장보다는 성숙을 추구하는 마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2개 이상의 동아리가 참여하는 가시리 문화학교, 주민들이 언제든 모여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가시리 디자인카페, 계절마다 도시민과 함께 즐기는 축제도 마련되어 있었다.
내가 사는 마을은 경북 포항에서 가장 먼저 3·1 만세운동을 벌였던 곳으로 작은 기념관과 공원이 조성되어있고, 매년 삼일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큰 행사를 한다. 하지만 일 년에 삼일절 단 하루 외에는 시민들의 발길은 전혀 없으며 평균 연령 70대의 50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 마을과 가시리의 차이는 무엇인지 유심히 비교했다. 강의 중에 ‘가시리에는 미친 사람 몇 명 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는데, 이선희 사무국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 몇 명이 모여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순간 ‘미친 사람 몇 명이 우리 마을에는 없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지키며 마을 주민과 마을의 발전을 위하는 ‘문화기획자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이선희 국장님의 노력이 지금의 가시리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단순히 마을 회관을 새로 짓거나 목적 없는 버스 관광을 떠나기보다는 주민들이 함께 소통하고, 하나 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주민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행복한 마을이 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의 중심에 내가 먼저 제대로 서 있어야겠다는 책임감을 함께 느꼈다.
이희성 _ 대산농업리더장학생 / 한동대 도시공학과
소비자와 농민이 함께 손잡고 지키는 CSA, 무릉외갓집
무릉외갓집은 농산물 꾸러미 사업체로 온도 차이에 따른 재배 작물의 차이, 재배 시기의 차이와 같은 제주도의 장점을 특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유통 경쟁이 확대됨에 따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도 꾸러미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에 힘쓰고 있다. 사회학을 전공하는 나는 사회학적 맥락에서 농업을 공부하며 늘 ‘현재와 같은 소비주의 사회와 농업은 애초에 공존할 수 없지 않은가?’라는 막연한 의문과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의문 속에서 알게 된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와 그 한 형태인 꾸러미 사업은 매우 인상 깊었다. 소비주의를 벗어나 땅으로부터 나는 생산물에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책임을 공유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농업에는 많은 변수가 있다. 그러나 소비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변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소비하고 싶을 때 소비할 수 있도록 재화가 존재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변수에 따르는 책임이 온전히 농민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꾸러미 사업은 이 구조를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자연의 변수에 따른 책임을 소비자가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적은 양이 나오든 많은 양이 나오든 일정한 금액을 지불함으로써 자신의 먹거리를 생산해주는 농민의 생계를 보장하고 부담을 덜어준다. 무조건 소비자의 편의가 보장되어야 하는 소비주의를 벗어났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소비의 지속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더욱 ‘소비다운 소비’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무릉외갓집과 같은 농산물 꾸러미는 외양만 보면 돈을 내고 무엇을 산다는 점에서 다른 소비행위와 동일해 보이지만, 그 근본이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는 소비 행위이되 ‘소비’라는 단어가 가진 기존의 함의를 떠올린다면 소비가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강의를 통해 꾸러미 사업이 여러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속 가능한 꾸러미 사업을 위해서는 무릉외갓집의 끊임없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소비주의적인 태도를 벗어나는 도시민들의 생각 변화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재성 _ 대산농업리더장학생 / 고려대 사회학과
특색있는 ‘변화구’로 승부하는, 물뫼힐링팜
자신을 농업과 문화를 향유하는 팜아티스트라고 소개한 물뫼힐링팜 양희전 대표. 물뫼힐링팜은 친환경 농업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친환경농업체험부터 우프, 팜파티, 팜페스티벌, 제주 한 달 살기 등 특색 있는 체험거리로 풍성하다. 양희전 대표와 함께 밭에 가서 옥수수도 심고 바다에 가서 보말도 따고 제주의 자연을 탐험하러 갈 수도 있다. 외국인들이 우프WWOOF를 통해 물뫼힐링팜을 찾아 농사일을 하며 한국문화를 체험하기도 한다. 물뫼힐링팜을 찾는 사람들이 늘자 감귤주스, 풋귤청, 귤말랭이 등의 가공품도 만들기 시작했다. 물뫼힐링팜의 가공품은 2016년 농촌진흥청 6차산업 가공경진분야에서 우수상을 받았으며 홍콩 LOHAS박람회에도 참가하고 할랄HALAL 인증도 받았다.
양희전 대표가 처음 친환경농업을 시작한 10여 년 전에는 지금처럼 유기농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집에서도 대학까지 보낸 아들이 농사를 짓는다고 하니 뜯어말렸다. 처음 몇 년은 원하는 품질의 귤을 수확하지 못해 수확량의 70%는 버렸다. 그렇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티며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던 저력은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고민과 건강한 토양에서 건강한 농산물이 나온다는 친환경농업에 대한 철학이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물뫼힐링팜만의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차별화 전략으로 경쟁력을 갖춘 알짜배기 농장이라고 느꼈다. 무엇보다 농업과 문화를 연결하여 농촌에서만 향유할 수 있는 독특한 농촌문화를 공유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물뫼힐링팜이 찾아가는 것이 아닌 물뫼힐링팜으로 찾아오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물뫼힐링팜의 강점이자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지속성이라고 생각한다. 규모화·기업화 농장의 등장으로 설 자리를 잃은 소농이나 가족농에게 물뫼힐링팜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야구에는 직구 뿐 아니라 변화구도 있는 것처럼.
고하늘 _ 대산농업전문언론장학생 /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농업PD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