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외식업
한동안 돈가스를 튀기고 비빔밥 재료를 볶은 적이 있다. 집밥 메뉴가 아니라 팔기 위한 음식들이었다. 충남 모처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북카페를 운영했었는데 운영진들이 먹거리에 문제의식이 커서 친환경 로컬푸드를 지향하며 돈가스와 비빔밥을 팔았다. 주요 식재료는 충남 홍성에서 생산한 무항생제 돼지고기였고 우리밀과 유정란은 지역산을 쓰려고 했다. 비빔밥 재료도 쌀부터 각종 채소까지 친환경, 지역 재료를 쓰려고 애를 썼다. 애를 썼다고 쓰는 이유는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서였기 때문이다. 농민과의 직거래, 친환경농업법인, 생활협동조합의 물품도 적극 이용해서 가급적 먹는 소비의 문제가 농업과 상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랐다. 하지만 이것도 엄연히 장사, 게다가 마진이 가장 박한 ‘먹는 장사’였으니 그 고충을 다 적기엔 지면이 부족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작성한 <2015 외식업체 식재료구매현황>에서는 식재료비가 약 40.6%다. 설문조사의 특성상 실제보다는 식재료 구매 비율을 좀 더 높게 대답했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외식업체의 식재료 구매비율은 매출액 대비 30%에서 35% 내외다.
그 북카페는 매출액 대비 식재료 구입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커피도 공정무역 원두였기 때문에 마진을 기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신선식재료 외에 가공식품 문제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돈가스를 튀기는 식용유와 빵가루 같은 것들 말이다. 각종 소스를 비롯해 음식을 할 때 쓰는 진간장이나 식초, 피자치즈 등은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가공 물품이었다. 실제 식재료에는 신선농축수산물은 물론 햄과 같은 가공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 조미식품 등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공업중심의 산업화 물결에 몸을 맡기고 많은 이들은 서울로 대구로 부산으로 향했다. 쌀, 고추 농사 백날 지어봤자 먹고살 길이 막막해서였다. 이들의 다수가 외식업에 뛰어들고 저가의 음식 시장에 진출한다. 부족한 자본과 기술로 나홀로 창업을 하자면 당연히 싼 가공식품 위주의 식재료를 동원해야 한다. 거칠게 도식화 하자면 농촌의 자식들이 농촌을 버려야만 지금의 업을 그나마 지킬 수 있다.
식당에서 이윤을 내려면 두 가지를 쥐어짜야 한다. 가장 손쉬운 것이 식재료이고 그다음은 사람(노동)이다. 각종 공과금과 임대료는 고정비용이니 말이다. 하지만 건전한 고용 창출이 목적이어야 하는 사회적 기업이 노동을 건드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식재료인데 이 또한 처음의 뜻이 있으니 조절하기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래서 결론은? 결국 식사 메뉴를 전면 철수했다. 너무 아픈 뜻은 뜻이 아니었음을.
외식업의 혹독한 현실, 농업의 운명과 닮았다
여기저기 죽겠다는 소리다. IMF보다 더 힘들다는 이야기는 지겹도록 들린다. 개선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각종 경제 지표지수는 우울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징후는 자영업 부문. 2016년 통계로 전체 자영업자 수는 557만 명이지만 통상 650만 명에서 700만 명까지도 본다. 이들의 가계대출 규모가 520조 원에 이른다는 조사결과가 최근에 나왔다. 소득은 더디 늘거나 외려 줄어드는데 빚은 빨리 늘어나는 형태가 고착되었다. 특히 자영업자는 대출 상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다. 빚은 엄청나게 늘어나 있고 채무자가 갚을 능력이 없으면, 개인 파산을 넘어서 국가 파산으로 이어지는 상황인지라 더욱 위험하다. 그 전체 자영업에서 약 10% 이상이 외식업이다. 사실상 20% 정도까지도 본다. 외식사업체는 약 65만 개이고 외식업에 190만 명 정도가 종사한다는 공식 통계가 있지만 이보다는 훨씬 더 많다.
무엇보다 외식업이라는 것이 부부나 동료와의 창업 형태가 많으니 종사자를 두 배수 이상을 잡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자녀를 포함한 가족들을 포함하면 밥으로 밥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 중 90%는 5인 미만의 소규모 음식 업체다. 오랜 불경기에 자영업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소규모 외식업체는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다. 반면 비교적 안정적이라 보는 1억 원 이상의 매출 규모를 가진 음식점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전체 외식업체 중에서 월평균 매출액 400만 원 이하가 전체의 45% 정도다. 월평균 순이익 100만 원 이하의 비율도 27%다. 외식업 창업자 10명 중 6명이 3년 안에 폐업을, 5년 안에는 7명이 폐업을 한다.
외식 비율이 50%에 육박하고 음식점들이 이리 많은데 한 나라의 농어업 생산과 소비의 연결이 취약하기 짝이 없다. 국내산 신선농수축산물이 외식업과 연결되지 않는 현상은 사실상 국내산 농산물보다 수입산이 훨씬 더 싸기 때문이다. 외식업의 기초 식재료인 가공 식품의 경우, 가공 원료의 상당 부분이 글로벌푸드시스템 속에 편입되어있다. 가공식품뿐만 아니다. 각종 FTA로 손쉽게 수입 고기와 과일, 채소를 싸게 구할 수 있으니 점점 더 국내산 농산물이 한국의 외식업과 함께 맞물리지 않는다.
이 우울한 지표를 쭉 늘어놓는 이유는 외식업의 혹독함은 농업의 운명에서 연원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전체 인구 2,500만 명 중에서 60%가 농업 인구였다. 현재 인구는 5,000만 명에 육박하지만 농업인구는 이제 전체 인구의 약 5% 정도인 257만 명으로 300만 명 선이 무너진 지 오래다. 그렇다면 그 많던 농민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공업중심의 산업화 물결에 몸을 맡기고 많은 이들은 서울로 대구로 부산으로 향했다. 쌀, 고추 농사 백날 지어봤자 먹고살 길이 막막해서였다. 그야말로 쌀을 사기 위해 논을 버리고 도시로 떠난 농민들은 도시의 하층을 이루었다. 자수성가의 미담도 더러 있었지만 고향에서도 땅뙈기가 없어 떠나온 삶이 도시에서라고 크게 달라졌겠는가.
1984년 김선영이 쓴 이화여대 석사 논문, <도시 소규모 경제활동에 관한 연구>에서는 당시 도시의 포장마차 주인들 다수가 농촌 이주자라는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팽창하는 노점상(포장마차)은 이농현상의 연장선이다. 돈도 기술도 없을 때 그나마 진출 가능한 직업군이 노점상이었고 그중에서도 큰 기술 없이 진입 가능한 음식을 다루는 일이었다. 대형 공장에 취직이라도 할라치면 소위 연줄이 필요하던 시대였다.
밑천이 있을 때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밑천이 없을 때 사람들은 장사에 나선다. 현재 자영업의 과도한 팽창은 사실 제대로 된 일자리가 부족해서이다. 봉급과 적당한(충분하지는 않더라도) 복지가 보장되는 일자리가 너무 없다. 어느 정도 경제발전을 이루어 절대빈곤에서 탈출하였다 하더라도 분배에 실패한 한국에서 좋은 일자리 부족은 만성적인 현상이다. 농촌을 떠나온 농민의 손자녀 세대인 청년들까지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창업에 뛰어든다. 이들의 다수가 외식업에 뛰어들고 저가의 음식 시장에 진출한다. 부족한 자본과 기술로 나홀로 창업을 하자면 당연히 싼 가공식품 위주의 식재료를 동원해야 한다. 가장 싼 식재료로 만들어 싸게 팔아야만 박하게나마 이윤을 남길 수 있으니 말이다. 미국계 대형 할인점인 ‘코스트코’ 없으면 자영업 무너진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거칠게 도식화 하자면 농촌의 자식들이 농촌을 버려야만 지금의 업을 그나마 지킬 수 있다.
음식에 우리 ‘농업’이 없다
외식 비율이 50%에 육박하고 음식점들이 이리 많은데 한 나라의 농어업 생산과 소비의 연결이 취약하기 짝이 없다. 국내산 신선농수축산물이 외식업과 연결되지 않는 현상은 사실상 국내산 농산물보다 수입산이 훨씬 더 싸기 때문이다. 외식업의 기초 식재료인 가공 식품의 경우, 가공 원료의 상당 부분이 글로벌푸드시스템 속에 편입되어있다. 대기업 식품도 ‘국내산’을 프리미엄으로 붙일 정도다. 이는 달리 말하면 국내산 원료 사용 비중이 그만큼 낮다는 뜻이다. 2014년 농식품부가 조사한 식품제조업 국산원료 사용량 및 비율을 보면 국산 농수산물 비중은 약 47%이다. 하지만 자급률이 높은 쌀, 신선채소 중에서도 신선도 문제로 수입이 어려운 엽근채류, 인삼과 버섯 같은 특용작물이 국산 비율을 지탱할 뿐이지 나머지 원료는 국산 비율이 훨씬 더 낮다. 이는 고스란히 외식업의 국산 식재료 사용 비율에 영향을 준다. 국내산 진간장을 쓰면 뭐하나. 이미 그 간장이 100% 수입산 콩이니 말이다. 가공식품뿐만 아니다. 각종 FTA로 손쉽게 수입 고기와 과일, 채소를 싸게 구할 수 있으니 점점 더 국내산 농산물이 한국의 외식업과 함께 맞물리지 않는다.
외식업체의 식재료 구매 경로는 다양하다. 도매시장, 식재료 유통법인, 개인도매상, 식재료 전문마트, 전통시장, 대형소매점, 일반소매점, 프랜차이즈 본사, 음·식료품제조업체를 통하기도 한다. 구매 경로에는 ‘생산자’에게서 직접 구매하는 직거래도 포함한다. 하지만 그 비율은 1.4% 정도에 그친다. 대다수 외식업체들은 ‘식자재마트’ 이용을 많이 한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올인원 쇼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식자재 유통 사업에 대기업들이 진출하면서 중소규모의 식자재상과 갈등을 겪기도 한다.
프랜차이즈 가맹 업체들은 식자재 선택 권리가 없다. 당연히 프랜차이즈 본사가 제공하는 식재료만을 사용해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계약 해지의 위협이나 여러 제재를 당한다. 프리미엄 김밥을 내세운 ‘바르다 김선생’의 경우를 보면, 시중 당근 가격의 폭락세로 10㎏에 1만 원인데도 밑간한 당근을 4만 7,000 원에 밀어내고, 시중가보다 훨씬 더 비싼 참기름을 대량 진열하도록 하는 식의 전형적인 식재료 밀어내기로 가맹점주들과 갈등이 불거졌다. 김밥을 많이 사먹는다 해서 당근 농사짓는 농민이 행복했을까, 아니면 김밥을 마는 ‘바르다 김선생’ 가맹점주가 행복했을까.
모든 사업체에게 세금 공제혜택은 절실하다. 특히 음식업에서 30%를 넘게 차지하는 식재료 구입에 대한 증빙은 매우 중요하다. 식재료 전문 유통업자들을 통하면 구매 영수증 처리가 쉽지만 농어민이나 영세상인과의 직거래 형태에서는 쉽지 않다. 그 대안으로 일정 금액 이하의 소액농산물은 증빙영수증이 없더라도 의제매입세액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외식업체와 농민 직거래는 어렵다
이 와중에도 농가와 직거래를 하려는 뜻있는 요리사도 많다. 맛있는 음식의 핵심은 좋은 식재료이니 믿고 거래할 수 있다면 신선도와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고, 농가에도 보탬이 되길 바라서다. 정부도 민간영역도 대안 농식품체계로 생산자와 소비자 직거래 모델을 권장하지만, 농산물의 가장 큰 소비자인 외식업체와 농어민과의 직거래는 어렵다. 일단 믿고 거래할 만한 생산자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점점 농촌과의 인연이 희미해지는 세상이다 보니 친인척을 동원하는 방식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무엇보다 외식업 입장에서도 농민 입장에서도 농산물 직거래가 딱히 이익을 주는 것도 아니다. 교과서적으로 따진다면 유통마진이 빠지니 농민과 요리사(업주)에게 그만큼 이익이 이전되어야 하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다. 직거래 물품은 소량이어서 농가에는 큰 이익이 나지 않고 손만 많이 간다고 여긴다. 외식업체는 좀 더 싸게 식재료를 받을 줄 알았지만 외려 시중가보다 높은 경우가 더 많다. 소량 화물이기 때문에 운송비가 고스란히 들고 계절 요인에 따른 배송사고도 종종 일어난다. 결정적으로 농산물 구매를 증빙해서 공제를 받는 일이 매우 어렵다. 농민과 직거래를 할 경우 생산자의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된 영수증을 받아서 통장 자동이체로 구매하면 된다. 하지만 이 영수증 처리가 빠르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뜻이 좋아 다품종 소량생산과 직접 판매이지, 주문과 배송, 소비자 응대 거기에 따른 영수증 처리까지 하느니 가격을 덜 받더라도 농협이나 기관에 대량 출하가 낫다고 보는 것이다. 기민한 젊은 농민 아닌 이상 고령의 농민들에게는 사실 직거래의 의미는 자식이 지인들을 통해 팔아주는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현실이다.
농산물 직거래와 국내산 식재료 사용을 늘리려면
모든 사업체에게 세금 공제혜택은 절실하다. 특히 음식업에서 30%를 넘게 차지하는 식재료 구입에 대한 증빙은 매우 중요하다. 식재료 전문 유통업자들을 통하면 구매 영수증 처리가 쉽지만 농어민이나 영세상인과의 직거래 형태에서는 쉽지 않다. 그 대안으로 일정 금액 이하의 소액농산물은 증빙영수증이 없더라도 의제매입세액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연 매출 4,800만 원 이하의 간이과세 음식사업자에 한해서만 직거래를 통한 농수산물 구입에 대해 공제를 해준다. 일반음식업자들이 공제를 받으려면 사업자간 거래여야만 가능하다. 농민이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럴 일은 많지 않다. 게다가 대다수 음식점은 일반과세자다. 그러니 외식업체는 계산서를 발행해줄 수 있는 거래처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부가가치세 비율 9.1%(10/110) 전부를 공제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음식업 개인은 7.4%, 법인은 5.6%. 제조업은 3.8%다. 그 외 사업체는 1.9%의 공제를 받는다. 음식점에서 가공식품을 구매할 경우 부가세를 모두 공제받을 수 있지만 농수산물의 경우 7.4%만 공제를 받는 셈이다. 국내산 신선재료를 쓰면 공제 금액의 차이로 인해 그만큼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이유는 가공되지 않은 농수산물은 부가세 면제 품목이기 때문이다. 농수산물을 제조하는 가공 업체들은 그 공제비율이 더 낮으니 국내산 농수산물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수입산 찐쌀이나 고추양념과 같은 재료를 쓰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원자재 값도 싸고 세금 공제도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도 외식업체의 국내산 식재료 사용 비율을 높이고 직거래를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업체에서 인터넷 접속 없이 POS 단말기로 농산물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직거래 POS-Mall 사업을 운영한다. 그러나 농산물의제매입세액 공제한도가 정해져 있어 거래 활성화에 근본 걸림돌이다. 안 그래도 힘든 음식점 영업에 단 몇만 원이라도 절세하려면 영수증 확실한 글로벌 식재료와 세액 공제가 가능한 가공식품을 구매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공공의 손’이 필요하다
직거래는 선이다. 가급적 신선한 식재료를 발굴해서 쓴다면 음식점에도 도움이 되고 최종구매자인 식당 손님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일반과세 음식점의 식재료 구입 공제비율을 전액 인정해 주는 것이 시급하다. 세원이 줄어든다며 난색을 표하겠지만 정작 세금을 징수해야 할 곳은 따로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직거래 의지가 있는 농민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공공의 손’도 필요하다. 농사짓기에도 바쁜데 자꾸 가공하라, 직거래하라고 압박을 하는 것도 사실 당국의 직무유기다. 정말 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좋은 요리사와 연결하고 그 가치를 알려내고 싶다면 조금 더 바지런해져야 한다. 농민과 식당 사장님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으니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하는 것은 녹봉을 먹는 자들의 의무다.
※필자 정은정: 『대한민국 치킨전』 (2014, 따비) 저자. 농촌·농업사회학 연구자. 먹거리와 농업의 산업화와 기업화 문제를 치킨, 피자, 라면 등 대중적인 음식으로 풀어내는 현장 연구자로, 농민들과 시민단체, 학교 등을 대상으로 강의하며 농업과 먹거리 관계의 회복을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