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힘으로 만드는 황금빛 농촌

김상식 두리농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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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장 볼 때 어떤 것부터 보시나요? 크고 깨끗하고, 벌레 먹은 것 없는 농산물 먼저 찾으시지요? 그런 농산물을 만들려면 농민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많이 칠 수밖에 없습니다. 화학비료로 크기만 빠르게 성장시킨 채소는, 작고 못생겨도 더 단단하고 건강한 유기농 채소와는 맛이 다르지요.”
   김상식 두리농원 대표(55, 제26회 대산농촌문화상 농업경영 부문 수상자)의 이야기에, 도시에서 온 소비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연 1만여 명의 소비자, 귀농인, 농민이 방문해 강의와 체험으로 친환경농업과 농촌을 만나는 전남친환경농업담양교육원의 풍경이다. 교육원을 설립한 김 대표와 부인 김민자 원장(54)은 28년간 꾸준히 유기농업을 실천하며, 이곳에서 그 가치를 나눈다.

두리농원에서 직접 생산한 유기농산물과 지역 친환경농산물로 차린 건강하고 맛있는 밥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농업과 먹거리의 가치를 깨닫는다.
두리농원에서 직접 생산한 유기농산물과 지역 친환경농산물로 차린 건강하고 맛있는 밥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농업과 먹거리의 가치를 깨닫는다.

황금빛 친환경 마을
“농사도 자식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매일 말을 걸며 식물이 뭘 원하는지 귀 기울이고, 사랑으로 감싸야 잘 자랍니다.”
   소똥 냄새만 맡아도 행복했던 천생 농민, 김상식 대표.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가 도입되기 전인 1991년부터 유기농업을 시작한 그는 현재 4천 5백 평의 하우스에서 유기농 쌈채소, 오색토마토, 케일 등을 생산한다.
   “1996년에 대나무로 직접 하우스를 짓고 유기농 쌈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했어요. 몸이 아팠던 큰아들에게도 먹일 수 있는 건강한 채소를 기른다는 마음이었지요.”
   광주의 대형 유통매장과 계약재배를 하고, 인근 쌈밥 식당에 두리농원 이름을 내걸고 공급한 쌈채소의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유기농사로 혼자서 다 공급하기는 벅차니,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상생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마을 농가와 판로를 공유하고, 친환경 농법을 적극적으로 교육하며 공동생산, 공동출하로 자연스럽게 지역에 친환경농업을 전파했다. 2002년에는 지역농민 14명과 함께 두리영농조합법인을 설립, 인근 지역을 전남 최대 친환경농업 단지로 발전시켰다. 김 대표 1명에서 시작해, 이제는 황금리 55농가 전체가 친환경농사를 짓는다.
   “황금마을은 100% 친환경 농업마을입니다. 농약 검출로 친환경 인증이 취소된 적도 없고요. 친환경농업을 전파하려고 처음엔 힘도 많이 들었지만, 농약 안 쳐도 농사가 잘되는 것을 직접 확인하며 함께 하는 농가가 늘어났죠.”

어려울수록, 더불어 가야 산다
행정가보다 농민이 중심이 되어, 친환경 농업에 힘을 모아보면 어떨까. 그런 고민 끝에 2003년, 김 대표가 16명의 농민과 함께 만든 것이 ‘담양군친환경농업인연합회’다. 관행농업에서 친환경농업으로 넘어가면서 어려움을 겪던 농민들이 서로 의지하며 생산기술을 보완하고, 안정적인 유통망을 확보하는 데 힘썼다.
   “2008년도에는 정회원 수만 600명이 넘었습니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행정에서도 찾아와 필요한 것을 적극 지원해주었죠.”
   담양 연합회는 곧이어 전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로 확장되었다. 농민들이 정부 보조금 지원을 받아 농기자재를 구매할 때 가격 거품이 심했던 관행을 깨고, 투명한 입찰제도를 도입해 농민과 업체 모두 상생하는 선도적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농약 대신 담수와 태양열, 녹비작물 등을 활용해 토양에 남은 중금속과 선충, 바이러스를 없애고 토양을 소독한다. 깻묵과 한약찌꺼기 등으로 직접 비료를 만드는 등 화학 성분 대신 천연 성분을 활용해 방제하고 있다.
농약 대신 담수와 태양열, 녹비작물 등을 활용해 토양에 남은 중금속과 선충, 바이러스를 없애고 토양을 소독한다. 깻묵과 한약찌꺼기 등으로 직접 비료를 만드는 등 화학 성분 대신 천연 성분을 활용해 방제하고 있다.

생산만 해서는 살 수 없다
“1983년 당시 토마토 가격이 1kg당 천 원이었어요. 그 후 34년이 지난 지금도 토마토는 여전히 천 원대에 팔립니다. 그 사이 시설 투자비용은 수십억 늘어났어요. 농산물만 빼고 모든 물가가 오른 거죠. 농민이 농산물만 생산해서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겁니다.”
   마을과 상생하며 신뢰받는 농민으로 자리매김한 김 대표는 이제 생산을 넘어 농農의 부가가치를 높일 방안을 생각한다.
   “농촌에 와서 즐기고 배우는 소비자가 많아지도록, 농촌다운 농촌을 만들어야 농민도 함께 살아날 수 있습니다.”
   2008년 설립한 전남친환경농업담양교육원을 중심으로, 농촌체험과 농업교육 분야에 더 집중할 계획이다. 김상식 대표가 소비자·귀농인·농민 대상 농업교육에 주력하는 한편, 김민자 원장은 뛰어난 요리솜씨와 섬세한 감각으로 교육원의 밥상과 문화를 가꾸고 있다. 교육원을 중심으로 농촌체험 진행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며 마을도 함께 발전했다. 그 결과 마을 귀농인구도 늘어나고, 살기 좋아진 황금마을을 부러워하는 농민들이 많다.

전라남도 유기농 명인 김상식 대표와 교육원을 이끄는 김민자 원장, 교육 원 운영을 돕는 맏딸 두리 씨, 원예를 전공하는 서진 씨, 막내 경록 씨까 지 온 가족이 모였다.
전라남도 유기농 명인 김상식 대표와 교육원을 이끄는 김민자 원장, 교육원 운영을 돕는 맏딸 두리 씨, 원예를 전공하는 서진 씨, 막내 경록 씨까지 온 가족이 모였다.

‘모두의 공간’을 꿈꾼다
김 대표 부부의 맏딸 김두리 씨는 교육원의 사무장을 맡아 한몫을 든든히 해내고 있고,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원예를 전공하는 둘째 딸 김서진 씨는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을 두리농원 현장에서 풀어내보려 구상하고 있다. 자녀들이 있으니 머지않아 가업을 물려주고 편해지고 싶을 법도 한데, 성심껏 가꿔온 교육원의 미래에 대한 김 대표의 생각은 확고하다.
   “교육원은 누군가의 사유지가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는 공익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늘 아이들에게 말해왔어요. 전남친환경농업담양교육원을 지역문화재로 등재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꾸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꿈입니다.”
   한 걸음 앞서 미래를 상상하고, 묵묵히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김 대표 부부. 마을과 함께, 농민의 손으로 지속 가능한 농촌을 만들어 간다. 그가 키우는 채소처럼, 부드럽고 건강한 힘으로.

글·사진 유해리

너른 마당과 소나무, 기와집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전남친환경농업담양교육원.
너른 마당과 소나무, 기와집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전남친환경농업담양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