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GMO완전표시제 시행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대한 청와대의 답변이 그랬다. 지난 5월 8일 청와대는 21만6886명이 참여한 GMO완전표시제 촉구 국민청원과 관련 “물가인상과 통상마찰 등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며 “소비자 단체와 전문가, 관계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해 개선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유보적인 답변을 내놨다. 사실상 기존의 정부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국민청원을 진행한 ‘GMO완전표시제 시민청원단’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GMO인지 아닌지 알고자 하는 국민들의 기본적인 요구를 물가인상, 통상마찰이라는 오래된 거짓 근거로 또다시 외면한다면 이는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식품표시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GMO표시제 강화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고 재차 촉구했다.
GMO완전표시제를 요구하는 이유
우리나라는 세계 1위의 식용 GMO(유전자변형식품) 수입국이다. 현재 수입하는 식용 GMO는 대두와 옥수수로 연간 약 200만 톤에 달하며, 모두 기름과 전분, 당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중에선 GMO 표시는 물론 Non-GMO 표시조차 찾아볼 수 없는데, 이유는 바로 유명무실한 현행 GMO표시제 때문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부터 GMO표시제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기름과 전분, 당은 고도의 정제과정을 거치면서 GMO 단백질 유전자가 남지 않게 되는데, 이 경우 GMO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일종의 예외조항인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GMO원료로 만든 기름과 전분, 당이 들어간 빵이나 과자 등 수많은 가공식품도 GMO표시 대상에서 제외된다. 결국 식용 GMO를 가장 많이 수입하지만 GMO 표시를 찾아볼 수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단체들은 완제품에 GMO 단백질 유전자가 남아 있지 않더라도 GMO원료를 사용한 가공식품에 GMO 표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로 GMO완전표시제를 도입하자는 것인데, 실제로 대다수 유럽 국가에서는 이 같은 방식의 GMO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시민사회단체들은 소비자의 알권리 차원에서 GMO완전표시제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GMO 안전성과 GMO표시제는 별개의 문제이며, 향후 구성될 사회적 협의체에서는 소비자의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GMO표시제 개선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청와대가 구성하겠다고 밝힌 사회적 협의체는 GMO표시제에 대한 찬반양론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제도 도입에 따른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목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며 “GMO를 사용하는 식품업계도 ‘GMO표시강화 불가’라는 입장만을 반복하지 말고, GMO표시강화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하는 논의과정에 참여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선혜 변호사는 지난 5월 17일 ‘GMO완전표시제 국민청원 청와대 답변에 대한 긴급토론회’에서 “현행 GMO표시제는 GMO 표시대상이나 표시기준, 표시의무자 등에 대해 표시의무를 상당 부분 면제해주고 있는데, 이는 헌법에 보장된 소비자의 권리 및 국민의 알권리,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라며 “물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알권리와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식품표시제도의 입법취지를 살리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보호하기 위해 현행 GMO표시제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1위의 식용 GMO(유전자변형식품) 수입국이다. 현재 수입하는 식용 GMO는 대두와 옥수수로 연간 약 200만 톤에 달하며, 모두 기름과 전분, 당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중에선 GMO 표시는 물론 Non-GMO 표시조차 찾아볼 수 없는데, 이유는 바로 유명무실한 현행 GMO표시제 때문이다.
GMO 논란을 자초하고 있는 정부
우리 정부는 사실상 GMO가 안전하며, 현행 GMO표시제 역시 별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불신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이유는 그동안 GMO표시제와 관련해 식약처가 보여 온 비상식적인 태도 때문이다.
GMO표시제 개선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식약처는 2013년부터 ‘GMO표시제 검토 협의체’를 운영해왔다. 문제는 식약처가 GMO완전표시제를 반대하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협의회를 구성하고, 심지어 협의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는 점이다. 협의회 위원들은 매번 회의 때마다 비밀서약서에 서명까지 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협의회의 논의 방식 역시 자료에 근거한 것이 아닌 이해당사자의 주장에 의존했고, 담당 부서 및 실무자의 잦은 교체로 빈축을 샀다. 당연히 GMO표시제 개선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했고, 이 협의체는 지난 5월 해산됐다.
국민청원에 대한 청와대 답변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은 공론화위원회 수준의 투명한 사회적 협의체 구성을 가장 먼저 요구하고 있다. 덧붙여 협의체 논의 결과에 승복하는 필수요건으로 △사전 회의 개최의 공지 △누구나 방청 가능한 열린 회의 △회의 자료와 의사록의 공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 개진 방법 보장 등을 내걸었다. 일부 전문가들의 밀실 합의가 아닌, 다수 국민이 함께하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자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소비자청이 소비자 대표 3인과 기업 대표 3인, 학계 전문가 3인 등으로 ‘GMO표시제도에 관한 검토회’를 구성, 공개회의를 원칙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검토회 자료는 소비자청 웹사이트에 공개된다.
Non-GMO표시에 대한 정부의 설명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현행 GMO표시제는 GMO 단백질 유전자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제품은 Non-GMO표시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규정을 완화해 0.9% 이하의 비의도적 혼입은 Non-GMO표시를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허용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청와대는 국민청원 답변에서 “소비자 혼란을 초래할 수 있고, 국제적인 추세를 고려하더라도 Non-GMO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현재 대다수 유럽 국가에서는 GMO 원료가 0.9% 이하일 때 Non-GMO표시를 자율적으로 하고 있다. 정부가 GMO관련 표시 자체를 못하게 막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현재 수입되는 식용 GMO 품목인 대두의 자급률은 9.4%, 옥수수는 0.8%에 불과하다. 결국 안전한 국내 농산물로 자급하지 못함으로써 불가피하게 GMO를 수입하게 되고 GMO에 의존하게 되는 것, 이게 바로 GMO 문제의 출발점이다.
GMO는 결국 식량자급의 문제
최근 캐나다에서 상업적 재배가 허용되지 않은 GMO밀이 발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입밀의 안전성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식약처는 국내로 수입되는 캐나다산 밀과 밀가루에 대해 수입 시마다 검사를 강화해 미승인 유전자변형 밀이 검출되지 않은 것만 통관을 허용할 계획이며, 한국제분협회도 식약처의 정확한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캐나다산 밀의 구매 및 유통·판매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수입밀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는 지난 6월 18일 성명서를 내고, 캐나다산 밀 수입 및 판매 중단과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는 “옥수수나 콩과 달리 밀은 세계 어떤 곳에서도 GMO밀의 상업적 생산이 허용되고 있지 않지만, 2013년 미국 오리건 주, 2014년 미국 몬태나 주, 2016년 미국 워싱턴 주, 2016년 아르헨티나산 사료용 밀, 그리고 2017년 캐나다 앨버타 주에서 보듯 몬산토사의 GMO밀은 꾸준히 발견되고 있다”며 “몬산토사가 2004년 GMO밀에 대한 시험재배를 중단했다고 밝힌 지 10년이 훨씬 넘은 이후에도 GMO밀이 왜 그곳에서 발견될 수 있는지 명확하게 해명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우려했다.
사실 수입밀의 안전성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가 2A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는 글리포세이트의 잔류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돼 왔다. 미국과 캐나다 등 밀 수출국에서는 수확 1~2주 전에 밀을 건조하기 위해 글리포세이트 제초제를 무작위로 살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밀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작물은 수확 전 약을 치지 않지만, 대규모로 재배되는 수입밀은 수월하게 수확하기 위해 글리포세이트 제초제를 사용하고, 그래서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밀의 ‘글리포세이트 잔류허용치’는 5ppm으로, 쌀 0.05ppm보다 100배나 높게 설정돼 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글리포세이트 잔류허용치는 과학적 근거에 의해 설정된 것으로, 섭취량을 기준으로 볼 때 안전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쌀과 단순히 잔류허용치를 비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다만 밀의 경우 미국 등 수출국에서 합법적으로 사용하는 농약의 잔류량을 고려했으며, 우리가 일방적으로 글리포세이트 잔류허용치를 강화하면 무역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국내 밀 자급률이 1.8%에 불과한 상황에서, 밀을 차질 없이 수입하기 위해 느슨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GMO도 마찬가지다. 현재 수입되는 식용 GMO 품목인 대두의 자급률은 9.4%, 옥수수는 0.8%에 불과하다. 결국 안전한 국내 농산물로 자급하지 못함으로써 불가피하게 GMO를 수입하게 되고 GMO에 의존하게 되는 것, 이게 바로 GMO 문제의 출발점이다.
‘GMO완전표시제 시민청원단’은 GMO완전표시제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GMO를 사용한 식품에 예외 없는 GMO표시 △공공급식, 학교급식에 GMO 식품 사용 금지 △Non-GMO 표시를 막는 현행 식약처 고시 개정 등을 촉구했다. 만약 이 청원에 GMO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식량자급률을 높여달라는 요구가 함께 담겼다면 어땠을까. 이제라도 농업계는 GMO완전표시제 요구에 좀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동시에 식량자급률 향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필자 이기노: 한국농어민신문 기자. 2009년 입사 후 농산업과 친환경 농업, 농촌복지, 여성농업인 등을 담당했고, 현재 식품산업 전반을 취재하고 있다. 농업과 식품산업의 연계 및 발전에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