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직불제’ 성공 지름길, 농민들 이야기부터 들어라

“두고 보세요. 당장 통장에 돈이 들어가면, 그때부터 불만들은 쏙 들어갈걸요.”
 공익직불제 시행 방안을 두고 논란이 뜨겁던 2019년 어느 날, 한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 공무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직불제가 시행되고 나면 대부분의 농민들이 이제까지 받던 것보다 더 많은 직불금을 받게 될 테고, 그러면 반대했던 농민들도 생각이 달라질 거라는 의미였다.
 이 공무원의 확신을 증명이라도 하듯, 농식품부는 공익직불금 수령이 마무리된 직후인 2020년 12월 16~22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을 통해 공익직불금의 지급 효과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고, 공익직불금 수령 농민의 ‘87.3%’가 만족한다고 답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연 120만 원의 소농직불금이 지급되는 경지면적 0.5ha 이하 농민의 만족도는 92%에 달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특정 농업정책에 대한 만족도가 90%에 육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 수치를 근거로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공익직불제의 성과를 논하고, 자화자찬식 정책 홍보에 나서는 것은 타당한 일일까. 12월 14일 대산농촌재단의 후원을 받아 한국농어민신문이 개최한 심포지엄 ‘공익직불제 시행 원년,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에서는 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2020년 12월 14일 한국농어민신문이 개최한 심포지엄 ‘공익직불제 시행 원년,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한국농어민신문
2020년 12월 14일 한국농어민신문이 개최한 심포지엄 ‘공익직불제 시행 원년,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한국농어민신문

현장 농민들의 목소리
“직불금이 과거보다 늘어난 것 말고, 공익직불제가 왜 시행됐는지, 기존 직불제와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토론회에 참석한 4개 지역(서산 음암면, 고창 부안면, 영암 서호면, 거창 신원면) 이장들은 답답함부터 호소했다. 전량배 충남 서산 음암면 부산리2구 이장은 “면사무소 직원이든, 농산물품질관리원 직원이든 일선 공무원들도 공익직불제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라면서 “직불금 신청 전에 충분한 안내와 교육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준수사항에 대해 누가 특별히 점검했던 것도 아니어서 농민들도 다들 의례적으로 여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춘기 경남 거창군 신원면 대현마을 이장도 “공익직불제가 무엇인지, 이전 직불금과는 무엇이 다른지 교육 자체가 하나도 안 돼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특히 우리 마을은 ‘공익직불제 실천시범마을’ 사업에 선정돼 농식품부가 제작한 유튜브 동영상을 가지고 어르신들 교육을 했지만 잘 이해하지 못하셨다. 고령화된 농촌 현실에 맞지 않는 홍보였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고스란히 농가가 이행해야 할 의무준수사항의 문제로 이어졌다. 김동환 전북 고창군 부안면 반룡마을 이장은 “면사무소에서 주는 자료를 받아서 여러 번 읽어봤지만 마을 분들에게 17가지 준수사항에 대해 설명할 자신도, 지키라고 할 자신도 없었다”며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70대 후반에서 80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고, 그 중엔 자기 이름 석 자 쓰기도 어려운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 의무적으로 영농일지 쓰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최치원 전남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영모정마을 이장은 “의무준수사항이 필요한 건 맞지만, 과연 이게 이행이 가능할까 싶은 부분이 상당하다”면서 “농약병이나 폐비닐을 수거하려면 공동수거공간이 있어야 한다. 또 모아 둔다고 해도 수거해 가는 업체가 많지 않다. 영농폐기물을 보관하고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먼저 아닌가. 가져가지도 않으면서 버리지 말라고 하는 것은 결국 불법 소각하라는 얘기냐”고 꼬집었다.
 준수사항에 대한 이행점검이 가능한지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최치원 이장은 “2시간씩 공익기능 증진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영암 관내 농민들이 1만 명에 달한다. 그 1만 명이 순차적으로 교육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인력이 동원돼야 할 텐데, 어떻게 교육을 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김춘기 이장도 같은 문제 제기를 이어갔다. 그는 “우리 면에 21개 마을이 있는데, 직불 담당 공무원은 1명밖에 없다. 마을별 공동체 활동 8시간을 대체 누가 확인하고 누가 증명할 것인가. 분명히 누가 참여했고, 몇 시간을 활동했는지를 두고 시시비비가 나타날 것인데, 이렇게 되면 오히려 마을 공동체 의식이 손상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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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직불제 도입 과정에서 2018년 11월 당정이 당초 대선공약에는 없었던 쌀 변동직불제 폐지를 중심으로 한 농업직불제 통합 개편안을 들고나오면서 현장의 반발이 거셌고, 논의는 공전을 거듭했다. ⓒ한국농어민신문

왜 이렇게 됐나
공익직불제는 ‘농정 틀 대전환’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수단이다. 경쟁과 효율 중심의 생산주의 농정을 사람과 환경 중심의 지속 가능한 농정으로 전환하기 위해, ‘직불 중심의 농정 대개혁’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도입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공익직불제’를 확대한다는 기본 방향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과 예산 규모 등을 두고 여야 정치권은 물론 학계와 농민단체 간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2018년 11월 당정이 당초 대선공약에는 없었던 쌀 변동직불제 폐지를 중심으로 한 농업직불제 통합 개편안을 들고나오면서 현장의 반발이 거셌고, 논의는 공전을 거듭했다.
 재원 확보를 둘러싼 논란도 지속됐다. 사실 ‘직불 중심의 농정 개혁’을 위해서는 재원 확보가 필수다. 2018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농정개혁TF팀은 2019년 2조2000억 원에서 시작해 2022년까지 농업예산 대비 30%인 5조2000억 원으로 늘려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1조 원은 기존 투입재 보조형 농업예산의 구조 개편과 추가 재원 확보를 통해 마련하자고 제시했다. 농민단체들도 ‘최소 3조 원 이상’은 돼야 직불제 개편에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농식품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0년도 직불예산안은 2조2000억 원에 그쳤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완주 의원은 2019년 9월 9일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농업소득보전법)’ 전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 발의 형태지만, 사실상 당정이 공동 추진한 법안이다. 연내 법안 처리가 무산될 것을 우려한 정부와 여당은 예산부수법안으로 처리한다는 방침을 내놓고 밀어붙였다.
 결국 해당 법안은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예산은 2000억 원이 증액돼 2조4000억 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그 과정에서 변동직불제 폐지를 대신할 쌀값 안정대책이나 소농의 기준, 구간별 직불단가, 부당수령 방지대책, 농가준수의무사항 등 직불금 개편과 관련한 핵심사항은 무엇 하나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2019년 9월 16일 박완주 의원이 주최한 ‘농가 소득안정과 농업 공익증진을 위한 공익형직불제 도입 토론회’. ⓒ한국농어민신문
2019년 9월 16일 박완주 의원이 주최한 ‘농가 소득안정과 농업 공익증진을 위한 공익형직불제 도입 토론회’. ⓒ한국농어민신문

농식품부에 맡겨진 시간
국회가 ‘속도전’으로 법안을 통과시킨 이후는 농식품부의 시간이었다. 농식품부는 2020년 1월 2일 공익직불제 시행추진단을 발족시켰고, 2월부터 농민·소비자단체, 지방자치단체, 학계 등이 참여하는 ‘직불제 개편 협의회 및 TF’를 운영, 불과 2개월 만에 시행령·시행규칙을 내놓았다. 그러니 공익직불금 신청 과정에서 농민들의 민원이 속출하고 ‘위헌 논란’이 제기된 것은 어쩌면 예고된 수순이었다.
 사실 법안 통과 때까지만 해도 지급대상 농지를 ‘2017~2019년 사이 1회 이상 직불금 지급실적이 있는 농지’로 제한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직불금 신청을 받는 과정에서 민원이 속출했다. 직불금 수령 자격이 있음에도 직불금을 한 번도 신청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많은 농가가 아예 지급대상에서 배제되면서 논란이 커진 것이다.
 농식품부가 지급대상 농지를 이렇게 제한한 이유는 예산 때문이다. 당시 농식품부 관계자는 “전체 농지 158만ha 중 2019년 쌀·밭·조건불리 직불금을 받은 농지가 116만ha로 그 차이가 42만ha에 달하는데, 재정 규모가 한정된 상황에서 제한을 두지 않을 경우 얼마나 많은 농가가 새로 신청할지 정부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대상 면적 제한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책의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게 제도를 설계해 필요한 예산을 배정하는 게 아니라, 배정된 예산 규모에 맞춰 제도를 설계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면서 “재정 여건을 이유로 지급 대상을 제한했다는 농식품부의 설명은 타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얘기”라고 입을 모았다.
 위헌 문제를 제기했던 윤재갑 더불어민주당(전남 해남·완도·진도) 의원은 현재 법률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농식품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급대상 농지를 늘리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예산 투입이 필요한데, 2020~2024 국가재정운용계획상 공익직불금 재정 규모는 2024년까지 현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결해야 할 숙제
국내에서 효율과 경쟁 중심의 생산주의 농정에서,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과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농정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지는 오래되었다. 그 방법으로 ‘직불금’ 중심의 EU 공동농업정책이 주목을 받았고, ‘공익직불제’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농정공약이 되었다. 하지만 ‘직불 중심의 농정개혁’은 여전히 ‘구호’에 머물러 있을 뿐, 해결하지 못한 숙제들이 너무 많다.
 먼저, 농업재정 개혁을 통해 직불 예산을 늘려야 한다. 2021년도 농식품부 예산 규모는 16조2856억 원이다. 농업 예산에서 직불금(2조4000억 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4.7%. 2016년 직불예산 비중이 14.7%(2조1124억 원)였다, 2017년엔 19.7%(2조8543억 원)까지 올랐고, 2018년 16.8%(2조4390억 원)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후퇴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는 ‘직불 중심의 농정개혁’을 정책 성과로 꼽고 있다. 이건 기만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둘째, 그동안 외면해왔던 농지 문제와 농업인 기준 설정 등 농정의 근본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비농민의 소유 농지가 전체 농지의 절반에 육박하고, 임차농가 비율이 56.4%에 달하는 상황에서, ‘농지’를 기준으로 한 지금의 직불금 제도는 그 지원의 혜택이 농지 소유자에게 돌아가기 쉬운 구조다. 이러한 현실을 풀지 않고서는 제도에 대한 신뢰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토론회에서 전량배 이장은 “합법적으로 300평 농지를 취득한 비농민들은 소농직불금 120만 원에 농업인수당 80만 원까지 총 200만 원을 지원받는데,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농사를 지어 온 우리 마을 임차농민은 법에서 규정하는 농업인이 아니라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한다”면서 “이 문제를 고쳐내지 않으면, 공익직불제의 성공적 안착은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셋째, 농업·농촌의 공익기능 증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선택형 직불프로그램의 확대가 절실하다. 정부가 선언한 ‘2050 탄소중립(Net-Zero)’ 계획이 공염불이 되지 않으려면 농업·농촌 분야의 참여는 필수다. 물론 예산 확대가 전제돼야 가능한 이야기지만,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시대에 환경과 생태계 보전을 위한 노력은 농업 분야에도 매우 절박한 과제이며 선택형 직불제가 그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이쯤에서 2019년 11월 한국을 방문,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서 ‘EU 농정개혁, 그 지향과 교훈’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앨런 버크웰Allan Buckwell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명예교수의 조언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의 농정개혁을 이끌어 온 앨런 교수는 “직불제를 도입한 지 20년이 넘은 EU 내에서도 직불제 도입 목표가 무엇인지-식량안보를 위한 것인지, 정책변화에 대한 보상인지, 농가에 대한 소득 지원인지, 환경 보전을 위한 것인지-여전히 의견이 분분하고, 회원국 간, 농가 간 불균등한 배분 문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후변화 등의 환경 이슈로 인해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면서, 한국이 EU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먼저 직불제 도입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정하고, 그 목표와 정책 수단이 일치되도록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해 당사자의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올해는 문재인 정부가 정책 추진을 할 수 있는 마지막 해다. ‘공익직불제’ 도입을 통해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정책 당사자인 농민들과 먼저 소통하고, 현장에서 농민들이 호소하는 진짜 어려움이 무엇인지 듣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공익직불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필자사진(김선아)※필자 김선아: 한국농어민신문 기자. 1995년 첫 직장으로 한국농어민신문에 입사한 후 편집부, 국제부, 전국사회부, 기획부 등을 거쳤다. 지방자치, 로컬푸드, 사회적 경제, 귀농·귀촌 문제 등에 관심을 두어 왔으며 지금은 농업부 데스크로 농정 전반을 살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