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조그마한 동네에 뭔 이야기가 있긴 있어?”
지역에서 잡지를 만든다고 소개하면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다. 그렇다. 인구 5만 명을 간신히 넘기는 지역에서, 게다가 고령화율이 30%를 넘는 농촌에서 잡지를 만드는 일은 이런 편견에 대한 해명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충북 옥천은, 저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에겐 무척 특이한 동네다. 매주 신문이 나오고 매월 잡지가 발행되는 곳. ‘겨우’ 5만 명(이건 주민등록상 인구이고, 실거주 인구로 치면 4만 명대 후반)이 사는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동네에서 매체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신기함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길은 때때로 비하로 이어진다. ‘에이, 그래봐야 시시한 이야기겠지.’
지역이 삭제된 ‘시시한 이야기’
TV나 신문 등을 통해 접해본 지역을 한번 떠올려보자. 우선 생각나는 게 몇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나마도 빈약하기 그지없다.
‘충북 한 시골 도로에 멧돼지 일가족 등장, 마주 오던 트럭에 혼비백산 달아나’. 이런 뉴스엔 주로 저화질의 CCTV 자료화면이 따라붙는다. ‘○○군 국지성 호우에 하천 범람, 인근 축사 지붕으로 대피한 소들’. 여기엔 항공 촬영한 자료화면 정도. 그 외엔 맛집이나 미담을 전하는 수준에 머무른다. 주류 매체의 헤드라인에 지역이 오르는 경우는 재난이나 흉악범죄가 발생했을 때 정도다. 거기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문화, 어떤 역사적 맥락과 배경은 삭제돼 있다. 그렇게 지역은 ‘시시한 이야기’가 된다.
서울과 지역, 각각의 이야기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조그만 동네에도 이야기가 있다. 당연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졌고, 그런 이들이 5만 명이나 살고 있으니 이야기는 넘쳐난다. 이 속에서 만들어지는 연대와 화합, 반목과 갈등, 때로는 방관의 그물망이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는 몇 곱절로 늘어난다.
그 이야기는 어느 동네 누구누구가 한평생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모은 돈을 기부했다더라 하는 미담이기도, 어느 마을 밭을 멧돼지가 다 망쳤더라 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한 해 옥천군 예산 계획을 놓고 조정과 삭감에 대한 의견이 의회-집행부서 간 갈등으로 이어진다는 뉴스, 오래된 주민 숙원사업을 두고 마을 간 이견이 생겨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 주민들 몰래 마을 뒷산에 개발 허가를 받은 태양광 사업이 실은 편법 허가로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 등. 미담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신기한 이야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 사는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지역에서도 일어난다. 서울에 100개의 이야기가 있다면 지역에도 100개의 이야기가 있다는 말이다.
부대끼며 뿌리내리는 ‘밀착’의 언론
1989년 222명의 옥천 사람이 모여 만든 ‘옥천신문’은 그런 이야기를 담는다. 매주 금요일마다 대판 20면에 걸쳐(때때로 지면은 이보다 더 늘어난다) 옥천의 정치인부터 정책과 예산에 관한 것,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민원과 사건사고, 학교 안의 크고 작은 소식 등 지역 뉴스를 두루두루 전한다. 옥천에 살면서 지역 소식이 궁금하다면 옥천신문을 보면 된다. 한 주 간 행정청이 진행한 공공사업은 어떤 것이 있는지, 여기 문제는 없는지, 동네 사람들은 요즘 어떤 맛집을 찾는지 등 온갖 이야기가 다 실린다. 보도자료를 베껴 쓴 기사는 없다(보도자료를 대충 재구성한 기사도 없다. 문단 구성을 바꾸고 문장을 다듬으면 그게 ‘베껴 쓴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기자들이 있기에 번거롭지만 특별히 설명을 붙인다). 기자들은 직접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현장을 확인하고 문제의 당사자와 관계자, 그 밖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현장성 없는 기사, 지역성 없는 이야기는 옥천신문에 실리지 못한다. 편집국에서 먼저 잘려나가기도 하지만, 일단 지면으로 출판됐을 때 독자들의 반응이 곧장 전해지기 때문이다. 지역 농정 관련 기사를 쓰는데, 농민들은 만나지 않고 옥천군이 제공한 자료와 관계부서 이야기만 듣고 썼다고 해보자. 신문이 나간 금요일 아침부터 전화가 빗발친다. “박 기자, 지금 이걸 기사라고 쓴 겨?”
취재원이 기자에게 직접 피드백을 하는 것은, 주류 언론에선 거의 찾을 수 없는 모습이다. 기자의 연락처를 모르는 것은 물론, 얼굴조차 못 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면에서 옥천신문 기자들은 조금 피곤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기사에 대한 항의 전화는 물론이고 아주 사소한 이야기(이를테면 ‘우리 집 행운목에 10년 만에 꽃이 폈다.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으니 취재를 와달라’ 등의 제보)를 취재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은데 “어이, 박 기자. 점심은 먹었어?” 하는 동네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또 동네 소식을 한 보따리 알게 된다. 때로는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부터 기자를 찾는 전화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이런 관계가 옥천신문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비결이 된다. ‘누군가 내 기사를 보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내 기사를 지적할 수 있다’는 것. 기자들로 하여금 그 사실을 언제나 상기하게 한다는 것. 기자는 더욱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역 안으로의 밀착. 옥천신문이 옥천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30년 넘게 이어오며 건강한 언론으로 표상되는 이유다.
우리의 말을 찾는 것,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심
이런 옥천신문과 함께 창간 4주년을 맞은 「월간 옥이네」의 이야기도 함께 전하고 싶다. 옥천신문이 정통 저널리즘의 본령으로 옥천이라는 지역의 공론장을 건강하게 꾸려가고 있다면, 「월간 옥이네」는 더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오일장에 나온 상인들의 좌판 풍경은 어떤지, 장터를 찾은 사람들의 장바구니엔 어떤 물건이 담겨 있는지, 작은 골목 안 낡은 간판의 국숫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언제부터 그 자리에서 국수를 말아 오셨는지 등. 옥천이라는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이 「월간 옥이네」의 취재 대상이다. 어린이부터 청년, 노인, 농민과 노동자, 이주여성 등 연령과 세대, 성별과 국적을 불문한다. 때로는 길고양이 같은 동물이, 때로는 마을 입구의 커다란 나무가 주요한 취재원이 된다.
앞선 표현을 빌리자면, ‘지역의 시시한 이야기’가 실리는 잡지가 「월간 옥이네」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정말 시시하기만 할까. 이들의 이야기가 시시하기만 하다면 옥이네가 굳이 매월 공들여 잡지를 펴낼 이유도, 관련 공동체 활동을 꾸준히 기획할 이유도 없다(「월간 옥이네」를 펴내는 사회적기업 고래실은 잡지 발행 외에 마을여행, 청소년 교육 활동 등 다양한 문화·교육·공동체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사연 없는 장소도 없다. 지금 골목을 함께 걷는 누군가, 이 골목 안 작은 가게, 그 옆의 오래된 나무 모두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다. 그와 함께 켜켜이 쌓인 시간의 더께가 이 작은 동네의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왔다. 「월간 옥이네」는 그래서 이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동안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대로 두면 사라져버리고 말, 그러나 그냥 잊혀서는 안 될 이야기들.
최근 「월간 옥이네」 창간 4주년을 맞아 몇몇 독자와 창간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중 한 독자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예전엔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 이를테면 재래시장의 상인 분들이요. 그전엔 그냥 두부 팔고 채소 파는 사람, 딱 그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분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이분도 누군가의 딸이고 엄마이고 또 어떤 공동체의 구성원일 텐데, 이분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계실까 하고요. 그러면서 사람 대 사람으로 이웃을 인식하게 된 거 같아요. 상대방을 이해하는 폭도 더 넓어졌고요. 조금 딱딱하게 응대하시면 예전엔 ‘되게 불친절하네’ 했는데, 지금은 ‘오늘 날이 더워서 힘드신가 보다’ 이런 식으로요(웃음). 옥이네를 보면서 사람마다, 지역마다 가진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그러면서 저도 좀 더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 생각하게 돼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건 이런 거 아닐까요?”
무엇보다 지역에 살면서도 지역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말하자면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편견과 오해의 막’을 걷어낼 기회를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옥천에서 기자로 살며 만나게 된 이들 중엔 청소년도 적지 않은데, 그들 중 70~80%는 ‘크면 옥천을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이는 옥천군 공식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옥천군 사회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청소년 응답자의 20.6%가 ‘전혀 없다’고, 48.7%가 ‘별로 없다’고 대답했다. 10년 후 지역 정주 의사를 묻는 질문에서도 25.7%가 ‘별로 없다’, 25.6%가 ‘전혀 없다’고 답했다). 그것이 적지 않은 충격이었는데, 돌아보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지역에 대한 혐오는 필연적인 듯하다. ‘세상을 보는 창’이라는 주류 매체가 지역을 다루는 방식이 그러했기에. 그리고 지역의 삶이 실은 얼마나 소중한 사람과 이야기가 모여 가능한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창’이 없었기에.
그래서 옥천신문, 「월간 옥이네」 같은 지역 매체는 잃어버린 지역의 언어를 찾는 길이기도 하다. 주류 방송과 신문, 유튜브와 SNS에서는 찾을 수 없는 진짜 우리의 말. 외부의 시선이 아니라 지역에 함께 살며 이웃의 말을 직접 담는 일. 이들의 스피커가 되는 동시에 발화의 배경과 이유, 맥락을 짚고 대안을 함께 찾아나가는 매체 말이다.
모두가 서울로 향하는 시대, 또 더 이상 사람들이 종이 매체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시대에 지역 매체를 만드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요 몇 년 사이엔 ‘로컬’이 소위 ‘힙하다’는 사람들 사이의 유행이 되면서, 진짜 지역 이야기는 사라진 로컬 콘텐츠가 넘쳐나는 것도 이 일을 어렵게 만드는 한 요인이기도 하다.
언론의 위기, 지역의 위기. 하지만 진짜 위기는 무엇인지 지역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다시 묻는다.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잊은 것, 서울의 시선으로 서울을 욕망하게 만드는 것이 실은 진짜 위기 아니었나. 이곳에 발 딛고 사는 우리는, 그래서 멈출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지역에서 발화하는 말은 곧 나의 말이며 우리의 말이기 때문에. 종이 매체를 넘어 더 많은 확산과 공감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느려도 꾸준히 걸어가야 할 이유다. 지금 우리 동네의 말은 무엇인지, 그것을 함께 찾을 건강한 지역 언론은 어디 있는지 돌아봐 주시기를. 그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위기’를 타개할 진짜 대책이 될 것이다.
※필자 박누리: 「월간 옥이네」 편집장.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왜 다들 지역을 떠나고 싶어 할까’라는 막연한 고민을 2010년 옥천신문 취재기자로 입사하며 조금씩 구체화했다. 9년간 옥천신문 기자로 살며, 옥천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을 보고 듣고 배웠다.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해보고 싶어 2019년 현재의 직장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월간 옥이네」 제작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꾸려가고 있다. 청소년 기본소득 실험, 길고양이 보호 및 생태공동체 활동, 청년 정책 제안 등 회사 안팎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 이런저런 일을 벌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