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비가 들어오고 나서야 우리 마을에 태양광 설비가 설치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 힘만으론 작심하고 들이닥치는 업체를 막아낼 수가 없더라고요. 억울한 마음에 무작정 길을 막아서면 그들은 손해배상을 청구해요. 방금까지 주민들 곁에 있던 경찰도 업체가 부르면 주민들에게 물러서란 말밖에 하지 않아요. 결국 도로도 없던 마을 근처의 경사진 산 정상 부근엔 태양광 패널이 설치됐어요. 목적이 분명한 그들은 법과 제도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행정의 직원들보다도 더 잘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례가 우리뿐만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어요. 아마 전국 곳곳에서 모두들 힘겹게 싸우고 있겠죠. 이대로라면 전국의 농산어촌이 전부 잠식당하고 말 거에요. 더 늦기 전에 제발 멈춰주세요.”
풍력·태양광은 가장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다. 하지만 오늘날 정부가 정책으로 뒷받침해주는 ‘친환경적인’ 재생에너지 사업에 일부 업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법망의 틈을 파고들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라는 눈부시게 찬란한 이름 뒤에 당장 농민들의 생계와 농촌 주민들의 삶터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농촌 경관과 공동체 존립 등이 가려져 있다.
주민들 모르게 농촌에 깔리는 태양광 패널
3~4년 전만 하더라도 태양광 발전 사업은 대부분 산지에 집중됐다. 하지만 미약한 입지 규제로 산사태 발생이 급증하게 됐고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2018년 11월 28일 무분별한 산지태양광 억제를 위해 입지 규제 강화 및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 축소 등의 조치를 취했다. 만연한 ‘쪼개기’ 태양광 근절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최근 주민들이 직접 행정심판으로 사업 취소를 얻어내 이목이 집중된 충북 옥천군의 사례만 살펴봐도, 쪼개기 편법을 악용한 태양광 사업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옥천군 안남면 주민들은 당시 공사 하루 전 업자로부터 ‘내일부터 공사를 시작하니 협조해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는 곳 바로 지척에 태양광 패널이 깔리게 된 상황인데도 주민들은 사업에 대한 어떤 정보도 전달받지 못했다.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명시하는 주민 수용성은 설명회 개최를 대부분 ‘권고’하는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안남면 주민들은 반대 대책위원회를 꾸렸고, 오롯이 주민들의 힘으로 업체가 사업 인허가를 받기 위해 취한 편법들과 무능한 행정의 민낯을 낱낱이 확인했다. 해당 업체는 100kW 이하 규모로 사업을 분할시켰고, 사업 예정지 또한 경사가 심한 곳과 덜한 곳으로 교묘하게 나눠 경사도 규제를 피했다. 주민들은 군청 앞에 농성장을 설치해 투쟁을 지속했으며, 그 규모를 점차 키워나갔다. 결과적으로 옥천군의회가 사업 인허가 과정에 대한 행정 사무조사를 시행했고, 충북에선 행정심판으로 위법성을 인정해 일부 사업에 대한 허가를 취소하란 결과서를 옥천군에 통보했다.
안남면의 사례는 손에 꼽을 만큼 특별한 경우다. 여전히 농촌 곳곳에서 주민들은 힘겨운 투쟁을 지속하고 있지만 행정은 구비서류와 자격조건을 완벽히 꾸민 업체들의 요구를 그저 수용하고, 주민들로선 준비를 전부 마친 사업을 막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이미 행정에서 허가가 다 난 상태기 때문에 승소를 장담할 수도 없다. 만약 소송에서 지면 더 많은 발전업자들이 사업을 추진하려 달려들기도 한다.
현재 농촌에 난립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에 있어 소극적이고 안일한 행정의 태도는 사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반면 행정 관계자와 달리 어떻게든 사업을 추진하려는 업자들은 시시각각 바뀌는 제도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혈안이 돼 있고, 한 치 앞서 법·제도 개선을 내다보기까지 한다. 농업진흥구역 내 영농형태양광 설치가 머지않은 시일 내 허용된다는 ‘농지법’ 개정에 대한 유언비어를 흘리며 관행 임차료의 5~6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끼로 내걸고, 20년 치 임차료를 한꺼번에 주겠다는 계약서까지 뿌리며 농지 확보에 박차를 가하는 이들도 있다.
관련해 전남지역 한 주민은 “3~4년 전인가 상습 염해 간척지에 태양광 설비를 허용하는 법이 개정되기도 훨씬 전부터 어떻게 안 건지는 몰라도 업자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간척지 벼농사는 대개 친환경으로 짓는 경우가 많은데 수년간 관리해서 인증까지 받아놓은 농지임에도 적지 않은 돈을 준다니 지주가 임차농에겐 알리지도 않고 농지를 계약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고 일순간에 농지를 잃은 농민이 꽤 많았다”라며 “공짜도 아니고 꼬박꼬박 임차료 내고 농사지은 땅인데도 그랬다. 2019년엔가 법이 개정돼서 상습 염해 간척지엔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게 됐는데, 염도 측정도 벼 뿌리가 닿지 않는 60cm를 기준으로 하고 농민 입장에선 억울한 부분이 정말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여기에 영농형태양광 관련 법까지 개정되면 절대농지에서 농사짓던 농민들은 아마 전부 쫓겨날 거다”라고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농촌 경관을 보전하려는 주민들의 노력
얼마 전 대통령의 2050 탄소중립 선언과 함께 정부에선 신재생에너지 발전 확대를 정책 최우선 순위로 삼아 모든 역량을 결집해 나가는 모양새다. 2021년 3월 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 해상풍력발전단지인 ‘제주 탐라 해상풍력단지’를 방문한 정세균 국무총리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그린뉴딜과 수소경제를 강조했고, 풍력발전 인허가 처리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기 위해 ‘원스톱샵(하나의 전담 기관에서 환경영향평가와 발전사업 허가 등 관련 인허가 절차와 주민 수용성 확보 등 풍력발전 사업 전반에 대한 업무를 일괄적으로 수행하는 체계)’ 도입을 선포했다.
현장에선 지역 주민들 스스로 당장의 무분별하고 불합리한 풍력·태양광 발전 사업을 저지하고 농촌 경관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전국에서 제일 많은 풍력발전기가 밀집된 경북 영양군에선 풍력발전으로 인한 생태계·산림 훼손을 막아내기 위해 주민들이 직접 산 곳곳을 넘나들며 카메라를 설치했고, 산양·담비·수리부엉이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 중임을 확인해 보이기도 했다.
또 전남 화순군에선 군의회가 날치기하듯 바꿔놓은 풍력발전 이격거리를 원상복구 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직접 나선 상황이다. 수차례 집회와 기자회견을 개최한 주민들은 “추운 겨울 동동거리며 주민 서명을 받아내 군에 조례 개정안을 청구했지만 무슨 검토를 하는지 70일 넘게 군의회로 넘기지도 않았다. 주민들 의사는 묻지도 않고 마을 코앞까지 풍력발전기 들이려는 군의원들보다도 그치들을 뽑은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라며 “한평생 살아온 만큼 내 고향 산천은 내가 직접 지켜 후세에게 물려주겠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군의회가 주민 청구 조례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풍력발전기는 10호 미만 취락지역으로부터 800m 떨어진 곳에 들어서게 되는데, 현재 화순군엔 90MW 규모 풍력발전기 15기가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정부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신속하고 친환경적인 풍력발전 확대’에만 매진하고 있다. 오늘날 풍력발전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발전기를 설치하기 위해 수십 년 된 나무를 잘라내고 베어내며 멸종위기종의 서식지까지 파괴하는 형태로 추진되지만 ‘친환경적인 신재생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상대적으로 지형 훼손이 적은 지역에 풍력기가 설치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풍력발전단지 대부분은 주로 해당 지역의 주요 광역생태축에 입지하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 정책 기조에 맞추고 세계적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무작정 풍력발전만 독려할 게 아니라 우리 환경에 적합한 재생에너지 발전 방향이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정부는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산을 강조하면서도, 이전 정부에서부터 계획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홍천군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 한국전력공사의 ‘동해안-신가평 직류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신한울원전 1·2호기와 추후 완공될 강릉안인화력발전소, 삼척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의 수도권 수송을 목적으로 한다. 탈탄소를 강조하면서도 화력발전소 건설을 강행하고 그것도 모자라 선로길이만 230km에 달하는 송전선로 조성까지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재생에너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신재생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이 갈수록 가빠지는 기후위기를 늦추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제란 사실엔 거의 모두가 공감한다. 농민과 농촌 주민들 역시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게 아니란 의미다. 다만 농민과 농촌 주민들은 에너지 전환이 진행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지속하는 것이다.
2021년 2월 4일 신재생에너지 피해·갈등 주민들과 농민들이 발족한 ‘농어촌파괴형 풍력·태양광 반대 전남연대회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3월 기준 전남 내 풍력·태양광 갈등·피해지역은 13개 시·군 40개 읍·면에 달한다. 연대회의는 “신재생에너지와 탈원전·탈석탄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농촌파괴형’ 신재생에너지를 반대하는 것이다”라며 △에너지 공영화(신재생에너지 생산 체계 전환) △지역단위 에너지 자립 계획 수립·실행 △유휴공간 등을 활용한 신재생에너지 우선 발전 △농지법 개정안 파기 등을 주장하고 있다. 농촌을 파괴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연대회의는 전국적 대응을 위해 전국농민회총연맹과 ‘농어촌파괴형 신재생에너지 전국 대책회의’ 발족을 준비 중이다.
아울러 최병성 초록생명평화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충남 당진시에 위치한 현대제철소에선 전기 용광로로 철강을 제조한다. 하지만 정작 제철소 공장 지붕엔 그 흔한 태양광 패널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엄청난 양의 전기를 사용하는 대기업이 자체 발전을 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나서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산업용 전기와 상업용 전기 요금이 너무 저렴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산업·상업용 전기는 전체 전기 사용량의 약 86% 이상을 차지한다. 이에 최 소장은 탄소중립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공급뿐만 아니라 전기 요금 및 소비구조에 대한 구조적 개선이 시급하단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덧붙여 최 소장은 농촌에만 무조건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강요하지 말고, 박막형 태양광 패널 등 사업 전반에 대한 기술 개발 지원을 통해 공장 지붕과 도시 건물 및 주택 옥상, 도로·유휴지 등을 활용한 태양광 발전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8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에서는 ‘수상태양광’ 사업에 대한 지적이 난무했다. 특히 한국농어촌공사를 피감기관으로 한 감사에선 ‘주민 설명이나 동의 없이 강행되는’ 수상태양광에 대한 여야 국회의원들의 질의가 끝없이 빗발쳤다. 당시 여당 의원들은 발전 사업에 있어 주민 수용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의견을 쏟아 냈지만 최근엔 직접 농사짓는 현장 농민들이 반대하는 ‘절대농지 내 영농형태양광’ 사업 확대의 물꼬를 트느라 여념이 없는 지경이다.
절대농지와 농업보호구역에 영농형태양광 설비를 허용하기에 앞서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불거진 오늘날의 농지 소유 실태를 간과해선 안 된다. 농민들은 전체 농민의 70% 이상이 임차농인 우리 농촌의 현실 여건과, 코로나19로 대두된 식량안보 확보를 위해서라도 절대농지는 무조건적으로 보전해야 한단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 2050 탄소중립 등 목표치 채우기에만 연연하지 말고, 농업·농촌·농민을 보호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농업계가 주체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필자 장수지: 한국농정신문 기자. 사회는 무서운 속도로 급변하지만 먹고 사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다소 몽매한 생각에 대학서 농업을 전공했다. 졸업 후엔 농업전문지 기자가 됐다. 농산업을 담당하며 어느덧 입사 5년 차에 접어들었고 최근엔 농촌 태양광·풍력 문제를 집중 취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