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유진 / 사진 문화기획달
‘보조자’로 여겨지는 농촌 여성
얼마 전 내가 사는 마을의 청년회에서 올해부터 여성 회원을 받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획기적인 변화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어째서 지금까지 청년의 표상은 남성이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농촌에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크고 작은 조직들이 도시보다 더욱 촘촘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 면 단위 안에도 마을마다 노인회나 청년회가 있어 마을의 행사나 의제를 주도하는데, 그런 조직들은 대개 남성회원만을 받거나 남성이 간부가 되어 운영한다. 여성은 부녀회나 생활개선회 같은 소위 ‘모성’이 발휘되는 조직에 소속되어 있고 남성 중심 조직이 기획한 행사에 참여해 부수적인 노동으로 마을 일을 뒷받침하는 편이다. 더구나 청년회 소속 남성회원 아내들의 그룹, 방범대 소속 남성회원 아내들의 그룹 같은 비공식적인 단위도 있는데 말하자면 남편의 마을 활동에 ‘대외 내조’를 하는 방식으로 여성주민의 활동이 펼쳐지는 것이다. 인간man을 대표하는 것이 남성man이듯, 농촌에서 ‘청년’이나 ‘노인’ 역시 남성의 얼굴로 지역주민을 대표해왔다.
새로운 시대의 ‘전통’이란
나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나고 자라 서른 살 무렵 처음 농촌생활을 경험했다. 그때는 모든 것이, 하루하루가 낯설고 ‘충격’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처음 보는 동네 어른들이 개인 정보를 꼬치꼬치 캐묻는 것- 고향이 어디냐, 부모님은 뭘 하시냐, 대학은 나왔냐, 대학을 나와서 왜 시골에 오냐, 결혼은 하고 같이 사는 거냐, 뭐해서 먹고 사느냐 등등 -부터 시작해 마을회관에서 남자와 여자 공간이 따로 나뉘어 있는 것, 혼자 사는 여성에게 끊임없이 결혼이나 남자를 권하는 것 등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장면들이 당황스럽고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지역이 작고 사람이 적을수록 경계가 없어지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인정되지 않는 것은 사실 도시나 농촌이나 마찬가지이다. 공적인 일 처리조차 인맥으로 이뤄지고, ‘튄다(=공동체의 기존 질서를 따르지 않거나 그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고립되는 경우도 한국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농촌은 ‘전통’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공동체 문화를 한층 강고하게 지속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통’은 늘 옳은 것인가? 그 주장이 놓친 것은 바로 ‘전통’이 고정불변의 속성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계속 변하고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현재 시점에서 올해의 단어를 뽑으라면 ‘미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미투’ 운동이 벌어지자 어떤 사람들은 그 시절엔 그게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지난 일을 왜 다시 들춰서 심판하느냐고 반문한다. 민주주의나 성평등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시대라 하여 ‘피해자’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게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 보지 못했던 거고, 이미 지난 일이라 하여 없던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 인류의 경험을 우리 시대의 시선에 따라 재평가하고 과오에서 교훈을 얻으며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다. 여성들이 “이제 ‘미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차별과 여성혐오의 뿌리를 끊어내고,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삶을 재구성하겠다는 다짐이다. 농촌의 ‘전통’ 역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그들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반영하고, 더 평등한 공동체의 상상을 담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 어느 한 집단만 편안한 ‘전통’은 ‘억압’과 ‘폭력’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노동과 존재를 지우는 농촌
농촌에 정착하고 마을에서 함께 생활하다 보니 집 안팎에서 온갖 노동과 돌봄을 담당하는 주변의 여성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정생활에서 여성이 더 많은 노동을 맡는 것은 도시도 마찬가지지만 마을행사나 공동체 활동이 도시보다 더 빈번한 농촌에서 여성의 ‘무임노동’은 양적으로도 많고 그만큼 다양한 역할이 요구된다. 농촌 여성들은 살림과 육아, 농사와 생계를 동시다발적으로 소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비해 집안과 마을, 조직 안에서의 권리는 잘 갖지 못한다. 또한 철저하게 ‘여자 일’과 ‘남자 일’을 나눈 구조에서 일상을 가꿔가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고 타당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평하게 부르는 듯한 ‘여자 일’, ‘남자 일’에 매기는 가치와 대가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이 같은 일을 해도 남성의 보수가 더 높은 까닭을 물으면 보통 “힘이 세서”라 말한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여성이 가진 고도의 기술력이나 농부로서의 경험은 ‘커리어’로 인정되지 않고 오로지 ‘최저임금 기준’으로 상정된다. 일반 직장생활에서는 연차가 높아질수록 임금도 오르지만 농사에서는 그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막 귀농한 청년 남성과, 평생 농사를 지은 노년 여성 중 누가 더 농사일에 최적화되어 있겠는가? 같은 ‘육체노동’의 영역이라도 능력과 성과로 판단한다면 누가 더 프로 농사꾼일까?
여성들이 “이제 ‘미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차별과 여성혐오의 뿌리를 끊어내고,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삶을 재구성하겠다는 다짐이다.
농촌의 ‘전통’ 역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그들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반영하고, 더 평등한 공동체의 상상을 담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 어느 한 집단만 편안한 ‘전통’은 ‘억압’과 ‘폭력’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낮고 성별 분업이 뚜렷한 문화가 강한 농촌사회에서 여성 개인이 이를 부당하거나 불평등하다고 문제제기하기는 너무 어렵다. 이런 문제를 토로하면 젊은 사람들조차 “어른들은 변하지 않는다”며 다음 세대가 마을을 이끌 때까지 기다리자고 달래기도 한다. 그러나 귀농귀촌인이 많은 지역에서조차 마을 리더 대다수가 남성인 모습을 보면 이것을 꼭 세대 간 문화 차이로 볼 수는 없다. 또한 ‘어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방어적인 태도는 ‘효(유교)’ 사상에 가까워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나는 이렇게 살아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가 일을 더 하고 덜 하나, 누가 실질적 권력을 더 가졌나를 떠나 불평등한 성문화는 소외된 이웃을 낳고 성폭력의 가장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농촌은 원래’라는 한계에서 고민과 실천을 멈춘다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등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농촌에 페미니즘의 씨앗을 뿌리다
「문화기획달」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서 활동하는 여성주의 문화단체다. 처음 단체를 설립했을 때는 주로 마을 여성들과 문화예술 교육 활동을 했는데, 여성들이 모여 함께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창작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촌에서 여자(사람)로 산다는 것’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십 년을 넘게 농촌에 살았어도 불평 한마디 제대로 꺼낼 수 없었던 마을 여성들은 “이런 말을 해도 되는구나”와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를 동시에 깨달으며 문화기획달과 함께 페미니즘 캠페인을 기획하게 되었다. 마치 ‘미투’를 한 여성들처럼, “알게 되고 나서도 계속 똑같이 살 수는 없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2016년 <농촌 성문화 다시 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 페미니즘 캠페인은 농촌 지역에서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를 처음 공론화한 활동이었다. 우리는 설문을 통해 사례를 조사하고 여성주민들과 토론하며 나온 결과물로 작은 자료집을 만들어 마을의 모든 커뮤니티에 배포했다. 그런데 마을이 즉각 술렁이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편하게 주고받은 농담(으로 소비한 성희롱), 마을에서 흔히 벌어졌던 일들(성차별과 성폭력)을 그대로 보여준 것뿐인데 어떤 주민들은 단단히 화가 났다. 활동가에게 항의 전화가 오고 단체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직간접적으로 들려왔다. 우리는 순식간에 위축됐고 마을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됐으며 개인적인 관계가 단절되는 경험도 했다. 하지만 마을에서의 페미니즘 활동을 지지하고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는 주민들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힘을 얻기 위한 파티를 열어 즐거운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갔고, 나중에는 지역 조직에서의 요청으로 페미니즘 특강과 캠페인 사업 결과 토론회를 열어 주민들과 공론화하는 자리를 가졌다. 못마땅한 시선과 비난을 보낸 일부 남성주민들도 있었지만, 페미니즘 활동의 필요성과 여성들 사이의 연대감을 몸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그 후 지역에서 페미니즘 사업을 주요 활동방향으로 가져가며 문화예술 활동과 교육을 함께하고 있다. 글쓰기, 미술, 연극, 업사이클링 등 창작활동을 통해 여성의 서사와 목소리를 작품으로 만들어가기도 하고, 자기방어캠프나 섹슈얼리티 워크숍 등 여성이 자신의 몸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장을 열기도 하며, 페미니즘 세미나와 강의가 활발히 열린다. 작년부터는 지역 청소년을 위한 페미니즘 성교육을 시작으로 학부모나 마을남성 대상 성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작년 가을 성교육을 받았던 마을 남성들은 페미니즘 공부모임을 조직해 1년 가까이 문화기획달과 함께하는 중이다. 농촌에서의 이러한 움직임과 노력을 인정받아 작년에는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문화체육관광부 후원)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자 마을의 문제를 드러내며 ‘동네 망신’ 소리를 듣기도 했던 페미니즘 운동은 마을의 위상(!)을 드높인 것으로 탈바꿈되었다. 우리는 상금의 일부로 마을 업사이클링팀에서 제작한 달거리대를 구입해 지역 여성 청소년들에게 나눠주고, 월경을 긍정하는 성교육을 진행했다.
사실 이 모든 활동이 가능한 것은 ‘나답게’ 살고자 하는 지역 여성들이 결합하고 지원한 덕분이다. 누구의 아내나 엄마로 불렸던 이들이 참여자에 머물지 않고 작가, 강사, 기획자가 되어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교류하며 숨어 있던 잠재력을 꽃피웠다.
누구나 자신으로 살아도 온전한 곳, ‘농촌’
가끔 농촌에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 가진 기존 공동체의 힘도 크지만 사실 이 모든 활동이 가능한 것은 ‘나답게’ 살고자 하는 지역 여성들이 결합하고 지원한 덕분이다. 누구의 아내나 엄마로 불렸던 이들이 참여자에 머물지 않고 작가, 강사, 기획자가 되어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교류하며 숨어 있던 잠재력을 꽃피웠다. 아내와 엄마가 변하자 남편과 아빠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더 다양한 형태의 삶과 욕구를 가진 주민들도 하나둘씩 등장하며 농촌에서 살고 싶은 모습을 서로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 부처님 오신 날, 산내면 실상사에서 열린 ‘성차별·성폭력 피해경험 말하기 대회’(성폭력근절을위한지리산여성회의 주최)는 페미니즘 운동 이후 마을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페미니즘은 결국 ‘누구의 고통에 응답하는가’의 문제라 생각하는데, 누구나 자신의 고통을 말할 수 있고 그것을 경청할 이웃이 있다면 그 공동체는 건강하다 할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페미니즘은 농촌을 아무 문제가 없는 공간, 완벽한 유토피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 살아도 온전한 곳, 그것이 허용되는 곳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이유진: 「문화기획달」 상상지기 ‘달리’. 페미니스트, 타로 리더, 글 쓰고 일하며 농촌에 사는 도시 여자. 질문이 많아 삶이 복잡하지만 답을 찾는 모험에서 자신과 세계를 깨는 것이 이번 생의 ‘업’이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