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을지로3가를 걸었다. 일과가 끝난 저녁의 거리는 한적했다. 문득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커다란 종이, 각종 인쇄물을 운반하는 차량, 분주한 사람들로 북적이며 어수선했던 1990년대의 ‘인쇄 골목’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보기자로 입사했지만 나는 편집이나 인쇄에 대해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당시 재단에는 나에게 일을 가르쳐줄 선배도, 시스템도 없었다. 거의 완전한 무無의 상태. 모든 것이 나의 몫이었다. 좌충우돌 인터뷰를 하고 글은 쓴다고 쳐도 그 다음 과정이 문제였다. 인쇄 골목을 들락거리며 그곳 사람들과 밤늦도록 같이 일했다. 어깨너머 편집을 배우고 종이 종류와 무게 단위, 색 배합 cymk 코드와 교정지를 보는 방법을 배웠다. 아, 여분의 교정지에서 오자와 탈자 자리에 들어갈 글자를 찾아내 메우는 방법도 알았다. 『대산농촌문화』가 세상에 나오려면 많은 시간과 여러 사람의 수고, 3M 접착제, 그리고 기계가 만들어내는 소음이 필요했다.
세상이 급속도로 변하는 만큼, 책이 나오는 과정은 점차 간소화되었고 편집자의 일도 많이 줄었다. 직접 뛰어다니던 일이 퀵 서비스로, 이제는 사무실에서 파일을 주고받는 일로 끝난다. 전자책 시대가 오니 『대산농촌문화』에 실렸던 많은 글이 각각 다른 곳에서 공유되고 전파하며, 반향을 키우고 정책의 근거와 자료가 되기도 한다. 세상이 그리 좋아졌다.
『대산농촌문화』 안에 재단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고 걸어온 길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지속 가능한 농의 가치를 더욱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일. 그리고 농담처럼 가볍게, 또 농담보다 무겁게 많은 사람이 ‘농農’을 이야기하게 하는 일. 그리하여 결국에는, 대산농촌재단 같은 곳이 없어도 되는 좋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이 앞으로 다시 시작하는 100호 속에 담을 약속이다.
일 년에 네 번, 통권 100호가 나오는 데 꼬박 25년이 걸렸다. 지금도 여전히 『대산농촌문화』는 다채로운 우여곡절과 진통을 겪고 세상에 나온다. 그럼에도 한 번도 쉬지 않았고, 끊임없이 ‘지속 가능한 농農’에 대한 당위와 방법을 찾기 위해 흔들고 흔들림을 반복했다.
『대산농촌문화』는 대산농촌재단의 역사이고 지향점이다. 『대산농촌문화』 안에 재단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고 걸어온 길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지속 가능한 농의 가치를 더욱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일. 그리고 농담처럼 가볍게, 또 농담보다 무겁게 많은 사람이 ‘농農’을 이야기하게 하는 일. 그리하여 결국에는, 대산농촌재단 같은 곳이 없어도 되는 좋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이 앞으로 다시 시작하는 100호 속에 담을 약속이다.
거창해보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미약하고 꾸준한 흔들림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 믿는다. 통권 100호 중 99호를 만든 내게 이번 호는 더욱 특별하다.
100호가 나오면, 매콤한 골뱅이 무침이나 파절이에 달걀노른자를 톡 떨어뜨려 버무려 먹던 고소한 대패 삼겹살을 먹으러 을지로로 가야할 것 같다. 100번의 약속을 지켜낸 동지들과 함께. 그곳엔 자랑처럼 ‘농담’이 무성할 것이다.
글 신수경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