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8년 10월 10일(수) 12:00~18:00
•장소 : 대산농촌재단 세미나실
•참석자 : 김후주 주원농원 대표
김훈규 거창군농업회의소 사무국장
박호진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사무국장
이원영 농업회사법인 도담 대표
정은정 농업·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영호 정은농장 대표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사회)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이하 신수경):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계간 『대산농촌문화』는 1993년 창간되어 2018년 가을호로 통권 100호를 맞습니다. 농의 가치를 공감하는 다양한 ‘농판의 이야기’를 전해온 지 벌써 25년이 되었습니다. ‘지속가능한 농農’에 대해 생각하며 농을 둘러싼 많은 ‘농農이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해봅니다. 먼저 청년농에 대한 화두를 던집니다.
>청년농민에 대한 정책과 언론
연 매출 얼마 자극적 기사만 쏟아져
청년농민의 격차 커, 획일적인 정책에서 벗어나야
‘취업농’에 대한 정책 방향도 고민해야
김후주 주원농원 대표(이하 김후주): 제가 활동하는 ‘청년농업인연합회’를 비롯한 청년 농업인 네트워크의 최근 분위기를 보면 다들 힘들고 회의적인 것 같아요. “정부 정책에 기대지 말고 우리가 제대로 해서 살아남자”며 ‘생존’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분위기예요. ‘청년농업인’이라고 하면 여러 언론이나 정부, 단체에서 불러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유통하고 있는데, 청년농업인들이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언론에서는 “연 매출 얼마” 하는 식의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다 보니 오히려 청년농업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아요. 특히 최근 ‘후계농’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부모 잘 만나 농사짓는 ‘금수저’로 인식되는 상황이에요.
청년농이라고 다 똑같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몇십억씩 매출을 올리는 후계농들은 외제차를 몰기도 하지만 맨손으로 귀농한 청년들은 주거 문제도 해결이 안 되어 컨테이너를 전전하기도 하거든요. 마찬가지로 청년이라고 해서 모든 요구가 한 그릇에 담기듯 획일적일 수는 없어요. 정책도 이러한 사실을 반영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이원영 농업회사법인 도담 대표(이하 이원영): 모 포털사이트에 연재되었던 ‘가업을 잇는 청년’ 시리즈의 심사를 했는데 이 시리즈에 소개된 청년들은 전체 청년농업인의 10%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나머지 90%의 일반 청년들에 대한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해요. ‘취업농’에 대한 정책 방향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창업농’ 지원에만 집중된 정책은 실패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죠. 청년에 대한 정책은 접근방식과 디테일, 형평성을 고려해 다양한 각도에서 만들어야 해요.
박호진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사무국장(이하 박호진): 청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가 중요해요. 언론의 주목을 받고 지원정책의 혜택을 누리는 청년농들의 사례는 제한적이에요. 종합대책이 세워질 때 대상의 단위를 한정 짓는 것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죠. 청년이나 귀농 정책도 마찬가지예요. 대상과 단위를 획일적으로 구분해버리면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김훈규 거창군농업회의소 사무국장(이하 김훈규): 최대 화두인 ‘일자리’와 ‘청년’에 굵직한 예산이 책정되다 보니까 청년정책과 관련해 농촌이 많이 부각되는 측면이 있어요. 공무원 입장에서는 한 명의 청년이라도 더 귀농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큰 관심사가 된 셈이죠. 농촌 고령화 문제와 맞물려서 “몇 명이나 유치했느냐” 하는 수치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이죠.
> 마을공동체 회복과 귀농·귀촌 정책
자치분권으로 마을에 필요한 사업을 해야
다른 문화를 포용하는 귀농 귀촌 교육 필요
‘농촌에 사는 사람’으로 지원 대상을 넓혀야
김훈규: 귀촌인이 꼭 농사를 짓거나 농업 관련 종사자여야 한다는 보수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해요. 농촌에 정말 필요한 것은 지역을 꾸려나갈 ‘사람’을 유치하는 것인데, 그들이 농촌에서 무언가 할 거리나 기반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또한 농촌을 그저 ‘생산 기지화’ 시켜놓고 읍내나 도시로 나가 거주하는 지역민들에 대해서도 지역공동체를 회복하고 유지하게 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영호 정은농장 대표(정영호): 중앙부처 공무원의 권한은 크고 지자체 공무원의 권한은 너무 작아요. 중앙에서 시키는 대로 행정이 처리되고 있으니 ‘지역농정’이라는 것 자체가 요원한 거예요. 저는 자치분권이 가장 필요한 분야가 농정이라고 생각해요. 지역의 ‘마을 만들기’ 사업의 사례를 살펴보면 기본 취지와는 다르게 마을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사례가 드물어요. 복잡한 절차와 관료주의적인 구조 때문이죠.
정은정 농업·농촌사회학 연구자(정은정): 농지가격을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구분해야 해요. 작물선택이나 기후 등 실패할 확률도 고려해 최소 5년은 지원하며 기다려줘야 하지만 정책당국은 그걸 기다려주지 않아요. 귀농하려다 포기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수치화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정책적 대안도 절실하고요.
이원영: 농촌으로 돌아온 사람 중 상당수는 생계나 주거 문제뿐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도 심해요. 과연 이런 문제들을 정책의 테두리 안에서 풀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귀촌인과 원주민의 상이한 문화적 차이가 텃세로 이어지는 거예요. 그 간극을 줄이는 노력이 귀농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후주: 농촌이 지속가능하려면 다른 문화, 말투, 성향의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젊은 여성이 농촌에 들어왔을 때 ‘성희롱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왔을 때 ‘일하는 기계’ 취급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해요. 귀농·귀촌 교육의 방향을 ‘사람답게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춰줬으면 좋겠어요.
박호진: ‘귀농인=농업인’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귀농·귀촌 상담 중 듣는 질문들이 예전에는 “어떻게 귀농해야 할까요?”였다면 지금은 “어디로 가야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가 대부분이에요.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에게 정책적 지원이 집중되다 보니 지역민들과의 갈등은 더 심화될 가능성이 커요. ‘귀농인’에 집중한 정책이 아닌 ‘농촌에 사는 사람’이라는 큰 범위에서 정책을 디자인해야 한다고 봐요.
김훈규: 도시민유치사업이든 청년농 유입정책이든 개인에게 집중되는 지원책은 기존 거주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해요. 귀농·귀촌 인구가 마을에 들어왔을 때 개인에게 집중된 지원책이 아닌 그들을 품어 안은 지역공동체에 지원을 해줘서 갈등을 최소화하고 상호 상생할 수 있는 지원방식이 필요해요.
박호진: 농촌 ‘과소화’ 문제는 앞으로 더 심해질 거예요. 2015년 통계에 따르면 귀농·귀촌 가구 수는 늘어났지만 가구원 수는 평균 1.7명에 불과해요. 결국 신규 귀농인 발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지역 공동체유지에 대한 지원이 마을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농촌의 과소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영호: ‘마을 만들기 사업’을 보면 어떤 마을은 수십억씩 지원을 받는데 지원금 사용과 관련한 이면에는 주민들 간 이권 다툼이 치열한 경우가 많아요. 5억 원을 지원받는데 1억 원은 컨설팅 업체에 가는 황당한 경우도 있고요. 획일적이고 유연하지 못한 정책 때문에 전기세도 못 내는 다목적회관을 지어놓거나 사업을 포기하는 마을이 발생하기도 해요. ‘사람 중심’의 지원방식으로 마을공동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 자체에 중점을 둔 ‘보여주기식’ 예산 지원이 이어지다 보니 주민들 사이에 싸움만 일어나는 거예요.
>스마트팜은 스마트한가
스마트팜 확산 추세의 본질을 봐야
이상기온이 계속되면 소규모 농민 피해
기업의 농지 확보와 잉여 자재 순환 살펴야
신수경: 청년농민 이야기로 시작해 귀농·귀촌과 지역공동체 지원사업의 문제점 등을 이야기했는데, 요즘 화제가 되고 논란도 많은 스마트 팜에 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청년농민 정책과도 연관되는데, 정부에서는 스마트팜을 하려는 청년 농민에게 30억 원까지 융자 지원하는 정책을 내세웠지요.
김후주: 스마트팜의 핵심은 소프트웨어와 데이터인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하드웨어에 치중이 된 것 같아요. 드론 방제나 원격제어시스템, 창고 자동화 등이 대표적인 이미지인 것 같아요. 청년농업인과 관련한 교육이나 농업고등학교에 강연을 가 봐도 마찬가지예요. 자동화된 스마트팜 관련 내용이 교육과정 대부분이라는 느낌을 받게 돼요.
정은정: 스마트팜 확산 추세의 본질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연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결국은 쌀값 보장 문제가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쌀값 보장이 안 되니까 정부에서는 전작을 유도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농가 입장에서는 쌀 중심의 보험체계 등 전작이 쉽지 않은 현실이에요. 결국 스마트팜을 시행하다보면 이익을 보는 특정 집단이 생길 것이고 그런 면에서 농민들은 스마트팜에 대한 의구심이 있는 것 같아요.
이원영: 유통의 관점에서 보면 올해 토마토 5kg이 7만 5천 원까지 올라갈 정도로 이상기온이 가격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 혜택을 대부분 유리온실에서 재배된 토마토가 봤어요. 대농과 기업농들은 하드웨어를 갖추고 생산비를 최소화할 수 있어요. 지금처럼 이상기온현상이 지속되면 결국 소농은 도태되고, 시설농사에서 재배가 어려운 일부 품목의 생산량도 극히 적어질 거예요. 대규모 생산이 가능한 품종만 계속해서 생산될 거예요.
이렇게 품종 다양성이 파괴되는 상황에서 가장 극렬히 저항해야 하는 사람들이 소비자인데 먹거리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무조건 크고 예쁜 농산물을 선호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는 것이죠. 먹거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이유예요.
정영호: 축산업의 상황도 본질적으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어요. 닭이나 돼지도 대규모 사육을 하는 농가만 살아남을 수 있고 소규모 농가는 경쟁에서 도태되고 있어요. 1994년 이래 모든 농업분야에서 대규모화를 진행해 이어져 온 결과라고 봐요. 농업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하는데 이것을 공급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규모 시설원예농업에만 집중하고 있는 거예요.
박호진: “양액재배는 건강하지 않다”라는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정은정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정은정: 수경재배는 병충해도 거의 없고, 훨씬 친환경 인증이 쉽지만 순환이 안 되는 농사라는 게 문제죠. 수요시장보다 공급시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공급이 더 많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가 많습니다. 스마트팜이라는 게 결국 시설 투자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업에게 유리하죠. 양액재배는 시설 교체주기가 있기 때문에 환경오염물질이 발생한다는 측면도 생각해야 합니다.
김훈규: 정부가 스마트팜을 주요 농업 정책으로 생각하고 지방정부도 이에 적극 동참하고 있어요. 중소농가나 고령농가, 귀농농가들은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결국 스마트농업의 제도 안에 편입되는 상황이 될 거라고 봐요. 이런 상황에 청년농 정책이 절묘하게 포함된 거예요. 농업을 스마트팜 안에서 배우라는 ‘인큐베이팅 매뉴얼’이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 소농들은 스마트팜에 취업하는 형태가 될지도 몰라요.
김후주: 일본에 연수를 갔을 때 보니 일본은 대기업에 농지를 오픈한 상태였어요. 실제로 청년들이 대기업이 운영하는 농장에 취업해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어요. 정부 입장에서는 대기업에 대규모 시설농업의 관리를 맡기면 관리가 수월해 좋을 거예요. 이런 식으로 스마트팜이 우후죽순으로 생겨 축산업처럼 기업화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워요.
정은정: 기업 특성상 끊임없이 사업을 확장해야 하는데 지금 남은 것은 농업·농촌 분야라고 할 수 있어요. 기업의 측면에서 보면 첫 번째로는 농지 선점이라는 이점, 두 번째는 기업의 잉여 자본을 순환시킬 수 있다는 이점이 있을 거예요. 건설업체는 유리온실을 만들 수 있고 자동차 업체는 농기구를 만들 수 있죠. 농업으로 시작된 토지 확보와 잉여 자재의 순환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한 매력이 있는 분야일 거예요.
김훈규: 1차 산업인 ‘농민적 삶’과 농업 고유의 개념과 가치를 지켜야 해요. 앞으로 전통적 농업은 결국 ‘체험형 활동’으로만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와 함께 “농림부는 본점이고 마을은 지점이다”라는 농담 섞인 말이 있을 정도로 지역축제나 프로그램이 대동소이한 것도 문제예요. 특색 있는 지역 전통문화를 유지·발전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해요.
>안전한 먹거리와 소비자
사라져가는 것도 살리는 소비자의 힘
농업의 가치는 정부가 나서서 알려야
김훈규: 정부 정책의 주요 농업 의제로 먹거리 문제, 학교급식을 포함한 급식 영역을 우선순위로 놓은 것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먹거리, 급식, 푸드플랜 등 먹거리 유통을 공적 영역에 포함하려는 시도를 잘 살려서 먹거리 의제를 전면화해야 해요.
신수경: 유럽의 사례를 보면 끊임없이 농업정책에 소비자를 연결하며 인식전환을 유도해왔습니다. 재단에서도 민간차원에서 소비자 관련 행사를 꾸준히 진행해왔는데요. 행사 후 참가자들의 인식 변화를 조사해보면 “소비자들은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정책적으로는 이런 부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소비자들의 안전한 먹거리와 농업에 대한 인식전환에 집중해야 할 텐데요. 그런 노력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정은정: 식생활 교육 운동도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식생활 교육 강사들만 양성할 것이 아니라 학교 교과과정에서 농업과 먹거리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학부모들에게도 학교급식에 들어가는 식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리고, 안전하고 맛있는 먹거리에 대해 공감하는 자리가 필요하지만 실제로 그런 시도는 없어요.
이원영: “사라져가는 것을 살리는 유일한 길은 먹는 것이다”라는 문구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어요. 사라져가는 것까지도 살릴 힘을 가진 게 소비자인데, 그런 소비자를 너무 방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올바른 먹거리 교육이 절실해요. 농민들이 이 부분에서만큼은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고 함께 힘을 모아 공동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최근 3년간 친환경 농가가 24% 줄었어요. 그에 반해 수입농산물은 해마다 10% 이상씩 늘고 있죠. 생산규모화가 되어야 생산비용이 적게 드는데, 우리나라는 소농가 중심으로 친환경 농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생산비는 계속 올라갈 거예요. 농산물 가격만 빼고 농약, 농자재, 유통비 등 생산가격은 계속 상승하는데 무슨 수로 버티겠어요.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 친환경 농산물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위기의식을 느껴요.
김후주: 우리 농원에 20종이 넘는 배가 있는데 제수용으로 주로 쓰이는 품종인 신고 배가 아니면 잡배로 인식되는 경향이 팽배해요. 맛이 좋아도 크고 예쁘지 않으면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상황이니 품종을 다각화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태양광 발전 사업과 농지 경관
농지경관 보호냐 농가소득 창출이냐
농촌 태양광 발전사업의 본질을 살펴야
신수경: 최근 농촌의 대체에너지 사업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 한해서는 대체에너지 사업이 농가 소득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에너지 개발사업과 관련한 피해 사례도 많은 게 사실인데요. 태양광 발전 등 농촌 대체에너지 개발 사업에 대해 논의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호진: ‘태양광 발전’이라고 한다면 대안적 정책으로 찬성할 수 있어요. 하지만 농촌 태양광 발전 사업이 농촌에 에너지 정책을 떠넘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본질은 농촌이 에너지까지 생산해야 할 주체가 아니라 “도시에서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덜 소비할 것인가”라고 생각해요.
정영호: 전남 신안군의 염전 대부분이 태양광 발전 패널로 뒤덮이고 있어요. 미세플라스틱 등 천일염에 대한 부정적 이슈가 계속 보도되며 천일염 소비가 줄고 염전의 토지가격은 평당 50원이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저렴하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민들이 염전을 태양광 업자들에게 쉽게 판매하고 있는 거예요. 문제는 지자체에서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거나 조치하는 제도적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그러는 사이 지역민들 사이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어요.
정은정: 주식시장을 보면 농촌경제가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농자재 주식이 오르기에 봤더니 태양광 패널과 관련이 있었어요. 농자재 회사의 주 고객은 농민인데, 농사짓는 농민이 줄면 태양광 패널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거예요. 이런 현상이 과연 적절한지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요.
김훈규: 농협이나 지자체에서도 태양광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어요. 태양광 패널 설치와 관련한 규제는 점점 더 완화되고 있고요. 귀농·귀촌인들에게 태양광 사업에 참여할 것을 유도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갈등 양상이 농촌에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유휴지를 최대한 활용해 농가의 기타소득을 늘려야 한다는 여론과 농지 경관을 보전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죠.
김후주: 태양광 사업과 관련한 논란도 결국에는 부동산 투기의 성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값싼 농지를 태양광 발전용으로 바꾼다고 하니 부동산 투기가 이뤄지고 있는 거예요. 농가의 부가소득 때문에라도 농민들은 농지를 팔고 있는 거죠. 우리 지역만 봐도 주변에 공단이 들어오면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요. 그러면 누구든 농사 안 짓고 토지 판매를 고려하게 되는 것이죠.
정영호: 마을 사람들과 거래하면 2~3만 원에 거래하는 걸 외지인들에게 팔면 5~6만 원에 팔리니 농지 매매가 더 쉽게 이뤄지는 거예요. 농촌에 계신 어르신 중 상당수는 자기 대에서 농사의 명맥이 끊긴다고 생각하시니 농지경관이나 보호에 관심이 덜한 것 같아요. 최근 전남의 농지 가격이 급등한 것은 결국 외부인들을 비롯한 투기자본 탓이에요. 바로 이런 지점에서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속 가능한 농업과 농촌
농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후속 세대에 대한 고민,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자
이원영: 친환경 농업이나 태양광 사업이나 본질이 훼손되는 측면이라는 점에서 흐름이 비슷한 것 같아요. 소비자나 유통업체, 생산자 모두가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까 건강한 토론과 진단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각계각층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의견을 모으고 공유하면서 실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느 한쪽만 열심히 달린다고 해서 될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은정: 농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후속세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성폭력, 가정폭력 등의 범죄 비율은 농촌에서 더 높아요. 같은 청년농민이어도 여성농민의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구요.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은 만큼 다양한 세대와 영역의 사람들이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농업계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해요. 기존의 이슈에만 몰두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됩니다.
정영호: ‘농판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합니다. ‘가격보장’, ‘수입반대’로 대표되는 90년대 농민운동의 이론과 노선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농민운동진영에서 말하는 진보가 오히려 보수적인 경향이 있을 정도예요. 협력일변도도, 투쟁일변도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와 다음 세대를 함께 고민하는 노력이 있어야 해요.
김후주: 청년농민들은 금전적인 지원보다는 농업과 먹거리 교육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당장 눈앞의 지원 사업에 의존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소비자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농이란 무엇인가’를 농민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훈규: 16년 동안 농촌에서 살며 느낀 점은 농민 스스로가 자신들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내 마을과 지역을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거예요. 앞으로 농업은 더 어려워지겠지만, 농촌의 현실을 바라보는 노력과 함께 젊은 층의 농민들이 소비자들과 연대 속에서 농의 터전을 지켜나갔으면 좋겠어요.
박호진: ‘농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일반 시민들에게 물어봤을 때 뭐라고 할지를 생각해봤어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무관심할 거로 생각해요. 저는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골든타임’은 여전히 지금이라고 봐요. 농업단체 대표들을 포함해 모두가 총력을 기울여서 초등교육에서부터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고, 시민들에게는 농업의 공익적·환경적 가치들을 이야기해주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신수경: 오늘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서 앞으로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농農의 가치’에 대해서 농업계 안에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밖에서도 활발하게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산 선생께서 말씀하셨듯 ‘농은 우리 삶의 뿌리’입니다. 우리 모두 삶을 지탱해주는 근간을 함께 지켜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녹취·정리 박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