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갈림길에서

강빛나래

  2024년이 시작되고 두 달 남짓, 농민 시위로 유럽 전체가 뜨거웠다. 특히 1월 마지막 주와 2월 첫 주는 그리스, 독일,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농민이 곳곳에서 트랙터를 타고 나와 고속도로를 점령했다. 벨기에 브뤼셀 등 정부 청사가 있는 도심으로 행진한 농민 시위 행렬은 유럽연합 정책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사실, 유럽 농민 시위의 첫 주자는 2019년 10월 트랙터를 끌고 도로에 나온 네덜란드 농민들이었다.

2019년 10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 고속도로에서 정부 청사로 향하는 중인 농민 시위 대열. 시위판에는 ‘상식을 지켜 우리 나라 농부를 지켜라’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2019년 10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 고속도로에서 정부 청사로 향하는 중인 농민 시위 대열. 시위판에는 ‘상식을 지켜 우리 나라 농부를 지켜라’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질소화합물 감축 규제와 농민의 위기감
  2018년 유럽연합 사법재판소는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한 판결을 내놓았다. 각 정부가 나투라 2000(Natura 2000)1) 지역을 질소화합물 배출과 침전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행정법이 작동하는 방식은 이 목적을 이루는 데 부적절하다며 시정 명령을 내렸다. 2019년 5월, 네덜란드 최고행정법원은 네덜란드 정부가 질소화합물 배출 감축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이 지닌 함의를 농축산업계가 인식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렸다. 이 판결로 네덜란드 내 농축산업 시설 건설 등 정부 환경 허가(Environment Permission)를 필요로 하는, 1만 8000개가 넘는 사업이 일시에 멈추게 되었을 뿐 아니라, 질소화합물 배출 감축 속도를 훨씬 더 앞당겨야 했다. 위기감을 느낀 네덜란드 농민들은 2019년 10월 첫날 헤이그로 향했다. 유럽연합 사법재판소 판결은 네덜란드 정부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국 정부에도 동일한 함의를 지니기에, 2024년에는 다른 유럽 회원국에서도 농민 시위가 비슷한 방식으로 일어났다.
  유럽연합 및 각 정부가 질소화합물 감축을 위해 내세우는 채찍과 당근이 있다. 채찍은 환경 규제와 허가권이고, 당근 중 하나는 유럽연합의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 CAP)’ 보조금 배분 방식과 지원 내용을 개혁하여 질소화합물 감축을 장려하는 것이다. 60년 역사가 넘는 공동농업정책은 꾸준히 개정을 거쳤고, 2023년부터 새롭게 적용되는 CAP는 더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농촌’을 목표로 삼았다. 이는 2019년 말 유럽연합이 발표한 유럽 그린딜(Green Deal)의 전략에 따른 것이다.
  2050년까지 기후중립, 곧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를 목표로 하는 그린딜은 중공업, 임업, 농축산업, 수산업 등 산업별 이행 전략에 따라 부문별 정책과 해당 보조금을 재조정하는 상위 정책이다. 그린딜 농업 전략으로 2020년 발표한 ‘농장에서 밥상까지(Farm to Fork)’ 전략은 2030년까지 살충제 사용과 농축산업에서의 질소화합물 배출을 절반 이상으로 줄이고, 공동농업정책 보조금을 받는 농지는 면적의 최소 4% 이상을 생태다양성을 위해 휴경하거나 비농업 용도로 남겨두고, 현 전체 경작지의 약 8.5%인 유기농업 면적을 25%까지 끌어 올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30년까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동농업정책 현 프로그램(2023~2027년) 다음에는 보조금 배분 방식을 더욱 획기적으로 바꿀 전망이다.
  그렇다면, 유럽 그린딜에서도, 공동농업정책 보조금 배분 기준에도, 나투라 2000 동식물 자연서식지 보호 지침에서도 질소화합물 배출 감축을 왜 이토록 강조할까?

1) 유럽연합 환경청에 따르면, 나투라 2000은 약 2만 7000개가 넘는 동식물 자연 보호지구를 통칭하는 말로, 유럽연합 지표면의 약 18.6%, 해수면의 약 9%를 차지한다. 국경을 넘어 다니는 철새를 위해 여러 동식물 서식지가 네트워크로서 충분히 연결되고, 퍼져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처음 지정하기 시작했고, ‘동식물 서식지와 조류 지침(Habitats and Birds Directives)’ 하에 1992년부터 꾸준히 지정지가 늘어났다. 유럽연합 지침(EU Directive)은 모든 회원국에 구속력이 있지만, 그 이행 형식과 수단은 회원국이 정한다.

문제는 ‘질소화합물’
  먼저 질소화합물이 왜 문제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럽 현지에서 공론장 화제의 중점이 ‘탄소 배출 감축’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질소화합물 감축’으로 이동한 지 오래이다. 질소화합물은 질소산화물과 암모니아(NH3; 질소와 수소 화합물)를 통칭하는데, 전자는 강력한 온실효과로 기후 안정성을 파괴하고, 후자는 토양 및 수질 산성화로 생태다양성을 파괴한다.
  질소산화물에는 이산화질소(NO2; Nitrites), 질산성질소(NO3; 질산염; Nitrates), 아산화질소(N2O, Nitrousoxide)가 있다. 이는 메탄이나 이산화탄소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한 온실효과를 낸다. 예를 들어, 아산화질소는 이산화탄소보다 온도 상승효과가 300배 강력하고, 자외선 방어막인 오존층도 직접 파괴하며, 대기 중 머무는 기간은 다른 종류의 온실가스보다 훨씬 길어서 평균 100년이 넘는다.(미국립과학교육센터, 2023)
  2019년 유럽연합 내 온실가스 총배출량 중 이산화탄소는 80%, 메탄은 11%, 아산화질소는 6%, 프레온가스는 2%를 차지했다.(유럽환경청, 2023) 이산화탄소 300개에 달하는 효과를 아산화질소 1개가 낸다면, 6%란 비율은 결코 적은 게 아니다. 질소산화물은 빛과 열을 흡수하여 대기를 ‘끓이는(Boiling)’ 효과가 세고, 잘 사라지지 않아 대기 중 양이 조금만 늘어도 지구 기온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암모니아는 인공비료의 주재료이고, 가축 배설물이 섞일 때도 발생한다. 그래서 암모니아 전 세계 배출량 중 농축산업에서 비롯한 비율은 약 81%이고(Wyer et al., 2022)2), 네덜란드에서는 더 높은 91%이다.(네덜란드 통계청, 2022) 암모니아 때문에 토양이 산성화되면 땅속 이로운 미생물이 죽고, 다양한 식물이 자라지 못해 새가 줄어든다. 물로 흘러가면 녹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또 적정량을 넘어 땅속, 물속에 침전된 암모니아는 고세균(Archaea)과 만나 질소 기체(N2)가 되어 대기 중 아산화질소로 변해 버린다.(Jung et al., 2022)3) 1918년,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Fritz Haber)는 질소와 수소 합성으로 암모니아와 비료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만든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당시 식량난을 해결할 열쇠로 주목받았던 그의 업적은 결국 양날이 검이 되었다.
  질소화합물 위기는 과학연구공동체가 내놓은 연구 결과와 예측, 경고를 사회·정치·경제적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유럽연합은 1991년 처음 ‘질산염 지침(Nitrates Directive)’을 내놓았다. 이후 수차례 개정을 거쳐 질소화합물 배출 관리에 더 엄격해진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각 회원국은 농축산업에서 질소화합물 집적을 파악하고 감독하며, 그 배출이 집약된 취약 지구를 지정하여 특별 관리해야 한다. 또한, 질소화합물로 인한 수질오염을 막을 대책을 도입하고, 건전한 농축산업 행위를 장려해야 한다.

2) Wyer, K. E., Kelleghan, D. B., Blanes-Vidal, V., Schauberger, G., & Curran, T. P. (2022). Ammonia emissions from agriculture and their contribution to fine particulate matter: A review of implications for human health. Journal of Environmental Management, 323, 116285.
3) Jung, M. Y., Sedlacek, C. J., Kits, K. D., Mueller, A. J., Rhee, S. K., Hink, L., … & Wagner, M. (2022). Ammonia-oxidizing archaea possess a wide range of cellular ammonia affinities. The ISME journal, 16(1), 272-283.

네덜란드 지역별 질소화합물 감축 목표도.(출처: 네덜란드 보건환경연구소 RIVM, 2022 년 6월 9일 발표) 나투라 2000 지역은 감축 목표가 95% 이상, 주변 경계 지역은  감축 목표가 70%이다
네덜란드 지역별 질소화합물 감축 목표도.(출처: 네덜란드 보건환경연구소 RIVM, 2022년 6월 9일 발표) 나투라 2000 지역은 감축 목표가 95% 이상, 주변 경계 지역은 감축 목표가 70%이다.

더 엄격해지는 환경 규제에 대한 농민의 반발
  유럽에서는 이렇듯 질소화합물 배출량 감축 요구로 발생하는 정치, 사회, 경제적 갈등을 ‘질소 위기(The Nitrogen Crisis)’라 통칭한다. 유럽연합이 각국 행정법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농축산업계가 질소화합물 배출량을 줄이기를 강제하고, 유럽연합이 집행하는 공동농업정책 예산의 보조금을 통해 산업의 전환을 장려한다는 건, 곧 농축산업이 기존의 생산량 최대화 위주, 단기 효율성 극대화 위주의 질소화합물 의존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농업을 지속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에 올라타지 않으면 전망이 어둡다.
  그러면 농민은 길러오던 가축을 팔고, 암모니아가 집적된 땅을 한 필지씩 처분하고, 농업을 멈춰야 하는가? 질소비료를 많이 쓰던 농사를 유기농으로 바꿀 때 드는 비용은 어떻게 감당하는가? 여러 인증 절차와 비용이 증가하고, 토양을 유기농으로 바꾸는 데만 최소 2~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토양이 회복되고 작황이 좋아지고 수확량을 되찾기까지 소득은 어떻게 보존하며, 업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트랙터를 끌고 나와 다른 교통을 마비시키는 농민 시위의 과격성은 이 질문에 마주한 농민이 느끼는 불확실성과 정부에 대한 배신감을 반영한다. 또 질소화합물이 초래할 생태 위기를 여러 정책 제언서에서 경고했던 1990년대에는 잠재된 갈등을 회피하느라 질소화합물을 의제로 올려놓는 것을 계속 미루다가, 기후위기가 급속히 진행되자 유럽연합 사법재판소 및 네덜란드 최고행정법원의 행정판결에 떠밀려 강제로 속도를 내는 정부에 대한 원망도 크다. 환경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길 거부하면서 1990년대부터 20여 년간 대형화, 자동화, 효율화를 꾸준히 유도해왔던 농림부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고 감축 속도를 높이는 양상이니, 농민으로서는 당연히 당혹스러울 것이다.
  1962년에 도입한 공동농업정책은 식량 생산 증대와 농민 소득 보장에 목표를 두었다. 농민은 그에 따라 농사를 지었고, 대형농에 유리했던 정책에 맞추어 규모를 키웠다. 1950년대 전체 인구 1000만 명 중 약 41만 명에 달하던 네덜란드 농민 숫자는 오늘날 전체 인구 약 1800만 명 중 농민 5만 5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대형화를 통해 한 농장 당 경작면적 혹은 보유 가축 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을 의미하는 한편, 인구의 3% 남짓을 차지하게 된 농민이 체감하는 정치적 고립감은 더 커졌다는 것을 뜻한다.
  농민은 질소화합물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각종 정부 규제의 압박 속에서 앞으로 업을 이어가기 위해 택할 선택지가 줄어든다고 느낀다. 또 업을 청산하거나 전환할 때 드는 기회비용을 충분히 보전받지 못한다고 불만을 표한다. 시위에 나온 농민의 말은 대략 이런 억울함으로 귀결된다.
  ‘열심히 농사지은 게 죄다. 경제 부흥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우리에게 정부 대우가 무책임하다.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기만 할 뿐, 전환 비용을 정부가 함께 나누려는 의지는 적다. 다른 산업은 안 멈추면서, 왜 우리만 멈추라 하는가. 왜 우리 업만 환경 규제에 순응해야 하는가.’

변화를 주도하는 농민과 연대하는 시민
  2019년 10월 1일, 수천 대의 트랙터가 네덜란드 헤이그로 향했다. 이 시위는 진행형이다. 매번 수천 명의 농민이 시위에 참여했고, 누적 수로는 수만 명이 넘어선다. 네덜란드 정부가 질소화합물 대응 정책에 앞장서고 있는 만큼, 그 전환을 둘러싼 갈등도 먼저 첨예하게 공론장에 나타났다.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의 농민은 2023년 말부터 본격 조직화를 통해, 2024년 초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동유럽의 시위에는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요인도 작용했다. 유럽연합이 쿼터와 관세를 면제해 준 값싼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이 물밀듯 들어와 유럽 내 생산한 농산물 가격까지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2023년 가을 그리스가 가뭄에 연이은 산불로 홍역을 앓았듯, 더욱 빈번해진 기상재해 속에서 이상 고온이나 지나친 저온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 동물 복지 및 수질 검사 등 각종 규제 준수 비용 증가, 농산물 거래가 하락, 비료 가격 상승과 운송비 상승 등이 모두 농민의 경제적 이익을 짓눌렀다. 대형 영농회사 중 수익률은 낮아지고, 빚은 커져만 가는 경우가 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비용 증가를 뜻하는 질소화합물 배출 규제 강화가 농민에게 반가웠을 리 없다.
  이 와중에 시위 행렬에 속하지 않는 농민들이 있다. 일찌감치 생태친화적인 농업으로 전환을 이뤄낸 농민들은 현 상황에 낯선 여유를 보인다. 이들은 친환경농업(Biological), 유기농업(Organic), 생명역동농업(Bio-dynamic)처럼 질소비료와 수입 사료, 화석 연료에 덜 의존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개선하고, 적용해 왔다. 법이 강제해서가 아니라 내재적 가치와 동기에 기초해 전환을 이뤄냈다. 또 차근차근 독자적인 유통 구조를 구축해왔기 때문에 시장 가격 변화로부터, 유통 과정을 거쳐 마진이 더 낮아지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롭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주도하는 이 새로운 부류의 농민은 기존 농민이 느끼는 배신감과 불안함에도 공감을 보인다. 언제든 손을 내밀 준비가 되었다. 전환을 택하는 농민과 연대하는 시민 운동도 다양한 모습으로 확장되고 있다. 다양한 농업 전환 운동의 성장세와 성공 과정에 앞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빛나래필자 강빛나래: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건축건조환경학부 연구원
네덜란드에서 공영토지개발사업 및 토지정책 연구로 석박사 과정을 거치고, 현재 ‘여성 주도 농업·농촌 혁신’이란 유럽연합 학술연구사업에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