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쉐@ 상임이사 이보은 씨
글 신수경 편집장
2022년 3월 월요일 이른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열리는 마르쉐 채소시장을 찾았다. 서울 근교의 농사 공동체 텃밭에서 나온 시금치와 단호박, 충북 괴산에서 20대 자매가 들꽃과 꽃을 채집해 만든 꽃차와 우리밀 빵, 양평에 귀농한 부부가 직접 기르는 닭에서 나온 달걀과 이를 이용한 가공품 등을 설명하며 소비자와 나누는 시장. 생태순환농업을 지향하며 소규모로 농사짓는 20여 농가와 요리사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공간. 그곳에서 마르쉐@을 10년간 이끌어온 이보은 상임이사를 만났다.
“간편조리식품들이 쏟아져 나오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온전하게 밥을 잘 해 먹는 삶을 지켜내 보자,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야외시장의 한계를 보완하자, 농부들과 깊게 대화하며 장보고 밥 짓는 일상의 즐거움을 찾게 하자는 뜻을 담은 작은 시장이 채소시장이에요.”
도시에서 농農을 이야기하다
마르쉐 시장은 도시의 옥상 텃밭에서 시작됐다.
“문래 옥상 텃밭에서 처음 농사를 지었어요. 그 경험이 너무 좋은 거예요. 채소가 너무 맛있었고요. 옥상 작물이 자라는 그곳에서 도시의 속도와는 좀 다른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게 하더라고요. 익숙한 듯 낯선 듯한 그 공간이 너무 좋았고, 이 공간에 오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느낌이 들었죠.”
2011년, 이보은 씨가 여성환경연대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를 하면서 문래동 옥상 텃밭을 시작으로 여러 군데 텃밭을 가꾸었고, 여기서 나온 농산물을 어떻게 할까, 김수향 씨(수카라 대표) 등 다양한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여러 차례 다양한 모임과 실험을 했다. 이듬해인 2012년, ‘돈과 물건의 교환만 이루어지는 시장’ 대신 ‘사람, 관계, 대화하는 시장’을, “우리가 먹고 마시고 사용하는 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이야기하는 시장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서울 종로구 혜화동 예술가의 집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로 ‘마르쉐@’의 이름 뒤에 양재, 명동, 마포 문화비축기지, 성수 등의 장소가 붙었고, 그곳에서 시장이 열렸다.
사람, 관계, 대화로 진화하는 시장
10년간 마르쉐@은 다양하게 변주되고 확장되었다. 현재 74개 농가를 비롯해 요리사, 수공예,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가 등 총 144개 팀이 참여하는 농부시장은 혜화에서 열리는 농부시장과 성수와 서교에서 열리는 채소시장으로 세분화되었고, 이와 함께 씨앗을 기르는 농부들이 함께하는 씨앗밥상, 농가를 직접 찾아가는 농가행,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포럼에서 지속 가능한 농과 먹거리에 대한 고민과 대안을 나눈다. 특히 채소시장은 코로나19를 버티게 해준 힘이었다.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큰 시장을 열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채소는 계속 자라잖아요. 판로가 확보되지 않은, 소규모 농사를 짓는 농부들을 위해 시장이 있어야 하는데, 작은 채소시장을 이곳저곳에서 계속 열면서 코로나 시기를 헤쳐 온 거예요.”
채소시장이 시작된 지 2년여. 계절 채소의 아름다움과 다채로움을 소비자들에게 각인하면서 서서히 동네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채소시장) 시작할 때, ‘셰프들이 장 본다고 소문난 시장을 만들자’ 했는데,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오늘도 요리 애호가들, 요리사분들이 많이 다녀가셨어요. 왜 이렇게 장을 많이 보나 했던 분이 알고 보니 유명한 영화감독이시더라고요.”
유명인이 많이 찾는 시장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시장에서 가장 반가운 사람은 아무래도 젊은 세대들이다.
“사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작은 시장은 수익이 안 나요. 그런데 이런 시장은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이 점심시간에 와서 장을 보고, 요리사들이 장을 보는 시장이요. 마르쉐에 와서 맛있는 거 먹던 친구들이 요리사를 꿈꾸고 농부가 되고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플랫폼 또는 느슨한 농農 공동체
마르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보은 씨는 마르쉐를 통해 농부들의 영역이 커지고 또 연결망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 고맙고 반갑다.
“마르쉐는 넝쿨식물 같아요. 넝쿨이 뻗어 나가면서 땅과 닿는 부분에 뿌리가 생기고 또 거기서 뻗어 나가고…. 처음 시작은 작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요리사들이 식재료를 쓰고, 가공생산자들이 생겼죠. 또 농부의 공간에서 예술가들의 협업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만남이 이루어져요. 농부 한 사람이 자기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거죠.”
마르쉐의 첫 시작이 그랬듯이, 뭔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용기를 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느슨한 공동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10년 동안 마르쉐를 보고 성장한 기업들이 많아요. 그런데 마르쉐는 제자리걸음 아니냐 할 수 있지만, 그게 저희의 최강점이자 약점인 것 같아요.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추구하려고 할 때, 혼자 하려면 뭔가 막막하잖아요. 그런데 마르쉐@이라는 구체적인 현장이 있다는 것. 물어볼 사람이 있고 환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게 아주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지구를 걱정하는 농부와 요리사 소비자의 연대
“2020년에 여름 장마가 엄청나게 길었잖아요. 그해 겨울에 ‘기후위기 시대의 농부시장 역할’에 대해 포럼을 열었어요. 우리가 지금 시장을 열 수 있고 없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기후위기 시대를 어떻게 헤쳐갈 것인가에 대한 농민과 함께하는 전략이 있어야 되겠다, 이런 고민 끝에 나온 것이 ‘지구농부시장’이에요. 자연재배, 토종, 퍼머컬처, 생명역동농업, 탄소순환농법 같이 효율이 낮고 품이 많이 드는 농업을 하는 농부들이 중심이 되는 시장이죠.”
지구 농부들로 현재의 농촌이 많이 변할 것이고, 그렇게 재자연화되는 일도 생길 거라는 기대가 크다. 그러나 한편, 누구나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서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맞추어 노력할 수 있다고 이보은 씨는 생각한다.
“100명의 농부가 있으면 100가지 농법과 100가지 이야기가 있어요. 그들이 맞서고 있는 각자의 처지와 여건, 자연환경이 다 다르잖아요. 어떤 공동의 해법이라는 게 있으면 좋겠지만 전 쉽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는 것 그 과정들을 함께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걸 위해서 이렇게 서로의 경험 속에서 서로 배울 수 있는, 이런 길도 있어, 라고 비춰주는 일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2022년, ‘더는 대화를 미루지 말자’고 연대한 농부와 요리사, 예술가와 소비자가 어울려 지속 가능한 농農과 먹거리를 이야기하는 장보기가 다시 시작됐다. 시장이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와 일상이 되는, 농부시장 마르쉐의 봄 풍경이다.
농부시장 마르쉐@ www.marchea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