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국립공원에 들어섰다. 월정사 입구를 지나니 ‘한국자생식물원’ 표지판이 보인다. 한국자생식물원은 총 11만 5000여㎡(약 3만 5000평)에 희귀식물과 멸종위기 식물, 특산식물과 천연기념물 등 약 1600여 종의 자생식물이 자라는 우리나라 제1호 사립식물원이자 최대의 우리꽃 식물원이다.
2003년 여름, 이곳을 처음 찾았다. “우리 꽃 이름 몇 개나 알고 있어요?” 식물원 설립자인 김창열 씨(2002년 제11회 대산농촌상 수상자)가 툭 던진 질문에 당황하여 뭐라고 답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식물원을 둘러보며 산솜다리, 분홍매발톱꽃, 벌개미취, 섬백리향, 솔나리 같은 처음 듣는 꽃 이름을 바쁘게 받아 적다가, 난데없이 맞닥뜨린 아름다운 꽃 군락에 홀딱, 시선을 놓아버렸던 기억이 남았다.
18년 만에 찾은 식물원 간판에는 ‘국립’이라는 글자가 덧붙었다. 2021년 7월, 김창열 씨는 약 7만 4000여㎡의 식물원 부지와 건물 5동, 자생식물 1600여 종 등 약 202억 원의 가치를 산림청에 기부하는 기부 채납식을 했다. 제1호 사립식물원은 ‘국립한국자생식물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우리 꽃에 대한 새로운 시각
김창열 씨는 이곳에서 1983년 설악산에서 자생하는 에델바이스(솜다리)를 재배하면서 야생화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우리 꽃을 재배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던 때였다.
“전국을 다니면서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을 채취해서 재배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식물 종도, 그 수도 많아지고, 때마침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관심이 커지면서 야생화 수요가 많이 늘었어요. 소득이 늘면서 땅도 조금씩 넓혀나갔고, 이 자리에 식물원을 조성했던 거죠.”
1999년 문을 연 한국자생식물원은 희귀 식물과 한국 특산식물, 멸종위기 식물들을 구역별로 잘 보존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다른 색으로 단장한 식물들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식물원은 우리꽃과 풀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가능성을 높이며 유전자원을 보전하는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공원이나 도로변에 심는 꽃들도 우리꽃으로 많이 대체되었고, 전남 구례군을 비롯해 전국 야생화 재배 농가들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러던 2011년, 큰 화재로 식물원의 목조건물이 순식간에 불타 사라졌다. 이를 복구하고 다시 문을 여는 데 9년이 걸렸다.
‘영원한 속죄’, 그 이후
2020년 7월, 한국자생식물원이 다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식물원이 재개원을 위해 준비한 조형물 ‘영원한 속죄’가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것. 영원한 속죄상은 김창열 씨가 사비를 들여 전문가가 만들었고, 조정래 작가가 이름을 지었다. 이 조형물은 엄한 표정을 하고 앉아있는 소녀에게 큰절을 하는 남자의 형상인데, 이 남자가 일본 총리가 아니냐는 갑론을박으로 시끄러웠고, 한일외교 문제로 비화되기까지 했다.
“8월 13일에 개막식을 하기로 했죠. 오랫동안 문을 닫고 있었더니 보도자료 내는 것도 어려웠는데, 마침 경향신문에 보도가 되었어요. 그런데 일본 일간지들이 그걸 다시 보도하면서 뒤집어졌죠. 일본에서 다루지 않은 매스컴이 없을 정도였고, 다른 나라에서도 요청이 오더라고요. 심지어 ‘알자지라 방송’까지 인터뷰를 하자고… 나중에는 목이 아파서 인터뷰를 못 하겠더라고.”
결국 개막식은 하지 못했지만, 대신 ‘영원한 속죄상’을 철거하라는 일부의 거센 압력에 응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했다. 이번 기부 목록에도 영원한 속죄상이 있는 지역은 넣지 않았다. 국가기관의 소유가 되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어차피 내 생각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이런저런 문제에 휘말리지 않게 앞으로도 이쪽은 내가 관리할 겁니다.”
200억 기부, ‘국립’이라는 이름의 의미
2003년 인터뷰에서 “식물원은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지켜나갈 공공의 유산”이라고 했던 그의 말을 상기시켰다.
“그때 그런 말을 했었나요.(웃음) 식물원이라는 게 본래 그런 거예요.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서 만들어도, 만든 이후에는 개인의 것이 아니에요.”
이번 기부에도 그런 뜻과 바람을 담았다.
“이곳이 식물원으로 계속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었어요. 산림청에 기부하는 조건은 세 가지에요. 첫째, 향후 100년간 식물원으로 존속시킨다는 거. 나는 100년 뒤에 없겠지만, 100년 정도 존속이 된다면 그 이후에도 계속 식물원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커요. 또 하나는 오랫동안 식물원을 지켜온 직원들의 고용을 승계하는 거예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외래식물을 도입하지 않고 오롯이 우리나라 식물자원을 보존하는 창고 역할을 하는 거, 그거예요.”
김창열 씨는 평생 마라톤 전 구간을 136회 완주했다. 오대산에서 첫 마라톤을 하면서 우리 꽃과 나무로 가득 찬 자생식물원을 구상했다는 그는, 마지막 남은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물원이 많지만, 자국의 고유식물만으로 식물원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어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한국자생식물원이 유일하죠. 제가 마지막으로 할 일은 영원한 우리 고유 식물자원의 보물창고를 지킬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아름다운 마무리, 잘해야죠.”
글 신수경 편집장 / 사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