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을, 담다

정경숙 동동바구농장 대표

동동바구농장 정경숙 대표(가운데)와 남편 이광수 씨(오른쪽), 아들 이상엽 씨(왼쪽). ⓒ동동바구농장
동동바구농장 정경숙 대표(가운데)와 남편 이광수 씨(오른쪽), 아들 이상엽 씨(왼쪽). ⓒ동동바구농장

  하지를 향해 가는 6월 중순. 파란 하늘 아래 충분히 익은 검푸른 열매와 아직 익지 않은 푸른색, 익어가는 연붉은색이 어우러진 블루베리밭과 괴마옥, 라울, 명월, 립토스, 구갑룡, 난봉옥…. 이름도 모양새도 독특한 100여 종의 선인장과 다육식물이 모여있고 흔히 볼 수 없는 바오바브나무가 있는 온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달리아 꽃밭과 잘 정돈된 초록 잔디, 녹음이 우거진 나무들. 올해로 문을 연 지 46년이 된 동동바구농장의 여름 풍경은 분주하고, 또 아름다웠다.

정경숙 대표는 어린이들이 농업과 농촌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도록 세심하게 신경쓴다.
정경숙 대표는 어린이들이 농업과 농촌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도록 세심하게 신경쓴다.

가족농으로 대를 잇는다
  정경숙 동동바구농장 대표(65)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접고 경남 함안군에 자리한 농장에 내려온 건 1982년 결혼과 함께였다.   단감 농사로 시작해 돼지를 키우다가 이후 사슴과 블루베리를 키웠고, 2012년 교육농장으로 지정받으면서 함안군 최초 체험농장이 되었다.
  농장 전체 규모는 약 1만 8000평(5만 9504㎡). 2000평의 블루베리밭을 비롯해 다육식물 온실과 꽃밭, 양계장, 목공실 등 핵심적인 공간은 약 6000평 정도로, 1977년 농장을 창업한 남편 이광수 씨(69)는 나무로 되어 있는 것을 전부 손수 만든다. 정경숙 대표는 먹거리와 체험을 담당하고, 아들 이상엽 실장(38)은 농장 경영과 관리, 며느리 최민경 씨(38)는 플로리스트의 경험을 살려 다양한 꽃 관련 체험과 어린이체험을 담당한다.

동동바구농장에서는 블루베리를 소비자가 직접 수확하는 PYO 방식 으로 판매한다.
동동바구농장에서는 블루베리를 소비자가 직접 수확하는 PYO 방식으로 판매한다.

블루베리를 사려면 밭으로
  농장 입구에 ‘Pick a berry 피카베리’라는 안내 간판이 있다. 소비자가 밭으로 가서 직접 따는 이른바 PYO(Pick Your Own) 방식. 블루베리가 익는 6월이면 SNS로 소비자를 모집하는데, 마침 현충일을 낀 휴일 프로그램 예약이 순식간에 마감됐다. 신청을 놓쳤다는 댓글이 주르르 달리면, 미안한 마음과 잘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함께 든다.
  “예전에는 직거래를 했는데, 택배 배송을 하니까 포장비와 인건비, 또 쓰레기가 많이 나왔어요. 배송이 늦어져서 블루베리가 상하지 않을까 마음 졸이는 일도 많았고요. 그래서 소비자들이 직접 와서 따가게 하자, 했죠. 자신이 따서 가져가니 컴플레인도 없고, 비용과 쓰레기도 줄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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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숙 대표가 직접 키운 다육식물들.

농장이 어린이에게 주는 것들
  ‘정다운 할머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경숙 대표는 소비자를 만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긴다. 특히 어린이가 농장에서 농업과 농촌을 느끼고 좋은 인상을 받도록 세심하게 신경쓴다.
  “만 5세 이전의 경험이 아이들의 생각과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고요. 농장에서의 경험이 아이들 머리와 가슴에 스며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을 때, 더 부드럽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동동바구농장은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한다. 소비자에게 블루베리를 따서 담을 용기를 미리 준비해오라고 안내한다.
동동바구농장은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한다. 소비자에게 블루베리를 따서 담을 용기를 미리 준비해오라고 안내하고,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생분해 용기를 구매하게 해 환경보호기금으로 쓴다.

  동동바구농장의 체험에는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소비자가 용기를 가져와서 담아가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제로웨이스트가 원칙이다. 담아갈 그릇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농장에 비치된 생분해가 되는 다회용 용기를 구매한다. 가격은 500원. 이 돈은 환경보호 기금함에 넣는다.
  “어린이가 직접 돈을 넣도록 해요. 그러면 본인이 환경과 동물을 위한 일에 동참했다는 성취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죠.”
  연말이 되면, 기금함에 모인 금액과 같은 금액을 보태서 야생동물의 서식처를 마련하는 데 기부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농장의 마음은 농업의 다양한 가치로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대를 잇는 농장은 동동바구에서 피카그린으로 전환 중이다.
대를 잇는 농장은 동동바구에서 피카그린으로 전환 중이다.

‘동동바구’에서 ‘피카그린’으로
  정 대표가 40여 년 전에 함안으로 들어왔듯, 2016년 서울에서 ‘버젓한’ 직장생활을 하던 아들 상엽 씨가 농장으로 들어왔다.
  “아들에게 말했죠. 우리는 점점 노쇠해가고 아버지도 몸이 안 좋아지니 농장을 팔고 싶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청춘을 여기에 다 바쳤는데 그걸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냐고 하더라고요.”
어릴 적 농장에서의 일들을 세밀하게 기억하는 아들이 농장을 잇겠다고 말했을 때, “잘 생각했다”고 응원했다. 상엽 씨가 내려온 후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이러저러한 의견 차이와 갈등도 있지만, 서로 부딪치면서 접점을 찾기도 하고 아예 공간을 구분해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며 영리하게 타협하기도 했다.
  “아버지 농사랑 아들 농사가 확연히 달라요. 아버지는 밭에 풀이 없어야 하고, 아들은 풀도 괜찮다 해요. 그래서 밭을 나눴어요(웃음). 티격태격하더라도 같이 살겠다는 마음이 고맙고, 그게 가장 큰 재산이라 생각해요.”

풀이 없는 아버지의 밭.
풀이 없는 아버지의 밭.
풀이 있는 아들의 밭.
풀이 있는 아들의 밭.

  아들 부부가 합류했다고 해서 농장 규모를 늘리지는 않았다. 가족농으로서 적정규모를 유지하면서, 경영의 방식을 시대에 맞게 바꾸었다.
  “인스타그램으로 농장 소식을 알리면서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식은 우리는 엄두도 못 낸 일들이죠. 제로웨이스트 시스템도 마찬가지예요. 젊은 사람들이 더 환경을 생각하고 가치 지향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아요. 배울 게 많죠.”
  지역소멸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동동바구농장은 치유와 쉼으로 가치를 확장한다. 각박한 일상에서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복원할 수 있는 공간, 그러한 ‘예방적 치유’가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지름길이라는 믿음 또한 크다.
  “이곳은 상습 침수지역이었어요. 홍수가 나면 바위가 동동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동동바구농장이라고 이름을 붙였죠. 아들 부부가 새로 지은 농장의 이름은 피카그린Pick a Green이에요. ‘초록’이 상징하는 농업과 생명을 담는다는 의미죠. 지금은 ‘동동바구’에서 ‘피카그린’으로 가는 전환기라고 보시면 돼요.”

농장의 바오바브나무는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존재다.
농장의 바오바브나무는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존재다.

바오바브나무를 키우는 의미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는 바오바브나무가 ‘별을 휘감는 무서운 나무’로 묘사된다. 어린 왕자가 별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어린 바오바브나무를 뿌리째 캐내는 장면이 강렬하게 남지만, 동동바구농장의 바오바브나무는 어린이들에게 친근하고 특별한 나무다.
  10년 전 정 대표는 온실에서 키울 다육식물을 사러 경기도에 갔다가 보는 순간 마음에 쏙 들어서 데리고 왔다. 
  “흔하지 않으니까. 책에서만 보고 상상하던 나무를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아이들이 와서 보고 신기해하고 생각도 커지는 걸 보면 잘했다 싶어요.”
  골칫덩어리라 생각했던 바오바브나무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처럼 친근해지는 변화. 여름의 농장이 주는 선물이다.

글·사진 신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