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시장 개방의 시대, 우리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할까

윤석원

농업을 둘러싼 질곡의 역사
  우리나라 근대화는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일제 강점기(1910~1945)를 거쳤고, 1945년 광복과 함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전격 도입했으며, 그 후 모든 정부는 수출 주도형 개방경제를 표방하며 경제성장을 추구했다. 농업·농촌·농민 문제도 역사적으로 개방화와 연계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는 산미증식계획을 통하여 쌀 생산량의 약 절반을 전쟁을 위한 군량미로 값싸게 공출해갔고, 토지조사사업을 통해서는 지역의 토호 지주세력을 친일세력으로 육성했지만, 농민(주민)은 소작농으로 전락시켰고 수탈했다.
  1945년 이후에도 만성적인 식량부족이 지속되었고, 미국은 자국의 잉여농산물(밀가루, 옥수숫가루, 분유 등)을 식량부족국에 지원하는 소위 ‘미공법 480호(PL 480호)’를 통하여 우리나라에도 식량을 지원했다. 1948년 남한만의 총선거가 치러져 이승만 정부가 출범하면서, 소작제의 수탈하에 있던 농민들을 자작농으로 전환하기 위한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헌법에 명시하고 전국의 농지를 농민에게 유상분배하였다. 그러나 당시 지주계층과 친일파였던 관료들의 반발과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농지개혁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고 결국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당시 국민의 80% 이상이 농민이었고 산업이라야 농업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 농민이나 농업 부문에서의 자본 축적을 통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웠고, 미국이 지원하는 잉여농산물에 의존하던 만성적인 식량부족과 농촌지역의 피폐화는 점점 심화되어 갔다. 이승만 정부의 무능과 부패는 1960년  4·19 혁명으로 국민들에 의해 퇴출되었으나, 아쉽게도 1961년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으로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말았다.
  18년간 집권한 박 정권은 수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외 의존형 경제성장정책을 펼치면서 농업보다는 공업, 농촌보다는 도시로 자본과 인력을 집중했고 농업·농촌·농민은 소외되기 시작했다. 또한 식량자급보다는 식량수입에 의한 소비자 물가 안정을 기조로 하는 개방농정이 그 후 모든 정권의 농정기조로 굳어지게 되었다. 군사정권은 물론이고 그 후 민간정부에서도 개방농정기조는 크게 변함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개방농정 기조하에서 농민들의 상대적 위상이나 소득 수준은 위축 일로에 있게 되었고 농촌지역은 상대적 낙후지역으로 전락했다.

신자유주의 개방화 시대 30년
WTO(세계무역기구)와 1990년대
  1991년 구소련의 붕괴 이후 세계경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이념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1994년 4월, 약 10년간(1986.9.~1993.12.) 지속된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하의 다자협상인 UR(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되면서 1995년 1월 WTO가 출범하였고, 세계경제 질서는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 무역자유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1945년 이후 50여 년간 세계경제 질서를 주도해 왔던 GATT 체제와는 달리 WTO 체제하에서는 농산물도 자유무역에 포함함으로써 수출 주도 경제성장을 표방했던 우리나라로서는 농산물 부문에서도 관세화에 의한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모든 농산물은 장단기적으로 관세를 낮추거나 없애기로 했고, 각종 보조금은 협상 당시의 수준으로 동결한 후 선진국은 6년, 개도국(한국 포함)은 10년간 점차 낮추어 가기로 했다.
  이와 같이 1990년대는 농산물 수출 대국이기도 했던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자유무역이 세계경제질서를 강타했던 시대였고, 막무가내로 농산물 무역 자유화를 밀어붙이던 시기였다. 농민들은 강하게 저항했으나 그야말로 중소규모 가족농이었던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 그리고 농촌지역은 총체적 위기 상황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예견하고 우리나라 기업인으로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1991년 대산농촌문화재단(현 대산농촌재단)을 출범시킨 대산 신용호 선생의 인간과 자연과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깊은 사랑과 선구자적 높은 안목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와 2000년대
  2000년대 들어 한국 사회와 경제는 물론 농업과 농촌에 충격을 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 한-미 FTA였다. WTO가 출범한 지 10년 차 되던 2005년, 관세 인하와 보조금 인하가 더 이상 어렵게 되자 WTO 추가 협상은 중단되었다. 이에 미국은 양자 협상인 FTA에 진력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미국과 FTA를 2007년 타결하였고 2011년 국회  비준을 거쳐 발효했다.
  그런데 당시 한-미 FTA의 농업 부문 협상 결과는 당시 그 어떤 나라와의 FTA보다도 개방폭이 크다. 그것은 1531개 농산물 및 관련 제품 중 쌀 16개 품목(1%)을 제외한 전 품목(99%)을 연차별로 전면 개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칠레 FTA는 관세 제외 예외품목이 29%, 한-싱가포르 FTA는 33.3%, 한-EFTA FTA는 65.8%, 한-ASEAN FTA는 30.9% 등이었다.
  쌀은 관세화 개방 예외품으로 합의했으나 사실 2005년 WTO 쌀 재협상에서 앞으로 매년 40만t의 쌀을 의무수입(MMA) 하기로 했고 이 중  25%는 미국산 쌀을 수입하기로 했기 때문에 한-미 FTA에서 관세화 예외품목으로 협상한 것은 의미가 없다. 한-미 FTA는 사실상 전대미문의 100% 농산물 시장 개방 협상이 되고 말았다. 규모가 다르고 가격이 다르고 보조금이 다른 미국 농축산물과의 무한 경쟁은 우리 농업·농촌·농민의 위기임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이익을 보는 산업 부문으로부터 어떤 보상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마련하기로 약속했던 FTA 상생기금 1조 원 설립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수익성보다는 고정비만 커버가 되면 영농을 지속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이어가는 농민들이 아마 절반은 넘지 않을까 싶다.
수익성보다는 고정비만 커버가 되면 영농을 지속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이어가는 농민들이 아마 절반은 넘지 않을까 싶다.

개방화 30년, 그 결과
  이렇게 30여 년 이상 지속되어 온 신자유주의에 의한 농산물 무역 자유화는 우리의 농민·농촌·농업·농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구체적 통계자료 분석이 아니더라도 체험적으로 증거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이 팍팍해진 농민
  농민은 늙어가고, 아픈 곳이 많고, 농사 규모는 지난 30여 년 전 1.2ha에서 1.5ha로 여전히 영세한 소농구조이며, 농민 내부의 빈부격차는 점점 커지는 등 농민의 삶은 세월이 흐를수록 팍팍해졌다. 농민이 농사를 지어 얻는 소득은 연간 1000만 원 내외로 10여 년간 지속되었으며 농가소득 전체의 약 20%에 불과했다. 농사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이는 슬픈 일이며 농민으로서의 자긍심이 깨어지는 아픔이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공사판이나 주변의 공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의 직불금이나 보조금 등에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노동하기 어려운 농민이나 중규모 이상의 농민은 외부 노동력을 이용해야 하는데 노동자 구하기가 쉽지 않고 인건비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또한 자재비 상승으로 수익성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자가 노력비를 비용으로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낮은 수익성에도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수익성보다는 고정비만 커버가 되면 영농을 지속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이어가는 농민들이 아마 절반은 넘지 않을까 싶다.

무너지는 농촌공동체
  농촌지역은 주지하다시피 수십 년간 점점 비어가고 있다. 농촌지역경제가 옛날 같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농가인구가 전국 평균으로는 약 5%에 불과하고, 시·군의 경우도 약 20%에 불과하기 때문에 농촌지역경제가 농업에만 의존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 비중이 작아졌고 그 중요성 또한 하락했다. 읍·면·리 단위로 내려가면 농민들이 다수이긴 하나 주민들의 감소와 고령화로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이렇듯 농촌지역 소멸의 위기는 농업·농촌 다원적 가치의 소멸로 이어질지도 모를 위기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농촌이 농촌인 것은 농업과 농민이 지역의 경제와 문화, 공동체를 이끌어 가기 때문인데 그렇지 못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위기로 몰리는 농업
  지구상의 모든 농민들, 특히 중소농민들은 기후·환경 변화로 농사짓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폭우, 폭설, 우박, 냉해, 병충해가 상상을 초월할 때가 너무 빈번하다. 이에 더하여 경쟁력을 강조하는 농산물 시장 개방화 시대에는 중소 영세농 구조인 우리 농업으로서는 소위 가격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내농산물 가격이 조금만 오르면 물가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수입을 밥 먹듯 하다가, 국내농산물 가격이 내려가면 시장의 기능을 강조한다.
  이러다 보니 식량자급률은 50%대, 사료를 포함하는 곡물자급률은 22%에 불과하다.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쌀 소비량의 절반에 달하는 밀의 자급률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식량위기에 매우 취약한 구조인데, 그나마 사회불안을 해소하고 안정시키고 있는 것은 쌀 자급률 90%대를 유지하고 있고, 의무수입 물량을 합치면 100%가 넘기 때문이다.
  농업 문제의 본질은 농지 문제이기도 하다. 농산물 생산의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 동안 농지는 투기의 수단으로 전락했고 농지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렇다 보니 농산물 생산비 중 토지용역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개방화 시대에 수입농산물과의 가격 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되는 큰 요인이 된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의 기반 기술을 농업에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필요한 기술을 적절히 농사에 이용하는 것은 노동력 절감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점도 있다. 그러나 수십억 원의 시설비와 투자, 에너지 집약적 농업, 탄소배출 증대,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 문제, 기존 농산물과의 경합 문제 등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스마트농업이 한국 농업이 지향해야 할 농업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환경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고 농촌공동체도 살리는 중소규모 친환경농업은 최근 들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철학 없는 농정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우리나라 농정은 농업·농촌·농민의 본질적 가치를 제고시키고 지속 가능하게 하는 농정보다는 규모화, 전업농 육성 등 경쟁력을 키우는 것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두었다.
  1995년 WTO의 등장은 우리의 농정이 자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WTO의 간섭과 규정을 지켜야 하는 이른바 식량주권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가 되고 말았다. 결국 우리의 농정은 농민들의 삶의 질 제고나 농업·농촌의 본질적 다원적 가치 제고와 같은 농정을 추구하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 가치, 즉 경쟁력 제고, 수익 창출, 규모화와 같은 인간과 지역과 자연이 소외되는 물질만능주의의 농정이 되고 말았다. 시대의 조류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다. 농업을 산업의 하나로만 보는 시각도, 농촌이라는 지역공간을 보는 시각도, 농민을 보는 시각도 일률적이다.

작지만 위대한 날갯짓으로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이념에 의한 농산물 시장의 개방은 우리나라 농민·농촌·농업·농정 등 전 부문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소위 경쟁력 제고를 위한 자발적 노력을 이끌어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경쟁력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인류의 지속 가능성뿐만 아니라 농업·농촌·농민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 이에 사려 깊은 선구자나 농민·시민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농업문명전환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운동으로 승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친환경유기생태농업, 토종종자 보급, 로컬푸드마켓, 파머스마켓, 학교급식, 생활협동조합, 슬로푸드·슬로시티, 공정무역, 지역공동체 활성화, 마을 만들기, 지역자산 기반 커뮤니티 개발, 지역문화 발굴, 공동체지원농업(CSA), 사회적농업, 치유농업, 도농교류, 농촌체험, 농장체험, 도시농업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금은 작아 보일지 모르지만, 인류와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꼭 가야 할 길이며, 지구 전체의 농업·농촌·농민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작은 열쇠이고 희망이다. 그것은 공룡 같은 거대한 신자유주의 이념에 저항할 수 있는 작지만 위대한 날갯짓이다.


윤석원필자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양양로뎀농원 농부
한국농정신문에 ‘농사일기’를 8년째 연재하고 있다. 중앙대 산업과학대 학장, 한국농업정책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쌀은 주권이다》(2016, 콩나물시루), 《농업문명의 전환》(2011, 교우사), 《농산물 시장 개방의 정치경제론》(2008, 한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