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 농업회사법인 큰그림농장·온림 팜스튜디오 대표
회색 벽돌로 쌓은 건물에 2층 일부가 나무 오두막으로 이루어져 있는 ‘온림 팜스튜디오’를 본 순간, 어릴 적 스케치북에 그렸던 ‘동화 속 벽돌집’이 떠올랐다.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화이트와 우드의 조화가 어우러진 깔끔한 인테리어가 눈앞에 펼쳐졌다. 반원의 통창 너머로는 아담한 오두막과 햇살을 받은 초록 잔디가 보였다. 단체 수업과 행사를 진행하는 공간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발코니가 예쁜 휴식 공간과 소규모 미술 수업을 진행하는 공간을 만나게 된다. 온림 팜스튜디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궁금해졌다.
사계절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공간
“온림은 ‘온전한 누림’이라는 뜻인데요, ‘농(農)’이 주는 ‘쉼’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에요.”
온림 팜스튜디오의 대표 전주영 씨는 대학에서 시각·영상 디자인을 전공하고, 그 감각을 살려 자연과 사람을 잇는 공간을 열었다.
그는 ‘온림’이 이곳을 찾는 모든 이가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자신의 의도를 건축에 담았다. 입구에는 경사로를 넣고,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휠체어 상자 텃밭을 제작했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적용하여 공간을 설계했어요. 출입문과 화장실은 문턱을 없애 휠체어가 쉽게 오갈 수 있도록 배려했죠.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온림에 와서 텃밭을 가꾸고, 자연을 통한 쉼을 온전히 누리다 가면 좋겠어요.”
그는 온림 팜스튜디오에서 계절 꽃과 식물을 이용한 체험 및 팜아트클래스 등 농업·농촌의 자원을 활용하여 사람들에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농업·농촌이 단순히 농산물을 먹고, 농촌 경관을 보는 한정적인 자원이 아니라, 그 속에 더 큰 가치가 담겨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농부가 된 디자이너
“2015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부모님이 용인으로 귀농하셨어요. 3000평 채소 농사를 지었는데 일이 너무 많아서 저도 급하게 도우러 내려갔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 종일 채소를 수확하고, 저녁 먹고는 머리에 랜턴을 끼고 자정까지 하우스에서 일했어요.”
그는 부모님이 농장 기반을 잡을 때까지 반년 동안 그렇게 일했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던 그는 도망치는 마음으로 유럽 여행을 계획했다.
“때마침 아버지가 ‘전공을 농업에서 활용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그렇게 유럽에 갔는데, 로컬 농산물을 판매하는 포장 방식에 눈이 가더라고요.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농산물을 예쁘게 포장해서 판다는 건 거의 없었거든요. 농업에서 내가 디자인을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4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용인으로 돌아온 그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농장 일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농산물 생산에 전념하고, 그는 농산물 포장과 납품을 맡았다. 2020년 1월, ‘농’의 가치를 나누는 농업회사법인 ‘큰그림농장’이 문을 열었다.
“시설하우스 20동에서 청경채, 쌈배추, 시금치 등을 재배하고 있어요. 농장에서 재배한 채소는 주로 경매로 판매하고 있고, 일부는 온림 팜스튜디오에서도 소비해요. 팜파티에 제공할 음식의 재료로 사용하죠.”
최근 그는 화훼 농가와 협업해 하우스 4동에서 다양한 꽃과 다육식물을 키우고, 이를 온림 팜스튜디오의 수업에 활용하며 확장하고 있다.
‘농’을 통한 치유
온림의 다양한 일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치유농업’이다.
“치유농업은 치유 목적을 가진 대상자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단순한 체험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치유농업을 하려는 사람은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정부는 치유농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농장들을 선별해서 지원해야 해요.”
현재 치유농업시설 운영자 과정을 밟고 있는 전주영 씨는 치유농업을 위해 400평 텃밭과 정원을 조성했다.
“온림에서는 아이들과 텃밭 프로그램을 할 때 풀을 뽑는 것부터 시작해요. 잡초를 뽑고 나면 땅을 갈아야 하는데 그냥 파면 지루하잖아요. 땅속에 보물 캡슐을 숨겨놔요. 그러면 아이들이 보물을 찾으려고 흙을 깊게 깊게 파거든요. 그렇게 아이들이 직접 땅을 만드는 거죠.”
땅을 만드는 것부터 씨앗 심기, 물 주기, 수확하기, 직접 요리해 먹는 과정까지 모든 것을 경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는 수업을 듣는 아이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에게도 농업·농촌의 가치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수업을 할 때, 대부분 학부모는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는지, 어떤 과정으로 만드는지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마지막 시간에 학부모를 초청해서 우리가 어떤 주제로 수업했고, 어떤 생각을 서로 나누었는지 이야기해요.”
전주영 씨는 온림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수업을 들으러 오는 아이들, 치유농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 다양한 행사에 참가한 도시민······. 그들 중 그는 한 학생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초등학생이었어요. 활동을 마친 후 조용히 다가와 ‘나중에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그러더라고요. 이곳에서 들은 가장 기분 좋은 말이었어요. 인정받는 듯한 벅찬 마음이었죠.”
그는 온림과 연을 맺은 사람들을 모아 느슨한 공동체를 만들어 지속 가능한 ‘농’을 향해 함께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온림’은 계속 진화 중이다.
글·사진 박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