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소유하지 않은 농부, 세계를 가꾸는 여행

‘이어짓기’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명의 필자가 집필한 에세이를 이어서 소개하는 코너로, 지난 호 필자 김성신 씨에 이어 김혜란 씨가 ‘농촌에 관한 단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주제로 쓴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김혜란

  1998년 12월, 1년여의 호주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나는 이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세수하고 남은 헹굼물을 세탁기로 날라 재사용하고, 잠깐 자리를 비우더라도 전기 스위치를 끄고 다니며, 종이 한 장도 지폐 사용하듯이 아껴 썼다. 갑자기 유난 떠는 딸을 본 엄마는 말했다. “너는 돈은 아끼지 않으면서 왜 저런 걸 아끼니?” 나는 “물과 전기는 자연이에요. 돈보다 중요한 자연. 그래서 아껴야 해요”라고 답했다. 엄마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같이 헹굼물을 세탁기로 날랐다.

우프는 봉사자가 친환경 농가에서 일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도록 연결해주는 NGO(비정부 국제 조직)이자, 1971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현재 전 세계 150여 국가가 회원국으로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 활동이다.
우프는 봉사자가 친환경 농가에서 일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도록 연결해주는 NGO(비정부 국제 조직)이자, 1971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현재 전 세계 150여 국가가 회원국으로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 활동이다. ⓒ우프코리아

내 삶을 바꾼, 우프
  1997년 12월, 나는 20대 중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당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호주로 떠나 약 3개월 동안 ‘우프(WWOOF, 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를 경험했다. 우프는 봉사자가 친환경 농가에서 일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도록 연결해주는 NGO(비정부 국제 조직)이자, 1971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현재 전 세계 150여 국가가 회원국으로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 활동이다.
  나는 우프 농가에서 농부(호스트)를 따라 밭에 나가 잡초를 손으로 일일이 뽑고, 잎에 붙어 있던 이름 모를 벌레를 하나씩 떼는 작업을 했다. 호스트는 자연에 해를 끼친다며 농약도 화학비료도 사용하지 않았다. 벌레 먹은 채소로 만든 건강한 음식으로 매끼 호스트 가족과 함께 식사했다. 그들은 빗물을 받아 설거지하고, 헹굼 물은 변기에 채워서 썼다. 일주일에 하루는 밤에 전깃불을 끄고 촛불을 켠 채 자연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물과 전기는 자연이에요. 돈보다 중요한 자연. 그래서 우리가 아껴야 해요.”
  농업에 무지했던 내가, 자연에 무관심하던 내가 어느새 그들의 삶에 동화되어 그들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프와의 인연이 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라고는 당시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귀국 후 나는 무작정 ‘우프코리아(WWOOF KOREA)’를 찾아가서 직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얼마 후 우프코리아를 인수해서 지금까지 25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우프를 통해 농가에서 봉사하는 사람을 ‘우퍼’라 부르는데, 이들은 ‘땅을 소유하지 않은 농부’들이다.
우프를 통해 농가에서 봉사하는 사람을 ‘우퍼’라 부르는데, 이들은 ‘땅을 소유하지 않은 농부’들이다. ⓒ우프코리아

땅을 소유하지 않은 농부
  우프를 통해 농가에서 봉사하는 사람을 ‘우퍼’라 부르는데, 이들은 ‘땅을 소유하지 않은 농부’들이다. 다양한 연령층이 우퍼로 활동하는데, 특히 대안적 삶에 관심 있는 청년이 많다. 현대사회가 가지는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이다.
  여러 청년 중에서도, 명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우프 활동을 하겠다’고 집에 선언했던 H씨가 기억에 남는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우프코리아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도대체 우프가 뭐길래 제 아들이 취업도 하지 않고 그걸 하겠다는 겁니까?”라고 하소연했다. 우프에 관해 설명했지만, 그녀는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며 전화를 끊었다. 자식이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여 남들과 같은 삶을 살 거라고 기대했던 어머니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난 후, 그녀가 다시 연락을 해왔다. 지난번과는 확연히 다른 음색으로.
  “아들이 공부를 잘해서 일찍부터 도시 학교에 들어가 기숙사 생활을 했어요. 늘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주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거든요. 그런데 아들이 우프 활동을 하면서 ‘엄마, 저는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했던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밥상을 늘 먹고 있어요’라는 거예요.”
  아들의 말에 어머니의 마음이 돌아섰다. 이렇듯 우프는 건강하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눌 수 있는 활동이다. 그 청년은 한국에서 1년, 해외에서 1년 우프 활동을 했고, 지금은 농촌의 법률문제를 다루고자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요즘 들어서는 청년뿐 아니라 중장년의 참여도 많다. 제2의 인생을 계획하면서 농촌에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이 많은데, 곧바로 귀농·귀촌을 하기에는 부담을 느낀다. 가볍지만 진지하게 농촌 경험을 희망하는 이들이 우프에 참여하는데, 호스트 농가 근처로 이주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우퍼와 호스트로 만난 인연은 길게 이어진다.
우퍼와 호스트로 만난 인연은 길게 이어진다. ⓒ우프코리아

더 넓고 깊게 관계를 확장한다
  우프는 화폐가 아니라 믿음과 정으로 교류하여 인간미가 있고, 도시와 농촌을 잇는 가교로 자리매김하면서 한국과 해외를 잇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일례로, 프랑스인 우퍼 로라와 찰리는 한국에서 우프 활동을 1년 가까이 하면서 스무 곳이 넘는 농가를 다녔다. 그림을 전공한 그들은 가는 농장마다 그림을 그려줬다. 농장 창고가 그들의 그림으로 새롭게 탄생하고, 농장 안내판도 예술품이 되었다. 프랑스로 돌아간 후 이들은 ‘한국에서 경험한 우프’ 전시회를 열어 지역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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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우퍼 로라와 찰리는 ‘한국에서 경험한 우프’ 전시회를 열었다
프랑스인 우퍼 로라와 찰리는 ‘한국에서 경험한 우프’ 전시회를 열었다. ⓒ우프코리아

 

  한편으로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한국 농촌의 모습에 관심을 두는 외국인 우퍼도 여럿 있었다. 농촌에 있는 시골 개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모습이 마음 아프다며, 우프코리아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그러고 보니 농촌에 사는 수많은 개가 1m도 안 되는 목줄에 하루 종일, 어쩌면 평생 묶여 지내고 있었다. 이 일을 마음의 숙제처럼 안고 있다가, 2024년 초부터 관련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시골개 행방일지’! 개를 아예 풀어놓을 수는 없기에, 짧은 목줄을 긴 와이어로 바꾸는 활동이다.
  우프는 사람 간 교류가 핵심이다 보니 커플이 많이 생긴다. 농촌 활동이라 남성이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로 여성의 참여 비율이 높다. 안 그래도 자연과 농촌에 애정을 가진 여성이다 보니, 우프 활동 중에 ‘딱 맞는’ 인연을 만나곤 한다. 남성 호스트와 여성 우퍼(외국인 포함)가 맺어지기도 하고, 각국 우퍼끼리 농장에서 만나 커플이 되기도 한다. 결혼까지 성사된 사례도 제법 많다.

농부장터에 참가한 우프코리아 팀. ⓒ우프코리아
농부장터에 참가한 우프코리아 팀. ⓒ우프코리아

농촌에 희망을 더하는 사람들
  우퍼를 받는 농부를 ‘호스트’라 부르는데 우프코리아에는 멋진 호스트가 많다. 이들은 묵묵히 또 고집스럽게 농약과 화학비료, 제초제를 거부하고 자연 사랑, 사람 사랑을 실천한다. 이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가장 큰 까닭은 무엇보다 ‘삶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사회 대다수가 추구하는 물질적인 삶보다는 대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호스트는 우퍼에게 잔잔한 감동과 영감을 준다. 우퍼가 농업과 농촌에 관한 꿈을 꾸고 농촌을 찾았다면, 호스트는 이미 오래전부터 농촌에서 꿈을 이뤄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호스트는 작은 텃밭부터 대규모 유기농장을 운영하는 농민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작물 재배부터 가축 관리, 식품 가공과 유통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부지런한 생산자와 ‘산속 현자’ 유형도 있고, 예술가로 이름을 날리는 이도 있으며, 팜가드닝(Farm Gardening)으로 멋들어지게 농촌 경관을 꾸미거나, 환경이나 인권 운동을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농촌에 희망을 더하는 멋진 농민이다.

  우리 농촌이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 세계 모든 농촌이 어려운 것 같다. 아니, 도시민의 삶이라고 어려움이 적지 않아 보인다. 삶이 힘들수록 사람들은 더 꿈을 꾸게 되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한참 수그러들었던 우프 활동도 다시 돌아온 봄처럼 기지개를 켜고 있고, 과감하게 시작한 ‘시골개 해방일지’ 캠페인도 부쩍 탄력을 받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농촌 그리고 자연은 영원한 동경, 낭만, 꿈, 이상을 뜻한다. 최근에 나온 ‘치유농업’ 개념처럼 치유의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우프코리아는 도시와 농촌, 사람과 사람, 나아가 꿈과 현실을 이어주는 가교가 되고자 한다.

사진 제공: 우프코리아

김혜란필자 김혜란: 우프코리아 상임대표
우프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 25년을 행복하게 지냈다. 그리고 2024년 봄, 나는 또 한번 세계를 가꾸는 여행을 떠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