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놀아요, 하추리에서

강성애 하추리산촌마을 사무국장

  강원 인제군, 시내에서 차를 타고 소양강 물줄기 따라서 굽이굽이 달리다 보니, 깊은 산골짜기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집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높은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모습에, 마치 자연의 품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끼며, 어느새 하추리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머물고 싶은 그곳
  설악산 남서쪽 아래(下) 가래나무(楸) 많은 동네, 하추리. 가리봉(해발 1518m)에서 흐르는 물이 계곡을 이루어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는, 말 그대로 ‘산 좋고 물 맑은’ 곳이다.
  “오래전에 화전민이 들어와서 정착한 마을이에요. 산골치고 볕이 잘 들고, 사시사철 물이 흘러서, 농사가 잘되는 편이거든요. 계곡이 워낙 좋으니까 휴양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체험마을 사업이 발전하게 되었고요.”

하추리의 매력을 응축한 공간, ‘카페, 하추리’에서.
하추리의 매력을 응축한 공간, ‘카페, 하추리’에서.

  마을 사무국장인 강성애 씨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도시 토박이’였다. 그는 15년 가까이 홍보·마케팅 회사에 다니다가, 취재차 하추리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는 출장 가기 싫어서 투덜거렸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막상 오니까 마음이 정말 편안한 거예요. ‘이런 데서 살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더니, 당시 사무장이 갑자기 눈을 반짝이더라고요. 안 그래도 후임을 구하고 있대요. 마을에서 일하면 지낼 곳도 얻을 수 있다길래 마음이 흔들렸죠.”
  이전에 귀농인을 취재하면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려올 것을, 왜 고민하면서 시간을 허비했나 싶다’라고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6개월만 살아보자’라는 마음으로, 2017년 1월 1일에 남편과 함께 하추리로 이사했다.
  “그해 겨울에 눈이 정말 많이 왔거든요. 한없이 내리는 눈을 쓸면서도 마냥 좋았어요. 40년 동안 살았던 모습과 너무나 다른 생활을 하게 된 것이 재밌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어르신들께 인사만 해도 아이고, 예쁘다, 예쁘다, 해주셨던 거예요. 그 덕분에 제 자존감이 엄청나게 올랐어요.”
  마을 사람들과 정답게 어울려 살다 보니 세월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새롭게 집도 짓고 친정어머니도 내려오면서, 세 식구는 하추리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하추리 주민들이 직접 돌보는 잡곡정원. ⓒ하추리산촌마을
하추리 주민들이 직접 돌보는 잡곡정원. ⓒ하추리산촌마을
하추분교를 울리던 종. 학교는 체험 및 숙박 공간으로 바뀌었다
하추분교를 울리던 종. 학교는 체험 및 숙박 공간으로 바뀌었다.

‘힙한 여행지’가 되기까지
  하추리에는 주민과 방문객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카페, 하추리’가 있다. 잡곡, 옥수수, 오미자, 블루베리, 벌꿀 등 마을 사람들이 기르고 거둔 것들로 만든 음료와 디저트를 판매하는 곳이다.
  “처음에 카페를 세우자고 했을 때 마을 운영위원회에서 전부 반대했어요. 도로에 차도 안 다니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데, 누가 여기까지 오냐고요. 제가 사업비를 지원받는 1년 안에 흑자로 돌려놓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런데 6개월도 안 되어서 흑자가 되었고,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오는 분들이 생겼어요.”
  그는 하추리의 매력을 응축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주민들과 산에 올라 나무를 베고 주워서 가구와 소품을 만들고, 가래나무, 물푸레나무, 뽕나무, 자작나무, 피나무 등 지역에서 많이 자라는 나무를 통째로 가져와 세워놨다.
  “여기가 산촌이라 나무를 잘 다루는 사람이 많아요. 기술자이자 예술가죠. 제가 평생 커피를 공짜로 드리겠다는 조건으로 몇 명에게 부탁했어요. ‘산신령 지팡이’ 같은 목재를 구해서 조명을 꾸며준 주민도 있고, 5년 묵힌 소나무로 식탁을 만들어준 주민도 있어요.”

‘산신령 지팡이’ 같은 목재로 꾸민 카페 조명.
‘산신령 지팡이’ 같은 목재로 꾸민 카페 조명.
책
주민들의 손길이 합쳐져서 완성된 공간.

  2020년 8월, 카페를 열었을 때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심각한 시기였지만, ‘자발적 고립’을 원하는 사람들을 콕 집어 홍보하여 방문객을 늘렸다. 이듬해 겨울에는 ‘혼자 하는 여행’을 콘셉트로 여행 상품을 기획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크라우드 펀딩을 했을 때 6차례 전부 매진이었어요. 앵콜 요청이 들어와서 관공서 지원 없이 2박 3일에 32만 원으로 판매했는데 그것도 완판이었죠. 시골 여행은 뭔가 불편해도 싼 맛에 간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저는 하추리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체험마을이 되면 좋겠어요. 그만큼 높은 품질로 산촌의 가치를 제대로 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마을의 부가가치를 올리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해 전문 자격증을 취득했고, 하추리 잡곡으로 만든 그래놀라(Granola)를 개발 중이다. 이를 통해서 전문성이 있는 일자리를 늘리고, 젊은 인력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 목표다. 

혼자 하는 산촌여행, 가을 편. ⓒ하추리산촌마을
혼자 하는 산촌여행, 가을 편. ⓒ하추리산촌마을
장작이 빽빽이 쌓여 있는 가마솥 밥 짓기 체험장
장작이 빽빽이 쌓여 있는 가마솥 밥 짓기 체험장.

결국, 사람의 힘
  하추리는 2011년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된 이래로 한 해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방문하고, 마을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그 이유가 사람의 힘인 것 같아요. 주민들의 합이 좋아요. 새로운 사람이 끊임없이 유입되는데,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배척하지 않고,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어요.”
  그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마을 전통 행사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낯설면서 신선했다. 이제는 정월대보름이면 오곡밥을 나눠 먹고, 단오에는 떡메를 쳐서 취떡을 만들며, 삼복 기간에는 삼계탕으로 복달임을 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하추리의 가장 큰 행사, 도리깨 축제. ⓒ하추리산촌마을
하추리의 가장 큰 행사, 도리깨 축제. ⓒ하추리산촌마을

  “매년 10월 마지막 토요일에 열리는 ‘도리깨 축제’가 가장 큰 행사예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명장면처럼, 뻥튀기 기계로 뻥튀기를 날리면서 시작해요.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주민들이 다 같이 참여하는 ‘도리깨 마당’인데요, 옛날에 젊은 사람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타작을 돕던 문화를 기억하자는 의미를 담은 거예요.”
  2023년 4월에는 하추리 주민들의 그림과 이야기를 엮은 책 《산골마을 하추리》를 발간했다. 마을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 주민들이 각자의 집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화가가 되고 싶었던 청년부터 색연필을 처음 잡은 할아버지까지, 53명의 주민이 정성껏 그린 그림에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한 권의 작품집이 되었다.
  “우리끼리 현수막 걸고서 출판기념회도 했어요. 이장님이 한 명 한 명에게 책을 증정하면서 ‘작가님, 데뷔 축하드려요’라고 인사했죠. 어르신들은 ‘내가 무슨 작가야’라면서도, 옆 마을 가서 자랑하셨대요.” 

책 《산골마을 하추리》 출판기념회. 53명의 주민이 작가로 데뷔한 날이다. ⓒ하추리산촌마을

  인터뷰를 마치고, 카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다가, 어느 주민이 종이에 적어놓은 시구에 한참 눈길이 갔다.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하추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겠지, 그런 생각에 웃음이 났다. 우리도 같이 놀아요, 라면서 다가올 인연들이 보이는 듯하다.
 

글·사진 이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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