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연 우즈그린팜 대표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5월과 6월이 되면, 농부의 시간이 더욱 분주해진다. 충남 아산시 영인면. 전날까지 모내기를 끝내고 이제야 한숨을 돌린다며 웃는 우즈그린팜 임미연 대표를 만났다.
스스로를 ‘초보농부’라 부르는 임 대표는 농장에서 귀리·허브·텃밭 채소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자연과 초록을 찾는 사람들과 만나며 다채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그를 따라 허브 텃밭을 지나 농장 ‘쉼터’에 자리를 잡으니, 멀리 꽃이삭이 핀 귀리밭과 안개가 내려앉은 승계산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느새 여름이 성큼 다가온 풍경이었다.
건강하게, 내 몸을 채우는 농사
임미연 대표는 5년 전 낙농업을 하던 시아버지의 별세로 이곳 아산으로 내려와 목장 부지를 이어받게 되었다. 인천에 거주하며 아파트 생활을 할 때도 베란다를 꽃집처럼 꾸미는 것을 좋아했던 임 대표는 농장을 가꾸는 일에도 애정을 다할 자신이 있었다.
“원래도 식물을 좋아했고 자연에서의 삶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하지만 농장은 달랐어요. 처음에는 뭘 심어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좋아하는 청보리와 밀을 심었어요. 수확을 했는데 주변에 도정 할 곳도 없고 팔 곳도 없는 거예요. 전국을 돌아다녔죠. 보리는 평택으로, 귀리는 정읍으로, 밀은 익산까지 갔어요. 그렇게 만든 곡물가루를 가지고 인천으로 올라가 지인들한테 팔았던 거죠.”
주변에서 임 대표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며 고소득 작물 재배를 제안한 이들도 있었지만, 소화할 수 있는 만큼, 심고 싶은 것을 심겠다는 그의 신념은 단단했다.
“풀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거나, 판로가 안 나와서 수확을 마쳤는데 안 하느니만 못했던 적도 있어요. 그래도 하고 싶은 거, 심고 싶은 거 심는 게 좋아요. 그래야 저도 즐겁잖아요.”
먹어도 속이 불편하지 않은 우리밀 빵을 찾아 돌아다닐 정도로 유명한 ‘빵순이’인 임 대표는 농장에서 직접 우리밀을 친환경으로 재배하기도 한다.
“이번에 가공품으로 사과대추즙을 새로 만들었어요. 제가 대추차를 좋아해서 사과대추를 심었거든요. 작년에는 작약을 심었어요. 작약은 꽃도 예쁘지만, 쌍화차의 주재료이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건강한 농산물, 제가 좋아하는 농산물을 심고 몸에 채우는 거죠. 이곳에는 먹어서 몸에 나쁜 건 하나도 없어요.”
열린 마음, 열린 식탁
임미연 대표는 자연에 있으면 절로 편안해지는 마음을 다른 이들과 나눌 방법을 고민하다, 농장에 남아 있던 목장 축사를 개조해 쉼터 겸 농촌체험장으로 만들었다.
“쉼터에서는 함께 허브차를 즐기면서 요가나 명상을 하기도 하고, 텃밭에서 바질을 수확해 페스토를 만들거나, 딜과 한련화를 넣은 샐러드를 함께 만들어 먹어요. 단호박이 나오는 계절에는 수프를 끓이기도 하고요.”
우즈그린팜의 체험은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날그날 농장의 상황에 맞는 계절별 작물 수확과 이에 맞춰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제철 요리다.
“농장에 오는 분들이 ‘요즘 농장 가면 뭐 할 수 있어요?’라고 물어보면, 저는 되레 ‘뭘 하고 싶으세요?’라고 되물어봐요. 다 맞춤형이죠. 있는 배추로 배추전 하고, 이런 건 막걸리랑 먹어야 하나, 하면 있는 막걸리를 곁들여요. 찹쌀이 있으면 인절미로 만들어 먹고요.”
가끔은 지역 유치원 아이들과 허브솔트를 만들거나, 청소년들을 위한 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꾸준한 활동이 쌓여 2025년에는 충남 우수 농촌체험학습장으로 선정되었다. 임 대표는 체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는 열린 마음이라 생각한다.
“체험할 때 보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조금 소극적이신 분들도 있어요. 나중에 보면 소극적이던 분들도 슬며시 웃고 계세요. 저도 그때는 같이 편안해지죠. 자연에서 마음을 열었을 때 스스로 얻어갈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이 쌓이면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페퍼민트 선생님과 작은 농부들
임미연 대표는 현재 아산시에 있는 네 곳의 초등학교에서 텃밭 교실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과 상자 텃밭을 만들어 모종을 심고 가꾸는 이 프로그램에 ‘푸른꿈 꾸는 작은 농부 학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업 중 한 아이는 임 대표에게 ‘페퍼민트 선생님’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해요. 기회를 주고 기다리면 감자를 캐고 수레도 날라요. 조금 느릴지라도 비닐 멀칭도 아이들이 직접 다 씌워요.”
첫 수업에서는 모종삽을 던지며 장난치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진지한 표정으로 콩을 까고 맨손으로 풀을 뽑는 모습을 보고, 흙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임 대표는 2023년 대산농업연수를 다녀온 이후, 프랑스의 교육농장인 오페르 아 슈발(Au Fer à Cheval)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프랑스 교육농장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더라고요. 어린이들이 건강한 먹거리를 접하고, 자연스럽게 다른 생명을 만나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우즈그린팜에 ‘작은 농부 학교’를 만들고 교육, 체험, 힐링을 함께 하는 공간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임 대표는 우즈그린팜이 남녀노소 누구든, 언제든 들를 수 있는 ‘열린 농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근에 공유 주방 겸 체험실로 쓸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치유 프로그램 운영하면서 사람들이 농장에서 자유롭게 사진도 찍고 요가도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본 적이 있어요. 아무도 없이 혼자서 일만 하는 농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가치를 지닌 농업을 만나는 농장이 훨씬 더 의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농부에서 체험농장 운영으로, 텃밭 선생님으로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확산하고 있는 임미연 대표의 다음 여정은 어디일까.
“작물이든, 제가 알고 있는 것이든 다 나누고 싶어요. 그러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부하고 모종을 심고 농장을 가꿔나갈 거예요. 제가 유럽 연수에서 배운 건 무엇보다 상생이 중요하다는 점이었거든요. 농장이 상생의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상생의 통로가 되는 농장이라니. 그 말을 들으니, 우즈그린팜이라는 이름처럼, 여름을 닮아 한껏 열린 농장의 초록이 더욱 선명해 보였다.
글 조가희·사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