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한 실천, 또는 ‘반칙’하는 농민을 만나다

참신한 실천, 또는 ‘반칙’하는 농민을 만나다
2025년 대산장학생 동계연수 현장

  2025년 2월, 바람은 쌀쌀했지만, 햇볕은 넉넉하고 따뜻했다. ‘물 맑고 볕 좋은 고장’이라는 담양(潭陽)의 이름처럼. 미래 농업과 농촌을 이끌겠다는 다짐을 품은 청년들의 여정이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전북 정읍으로, 다시 충남 천안으로 이어진 길 위에서 만난 농민들은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궁리하고 실험하는 ‘새로운 농민’이었다.

두리농원은 유기농채소 재배뿐 아니라 체험, 교육, 농가 민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도시민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두리농원은 유기농채소 재배뿐 아니라 체험, 교육, 농가 민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도시민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화려한 불빛보다 화려한 ‘별빛’
가족농이 바꾸는 농업
  전남 담양군 황금리. 김상식 두리농원 대표는 1983년,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준 송아지 한 마리로 농업에 발을 들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잠시 건설 현장에서 일했지만, 곧 고향으로 돌아왔다. 대나무로 직접 비닐하우스를 짓고 알로에를 재배했는데, 생소한 작목이었지만 광주 백화점에서 소비자를 직접 만나 판로를 개척했다.
  1994년 본격적으로 유기농업에 정착했다. 이미 알로에 재배 과정에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던 그는 녹즙용 케일, 신선초 등 잎채소 재배를 시작하며 친환경 농법을 확대했다. 짧은 재배 주기로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잎채소는 그의 또 다른 성공 전략이 되었다. 태양열 소독, 혼작, 녹비작물 활용과 토착 미생물 활용 등 다양한 유기농 기법을 실험하고 실천하며, 유기농업의 경제성까지 입증해냈다.
  2003년부터는 체험농장을 운영하면서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혀나갔고, 입소문으로 쌈채소 수요가 급증했다. 그는 지역 농가들과 판로를 공유하고 교육하면서 지역에 친환경농업을 전파해, 마을 전체가 친환경 농사를 짓는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였다.
  “나는 화려한 불빛보다 화려한 별빛이 좋았어요. 모두가 도시로 떠날 때 내가 좋아서 농촌을 선택했고, 농부로 산 40년이 참 행복했어요.”

효덕목장은 가족농의 적정한 규모를 유지하며 다양한 부가가치 창출로 대를 잇고 있다.
효덕목장은 가족농의 적정한 규모를 유지하며 다양한 부가가치 창출로 대를 잇고 있다.

  충남 천안시의 효덕목장. 이선애 대표는 치즈 장인으로 유명하다. 1986년 남편과 젖소 4마리로 시작해 현재 딸 셋과 함께 60여 마리를 돌보며 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2008년 유기 낙농으로 전환한 후 그는 농약과 화학비료, 제초제, 성장촉진제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재배한 청보리와 연맥 등으로 만든 사료로 소를 키워 우유를 생산해 치즈와 요구르트를 만든다. 효덕목장의 고다치즈는 자연치즈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비롯해 여러 차례 수상하며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임차농이라는 한계로 현재 유기 인증과 해썹(HACCP)은 포기했지만, 여전히 유기농 원칙을 준수하며 소를 키운다. 가족농의 적정 규모를 유지하면서, 체험 프로그램과 다양한 교육 활동을 통해 도시민과 교감하며 농촌의 가치를 알리는 메신저가 되고 있다.

샘골농협이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 샘샘(SAME2)은 지역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한다.
샘골농협이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 샘샘은 지역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한다.

“이 시골에 누가 온다요”
협동이 이루어낸 기적
  전북 정읍시에 있는 카페 샘샘(SAME2). 계단식으로 설계된 독특한 좌석 구역과 확 트인 공간이 매력적인 이곳은, 샘골농협이 1972년 지은 후 방치되어 있던 양곡창고를 개조하여 2024년 4월, 현대적인 베이커리 카페로 재탄생시킨 공간이다. 처음엔 조합원들의 반대가 많았다.
  “주변에 유명 관광지가 없는데 여기에 카페가 되겠어? 주민들도 회의적이었죠. 그런데 도전에는 반드시 반대가 따르잖아요. 밀어붙였죠.”
  이 공간은 메뉴 개발부터 공간 설계까지 정읍시 청년들과 협력해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공간으로 재구성되었다. 현재 정읍시 청년그룹이 운영을 맡고 있는데, 샘골농협이 내건 유일한 조건은 ‘지역 농민이 생산한 곡물과 우리밀 원료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오후 늦게 가면 인기 있는 빵을 구할 수 없고, 주말에는 주차장이 가득 찰 정도로, 샘샘은 지역의 명소가 되었다. 지역 상권도 함께 살아났다.
  허수종 조합장은 “협동조합은 돈 없고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며, “지역 농협이야말로 농업과 농촌을 지속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농민 조직이자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하이마블영농조합은 48개의 소규모 축산농가가 협력하여 가공, 유통, 판매까지 함께한다.
하이마블영농조합은 48개의 소규모 축산농가가 협력하여 가공, 유통, 판매까지 함께한다.

  농민 간의 협력이 빛나는 사례도 있었다. 정읍의 ‘하이마블영농조합’. 정왕용 대표를 중심으로 소규모 축산 농가들이 연합하여 가공, 유통, 판매까지 하고 있다. 총 48농가가 조합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중 30%가 20~30대 청년층으로, 한국농수산대학교 동문과 4-H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 대표는 “조합원 한 명, 한 명이 모두 운영의 주체이며, 나 혼자 잘하는 건 의미 없다”고 강조한다.
  또 하나의 핵심 가치는 ‘경축순환농업’이다. 정 대표는 한우 사육으로 발생하는 분뇨를 이용해 조사료를 재배하고 경종농가와 협력해 콩 재배에 활용하며 경종과 축산이 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죽향 딸기의 성공에는 연구자의 집념과 농민의 의리, 협력이 있었다.
죽향 딸기의 성공에는 연구자의 집념과 농민의 의리, 협력이 있었다.

연구자와 농민의 연대로 탄생한
명품딸기 ‘죽향’
  담양에는 지역 딸기 품종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죽향’. 담양군농업기술센터 이철규 연구관이 2006년 300평 하우스에서 육종을 시작해 7년의 연구 끝에 신품종 개발에 성공했다. 딸기 육종은 1년에 2만 가지 이상의 조합을 교배해 우수한 종자를 선별하는 고된 작업이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시장에서 자리 잡기까지 평균 10년이 걸리며 성공 확률도 10%에 불과하다.
  죽향 딸기는 국내 경매시장에서 프리미엄 딸기로 주목받으며, 홍콩 등 해외시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죽향의 성공에는 이철규 연구관의 집념뿐 아니라,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밭을 신품종 재배에 기꺼이 내어준 농민들의 의리와 협력이 있었다. 서로에 대한 감사와 존경으로 이루어진 연대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연수 첫날 특강에서 ‘새로운 농민’을 이렇게 정의했다.
  “이들은 ‘농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쓰는 사람들입니다. 주어로서의 농민이 아니라, 술어를 발명하고 조형하는 존재로서의 농민이죠. 지도에 없는 항로를 따라 표류하며, 농촌의 가능성을 다시 여는 이 ‘위험한 젊은이들’의 수상한 행각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참신한 실천입니다.”

  2025년 봄, 참신한 실천 또는 ‘반칙’이라 불리는 농민의 술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농촌 곳곳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신수경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