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그림 남도현
봄은 윷놀이와 함께 시작된다. 아침 일찍부터 마을 사람들이 경로당으로 모인다. 귀촌 후 다섯 번째 윷놀이 행사다. 아내와 나는 대진표를 만들고, 순서를 정하기 위해 숫자가 적힌 쪽지를 제작한다. 윷놀이판은 합판으로, 윷은 나뭇가지로, 말은 바둑알을 쓴다. 10시가 되면 본격적으로 놀이가 시작된다.
윷 던지는 기술은 어르신마다 다양하다. 비켜 던지기, 흘려 던지기, 강하게 던지기, 쪼그려 던지기, 대충 던지기 등 화려하다. 평소 밭에서 보던 모습과 윷을 던지는 모습이 달라서 순간순간이 새롭다. 윷놀이에서 연륜이 느껴진다. 고성과 환호가 오간다. 1등부터 20등까지 순위가 정해지면 해당하는 상품을 전달한다. 노루를 막는 그물망부터 프라이팬, 사다리, 냄비까지 다양하다. 8등을 한 나는 잡초 방지용 부직포를 받았다. 윷놀이에서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다. 봄의 시작이 좋다.
윷놀이를 끝으로 어르신들은 봄맞이를 시작한다. 밭을 갈고, 퇴비를 뿌리고, 씨감자를 옮긴다. 삼삼오오 모여 고추 가식을 한다. 경운기가 오가고, 트랙터가 바삐 움직인다. 논에 있는 짚을 옮기고, 비료 포대를 뜯어 밭으로 향한다. 밭을 갈고, 고랑을 판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아내도 봄맞이를 한다. 아내는 한 해 농사는 봄이 오기 전에 결정 난다고 했다. 봄이 오기 전 밭을 가꾸고, 모종을 잘 키워야 결과가 좋다는 것이다. 장인어른이 하우스를 정비해 모종을 키울 준비를 마치면, 아내는 난방기를 설치하고 포트에 고추씨를 심는다. 고추 모종을 키우는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온도를 점검한다. 수분을 유지하기 위해 조리개로 물을 주는 한편, 다습을 막기 위해 모종 덮개를 덮었다 열었다를 반복한다. 농부로 다섯 번째 맞는 봄이지만 매번 다르다. 다행히도 환경이 조금씩 나아진다. 작년에 자주 꺼지던 난방기가 올해는 꺼지지 않는다. 난방기가 꺼지면 자정이며 새벽이며 할 것 없이 밭으로 나가 전선을 연결했는데 올해는 그런 일이 없다. 꺼질 일이 없도록 준비를 단단히 한 덕분이다.
아내가 고추 모종을 키우는 동안 나도 봄맞이를 한다. 밭에 나는 작물로 가게에서 판매할 메뉴의 레시피를 정리하면서, 한편 신메뉴를 고민한다. 작년에는 앞밭에서 나는 냉이로 냉이치아바타와 냉이포카치아를 만들었고, 어린 쑥을 넣은 쑥카스텔라와 인절미쑥케이크를, 막 피어오르는 목련으로는 목련차를 선보였다. 올해도 새로운 뭔가를 상상하고 만들어간다. 봄은 매년 반복되지만, 늘 처음인 것처럼 새롭다.
물론 때때로,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주, 망하기도 한다. 목련을 덖다가 까맣게 태우기도 하고, 항상 하는 반죽이 이유를 모르게 충분히 부풀지 않아 빵을 만들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오래 좌절하지 않는다. 농사도, 장사도 순탄한 적이 있던가.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다시 할 일을 찾는다. 준비한 만큼,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그것이 멈춤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해가 길어진다. 숲속 눈이 녹는다. 먼 곳에서 새가 지저귄다. 봄날이 온다.
필자 남도현: 만화 작가, 농부부구판장 대표
강원 원주시 부론면에서 아내와 함께 유기농 농사를 짓고 시골 카페 ‘농부부구판장’을 운영하며 직접 생산한 유기농 농산물과 지역 생산물로 제철 디저트를 만든다. 시골 정착기를 담은 만화책 《풀링》(2023, 인디펍)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