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변재원
‘이상한 동물원’으로 불리는 곳
청주동물원은 불과 10년 사이에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다. 사람들의 즐겁고 편한 관람만을 위해 지어진 좁고 단조로운 사육장이, 훨씬 넓고 다양한 은신처가 마련된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육장 경계에는 나무를 심어 동물들이 과도한 시선에 둘러싸이지 않도록 했다. 삭막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철망과 철창이 일부 가려지는 효과도 있다.
이러한 변화가 누군가의 지시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먼저 달라진 것은 동물원 직원들의 가치관과 목표였다. 청주동물원에서 20년 세월 동안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켜온 선배 수의사의 노력으로 직원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의 재미를 위해 존재하던 동물원이 점차 동물과 사람이 함께 편안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좁은 콘크리트 바닥이었던 사육장은 여러 개를 하나로 합쳐서 넓은 흙바닥으로 바꾸었고, 너무 많아 개체 식별조차 어려웠던 동물들의 종류와 마릿수를 줄였다. 이전보다는 조금 더 넓고 뛰어놀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이런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은 동물원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다행히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정부 부처의 예산 지원까지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동물 전시를 위한 시설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직원들은 ‘사자사’, ‘호랑이사’처럼 관람객에게 어떤 동물이 살고 있는지 이름을 내건 동물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동물원이 생긴 이래로 시도된 적이 없는, 동물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동물사를 생각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 ‘야생동물 보호시설’과 ‘야생동물 방사훈련장’인데, 이곳에서는 구조된 동물을 보호하고, 야생으로 돌아가기 위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야생동물 보호시설은 어떤 동물이 구조되어 올지 알 수 없기에, 소형 초식동물부터 대형 맹수까지 지낼 수 있도록 설계에 다양한 요소를 고려했다. 사자와 호랑이가 뛰어넘지 못하도록 높은 경계를 세우고, 임시 보호소와 합사를 위한 훈련 공간 등도 마련했다. 현재도 구조된 사자들이 지내고 있는 이 시설은 시대 변화에 따라 쓸모없어진 동물 체험시설을 철거하고 새롭게 지어진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야생동물 방사훈련장 역시 구조된 동물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갈 때까지 훈련을 받는 곳이다. 공사비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넓게 지었다.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되지 않는 이 공간은 동물이 사람의 손길에서 벗어나 다시 야생성을 회복할 수 있는 장소다. 현재는 사람 손에 자라 야생성을 잃은 산양과 다른 개체와 잘 지내지 못했던 염소가 이곳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이 동물들이 사람을 반가워하며 달려오지 않고,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응시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다시 야생으로 나가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게 될 것이다.
동물을 위한, 동물원
2025년 6월부터 8월까지 청주동물원은 휴장한다. 이 기간에 관람로와 동물사 공사가 진행된다. 관람객의 발길이 끊겨 동물들은 한가로운 여름을 보내겠지만, 직원들은 쉬지 못한다. 현재 새로 건설 중인 시설 중 하나는 ‘맹금 방사훈련장’이다. 기존의 야생동물 방사훈련장은 날지 못하는 야생동물을 위한 시설이라, 비행 훈련이 필요한 새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새로 짓는 맹금 방사훈련장은 선회 비행을 넘어 활강 훈련까지 가능한 구조로 설계되어, 어쩌면 야생 방사를 앞둔 새들이 마지막 시험을 치르는 공간이 될지도 모른다.
청주동물원은 기존의 전시 중심 시스템에서 벗어나, 동물들의 보금자리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동물원의 목적을 충족하고 있다. 또한, 멸종위기종 보전을 위한 연구와 개체 관리, 타 기관에서 구조된 동물의 임시 거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넓은 방사장은 동물들의 행동을 풍부하게 해주는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과거 더 많은 동물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던 청주동물원은 점차 관람객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동물을 위한 공간’이라는 가치관의 변화와 노력이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많은 동물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편안한 동물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청주동물원에 새롭게 보금자리를 마련한 야생동물이 있다. 바로 황새들이다. 처음엔 한 마리 정도 보였는데, 이제는 두세 마리가 함께 찾아오기도 한다. 동물원에서 갇혀 사는 동물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온 야생의 황새들이다. 그들이 보금자리로 선택한 장소는 방사장의 구조물이었다. 연신 나뭇가지를 옮기는데 그물 사이로 떨어지거나, 중구난방으로 채워져서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직원들은 황새가 동물원에서 지낼 수 있도록 보금자리를 만들자고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여겨졌던 ‘황새둥지탑’은 실제로 만들어졌고, 야생의 황새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농촌에서 만난 ‘투박한 배려’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기 직전, 남은 1년 동안 원하는 실습으로 시간표를 채울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수의사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와 같은 큰 동물을 다루는 ‘대동물(大動物) 수의사’에 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 밤낮이 없는 삶, 익숙해지기 힘든 근무 환경, 그리고 농촌에서 지내는 삶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도 있었다. 일도 힘들고 환경도 불편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제주도에 있는 목장에서 실습을 계획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함께하는 동기들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바다가 있는 제주도가 좋아 결정했던 것 같다. 40대를 바라보는 지금에 와서야, 제주도 목장에서 보낸 한 달간이 무척 소중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 낭비’ 없이 바쁘게 사는 걸 기본 소양으로 알았던 도시에서의 삶과는 다르게, 오전에 할 일을 마치면 제주도 사투리를 들으며 싱싱한 채소로 만든 점심을 먹고, 선선한 시간이 될 때까지 뜨거운 햇빛을 피해 그늘에서 짧지만 달콤한 낮잠을 취했다. 누가 지나가는지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일하다 더러워진 장화를 옆에 가지런히 놓고, 장화에 묻은 소똥 냄새를 은은히 맡으며, 이불도 베개도 없이 시원한 땅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러면 잔잔한 바람과 한 번씩 지저귀는 새 소리와 함께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가 있었다.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목장에서의 추억이 최근에 다시 떠오른 계기가 있었다. 이따금 동물원 일이 한가할 때면, 나는 동료 수의사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다닌다. 수의사가 없는 동물원에서 동물을 돌보거나, 청주시 인근에서 ‘시골 개’를 위한 봉사활동도 한다. 꽤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준비했지만, 처음 시골 개 봉사활동을 시작하던 날에 문제가 발생했다. 강아지들의 건강검진 장비 중 이동형 엑스레이가 말썽이었다. 엑스레이 촬영에 필요한 프로그램이 깔려있지 않은 노트북을 챙겨온 탓에, 급히 프로그램을 새로 설치해야 했다. 별문제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휴대전화 핫스팟으로 당겨온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렸다. 마을 이장님에게 물어보니, 공용으로 쓰는 와이파이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오랜만에 있는 마을의 큰 행사 때문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검진을 받을 강아지들이 도착하고 봉사에 참여한 수의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나는 대문이 열려 있는 아무 집이나 일단 들어갔다. 작은아버지뻘로 보이는 집주인 내외가 밭일을 나갈 준비를 하는 듯 분주히 도구를 챙기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조심스럽게 와이파이를 빌려 쓸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나를 위아래로 훑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집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집 안에서 “와이파이 비밀번호 뭐지?!”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이내, 뙤약볕에 까맣게 탄 남자의 두꺼운 손바닥 위에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찍힌 사진이 담긴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급한 나머지 제대로 된 감사 인사도 못하고 검사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내려받는 사이, 열려 있는 대문에서는 또 다른 인기척이 났다. 허리가 많이 휜 할머니는 본인 팔 만큼이나 얇은 대문틀을 힘겹게 부여잡고 대문을 넘고 있었다. 집주인 어르신으로 보였다. 나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준 남자와 어르신은 나에 대해 큰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뭐 하러 온 양반이래?”
“와이파이 빌린다고!”
“뭐 하러 왔다고?”
“와이파이 빌린다고 왔다고!”
“뭐 하러 왔다고?”
비슷한 대화가 한참 오갔다. 이내 어르신은 노트북에 정신이 팔린 내 앞에 와서 뭐 하러 왔느냐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남들보다 조금 까칠하게 사는 나지만, 할머니의 고성에는 왠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와이파이라는 말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인터넷 좀 빌려 쓰러 왔어요”라고 귀에 대고 말씀드렸다. 이내 “아, 와이파이 쓰러 왔다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예민해졌던 마음은 사라지고 웃음이 지어졌다.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간 할머니는 이내 얼굴을 다 가리는 모자를 쓰고는 오랜 손길이 느껴지는 물컵과 빵 하나를 갖고 나와, 컴퓨터 옆에 두고 다시 힘겹게 대문을 넘어 나갔다. 내외 역시 비슷한 모습으로 할머니의 뒤를 따르며 “일 다 마치면 대문만 닫고 가 달라”는 말을 남기고, 뒤도 보지 않고 떠났다.
열심히 일해 까맣게 탄 피부, 힘든 작업으로 부르트고 굵어진 손가락 마디에서 오는 첫인상은 무섭고 투박했지만, ‘혹여 잘못 알려줄까’ 찍어온 와이파이 비밀번호 사진에는 외지인에 대한 배려가 꾹꾹 담겨 있었다. 오랜 농사일로 허리가 휜 할머니의 눈에는 귀여운 손주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건네받은 물과 빵을 먹으니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왜 그렇게 자식들이랑 같이 있기 싫어했는지, 연신 시골로 가고 싶다고 말하던 할머니였다. 자식들과 편히 지내는 걸 마다한 이유가 폐 끼치기 싫어서일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쩌면 정말로 농촌이 더 편안했던 건 아닐까 싶다.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편안함’이 필요하다
그날 이후로, 아무런 대가 없이 상대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툭툭 건네는 농촌의 ‘투박한 편안함’에 매료됐다. 이러한 투박한 편안함은 동물들에게도 필요하다. 도시에서, 어쩌면 조금은 과한 음식과 보금자리는 인간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과잉 배려라고 생각한다.
농촌에서 동물은 그저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내가 받은 투박한 배려와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적정한 거리에서 불편하지 않은 배려가 필요하다. 다 따버려도 되는 과실을 굳이 남겨놓고 ‘배고프면 먹든지 말든지’ 하거나, 처마 밑에 지어진 새집을 치우지 않고 ‘우리 집 처마가 마음에 들면 내년에도 와보든지’ 하는 식의 그런 투박한 배려 말이다.
어쩌면 농촌에 자리를 잡거나 자주 찾는 동물들 역시, 나처럼 이런 편안함에 매료된 걸지도 모른다. 도시의 과한 배려 또는 과한 배척이 아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조용히 지켜봐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가장 편하지 않을까.
청주동물원에 구조되어 보호받고 있는 동물들이나 황새둥지탑에 자리를 잡은 야생 황새들 모두 이런 투박한 배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농촌과 같은 향기를 내는 청주동물원에 날아든 황새처럼, 나 역시 제주도에서의 경험이 한 번씩 떠오르는 이곳 청주동물원에서 투박한 배려 속에 동물과 사람 모두 편안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필자 변재원: 청주동물원 수의사
아쿠아리움 진료 수의사와 동물병원 응급 수의사를 거쳐 청주동물원의 김정호 수의사 사단 최일선에서 일하고 있다. 동물을 상품이나 전시품으로만 취급하지 않는 동물원을 찾다가 지금의 청주동물원과 뜻을 같이하게 되었다. 동물도 사람도 행복한 동물원을 꿈꾸며 청주동물원에서 약 70종, 300마리 동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