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예뻤다

신수경 / 사진 김병훈  편집부

왁자지껄한 명절이 끝나자 광주로 가는 KTX 열차 안은 고요했다. 60개의 좌석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고작 다섯 명. 입석표도 구하기 힘들었던 추석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나는 창밖 풍경을 더 잘 보기 위해 순방향석과 역방향석이 마주 보는 가족석으로 옮겨 앉아, 아무렇게나 마음을 놓았다.

여름의 논은 더위를 식혀주고 가을의 논은 살아갈 힘을 준다.

황홀함의 정체가 ‘쌀’이라니
그새 계절은 옷을 갈아입었다. 석 달 전만 해도 온통 초록색이던 풍경이 노란, 황금 들판으로 변해 끝없이 이어진다. 황홀하다. 더 놀라운 건 이 황홀함의 실체가 단순한 풀밭도 꽃밭도 아닌,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먹거리, 쌀이라는 사실이다.
신비롭지 않은가. 여름의 논은 선명한 초록으로 더위를 식혀주고 햇볕을 넉넉히 받은 가을의 논은 그대로 영글어 황금 들판을, 그리고 살아갈 힘을 준다.
농촌은 사시사철 멋지다. 울긋불긋 꽃 대궐의 봄을 지나 녹음綠陰에 지치는 여름, 높디높은 하늘과 모든 것이 온통 노랗게 빨갛게 익어가는 가을, 땅 위에 내려앉아 바삭거리는 낙엽 풍경과 꽁꽁 언 땅속에 수많은 생명을 안고 있는 겨울. 삼천리금수강산이란 말은 빈말도 과장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그곳을, 어떻게 느끼며 살고 있을까.

농촌은 사시사철 멋지다. 우리의 먹거리를 품고 있어 더욱 그렇다.

그녀가 돌아왔다
얼마 전,  ‘그녀는 예뻤다’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어릴 적 예뻤던 여자아이가 크면서 심각한 홍조와 주근깨, 치명적인 곱슬머리로 역변逆變하여 사람들의 구박과 천대를 받는 내용이다.
그런데 역변의 흔적이, 농촌에도 보인다.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건물, 허옇게 속살을 드러낸 언덕, 쌓여있는 돌덩어리 옆에서 크레인은 여전히 부지런하다.
큰 건물, 화려한 간판, 도시를 흉내 낸 각종 편의 시설이 들어선 농촌은 더 아름다워졌을까. 세계 각지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스위스의 농촌처럼, 오랜 시간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경관과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농촌다움이, 촌스러움이, 농촌을 계속 있게 한다.

모진 구박을 견디며 정직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던 드라마 주인공이 다시 예쁜 모습으로 돌아왔듯, 농촌도 돌아올 것이다. 어쨌든 농촌은,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