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촌으로 눈을 돌리다
최근 농촌 지역으로 이주했거나 이주를 희망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북 완주에서 일했던 지난 3년간 청년들의 이주문의는 끊이지 않았고 실제로 많은 젊은이가 농촌으로 이주했다. 어느 날은 같은 완주지역이지만 내가 주로 일하는 곳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무리 지어 귀촌한 다수의 청년을 만나 놀라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9월 27일 통계청과 농림축산식품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귀농·귀촌인구는 4만 4,586가구로 전년 대비 1만 2,162가구가 증가했는데 베이비붐 세대인 50~60대의 비중이 높지만 30~40대의 귀농 인구가 33.1%, 귀촌 인구는 41.6%를 차지했고 그 비율이 점차 커지고 있다.
1997년 IMF 당시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귀농·귀촌했다면 지금은 건강, 자아실현, 느린 삶 등 여러모로 접근하고 있는데 청년들이 농촌과 지역에서 기대하고 있는 바도 다양하다. 삼선재단의 후원으로 녹색사회연구소 등이 공동 연구한 「농촌으로 이주하는 청년층의 현실과 과제」에 따르면 귀농·귀촌을 생각한 이유로 ‘경쟁과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의 응답 비율이 실제 귀농·귀촌자(55.6%)와 귀농·귀촌 희망자(65.2%) 모두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밖에도 ‘생태적 가치를 위해’, ‘시골이 좋아서’, ‘농사가 좋아서’, ‘자녀 교육에 좋을 것 같아서’ 등 청년층의 전반적인 인식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귀농·귀촌을 촉진하겠다고 ‘귀농하면 1억 원을 버는 농민이 될 수 있다’, ‘도시에서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고 분별없이 떠들었다. 1,000명에 1명 나올까 말까 하는 가능성이고 1억을 벌었다면 10억은 투자해야 한다. 농사는 기본적으로 토지를 기반으로 한다. 토지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면 금융권 장기상품의 수익률 이하이다.
청년들이 귀농·귀촌을 희망하고 또 실제로 농촌으로 이주하고 있는 개인적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우리나라의 사회 변화와 깊게 연관되어 있는 듯하다. IMF 이후 우리 사회는 급격하게 경쟁 사회로 변화했다. 자신의 능력에 맞추어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부모·선배 세대와 달리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없고 좋은 대학에 가더라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없고 일자리를 얻었다 해도 평생 일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교육체계는 열심히 공부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면 잘 살 수 있다는 공허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현재 청년들은 그 공허한 이야기에 대한 대안을 농촌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농촌지역에서 귀한 청년들이지만 청년들의 귀농·귀촌 경향을 세심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만들어낸 고름이 한쪽으로 터진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고름이 터졌기 때문에 그 고질병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고름에서부터 그 고질병을 치유할 방법을 찾을 수 있느냐이다.
농촌에서 돈을 덜 쓴다고?
농촌으로 들어오는 청년들이 농촌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농사를 지으면 생활할 만큼의 돈을 벌 수 있고 더 나아가 목돈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부분은 귀농·귀촌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반성해야 한다. 귀농·귀촌을 촉진하겠다고 ‘귀농하면 1억 원을 버는 농민이 될수 있다’, ‘도시에서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고 분별없이 떠들었다. 1,000명에 1명 나올까 말까 하는 가능성이고 1억을 벌었다면 10억은 투자해야 한다. 농사는 기본적으로 토지를 기반으로 한다. 농업 분야의 평균 수익률은 7~8%대이고 이것도 토지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진 이후이다. 토지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면 2~3%대로 떨어진다. 금융권 장기상품의 수익률 이하이다. 즉 토지를 매입하면서 농촌에 들어와 농사를 짓는 것보다 은행에 맡겨 놓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이야기이다. 농사로 고소득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이십 년, 삼십 년 농사지었던 사람들이 못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미 농촌에서도 농사만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농가소득 비중은 농업 외 소득(45%)이 농업소득(29%)을 앞섰고 이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 또한, 농사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업농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 농촌에서는 농사로 생계를 유지할만한 적절한 소득을 올리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 청년들이 농촌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두 번째 사실이 있다.농촌에 살면 돈이 덜 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기대하는 만큼 농촌에서의 지출은 크게 줄지 않는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탓에 농사를 짓거나 무엇이든 일을 하려면 자동차가 필요하다. 주변에 학교가 없다면 먼 거리에 있는 학교에 자녀를 통학시켜야 하고 혹은 도시에 방을 하나 얻어 유학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도시만큼 사회, 문화, 교육, 복지 서비스가 잘 정비되어 있지 않고 가까운 거리에서 얻을 수 없어 추가적인 지출이 필요하다.
농촌에서는 돈을 덜 쓸 것이라는 예상은 농사에서도 여지없이 빗나간다. 예전에는 2를 투자해 5를 벌었다. 농사짓는데 필요한 것은 주변에서 구했고 혼자하기 어려운 일은 동네에서 함께 해결했다. 그런데 비료와 농약을 쓰니 농사는 편해졌지만 사야할 것이 많아 수익은 크게 늘지 않았다. 그래서 규모를 늘리니 8을 벌게 되었지만 혼자 감당할 수 없어 기계를 써야 했기 때문에 5를 지출하게 되었다.기계를 쓰니 함께 일하던 풍습은 없어지고 일손이 필요하면 일당을 주어야 했다. 수익을 늘리기 위해 빚을 내 토지를 구해 더 많은 농사를 지어야 했다. 그러자 10을 벌게 되었지만 비료, 농약, 기계 구입비, 인건비, 은행 이자 등 8을 지출하게 되었다. 5를 벌었던 농사가 10으로 두 배를 벌게 되었지만, 규모가 늘어 더 고된 농사일에 시달리면서 남은 수익은 예전보다 더 적어진 것이다.
‘경쟁과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농촌을 선택했다면 농사를 짓는 방식과 농촌에서 생활하는 방식을 다르게 해야 한다. 한 가지 작목을 넓은 면적에 심어 큰돈을 만지는 농사가 아니라 적절한 규모에서 다양한 작목을 심고 건강한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자와 연계하여 농산물을 팔아야 한다. 시장과 멀어져야 한다.
경쟁과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귀농·귀촌을 위해
결국, 청년들이 ‘경쟁과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농촌에 오더라도 농사와 농촌생활에서 그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단지 도시에서와 달리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농민 더 나아가 다른 나라의 농민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을 뿐이다. 농촌에서는 많은 부분 자급자족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몇 가지 푸성귀에 그친다. 농촌사회의 과소화로 농촌에서는 살만한 물건도 없고 필요한 서비스를 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어느새 인근 도시의 대형마트에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받아들이기 싫지만 이미 우리 농촌도 자본주의와 시장체계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자본주의적 국가발전은 모든 것을 비슷하게 만들었다. 개인은 한 가지 직업으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사야 한다. 그런데 점점 비싼 것을 사고 있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 더 많은 것을 사게 된다. 그래서 항상 더 많은 돈을 벌 수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 지역은 지역에서 팔 수있는 것을 만들어 도시에 팔고 필요한 것은 도시로 나가 구해야 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팔아 지역으로 들어왔던 돈은 바로 도시로 빠져나가 농촌에는 남는 것이 없다. 그래서 또 무엇을 도시에 팔아야 되나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끊임없이 외국에 팔 것을 찾고 있다. 그래서 농업을 포기해서라도 휴대폰을 팔기 위해 이런저런 협약에 집착하고 있다. 이중, 삼중의 이 굴레는 정당한 것일까, 그 끝이 있기는 한 걸까.
‘경쟁과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농촌을 선택했다면 농사를 짓는 방식과 농촌에서 생활하는 방식을 다르게 해야 한다. 중복된 굴레 중에서 가까운 굴레에서 벗어날 작정을 해야 한다. 한 가지 작목을 넓은 면적에 심어 큰돈을 만지는 농사가 아니라 적절한 규모에서 다양한 작목을 심고 건강한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자와 연계하여 농산물을 팔아야 한다. 즉 시장과 멀어져야 한다. 최근 이러한 농업을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이라 하고 이러한 농부를 사회적 농군Social Farmer라 부르고있다. 농촌생활에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같은 것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해결해야 한다. 노래방에 가고 싶다면 도시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마을회관에 노래방 기계를 설치하면 된다. 기타를 배우고 싶다면 도시로 나가 학원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을 구해 면사무소를 찾아가 평생교육 동아리 신청을 하면 된다. 도시에서 화폐적으로 살았다면 농촌에서는 사회적으로 살아야 한다. 단순하게 농촌으로 이주했다고 해서 ‘경쟁과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잠깐 그렇게 보일 뿐이다.
농촌의 미래는 청년에게 있다
이렇게 농촌에 들어온 청년이 사회적으로 살기 시작한다면 농촌은 ‘파편화되고 인근 도시에 종속된’ 지역사회를 회복할 기회를 얻게 된다. 무언가를 팔아 농촌으로 들어왔던 돈이 농촌에 다시 쓰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다시 사람이 들어오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을 바라보면 점점 할 일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실제로 농촌에서 할 일은 많다. 도시에서처럼 한 가지 일로 온전히 생계를 유지할만한 돈을 벌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농사뿐 아니라 다른 일을 해야 한다. 농사 이외의 다른 부업은 경제적인 도움도 되고 자신이 사는 지역사회를 바꿀 수 있다. 궁극적으로 큰돈을 벌지 않아도 안정적인 농촌생활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농촌 자체에서 필요한 일도 많지만 도시와 연계하면 더 다양한 일을 만들 수 있다. 농산물 직거래, 로컬푸드 꾸러미, 식생활 교육과 체험, 건전한 여가생활 등 도시민에게 필요한 일을 농촌에서 제공해줄 수 있다. 이제까지 이러한 일도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경쟁과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청년들이라면 도시와도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으면 좋겠다. 그렇게 농촌을 찾아오는 청년들이 농촌과 도시의 고질병을 동시에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래서 농촌을 찾아오는 청년들의 현실이 안타깝지만 그 청년들은 소중하다.
인생의 후반부에는 내가 하고 싶고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지만 내 생활을 책임질수 있는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농촌에서의 경험은 나중에 그러한 진짜 직업을 위한 훌륭한 학습과정이 될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도 청년들을 그렇게 유연하게 대해주면 좋을 것 같다.
지역사회의 노력은 필연
하지만 한번 들어온 농촌에서 꼭 정착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지 않으면 좋겠다. 농촌에서 살다가 다른 농촌에 갈 수도 있고 도시에 다시 나갈 수도 있다. 아마도 앞으로는 평균수명이 길어져 한 가지일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평생 두세 가지 일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60세 이후의 직업이 자신이 원하는 진짜 직업이 될 것이다. 직업의 개념은 다양하다. 생계를 위한 것일 수 있고 부여받은 소명일 수도 있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일 수도 있다. 이 세 가지 요건을 만족하는 직업을 가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청년 시절에는 어쩔 수 없지만, 이 세 가지를 합치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인생의 후반부에는 내가 하고 싶고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지만 내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농촌에서의 경험은 나중에 그러한 진짜 직업을 위한 훌륭한 학습 과정이 될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도 청년들을 그렇게 유연하게 대해주면 좋을 것 같다. 청년들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기대가 청년들에게는 부담으로, 지역주민에게는 실망으로 돌아오기 쉽다. 더 많고 다양한 청년들이 우리 마을과 우리 지역에 오고 가야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좋겠다. 정부도 청년들이 농촌에서 다양한 경험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면 좋겠다. 농촌으로 들어오는 청년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허망할 따름이다. 그들을 다시 그 몹쓸 굴레에 갇히게 할 것이다. 게스트하우스와 같은 저렴한 숙박시설을 만들고 청년 프로그램을 지원하여 청년들이 스스로 모여 지역에서 자신들이 필요한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냐고? 청년들은 농촌의 소중한 미래니까.
※필자 임경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동시에 논산시 사회경제정책보좌관을 맡고 있다.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센터장과 주식회사 이장의 대표를 역임했다. 저서로 『농, 살림을 디자인하다』(들녁, 2013), 『이래서, 나는 농사를 선택했다』(양문, 199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