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식 영동화훼영농조합법인 대표
강릉은 여름이면 더위를 피하려, 가을엔 단풍을 보러, 그리고 새해가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낳고 키웠던 오죽헌, 전통 고택이자 안락한 쉼터인 선교장, 군자의 넉넉한 마음 같은 경포호와 정동진, 그리고 신선한 회를 비롯한 푸짐한 먹거리까지. 그래서 흔히 ‘여행’의 대명사로 꼽히는 강릉은 ‘우리나라 최대 백합수출단지’라는 또 하나의 특별한 의미를 품고 있다.
강릉에서 일 년 내내 백합을
12월, 밖에는 눈보라가 치고 있지만 최명식씨(58, 영동화훼영농조합법인 대표, 제22회 대산농촌문화상 수상자)의 유리온실 안은 봄처럼 화사했다. 그중에서도 청아한 연녹색의 봉오리로 꼿꼿한 자태를 보여주는 백합이 단연 으뜸이다. 이 백합은 일본으로 수출된다.
“얼마 전 일본에 가서 소비자들이 백합수명을 어느 정도 기대하는지 시장 조사를 했는데, 열흘에서 15일 정도라고 해요. 네덜란드나 동남아에서 오면 시간이 오래 걸려 어렵지만 우리 백합은 하루면 가니까 물올림이 좋아 일본 소비자의 요구에 맞출 수 있어요. 엔저현상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아요.”
1990년대 초, 최명식 씨는 강릉에 백합을 도입했다. 서늘한 고랭지와 따뜻한 평지가 고루 퍼져있는 강릉은 화훼불모지였지만 가능성이 높은 곳이었다. 백합은 생육기간이 150일이고 2기작이 가능해고랭지와 평지의 재배기간을 달리해 연중 생산할 수 있고, 안정적인 공급체계가 갖춰지면 일본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 물론, 혼자서는 안 되고 농민들이 함께할 때 가능한 일이었다.
1992년, 뜻이 맞는 농가들과 영동화훼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해 백합재배를 시작했고 이후 백합농가는 급속도로 늘었다. 1997년 일본수출을 시작한 후 13년 만인 2010년, 전국 수출량의 47%를 차지하며 강릉은 최대 백합수출단지로 우뚝 서게 된다.
백합농민의 중심조직을 만들다
2008년, 파프리카등 새로운 작목이 생겨나면서 한때 630개에 이르던 강원도 지역 백합 생산자가 110여 농가로 급속히 줄었다.
“이러다가 대한민국 백합 산업이 흔들리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생겼어요. 전국 백합농가를 조사해보니 370농가가 되더군요. 전원을 참여시켜 백합생산자중앙연합회를 만들었죠.”
힘을 모아야 힘이 커진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결성된 중앙연합회는 최명식 씨를 회장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1년간 농림부를 설득해 2009년 백합생산자 자조금 6억 4천만 원을 조성했다.
“원예자조금이 있기는 하지만 백합농민한테는 별 도움이 안됐어요. 독립자조금을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죠.”
시군단위별로 자조금을 배정하고 6월과 11월 일년에 두 번 도마다 수출실적에 따라 자조금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공판장에서 1% 떼는 것도 아니고 시군단위로 배정해 다시 농가에 실적에 따라 걷는건 어렵다고 말렸지만, 최 대표는 농가를 믿었다. 그 믿음대로 백합생산자자조금은 그해 자조금 중가장 먼저 사업을 완료했고, 이듬해인 2011년엔 9억 원을 조성했다. 자조금이 대폭 향상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했다.
자조금은 농민 스스로,농민을 위해 쓰여야
자조금은 농민과 정부가 50:50으로 자금을 출자하여 품목의 수급조절, 시장개척, 교육과 홍보에 쓰는 돈이다. 이 매력적인 자조금을 왜 농민들이 부담스러워할까. 최 씨는 그동안 자조금이 농민의 피부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합생산자 자조금은 철저히 농민의 피부에 닿는 일에 사용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실천했다. 수급조절과 시장 개척에 자조금의 70% 이상을 배정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를 고치는 데 힘썼다.
그중 하나가 수급조절 방식이었다.
“생산량이 넘쳤을 때 일정량을 폐기하는 대신 자조금으로 보전해주는 게 수급조절이에요. 장미나 카네이션과 달리 백합은 구근식물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꽃만 따주면 구근이 그대로 땅속에서 숙성되고 그다음 해에 쓸 수 있어요. 수급조절을 하면서도 농가는 비싼 구근 값을 절약할 수 있는 거죠.”
농가는 꽃을 딴 후 사진을 꼭 찍고 담당공무원 서명을 받도록 하여 신뢰를 확보했다. 이제 백합 수급조절은 현장에서 바로 한다. 이런 일이 바로 품목별 중심조직의 역할이라고 그는 말한다.
연구는 농민이 가장 잘한다
백합농민에게 가장 큰 부담은 종구값이다. 최 씨는 종구를 재활용하고, 작은 종구를 사서 1년을 더키우는 등 종구비용을 절감하는 방법과 고품질 백합 생산 노하우를 농가에 전파하고, 한편으로 종구국산화 연구에 농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백합종구 전문 생산단지를 만드는 데 힘썼다.
“언제까지 비싼 수입종구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국산종구를 육종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한 품종육종하는데 보통 10년이 걸린다고 해요. 연구는 농민이 가장 잘할 수 있어요. 실제로 농가가 육종해서 현재 5가지 품종을 수출하고 있어요. 280만 달러 규모죠. 특히 영월의 한 회원이 개발한 ‘두산’이라는 품종은 인기가 좋아요.”
제주도와 강원도에 이미 조성됐고, 2014년엔 충청도에도 세워질 예정인 백합종구 전문생산단지에 대한 기대는 그래서 더 크다.
수출의 문제도 농민이 푼다
최명식 씨는 수출도 농민이 주도해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생산자의 이름에 따라 물건 값이 달라져요. 그게 바로 브랜드입니다. 백합도 ‘밀어내기’ 하지 말고 좋은 값으로 나갈 수 있게 협력해야 합니다.”
얼마 전 그는 일본의 큰 화훼유통기업을 직접 만나 그들이 원하는 품종, 시기, 물량에 대한 정보를 줄 것을 타진했다. 기존의 유통과정을 한 단계 줄인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과 러시아 등 일본에 한정되어 있는 수출 시장을 넓히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2014년 백합생산자자조금은 의무자조금으로 전환한다.
“의무자조금제도가 생긴지 2년인데, 실행하는 곳이 아직 없어요. ‘의무’라는 말에 겁을 먹는데 의무자조금으로 바뀌면 더 투명해지죠. 무임승차를 막을 수 있어 농민의 부담이 줄어듭니다. 구근이 들어올 때, 그리고 수출을 하거나 내수시장에 내다 팔 때 1%를 공제하니 자연스럽게 물량이 정확하게 파악되니 계획 생산과 수급조절도 가능해 결과적으로 농민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겁니다.”
20년간 자신의 일보다는 다른 백합농민을 먼저 살피느라 바쁘고 고단했다는 최명식 씨. 그는 지난해 대산농촌문화상을 받고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고 한다.
“가끔은 힘들다는 생각도 했는데, 이젠 나 하나 고생해서 400여 백합농민에게 힘이 된다면 그걸로 된거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농업인으로서 후대를 위해 뭔가 이루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에 더 바빠집니다. 지금 이 농장은 상속하지 않고 농업의 발전을 위해 쓰이게 할 겁니다.”
알뿌리의 껍질이 하나씩 자라 백 개의 껍질이 합쳐지면 꽃이 열린다. 그래서 백합百合이다. 최명식씨의 백 가지 노력이 이제 꽃을 피울 때다.
글·신수경 / 사진·김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