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목소리를 기록합니다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
(제34회 대산농촌상 농촌발전 부문 수상자)

  충북 옥천군, 시내버스 종점과 맞닿은 금구리 골목에는 조금 특별한 풍경이 있다. ‘미디어 거리’라 불리는 이곳에는 1989년 옥천 주민 222명이 자본금을 모아 설립한 ‘옥천신문’, 전국 유일 군 단위 월간지 ‘월간 옥이네’를 발행하는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 옥천군 전역에 송출되는 ‘옥천FM공동체라디오’가 모여있다.
  이 풍경의 중심에는 2002년 옥천신문 입사 이후 20여 년간 풀뿌리 언론인으로 활동해 온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가 있다. 인구 5만의 옥천군에서, 지역 언론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를 만났다.

옥천신문은 ‘지역의 공공성을 지키고 살맛나는 공동체를 만드는 언론’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대산농촌재단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 저널리즘
  종이신문 유료 구독률이 4%에 머무르는 시대지만, 옥천신문의 유가부수는 약 3000부에 달한다. 옥천 지역 가구수를 생각하면 아홉 중에 한 가정이 신문을 읽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구독률이 높은 것은, 신문이 주민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옥천신문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추구해요. 초등학교 앞 인도를 개설하는 것부터 작은 도서관 운영비 지원 문제까지, 결코 사소하지 않은 다양한 민원들을 해결해 왔어요.”

  옥천신문의 보도는 지역에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었다. 2022년에는 주민 동의 없이 추진되던 옥천군 안남면의 대규모 태양광 패널 시설 허가가 취소되었고, 2023년에는 청성면에 하나 있던 파출소의 통폐합 계획이 보도 열흘 만에 철회되었다.

  “언론을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한다면, 지역 언론은 지역을 비추는 거울이에요. 창은 안에서 밖을 보는 거지만, 거울은 나를 돌아보는 거지요. 모두가 서울에서 만들고 서울 이야기를 하는 언론을 보는 건 주민 삶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내 삶을 변화시키는 미디어가 필요하죠.”

  ‘키가 작다고 눈코입이 없느냐’는 말은 황민호 대표가 자주 쓰는 비유다. 인구가 적다고 생활에 필요한 것이 없지 않다는 말이다.

  “지역에 제대로 된 광장이 없으니 주민들이 집회를 열려면 농협 주차장을 빌려 써야 하고, 박물관이 없으니 옥천에서 발굴된 유물이 청주 박물관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영화관과 수영장도 가까운 대전으로 가면 되지, 굳이 옥천에 만들어야 하냐는 말이 많았죠.”

  옥천신문은 이웃 지방자치단체 사례를 취재해 보도하고, 지속해서 문제 제기와 공론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지금, 옥천에는 매년 이용객 수를 경신하는 수영장과 작은 영화관이 있고, 2027년에는 옥천군립박물관이 준공된다.

  “옥천에서는 솔루션 저널리즘이 일상화되어 있어요. 누구든 억울하거나, 해결할 일이 생기면 신문사를 찾아와요. 주민이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왜 필요한지를 아는 거죠.”

옥천군 청산면 편의점 벽에 붙은 옥천신문 기사를 가리키는 황민호 대표. ©대산농촌재단

“하찮은 뉴스는 없다”
  행운목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 흉작에 땅 주인이 임대료를 낮춰주었다는 미담, 밭에 호랑이 발자국이 찍혀있다는 제보가 옥천신문 지면을 채운다. 마을 이장이나 학생회장 당선, 가게 개업 소식, 태권도장에서 상을 받은 소식도 취재한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고, 공동체 구성원의 모든 소식은 다 귀하다.

  “길 가다가 어깨를 부딪쳐도 모르는 사람이면 화를 내게 되지만, 부딪치고 보니 아는 사람이면 서로 인사부터 하게 되잖아요. 우리 주변 사람들을 깊게 이해하고 아픔과 기쁨을 공유할 때, 지역 공동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18년부터는 ‘은빛자서전’이라는 코너를 기획해 연중 상시로 내보내고 있다. 옥천 지역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누구나 자신의 생애사를 신문 한 판에 기록할 수 있다. 은빛자서전의 주인공이 세상을 떠나면, 해당 기사는 족자가 되어 장례식장에 전시된다.

  “오랫동안 지역을 지켰던 이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아쉬웠죠. 어르신들의 생애사는 곧 지역의 역사이기도 해요.”

지역, 매체, 세대를 아우르는 미디어플랜
  2017년, 옥천신문은 문화콘텐츠사업단을 꾸려 사회적 기업 ‘고래실’을 차리고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을 열었다. 지역의 부족한 문화적 기반을 다지고, 신문 이외의 다양한 매체를 키우기 위해서였다.

  “로컬푸드 자급을 위한 푸드플랜이 있듯이, 미디어 자급을 위한 미디어플랜도 필요해요. 지역, 세대, 매체별로 각기 다른 공론장의 다양한 형태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2022년 개국한 ‘옥천FM공동체라디오’도 미디어플랜의 일부다. 방송통신위원회 공동체라디오 공모 사업으로 시작해 모자란 사업비는 주민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했는데, 6개월 만에 1억 3천만 원이 모였다. 매일 6시간 이상 이어지는 라디오 방송은 옥천 주민들이 DJ가 되어 진행한다. 시니어기자단, 결혼이주여성, 어린이합창단, 조기축구 회원, 이외에도 다양한 관심사와 재능을 가진 주민들이 방송을 채운다.

  “5년째 라디오를 하다 보니, 나름의 팬층도 있어요. 올드팝 프로그램 ‘사랑 실은 멜로디’를 운영하는 김철 씨는 장날이 되면 A4 용지에 사연과 신청곡을 다 받아 와서 틀어주거든요.”

  2022년에 창간한 ‘주간 영동’은 언론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옥천군 청산면과 인근 영동군의 소식을 다루는 주간지다. 상근 기자 2명과 황 대표가 운영하는 ‘풀뿌리저널리즘스쿨’의 인턴 기자들이 함께 만든다.

  “인턴 기자들은 3개월 정도 면 지역에 살면서 활동해요. 앞으로는 풀뿌리저널리즘스쿨을 나온 친구들이 짝을 지어 지역신문이 없는 곳에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서 자립할 수 있도록 적어도 4~5년 정도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간 영동은 상근 기자 두 명과 황민호 대표가 운영하는 '풀뿌리저널리즘스쿨'의 인턴 기자들이 함께 만든다.
주간 영동은 상근 기자 두 명과 황민호 대표가 운영하는 ‘풀뿌리저널리즘스쿨’의 인턴 기자들이 함께 만든다.

더 깊숙이, 지역 안으로
  황민호 대표는 ‘지역은 낙후되는데, 언론만 잘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역 활동에 깊숙이 뛰어들기도 했다. 2006년 옥천군 청산면에 거주하며 지역과 어울려 살았던 것을 계기로, 2022년 청산면으로 이주해 마을공동체 활동을 시작했다.

  “청산면은 옥천군에서도 가장 변방에 있는 곳이에요. 청산의 인구 감소율이 옥천 9개 읍면 중 가장 높고, 청산초등학교 전교생이 30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부채감을 느꼈어요. 면 지역 사막화는 농촌 인구 감소의 본질이에요.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청산면 공동체식당은 청소년 대상으로 시작해, 현재는 청산면 31곳 경로당에 반찬을 배달하는 사업으로 확장되었다. ©황민호
청산초등학교 앞 사택에는 청산면 할머니들과 학생이 함께 가꾸는 ‘짝짜꿍텃밭’이 있다. ©대산농촌재단

  그 길로 지역신문발전기금과 각종 지원금, 사비를 모아 청산면에 방치된 철공소를 개조해 복합문화공간 ‘청산별곡’을 열었다. 낮에는 마을 어르신들의 실버 카페로, 오후에는 청소년들의 공부방으로 이용되며 한 해 1천여 명이 찾는 지역사회 거점 공간이 되었다. 2023년에는 이곳에서 ‘청산공동체밥상’을 시작해 청소년들에게 무상으로 저녁 식사를 제공하고, 2024년부터는 목요일마다 주간 영동 기자들과 함께 청산면 31곳 경로당에 반찬을 배달한다.

  “저에게 옥천과 영동이 저널리즘의 공간이라면, 청산은 지역 소멸에 대응하는 실천의 공간이에요. 풀뿌리 언론을 확산하는 것과 지역 소멸을 막아내는 것, 저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과제예요. 이 둘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연계되어 서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날, 옥천읍에서 청산면, 또 영동군으로 황민호 대표의 일정을 숨 가쁘게 따라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식당, 길 위, 공부방에서 만난 이들의 얼굴에서는 반가움과 동시에 익숙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하루 100km, 옥천 곳곳을 누비며 모두에게 ‘따뜻한 참견’을 보내는 그가 써내려 갈 지역의 이야기가 더욱, 기다려진다.

글·사진 조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