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지 못한 농업과 농촌, 먹거리

지난해 12월 우리 사회는 대학가에서 촉발된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큰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는 상대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물을 때면, 당연히 안녕하다는 대답을 기대하지만, 대자보에는 전혀 안녕할 수 없는 우리 사회에 대한 고민들이 담겨 있다. 그럼 우리의 농촌, 농업, 그리고 먹거리는 안녕할까?

농업 현실을 보여주는 암담한 수치들
농민들 스스로 현재의 농업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달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농촌에 대한 2013년 국민의식 조사결과」에서도 확인된다. 농민의 64.7%가 한국 농업의 발전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10년 후 한국 농업의 전망을 희망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농민은 18.3%에 불과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농사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농민은 1/3에 불과하다. 한국의 농업 위기가 심화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농업의 주체인 농민들이 농업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할 날은 요원한 듯하다.
통계 자료를 보더라도 우리 농업과 농촌의 암담한 현실은 확인된다. 7ha의 경지 규모를 가지고 있는 농민들조차 농업소득만으로 가계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2만 평 이상의 농사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가계비를 충족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2~3ha의 경지 규모에서 나오는 농업소득으로는 가계비의 70%도 감당하지 못한다. 여기에다 농가소득은 몇 년째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
2012년 농가 평균 소득은 3,103여만 원으로 6년 전인 2006년의 소득보다도 낮아졌다. 더욱이 농업 생산을 통해서 얻는 농업소득은 2006년 1,200여만 원이었으나 2012년에는 910여만 원으로 300여만 원이나 감소했다.
농업소득이 이렇게 감소한 이유는 농산물 판매로부터 얻는 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농사짓는 데 필요한 영농 자재비 등 농업 경영비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 농사철에 태풍이 비켜갔다고 안심했지만, 돌아온 것은 풍년 기근이었다. 산지에서 농산물 가격은 폭락했고, 속수무책인 농민들 속만 타들어 갔다. 농산물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를라치면 여기저기에서 야단법석이고 농산물 가격이 내려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에게 돌아간다.

이미 정부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과 예비양자협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진행된 양자 간 FTA 협상 결과를 그대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TPP 협상에 참여하게 된다면 이미 높은 수준의 개방을 약속한 한·미 FTA 농업협상의 영향으로 아직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들, 예를 들면 캐나다나 뉴질랜드에도 높은 수준으로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농업과 식탁을 위협하는 FTA, TPP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농업 환경을 더욱 악화시킬 일련의 사태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4일 정부는 한국과 호주의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실질적으로 타결됐다고 밝혔다. 한·미 FTA에 이어 한·호주 FTA가 체결되면 관세가 점차 사라져 호주산과 미국산 쇠고기가 넘쳐날 게 뻔하고, 그 피해는 한우 생산 농가들에 직접 갈 수밖에 없다. 쇠고기 수출 1위와 2위를 다투는 미국과 호주에 시장을 열어준 것이다. 정부는 호주와의 FTA에서 다양한 예외적 수단을 확보해 그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호주산 쇠고기가 국내 수입 쇠고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한국과 호주의 FTA가 발효되면 한우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하지 않을 수 없다.
한·중 FTA 협상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현재까지 진행된 협상안에 대하여 정부는 협상 전략상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의 곳간을 지키는 자물쇠가 또 하나 확실하게 풀어지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 일이다. 한·중 FTA가 체결되면 한국의 과일 시장과 돼지고기 시장을 겨냥해서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중국의 위협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발해만과 황토고원지역에서 사과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데, 재배 면적이 한국의 65배에 이른다. 양돈의 경우에도 4대 양돈 우위 지역을 선정해서 한국 시장 공략을 준비하고 있다. 이 4대 양돈 우위 지역의 연간 돼지 출하 두수는 한국의 37배, 생산량은 한국의 57배에 달한다. 양돈을 넘어서서 우리 농업 자체의 존망이 위태로운 지경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정부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과 예비 양자협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진행된 양자간 FTA 협상 결과를 그대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TPP 협상에 참여하게 된다면 이미 높은 수준의 개방을 약속한 한·미 FTA 농업협상의 영향으로 아직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들, 예를 들면 캐나다나 뉴질랜드에도 높은 수준으로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의 농업이 이처럼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동안 곡물 자급률은 곤두박질쳤다. 2000년대 초반만하더라도 30%를 유지했던 곡물 자급률은 2012년에는 23.6%로 떨어졌다. 사료용을 제외한 식량자급률도 45%를 겨우 넘고 있을 뿐이다. 최악의 식량자급률을 기록하고 있다. 동시다발로 이루어지고 있는 농산물 시장 개방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농업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원산지를 알 수 없는 수입 농산물, 유전자 조작식품 등의 등장으로 먹거리에 대한 질적위기와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원산지를 알 수 없는 수입 농산물, 유전자 조작식품 등의 등장으로 먹거리에 대한 질적 위기와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식탁을 위협하는 먹거리 불안
그런데, 또 하나의 걱정이 등장한다. 먹거리의 질적 위기에 대한 걱정이다. 현 정부는 불량식품을 4대 악 중의 하나로 지목하여 이에 대한 척결을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신문기사 사회면에는 안전하지 못한 먹거리, 정직하지 못한 먹거리 기사로 넘쳐난다. 특히 수입 먹거리가 식탁을 지배하다 보니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세탁하는 사례가 빈발한다. 이른바 ‘포대갈이’ 수법으로 중국산 채소를 국내산으로 새로 포장해서 학교 급식 식자재로 납품한다거나, 추어탕의 원료로 사용되는 수입 미꾸라지는 최소한 3개월 이상 국내에서 길러야 ‘국산’ 표기가 가능하지만, 사나흘 물속에 담가 두었다 국산으로 둔갑시키는 ‘적셔 팔기’ 수법까지 등장하고 있다. 불량식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작년 봄 미국 오레곤 주의 한 농장에서 제초제 내성을 지닌 인가 받지 않은 유전자조작(GM) 밀이 발견되었는데, 우리나라는 오레곤 주에서 생산된 밀을 수입하고 있는 국가이다. 일본은 이 사건이 터지자마자, 오레곤 주에서 재배된 밀의 입찰을 중지하고, 미국에서 수송 중이던 밀의 매도를 중지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지만, 불량식품 척결을 외쳐온 한국 정부는 표본검사를 통해서 유전자조작 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사후에 발표했다. GM 농산물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단순히 먹거리 안전 문제뿐만이 아니라, GM 종자가 국내 다른 생명체와 교잡되면서 생태계가 교란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입 GM 작물인 옥수수, 콩, 면화, 유채의 시료 626개를 채취해 유전자 분석을 한 결과, 19개 지역의 42개 시료에서 조작된 유전자가 확인됐다. 수입 GM작물이 자란 지역은 주요 항만이나 유전자조작 작물 가공공장 주변, 사료용 GM 작물의 소비지인 축산 농가 주변 등으로 국내에서 재배하지 않더라도 이미 퍼지고 있는 것이다.
GMO 가공식품의 경우에도 2012년만 하더라도 1만 3천 여톤이 수입되었지만, 시중에는 GMO 표시 제품은 거의 없다.

현재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는 지역순환경제를 고민하면서 농업 생산에 바탕을 둔
6차 산업화를 꾀하고, 이를 통해서 지역 공동체를 복원해 내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앙 정부의 몫은 이러한 시도들을 견인해 내는 것, 그리고 이러
한 시도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6차 산업화를 이야기하면서
식물공장이 등장하고, GM 작물이 등장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로컬푸드(지역 먹거
리)를 이야기하면서 대형유통업체에 길을 터주는 것도 옳지 못하다.

그러나 GM 농산물이나 가공식품과 관련한 구체적 정보도 기업의 영업 비밀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공개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정부는 수천억 원을 들여서 추진하는 골든시드Golden seed 프로젝트를 통하여 GM 작물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가을 농촌진흥청은 쌀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벼물바구미 저항성 벼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미생물인 바실러스균에서 살충성 유전자를 뽑아내고, 이를 벼 유전자에 삽입해서 얻은 결과였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에 의한 오염을 걱정하는 농민들이나 먹거리 안전성을 우려하는 소비자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불량식품’은 학교 앞 문구점에서만 찾을 일이 아닌데, 정부가 불량식품을 만들고 유통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지역 공동체 복원으로 희망의 실마리를
이처럼 우리의 농업과 농촌, 먹거리가 안녕하지 못한 상황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희망의 싹을 보여주는 것도 있다. 지난가을 농식품부가 발표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발전계획(2013~2017년)’이 그중 하나다. 이 ‘발전계획’은 농정대상을 개별경영체 중심에서 벗어나서 지역 공동체를 강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통합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발전계획’은 개별경영체 중심의 생산성·경쟁력 향상 정책이 농업·농촌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정부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지역 공동체, 생산과 융합한 6차 산업화, 지역 특성과 지역·주민참여의 농정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존 농정에 대한 명확한 수정이 담겨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도 있으나, 시장 지향 일변도의 농정에서 벗어나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농정 체계를 만들겠다는 방향은 과거의 농정과는 차별된다. 개별 경영체가 아닌 지역 공동체를 농정대상으로 삼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한, 생산과 융합한 6차 산업화를 지향하겠다는 것도 그러하다.
그러나 과거의 농정 패러다임과는 차별화된 ‘발전계획’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는 지역순환경제를 고민하면서 농업 생산에 바탕을 둔 6차 산업화를 꾀하고, 이를 통해서 지역 공동체를 복원해 내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앙 정부의 몫은 이러한 시도들을 견인해 내는 것,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6차 산업화를 이야기하면서 식물공장이 등장하고, GM 작물이 등장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로컬푸드(지역 먹거리)를 이야기하면서 대형유통업체에 길을 터주는 것도 옳지 못하다. 더군다나 지역공동체의 복원을 이야기하면서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내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외국 농산물에 우리의 식탁이 점령당하는 것을 방치하고서는 그 어떤 것도 감당해 내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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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에 애정 있는 도시민과 함께 대안 운동을

그나마 우리에게 희망의 여지가 보이는 것은 어려운 농업·농촌의 현실을 농민과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도시민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서두에 인용했던 ‘국민의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도시민들은 농업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 농민들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10년 후 한국 농업의 전망에 대해서도 희망적으로 보는 도시민의 비율이 농민보다 높았다. 도시민들의 철모르는 소리라고 타박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농업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도시민이 농업·농촌을 생각할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을 농촌의 공동화 현상이라고 응답했고, 도시민의 45% 가까이가 귀농 또는 귀촌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현재의 농업·농촌 문제를 같이 공유하는 도시민들이 존재하는 한, 이들과 함께 우리의 농업·농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현실에서 풀어나갈것인가에 달려있다. 다양한 대안 운동에 대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1※필자 윤병선: 건국대학교 경영경제학부(경제학전공) 교수. 한국산업경제학회 회장.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다. 주요논문으로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농업지배에 관한 고찰」, 「지역먹을거리운동의 과제와 전략」, 「대안농업운동의 전개과정에 관한 고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