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재 유기농생태마을신안정 대표
(제33회 대산농촌상 농촌발전 부문 수상자)
전남 영암군, 월출산 아래에 있는 학산면에 들어서니, 황금빛으로 서서히 물들어 가는 논이 드넓게 펼쳐졌다. 박윤재 씨가 잠시 들를 곳이 있다며, 논과 논 사이 영산강 물줄기 흐르는 학산천으로 향했다. 그는 졸졸 흐르는 냇물을 골똘히 살피더니, 곧바로 우렁이 두 마리를 건져냈다. 돌 틈에 숨은 작은 물고기도 바로 찾아내며 씩 웃었다.
“유기농을 하니 논과 하천이 다시 살아났어요.”
유기농, 내가 살려고 시작했지만
박윤재 씨가 처음부터 유기농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그는 도시에서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관행으로 벼농사를 지었다. 화학비료를 ‘금비(金肥)’라고 부르던 1970년대였다.
“우리 할머니가 큰손주인 저를 엄청 귀하게 여겼어요. 봄이면 솎아낸 상추를 맛있게 무쳐주면서 ‘금비만 뿌려 키웠으니 많이 먹어라’ 했죠. 똥은 더럽고 비료는 깨끗하다고요.”
1989년, 여느 날처럼 농사를 짓던 그는 농약 중독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에 갔더니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말래요. 나는 지금도 농약 냄새를 맡으면 입술이 아릿해요. 그 정도로 몸이 예민해진 거예요. 3년간 병원에 있으면서 어떻게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유기농은 진짜 내가 살아보려고 한 거예요.”
2000년대 초에는 왕우렁이를 활용한 유기농 벼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마침 전남 지역에 친환경 농업이 유행하면서 지자체의 지원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웃집 어르신이 허리 아프다면서 ‘우리 농사 자네가 지어버리소’ 하는 거예요. 이웃들 것까지 유기농으로 관리하다 보니까 면적이 점점 넓어졌어요. 우리 논에 농약이 안 들어오려면 옆집도 유기농으로 농사지으면 좋잖아요. 그래서 다른 이웃들도 설득하기 시작했죠.”
그는 학산면 12개 마을회관을 다니면서 유기농 벼 재배 방법을 알렸다. 주민들이 경작을 시도하는 땅이 늘어나면서, 친환경 벼농사 단지 규모가 2018년에는 500ha까지 커졌다.
학산천이 살아났다
친환경 벼농사 면적이 늘어나면서 마을에 변화가 찾아왔다. 들녘에 메뚜기와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물가에 토하(새뱅이)와 미꾸라지가 헤엄치기 시작했다.
“우리 어릴 때는 하천에서 민물고기 잡는 게 일이었어요. 집에 가서 매운탕 끓여 먹고요. 논에는 민물새우가 얼마나 많았는데요. 가을에 벼를 베려고 논물을 빼잖아요. 그러면 아주머니들이 항아리를 들고 와서 토하를 주워 담았어요. 그걸로 젓갈 담가서 김장도 하고 1년 내내 먹었죠. 그런데 농약 치고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거든요.”
1급수 청정지역에서만 서식하는 토하를 발견한 박윤재 씨는 “우리 농민들이 영산강을 살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
“여기가 영산강으로 들어가는 지류거든요. 우리가 쓰는 물이 영산강으로 흘러갔다가 다시 이리 돌아오는 거예요. 농민들이 친환경 농사를 제대로 지으면 하천이 살아나고, 나아가 영산강도 살릴 수 있어요. 우리가 먹고 사는 터전이니 우리 손으로 지켜야죠.”
2015년, 학산천의 변화를 축하하는 조촐한 행사를 주민들과 열었다. ‘토하 잡기 행사’는 2017년 지역과 학교가 함께하는 ‘유기농&토하 축제’로 확장됐다.
“이쪽에서는 토하로 젓갈을 담그고요, 저쪽에서는 고추장 담가서 비빔밥을 만들었어요. 떡메치고 식혜 만드는 마을도 있었죠. 12개 마을이 진짜 순수한 마음으로 동참했어요.”
서울로 버스를 올려보내 도시민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30여 명의 참가자들은 농가에서 민박하면서, 학산천에서 다양한 수중생물도 관찰하고, 주민들이 준비한 음식과 체험을 만끽했다.
“축제를 열기에 학산천 주변은 너무 좁거든요. 고맙게도 학산초등학교에서 흔쾌히 공간을 내어줬어요. 운동장에 삥 둘러서 부스를 설치해 놓았더니, 아이들이 함께 나와서 체험에 참여했죠.”
논에서 배우는 아이들
2017년, 미국 유학을 떠났던 아들 박다니엘 씨가 돌아왔다. 지역의 일에 아들과 동반하는 경우가 잦아졌고, 활동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아들이 지역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모습이 든든했다.
두 사람은 축제를 계기로 학산초등학교와 더욱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2018년부터 어린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기 시작해, 최근에는 영산강 둘레로 범위를 넓혔다.
“아이들이 직접 ‘씽씽 바이크’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앞에 ‘씽’은 노래한다(Sing)는 의미고, 뒤에 ‘씽’은 생각한다(Think)는 의미예요. 1년 활동 중에 가장 좋았다고 말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아요.”
농민과 교사가 머리를 맞대어 ‘학산들 교육과정’을 기획하기도 했다. 전교생이 농촌 현장에서 유기농 벼농사의 전 과정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볍씨 소독부터 시작해서 싹을 틔우고, 모판을 만들고, 모내기하고, 벼꽃을 관찰하고, 벼를 베서 포장하는 것까지 직접 해요. 아이들이 만든 포장지에 쌀을 담아 학부모들에게 팔기도 하고요. 그렇게 번 돈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써요.”
이날, 학산초등학교에서 정공순 교장을 만났다. 그는 “철학을 지닌 농부가 있어 학생들이 농업의 소중함, 자연의 소중함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 언제 논에 가봤겠어요? 저도 농촌에서 자랐지만 논에 사는 생물은 처음 봤거든요. 풍년새우라든지, 긴꼬리투구새우라든지, 다양한 생물이 논에서 공생하는 모습이 정말 귀하잖아요. 아이들이 정말 신기해하고, 재밌어해요.”
2024년부터는 주변 초등학교에서도 학산들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학산천의 변화로 지역도, 학교도 바뀌었다.
함께 가겠다는 마음
신안정의 벼는 박윤재 씨의 자전거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그는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나와 내 이웃의 논을 살핀다.
“유기농으로 농사짓다가 농약을 치는 사람도 있거든요. 주변에서 다 알려주는데 저는 따지지 않아요. ‘고생하십니다’ 인사하고 그냥 지나가요. 그러면 나중에 다시 유기농으로 돌아오거든요. 그렇게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고맙죠.”
박다니엘 씨는 아버지가 지켜온 ‘함께’의 가치를 알기에, 그 철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그는 주민들과 함께 마을 발전 계획을 세워 정부 지원으로 커뮤니티센터를 짓고, ‘협동조합 너머로’를 만들어 다양한 교육과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생태적인 농사 방법을 추구하는 ‘퍼머컬처(Permaculture)’ 강의를 우리 지역 사람들도 같이 들으면 좋겠더라고요. 지금은 15명 정도 모여서 함께 공부하고 있어요. 강사를 초빙해서 수업을 듣고, 각자 농장에서 실천해 보는 거죠.”
2024년부터는 영암군농업기술센터와 함께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탄소중립농업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과 체험을 통해 학생들에게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탄소중립 실천 방법을 알리는 프로그램이다.
도시의 대학생들이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영암군에 내려왔을 때는 커뮤니티센터를 흔쾌히 작업 공간으로 내어주고, 귀농을 꿈꾸는 청년들이 농사 체험을 왔을 때는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계획해서 실행하는 것들은 아니에요. 함께 가겠다는 방향성을 잡으니까 일이 하나씩 생겨요. 아버지 세대가 마무리되어 가니까 이제는 청년들이 마을을 이끌어야 하잖아요. 사람이 모이고 마음이 모여야 해요.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일들을 차근차근 해내고 있어요.”
박윤재 씨는 아들을 비롯한 청년들이 지역사회에 단단히 뿌리내리길 바란다.
“나는 작은 뒷동산이 되고 싶어요. 지역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안아주고, 격려하는 그런 존재요. 내 마지막 생애는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는 다양한 생물이 돌아와 어우러져 사는 학산의 들녘처럼, 다양한 사람이 어우렁더우렁 모이는 마을을 꿈꾼다.
글·사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