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북 경주의 한 농촌 마을에서 생긴 일이다. 마 농사를 짓는 최 모 할아버지는 인근 오일장에서 직접 키운 마를 갈아 가루로 팔다가 예상치 못한 봉변을 당했다. 40대 남자가 마가루 한봉지를 사가며 “전통 시장 정취가 보기 좋으니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고 묻길래 별생각 없이 허락했다가 며칠 후 시청 단속반의 조사를 받은 것. 이 일로 벌금까지 낸 최 할아버지는 “내가 농사지은 마로 마가루를 만들어 판 게 무엇이 잘못이냐”고 하소연했다.
대구의 한 딸기 농가는 딸기를 잼으로 만들어 팔다 고발됐으며, 충북의 한 인삼 농가는 인삼엑기스를 제조해 판매하다 신고를 당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전국의 지자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더니 이와 유사한 사례가 30여 건에 달했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신고를 하는 것이며, 신고를 당한 농가들은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포상금을 노린 ‘식파라치’들의 소행이며, 해당 농가들은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것이다.
소규모 농산물 가공, 식품위생법을 따라야
먹을거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다. 그래서 농업인이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로 식품을 가공하거나 판매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법적 제도와 갖추어야 할 시설의 규정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대표적인 법적 장치가 바로 식품위생법이다.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식품가공업을 하기 위해서는 식품위생법에서 규정하는 시설을 갖추고, 해당 지역의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등록해야 한다. 이러한 규정은 농업인이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원료로 하는 소규모 가공·판매도 예외가 아니다. 만약 이러한 규정을 위반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무거운 처벌이 뒤따른다.
문제는 식품위생법에서 규정하는 시설 기준은 매우 엄격할 뿐만 아니라 이를 갖추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2012년 12월 8일에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작업장 내부 구조물 등이 내구성 등을 가지고 세척·소독이 용이할 것’ 등과 같이 시설 기준을 더욱 강화했다.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 일부를 부업 수준으로 가공해 판매하고자 하는 영세·고령 농업인들 입장에서 이러한 시설 기준을 갖춘다는 것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한편, 식품위생법에는 신고포상금 제도도 있다. 영업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식품을 가공·판매하는 경우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제도다.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신고를 당한 농업인들은 관련 규정을 몰랐거나, 알았다 해도 엄격한 시설 기준을 충족할 방법이 없어 영업 등록을 하지 않은 것이 대다수인데, 이러한 점을 악용하여 포상금을 노리고 신고하는 식파라치들이 성행하게 된 것이다.
농가의 피해를 막는 정책 필요
농가 단위의 소규모 식품 가공 산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1990년대부터 지속해서 있었다.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농산물의 상품성 제고 등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농가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농산물 가공은 농가의 소득을 높여줄 수 있는 좋은 방안 중 하나다. 쉬운 예로 쌀(10㎏)을 쌀로 팔면 2만 원밖에 받을 수 없지만, 즉석밥으로 가공하면 10만 원, 떡으로 만들면 12만 5,000원, 증류주를 빚어 팔면 21만 3,000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농가 단위의 소규모 농산물 가공은 기술과 경쟁력이 취약해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인허가 등의 문제도 있어 농가 현장에서의 농산물 가공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한편에서는 농가의 소득을 높이겠다고 농산물 가공을 장려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가로막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까. 대략 세 가지 정도의 정책적인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식파라치가 신고할 수 없는 유형’에 소규모 농산물 가공도 포함하는 것이다. 식파라치들은 식품위생법 시행령의 ‘부정·불량 식품 및 건강기능식품 등의 신고포상금 지급에 관한 규정’ 고시에 따라 신고를 한다. 그런데 이 고시에는 포상금 지급 목적, 대상 및 금액 등과 함께 ‘포상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명시돼 있다. ‘전통 시장과 길거리 등에서 생계형 영세업체의 식품 조리·소분·즉석제조·가공 판매하는 행위를 무신고 영업으로 신고한 경우’, ‘자가소비용으로 구입 후 남은 것을 인터넷으로 소량 판매하다 무표시 제품 판매나 무신고 영업으로 신고한 경우’ 등 모두 9가지유형이다. 이런 경우는 신고해도 포상금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최근 농업계에서는 이 유형에 ‘농업인이 자가 재배 농산물을 이용해 소규모로 식품을 제조·판매하는 행위를 무등록 영업으로 신고한 경우’도 포함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식파라치에 의한 신고제를 운용하는 목적은 유통기한의 위·변조, 부패·변질된 식품의 판매, 부정·불량식품 제조·판매 등을 막자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농가의 소규모 농산물 가공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업계의 주장처럼 농업인의 소규모 농산물 가공이 포상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에 포함되면 앞서 언급한 최 모 할아버지와 같은 피해 사례는 더 나오지 않으리라 본다. 물론 이러한 조치가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농업인의 무등록 소규모농산물 가공이 합법의 테두리에 들어오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신고만 당하지 않을 뿐이다.
완화된 가공 시설 기준 제정 등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농산물 가공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농업인의 소규모 농산물 가공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방법은 있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국내산 농산물을 주원료로 식품을 제조·가공하는 경우 식품위생법상의 시설 기준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완화된 시설 기준을 지자체 조례 형태로 만들어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공문을 전국의 지자체에 수차례 발송해 조례 제정을 촉구했다. 하지만 시행규칙이 만들어진 1999년 이래 시설 기준 관련 조례를 만든 지자체는 경기 남양주시, 경북 봉화군 두 곳뿐이다. 경남 거창군은 조례를 만들었지만 소규모 농산물 가공 육성에 초점을맞췄을 뿐 시설 기준 완화와 관련된 내용은 없으며, 제주도도 지난해 11월 조례를 제정했으나 시설기준은 규칙으로 따로 정하기로 했다.
이처럼 지자체가 조례 제정에 소극적인 이유는 만에 하나라도 식품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이 뒤따를 수 있다는 부담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농업인들은 본의 아니게 불법을 자행하게 되었고 식파라치에 의한 피해까지 보고 있다.
식품 가공 시설 기준 표준조례 제정 촉진을 위한 지원 체계 확산
다행히 최근에 농산물 가공과 관련하여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나섰다. 그동안 뒷짐만 지고 있던 식약처는 문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난해 11월 전국의 지자체에 공문을 보냈다. ‘농업인 등 또는 생산자 단체가 국내산 농수산물을 주된 원료로 식품을 직접 제조·가공하는 영업’에 대해서는 ‘시장·군수·구청장이 그 시설 기준을 따로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남양주시의 조례를 참고자료로 함께 첨부했다.
공문을 보낸 주체가 농림축산식품부가 아닌 식약처라는 점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식약처는 식품 안전을 관리하는 주무부처로서 공문의 파급력에 있어 농식품부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지자체 조례 제정 문제는 식품안전 관련 과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농식품부가 공문을 보내면 주로 농정 관련 과에서 처리되고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식품안전 쪽에서는 소홀히 다루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나서면서 지자체의 조례 제정이 활성화되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또한 농림축산식품부는 식약처와 공동으로 지자체 표준조례 제정을 위한 연구 용역을 2014년 초발주할 계획이다. 물론 표준조례라는 것이 각 지자체의 조례로 바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각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할 때 참고하는 지침일 뿐이다. 하지만 지자체 조례 제정을 촉진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조례를 제정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소규모 농산물 가공을 하고자 하는 농가가 있는 지역 여건에 따라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수질 및 수생태계 보전에관한 법률’ 등에도 저촉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환경부나 국토교통부 등과의 협업도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농가 경쟁력 향상과 식품 안전성 확보
소규모 농산물 가공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공동가공센터’도 확대 설치돼야 한다. 이 센터는 농업인이 원료를 가져와 가공할 수 있는 공동 가공장으로 거의 모든 품목의 농산물을 세척·가공·포장할 수 있으며 농업기술센터의 가공 기술 및 마케팅 지원까지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공동가공센터는 이미 식품위생법에서 규정하는 시설 기준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곳을 이용하면 합법적으로 농산물 가공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동가공센터가 턱없이 부족하다. 2013년 기준 전국에 16개소에 불과하다. 올해 20개소로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수많은 농산물 가공 수요를 맞추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농산물 가공식품의 품질관리와 식품 안전성 확보, 농가 경쟁력 향상을 통한 농가소득 창출을 도모하는 소규모 농산물 가공 산업.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농업인, 정부, 관련 기관 등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때이다.
※필자 서륜: 농민신문 농정부 기자. 농림축산식품부 출입기자로 자유무역협정,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 통상 문제와 농산물 유통 구조 개선에 관심이 많다. 한국농업기자포럼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