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밀 안전성에 의구심을 갖는 이유
농림축산식품부 2012년(잠정치) 자료를 기준으로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32.2kg의 밀을 소비한다. 쌀 69.8kg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며, 국가 전체적으로 연간 2백만 톤 이상을 소비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오랜 기간 주요 양식으로 자리해 왔던 보리는 1.3kg 소비에 머물렀다.
우리는 이렇게 제2의 주식인 밀의 거의 절대량을 수입에 의존한다. 수입 밀 중의 절반 정도는 미국으로부터, 나머지는 캐나다·호주로부터 들어온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밀의 절대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것을 마뜩찮아 하고 있다. 그 핵심 이유가 바로 안전성 논란이다.
수입 밀 안전성 논란의 핵심
그간 수입 밀 안전성 논란의 핵심 이유는 첫째, 수입 밀은 춘파밀(봄에 씨앗을 뿌려 가을에 거두어들이는 밀)인 관계로 재배 과정에서 농약 사용이 많다는 것과 둘째, 장거리 해양 운송 과정에서 부패 방지를 위한 수확 후 농약 처리가 많다는 것 두 가지이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 이유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보다 정확한 이해가 요구된다.
먼저 수입 밀은 춘파밀이라는 것이 사실과 맞지 않다. 외국에서 재배되는 대부분 밀도 우리 밀과 같이 가을에 파종해 겨울을 난 후 이듬해 초여름 수확한다. 국가별로 이른 봄에 수확에 들어가기도 하고, 여름 장마가 없는 유럽은 늦여름까지 수확이 이어지기도 한다.
다음으로 장거리 해양 운송에 따른 포스트 하비스트 즉, 수확 후 농약처리 과다라는 지적도 보완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수입 밀의 경우 수확 후 처리에 대한 논란은 해양 운송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리는 농가 단위 수확에서 수출에 이르는 과정을 집중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수입 밀 안전성 문제는 특정 사안의 단편적 이해를 넘어 재배 과정과 수확물의 취급·관리 등의 종합적인 이해로 분석해야 할 과제이다. 이에 필자는 그간 제기되었던 위 두 가지 문제에 초점을 두고 미국 수입 밀을 중심으로 안전성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재배과정에서 광범위하게 농약이 사용되는 수입 밀
먼저 미국 밀에 얼마의 농약을 살포하고 있는지 객관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에 미 농무부, 웹 문서, 블로그 등 인터넷 상으로 접근 가능한 범위에서 관련 정보를 모아 보았다. 미국 농무부에서 찾을 수 있는 미국 밀 농가 농약 사용의 가장 최근 정보는 2009년 통계로 16개 주 밀에서 2,399 밀 농가대상의 통계조사 내용이다. 설문 응답이 콜로라도, 아이다호, 일리노이, 캔자스, 미시간, 미네소타, 미주리, 몬태나, 네브래스카, 노스다코타, 오하이오, 오클라호마, 오레곤, 사우스다코타, 텍사스 그리고 워싱턴으로 미국 전체 밀 재배면적의 89%에 이른다는 점에서 본 자료가 미국 밀 농약사용의 대표성을 갖는 것으로 살필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겨울밀 중의 86%, 봄밀 중의 99%, 듀럼밀 중의 88%가 이들 지역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조사 결과는 듀럼밀(점성이 강한 가루로 스파게티나 마카로니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한다. 편집자주)에는 47종, 봄밀에는 68종, 겨울밀에는 80종의 농약 성분이 사용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농약 종류별로는 제초제 사용이 가장 광범위했는데, 봄밀과 듀럼밀은 거의 100%, 겨울밀은 60%가 제초제를 사용하고 있다. 곰팡이제는 봄밀 36%, 듀럼밀 23%, 겨울밀 7%에 살포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살충제는 사용이 상대적으로 가장 적었는데, 듀럼밀·봄밀·겨울밀에서 모두 6%였다.
미국 농무부의 또 다른 자료에서 발췌한 <표 1>은 2009년 미국 겨울밀에서의 지역별 농약 사용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겨울밀 기준에서 제초제는 거의 모든 주에서 사용되었고, 100%를 기록한 곳도 나오고 있다. 상대적으로 사용이 적다는 살충제가 콜로라도 17%, 미주리 16%, 오클라호마 12%, 텍사스 9% 등으로 상당량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곰팡이제는 살충제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는데, 노스다코타 66%, 사우스다코타 37%, 미네소타 30%의 살포 기록을 보이고 있다.
이상의 미 농무부 자료는 미국의 밀 농사에서 농약 사용이 비교적 광범위하게 이루어짐을 말해 준다.
<표 1> 2009년 미국 겨울밀 농약 사용 현황
※자료: NASS, National Agricultural Statistics Service(www.nass.usda.gov)
지난 해 5월 이후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던져준 미 오레곤 주의 유전자조작 밀 사건
도 휴경 중인 밀밭에 제초제 살포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제초제를 수회 살포했
지만 죽지 않는 밀이 있어 이를 확인한 결과 유전자조작 밀이었다는 것이다. 오레
곤 주 유전자조작 밀 사건은 현재까지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 밀은 동계작물, 농약 사용할 필요 없어
미국 밀의 이 같은 농약 사용 현황은 우리 밀과 비교할 때 현격한 차이가 난다. 우리 밀은 겨울을 나는 동계 작물이기 때문에 살충제, 곰팡이제 등의 농약 사용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미국은 봄밀과 듀럼밀은 물론 겨울을 나는 겨울밀에도 농약 사용이 상당함을 볼 수 있었다.
어디서 이런 차이가 오는 것일까? 이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밀 생산 규모와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밀의 경우 거의 절대량을 해외로 수출하기 위해 생산하는 본래의 특성이 있다. 생산 규모도 큰 차이를 보이는데, 우리보다 농가 단위 미국밀 평균 재배 규모가 거의 100배 이상에 이를 것이란 짐작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미국에서 밀 농사는 기업의 경영과 같다. 그래서 작은 위험에도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으며, 농약 사용이 빈번할 수밖에 없다.
한편, 우리 밀 재배 과정에서 제초제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 사용 형태가 미국과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파종 직전 한 번 사용하는 것에 그치는 반면, 미국은 파종 전 여러 번 살포하고, 파종 후 살포하는 경우도 있다. 파종 전 수차례의 살포가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은 이모작보다 단작 농업이 많아 6월부터 여름에 밀 수확 후 땅을 휴경하기 때문이다. 1년 이상 휴경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수차례 제초제 살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지난 해 5월 이후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던져준 미 오레곤 주의 유전자조작 밀 사건도 휴경 중인 밀밭에 제초제 살포 과정에서 드러난것이다. 제초제를 수회 살포했지만 죽지 않는 밀이 있어 이를 확인한 결과 유전자조작 밀이었다는 것이다. 오레곤 주 유전자조작 밀 사건은 현재까지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몬산토사는 고의적 행동에 의한 것이라 하고, 해당 농가와 주변 종자 상 모두가 유전자조작징후를 발견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캐나다에서 기러기 떼의 이동이 유전자조작 밀 자연 방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보고서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실제 기러기 떼의 이동에 의한 자연 방출이면 예기치 못한 곳에서 또 다른 유전자조작 밀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밀의 유전자조작 오염에 대한 경고는 완전한 해결이 아니라 지속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식품 안전성은 비단 ‘밀’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노력은 세계 각국의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해야 할 몫이다. 세계 먹거리 체
계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할 것은 국민 모두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지구환경과 생
태계까지도 모두 포함될 것이다.
문제는 미국 밀 농사의 이 같은 농약 사용이 먹을거리 안전성에 어떤 위협이 될 것인가. 그 외의 부가적인 문제는 없는가이다.
일단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 밀에 크게 의존해 왔지만 이로 인한 건강상의 치명적 손상이 나타났다는 보고는 없다. 수출입 검역 제도 속에서 잔류 농약 검사를 해 나름대로 안전성 검사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안전성 검사가 믿을 만한 지에 대해서는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가 확인할 점은 수출입 단계에서의 잔류 농약 검사 결과와 그 기준에 대한 이해이다. 잔류 농약 결과가 ‘0’으로 표시되는 것은 불검출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검출한계 미만이란 점이다. 즉, 현행 ppm 1백만 분의 1의 기준에서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며, 그 이상 기준에서 검출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잔류 농약 기준이 평생을 섭취해도 무해할 것으로 판단하는 1인 1일 섭취량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설정은 1인이 하루 섭취량 이상을 먹었을 때 건강에 위해가 생겨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운송 과정이 아닌 곡물 저장고에서의 포스트 하비스트 문제
수입 밀 안전성에 대해 추가적인 이해가 필요한 것은 해양 운송 과정에서의 포스트 하비스트 처리 문제이다. 선적 후 완전히 밀봉된 상태로 들어오기 때문에 해양운송 과정에서 포스트 하비스트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밀의 건조·보관상태, 현대화된 시설 등 해양 운송 과정에서는 포스트 하비스트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해양 운송에 초점을 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밀은 농가 단위, 지역집산지, 수출항 그리고 다시 국내 수입항 등 최소 3~4개 이상 지점에서 곡물 저장고 보관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른다. 수입 밀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수확물을 취급·관리하는 바로 이 곡물 저장고 단계마다 훈증이 필요하다.
미국 밀의 수출은 국제 곡물 가격의 영향을 받는다. 국제곡물가격이 폭등할 때는 밀 수출량이 크게 늘어난다. 반면 국제곡물가격이 큰 폭으로 내렸을 때는 농가 단위에서 밀 판매를 꺼린다. 이처럼 국제 시장에서의 밀 거래과정을 보았을 때 국제 곡물 가격에 따라 미국 곡물 저장고에서 밀 보관 기간이 달라지며,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긴 시간에 포스트 하비스트는 몇 번 이루어지는지 현재는 확인할 수가 없다.
미국 밀의 저장 단계에서의 안전성 위험은 수확 후 한 번 보관되었다가 수시 방출되는 우리 밀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식품 안전성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수출 위주의 기업형 농사, 여러 단계를 거치는 운송 과정 등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볼 때 수입 밀 안전성에 대한 경계는 결코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 결론이다. 또한 이러한 식품 안전성은 비단 ‘밀’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노력은 세계 각국의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해야 할 몫이다. 세계 먹거리 체계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국민 모두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지구환경과 생태계까지도 모두 포함될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밀살리기운동을 하며 우리 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농업계와 모든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자급률 1%를 달성한 의미 있는 성과도 얻었다. 이는 단순히 우리 밀 자급률 달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농업의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데도 이바지하고,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지켜나가는 농민들, 농업계에 힘을 북돋우는 과정이었다.
우리 밀의 가치만큼 안전한 먹을거리와 안전한 식품이 지닌 중요성과 필요성을 공감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그리고 함께 만들어가는 식품 안전성이 먹을거리의 위협들로부터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다.
※필자 송동흠: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사무국장. 1994년 이후 농민단체, 농업 관련 연구소에서 일했다. 안전한 먹을거리와 지속 가능한 농촌사회에 대한 고민과 문제에 관심을 두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