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두렁에 앉아 하염없이 다래밭을 바라본다. 1,500평 파풍망 구조물이 삐딱하게 쏠려 있다. 작년에 세 번의 태풍 볼라벤·덴빈·산바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다. 지난겨울 내내 손을 보았지만 마무리하지 못하고 말았다. 나머지는 다래나무가 활동을 멈추는 올겨울에나 또 손을 봐야 한다. 지금 구조물에 손을 대면 한창 자라는 다래 넝쿨이 상하기 때문이다.
세 번의 태풍이 연달아 당도해 진도를 홀랑 뒤집어 놓다시피 한 작년 여름은 정말이지 시련의 연속이었다. 하나 가고 나면 또 오고 하나 보내고 나면 또 오고….
다래밭 그 무성하던 잎은 죄다 뜯기고 처절하게 드러난 나목은 끈질기게 열매를 잡고 있었다. 차
라리 다 떨구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참다래는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과일이다. 그래서 피해보상도 없다.
잎을 잃은 나무는 과일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 배고픈 새끼들 마냥 열매는 영양분을 마구 먹어댄다. 하지만 열매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 영양분을 만들고 저장하는 채집 판인 잎을 잃어버렸는데 열매가 어찌 온전하겠는가. 영양분을 뺏긴 나무 또한 허약한 몸으로 겨울을 나자니 다음 해를 준비하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유난히 춥던 지난겨울에 얼어 죽은 나무가 몇십 그루다. 겨우 살아난 나무들도 저장양분이 없으니 대부분 헛순만 키워대고 있다. 무성한 잎들을 보면서 헛순 칠 일들이 걱정이다. 열매가 몇 개 안 달리니 헛순은 더 신명 나게 자란다. 오다가다 드문드문 한 나무씩 핀 꽃이 여기가 다래밭임을 말할 뿐이다.
참다래 수정은 모내기 철에 한다. 빈 논들이 하나둘씩 연초록으로 채워지기 시작할 때쯤, 과수원 속에서 꽃들과 같이 가을을 준비하는 것이다. 수꽃은 이른 새벽에 따야 한다. 하얀 꽃이 반쯤 피어 샛노란 수술이 보인다. 이때가 최고 적기이다. 꽃가루가 날리기 전에 따서 발아를 시키는 작업이다.
수꽃 채취 작업을 일주일가량 하면 암꽃들이 피어댄다. 하나하나 수정시키고 나면 20여 일이 훌쩍 지난다. 수정이 끝나고 들녘을 바라보면 넓은 들의 빈 논들이 온통 짙푸른 초원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암꽃이 적어 수정을 사흘 만에 끝내고 나니 빈 논들이 반쯤 밖에 채워지지 않았다.
올가을에는 다래 수확하는 재미가 영 시원찮게 되었다.
원래 다래 따는 날은 우리 집 최대 잔칫날이다. 일 년의 수고로 다래 농사가 풍년이 들면 내 발걸음에 절로 흥이 난다. 게다가 스무 명 넘는 일손이 점심을 먹고 새참을 먹는 왁자한 분위기는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가 되는 것이다.
제초제를 쓰지 않고 풀을 베어 다시 땅에 돌려주며 농사지은 지 30년, 자부심으로 살아온 세월이
었다. 저 밭두렁에 풀들이 아무리 잘 자라나 나를 힘들게 하여도 땀 흘리는 것이 싫지 않았다.
나의 수고로 많은 사람이 건강한 과일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일했다.
하지만 이게 뭐란 말인가. 올가을의 맥 빠지는 수확을 생각하니 여름 앞에서도 겨울 같은 느낌이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흥이 나질 않는다.
신명 나게 달려 다니며 일하고 싶은데 몸이 자꾸 쳐진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를 향해 참다래 하얀 꽃이 주인을 위로 하는 것같다.
‘기운 내세요. 내년에는 과수원 가득 피워줄게요!’
그래 다시 시작하자.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이도 많은데 내겐 저 땅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힘든 상황을 맞아도 생명을 키우는 일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땅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잦은 이상 기후로 또 어떤 시련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픔도 멀어질 터, 땅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듯 나도 절대 농사를 포기하지 않으리라.
힘든 시간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다시 부활을 꿈꾼다.
※ 필자 오승희: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총무를 역임했으며 전남 진도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참다래 농사를 지으며 30년 간 복합영농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