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오래된 방법을 찾다

국영석 고산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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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순환, 공동체 _ 농협이 변하다

전라북도 완주군. 농업인구 6천 명, 작고 평범한 농촌 고산면은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돈’ 될 것이 없었다. 지역의 구심점이어야 하는 농협은 경영 악화로 관리 대상이었다.
2005년, 고산농협에 국영석 조합장(52, 제21회 대산농촌문화상 수상자)이 취임한 날, 가장 먼저 출근해 화장실 청소를 하는 조합장을 보며 화들짝 놀란 이야기는 아직도 직원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회자 된다.
“생각이 통일되어야 행동이 모아져요. 그러려면 가치를 공감해야 하는데, 솔선수범이 중요한 거지요.”
국영석 조합장은 가장 먼저 직원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을 시작했다. 많은 농협이 그러하듯 신용사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 교육 복지 문화사업에 투자하자고 하니, 직원들이 국 조합장이 경영을 안해 봐서 그런가, 책임감이 없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구요.”
먼저 직원들의 생각을 바꾸는 게 중요했다. 3주 정도 각자 미리 준비하도록 하고 몇 번이고 워크숍을 해 직원들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책임감과 자긍심을 지닐 수 있도록 했다. 눈앞의 작은 성과보다는 먼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한 것.
“농협이 홀로 계신 우리 어머니 아버지한테 와서 밑반찬을 만들어주고 안부를 전하니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 애향심이 생겨요. 신뢰와 애정이 생기면 협조가 이루어지죠. 이렇게 선순환 구도를 만들면 농협 사업은 잘 될 수밖에 없어요.”
다문화 가정과 노인복지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잠재적 자산과 고객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일이라 조급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국 조합장은 말한다.
“불을 꾸준히 지펴야지, 솥뚜껑만 들었다놨다 하면 밥이 설어.”

직원들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자긍심을 지닐 수 있도록 워크숍을 계속 실시한다
직원들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자긍심을 지닐 수 있도록 워크숍을 계속 실시한다.
국영석 조합장은 완주군 5개 면에 친환경 농업 단지를 조성했다
국영석 조합장은 완주군 5개 면에 친환경 농업 단지를 조성했다.
국영석 조합장은 결혼 이민 여성을 대상으로 농업 교육을 하는 등 다문화를 품는 다양한 정책을 펼친다.
국영석 조합장은 결혼 이민 여성을 대상으로 농업 교육을 하는 등 다문화를 품는 다양한 정책을 펼친다.

작은 농촌, 친환경 농업으로 가능성을 열다
국영석 조합장은 지역 농업을 살리는 길을 찾다가 지난 2006년 친환경 농업단지를 유치했다. 완주군 고산, 비종, 화산, 경천, 동상의 5개 면, 900ha 규모에 경축자원화센터와 벼 육묘장, 유기축사, 산지 유통센터, 웰컴 센터 등 친환경 농업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시설을 광역단지 내에 세우고 친환경 농업의 유기적 순환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생산한 농산물의 안정적 유통을 위해 학교 급식과 군납사업도 적극 펼쳤다.
완주의 27개 학교, 서울의 168개 어린이 집과 학교, 대전 어린이집 145개소, 그리고 아이쿱 생협과도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고산농협의 경제 사업규모는 2012년 63%에 달한다. 국 조합장이 취임한 이후 매년 사업 규모를 성장시킨 결과다.

누가 잘못 한 거여?
작년에 양파 가격이 급등했다. 양파 시중가격이 1kg당 1만 2천 원. 농협 계약 가격 9천 원보다 3천 원이나 많았다. 그런데 계약 재배 농민 모두 농협으로 양파를 가져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예전에 마늘 계약재배를 하는데 가격이 급등하니까 1/3만 납품하고 나머지를 빼돌린 사례가 있었어요. 그럼 누가 잘못한 겁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당연히 “농민”이라고 답하니 돌아온 대답.
“농협이 잘못한 거지요. 관행적으로 해온 것이 있어 농민이 손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농민에게 상세히 설명하고 이해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거죠. 그때 제대로 납품해준 마늘을 가장 비싼 가격으로 팔아주고 유통비용은 농협이 부담했어요.”
신뢰가 두터워지니 품목이 확대됐다. 고산면은 친환경 쌀과 딸기, 감, 채소, 무항생제 한우 등 12
가지 지역특산물의 안정적인 생산과 유통체계를 차근차근 만들어가고 있다.

국 조합장은 친환경농업의 유기적 순환 시스템을 구축했다
국 조합장은 친환경농업의 유기적 순환 시스템을 구축했다.
친환경 농산물을 홍보하고 유통하는 웰컴센터
친환경 농산물을 홍보하고 유통하는 웰컴센터
고산면은 농민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12가지 지역 특산물의 안정적 생산체계를 구축했다.
고산면은 농민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12가지 지역 특산물의 안정적 생산체계를 구축했다.

농민운동 37년 신뢰, 그리고 지지
집안이 어려워 배움이 짧았던 탓에 국영석 조합장은 일찍 사회에 발을 내디뎠다.
“열일곱 살 때 고산 성당 문규현신부님을 만나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눈을 떴어요.”
37년간 농촌운동, 지역운동을 하면서 자신보다 열 살에서 열다섯 살이 많은 사람과 함께 활동하면서 어른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받았고, 7년간 하루 18시간씩 일을 하면서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빈민 의료 활동을 하던 아내 엄창숙 씨(55)를 만났다.
“지지支持라는 말이 있지요. 지게에 작대기를 받쳐 놓잖아. 그럼 쓰러지지 않아요. 그 작대기가 내 아내입니다.”
국 조합장은 곧은 성격과 굳은 의지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맞아 싸웠던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변함없이 아낌없이 지지하는 아내 덕분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완주커뮤니티 비즈니스센터. 주민이 주인이 되는 지역 활성화 사업을 지원한다.
완주커뮤니티 비즈니스센터. 주민이 주인이 되는 지역 활성화 사업을 지원한다.

협동조합은 이익도 어려움도 나누는 것
지난해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어 이제 5인 이상이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올해 3천 개 협동조합 기업이 설립될 거란 전망이 나올 정도로 전국은 협동조합 열풍이다. 협동조합이 뭐길래 이럴까. 협동조합의 목적은 다름 아닌 ‘나눔’이라고 국 조합장은 말한다.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서 잉여의 가치가 없으면 실망을 하는 것이 한계고, 운동적 사고만 갖고 있으면 경영의 상태가 어려워지면 지속 가능하지 못해 어려워요. 그 가치를 공감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교육인 거지요.”
국 조합장은 교육지원지도사업을 중점으로 펼치면서 주민들의 의식이 깨어 미래를 함께할 수 있도록 했다. 임원은 품목별 생산자 대표들이 맡아 중간 교량 역할을 맡도록 했다.
국 조합장은 ‘완주커뮤니티 비즈니스 센터’를 설립하고, 주민이 주인이 되는 지역 활성화 사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지역의 활동가, 리더들과 협력하여 지역공동체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쳐 농협의 영역과 역할을 확대했다.

“우리는 아직 미완성이예요.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것뿐입니다.”

협동조합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이 조금 진화된 것이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힘을 합쳐 해내고, 그 결과를 나눈다. 이익도, 어려움도.
그리하여 가치와 경제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협동조합은 함께 사는 사회의 가치를 알려준다. 그것은 작은 농촌 고산이 키워가는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사진/ 신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