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농촌 마을 만들기

 

진안군의 새로운 10년

최근 들어 마을과 공동체에 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앞만 보고 성장만 생각하며 빠른 속도감에 익숙한 나라에서 매우 고무적인 경향이다. 많은 사람이 삶의 질을 생각하고 대안적인 지역사회를 꿈꾼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 것 같다. 대개 이런 경향은 행정 사업과 정치적 영향이 크고 풀뿌리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제2의 새마을 운동’ 운운하며 앞으로 어떤 행정 사업이 생길지 심히 걱정될 정도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농촌 마을공동체는 재생 가능한가? 전라북도 진안군은 지난 10년 이상 체계적으로 마을 만들기 활동을 추진하면서 자치단체 단위의 시스템을 어느 정도 구축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민 주도 상향식의 철학과 방법론을 견지하며 일관되게 노력한 성과들이다. 여전히 내부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지만 외부 영향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필자 본인이 직접 관여한 활동이라 소개하기 쑥스러운 점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소개하고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란?
무엇보다 마을 만들기는 행정 ‘사업’이기 이전에 주민의 자발적인 ‘운동’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지역 주민의 자치 운동, 생활 운동에서 출발하였다. 그래서 마을 만들기와 생활협동조합, 사회적 경제, 주민자치(평생학습), 자활 등은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고 지방 자치 선거가 도입되며 리우환경회의(지방의제)를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이 제기된 1992년이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성을 충분히 숙지하고 행정 주도의 한계, 위험성을 인정하면서 행정은 민간에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또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는 도농교류 체험이나 소득 증대에 국한되지 않는, 교육, 문화, 복지, 환경 등 생활 전 영역의 활동이란 점도 당연하지만 중요한 인식이다. 농촌에서 마을 만들기가 행정 주도로 도입되고 체험마을과 같이 농외소득 증가를 중시하며 도농교류 체험객 유치를 중시하는, 이런 기존의 제한된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 지역 주민 중심으로 마을이 주도하여 경제 영역 외에도 문화, 복지, 환경 등 생활의 전 영역을 통합하는 관점으로 계속 발전해가야 한다.

마을 만들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스스로 마을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내발적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자치단체 시스템을 갖추고 민간의 중간지원 조직을 키워야 한다. 마을 주민이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아주 쇠퇴한 상태임을 객관적으로 인정해야한다. 학습과 토론, 합의의 문화적 풍토를 만드는 것은 단시간 내에 어렵다. 그래서 마을 주민이 지치지 않고 오래갈 수 있는 시스템, 마을 밖에서 마을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마을 만들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스스로 마을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내발적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자치단체 시스템을 갖추고 민간의 중간지원조직을 키워야 한다. 마을 주민이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아주 쇠퇴한 상태임을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학습과 토론, 합의의 문화적 풍토를 만드는 것은 단시간 내에 어렵다. 그래서 마을 주민이 지치지 않고 오래갈 수 있는 시스템, 마을 밖에서 마을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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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진안군 마을 만들기, 10년의 경험
전라북도 진안군은 면적이 서울시의 1.3배나 되지만 상주인구는 20,446명에 불과하고, 고령화율은 36.2%(2010년 인구센서스)나 된다. 20세기 후반기의 개발 시대를 빗겨가 깨끗한 자연환경과 소박한 전통문화가 잘 남아 있지만 주민들의 소외감과 박탈감은 아주 높은 편이다. 하지만 2001년부터 전국 최초로 주민이 주도하는 상향식의 마을 만들기 사업이 시작되고 주민들의 학습 활동과 행정의 체계적인 지원을 통해 마을마다 활기가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다. 또 2006년부터 귀농·귀촌 정책을 적극 결합하여 연간 100가구 정도가 이주해오고 있다. 그 결과 최근에는 인구감소율이 줄고 합계 출산율은 전국 자치단체 2년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다.
진안군은 주민들의 마을 만들기 활동에 앞서 무엇보다 먼저 행정 주도 하향식 농촌 개발 방식에 대한 반성이 선결되었다. 그러면서 농촌과 마을을 살리기 위해 강력한 학습 활동을 장려하고, 마을 간사와 마을 조사단, 마을축제, 귀농 귀촌, 농촌창업 등 전국 최초의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2007년 2월에는 전국 농촌 최초로 마을 만들기담당을 신설하고 행정 협력 체계와 민관협력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또 마을 만들기지구협의회를 중심으로 뿌리협회(귀농 귀촌인협의회), 마을축제조직위, 진안고원길, 한일교류협회 등 마을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조직이 지난 5년간 10개 이상 설립되었다. 행정과 민간 영역의 이런 성과들이 모여 2010년 5월에는 마을 만들기 기본조례도 제정되었다.
2011년 1월에는 지난 10년간의 마을 만들기 성과를 모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였다. 지금까지
는 “더디 가도 제대로 가는 길”을 슬로건으로 마을 주민이 지치지 않고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것에 주력하였다. 이에 반해 ‘새로운 10년’은 지금까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 만들기”를 통해 주민들이 더욱 분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강했다. 크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방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새로운 10년’으로 나아가다
먼저, 마을 만들기의 산업화, 경제적 자립화이다. 농촌 마을 만들기의 성공 여부는 경제적 자립과 직결된다. 개별 마을의 한계를 뛰어넘어 읍면 단위, 시군 단위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소득 증가와 경제적 자립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 마을의 소농, 가족농을 보호하며 오랫동안 행복하게 사는 길을 찾자는 것이다.
둘째, 마을 만들기 전국 네트워크의 중심 공간 만들기이다. 우리 농업·농촌을 둘러싼 외부적 환경, 구조적 환경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이런 외부 환경에 대응하고 내부 동력을 더욱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는 마을 만들기의 전국적 협력 네트워크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 진안군은 2007년부터 3년연속으로 마을 만들기 전국대회를 개최한 경험이 있다. 시행착오 경험을 줄이고 민간 주도로 질적 심화를 모색할 자리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진안군이 농촌 마을 만들기의 전국 거점으로 발전하고, 먼저 시작한 지역으로서 전국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셋째, 도시의 ‘마을 만들기지구’와 전면적인 교류를 시작하는 것이다. 일회적 이벤트와 같은 도농교류 체험 행사가 아니라 적은 수의 도시민이라도 일상적이고 전면적인 교류를 해야 한다. 도시 지역에도 마을 만들기를 실천하는 지역과 주민, 활동가, 공무원도 많이 있고, 최근에는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도시 마을과의 전면적 교류를 하는 것이다. ‘뜨내기 도시민’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마을을 사랑하고 공공적인 실천을 하는 그런 ‘도시 마을 주민’과의 교류가 의미가 크다는 발상이다.

소농·가족농 보호로 지속 가능한 마을 만들기
이런 방향에서 새로운 10년의 새로운 핵심과제로 두 가지를 채택하였다. 먼저, ‘로컬푸드 사업’을
통해 안정되고 부가 가치가 높은 유통망을 확보하여 경제 소득을 마을로 환원하고 소농, 가족농을 보호하면서 지속 가능한 농촌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마을 만들기지원센터’를 설립하여 다양한 활동의 핵심 거점 공간을 확보하고 전문성과 안정성, 지속성이 보장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하였다. 이 두 가지 핵심사업은 ‘마을 만들기의 산업화’이며, 또 ‘지속 가능한 마을 네트워크 구축’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로컬푸드사업단’은 2008년부터 3년간 93회의 금요 장터 운영을 경험한 후, 2011년 7월에 주민
100명이 1억 원을 출자한 농업회사법인 진안마을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되었다. 현재 친환경 학교급식을 시작하였고, 내년에는 상설매장과 로컬푸드 식당, 반찬 가게, 전자상거래, 생협 등으로 더디겠지만 조금씩 확대될 것이다.
‘마을 만들기지원센터’도 2012년 12월에 개소하였다. 2011년 5월부터 시작된 제5회 마을 만들기 대학 강좌를 중심으로 공식적으로 20회 이상 학습 모임을 가진 결과였다. 옛 농업기술센터를 리모델링하여 그동안 육성해온 15개 민간 단체가 입주하였다. 여기에는 지역자활센터와 평생학습센터도 입주하였고,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활동을 지원하는 성격도 가진다는 점도 다른 지역과 많이 다른 점이다. 또 수탁법인인 (사)마을엔사람은 행정으로부터 인건비와 운영비를 지원받지 않고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를 모아 ‘새로운 10년’의 끝에는 학교가 설립되어 있을 것으로 꿈꾸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윤곽은 없지만 지역 인재의 자급과 재생산이 계속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강하다. 농촌형 하자센터와 같은 작업장 학교가 될 수도 있으며, 대학원이나 대학과 같은 제도권 학교가 될 수도 있다. ‘로컬푸드사업단’과 ‘마을 만들기지원센터’의 실천성과가 축적되면서 이런 꿈은 더욱 구체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마을 만들기의 기본정신은 풀뿌리 주민자치의 강화, 주민 학습능력의 배양, 지역자립경제의 구축, 상부상조의 공동체 문화 복원 등을 강조한다. 이제 마을만들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또 사업 자체가 아니라 ‘방법론’에 대한 검토를 더욱 많이 해야 할 시점이다.

마을 만들기의 기본정신은 풀뿌리 주민 자치의 강화, 자립경제구축, 공동체 문화 복원 등이다.
마을 만들기의 기본정신은 풀뿌리 주민 자치의 강화, 자립경제구축, 공동체 문화 복원 등이다.

진안군 경험에 비추어본 문제의식
마을 만들기는 주민 주도 상향식의 지역개발론인 셈이고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또 최선이 아니라도 차선에 합의하고 시간을 통해 점차 발전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모여 공동으로 쉽게 해결 가능한 과제를 발굴하고 학습과 토론, 합의의 민주주의 정신을 존중한다. 공동실천을 통해 이런 훈련을 거듭하고 몸으로 익히자는 것이다. 이런 방법론으로 마을 만들기는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훈련장이라 자부하는 것이다. 진안군의 경험에 비추어 최근의 전국 동향에 대해 몇 가지 문제 의식을 던지고자 한다.
먼저, 마을 만들기를 통해 ‘과연 마을과 주민들은 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의 마을 만들
기(특히 농촌)는 지나치게 경제적 활동 중심으로 편향되어 가는 경향이 강하다. 진안군은 평생학습과 주민자치, 경제자립, 상부상조 등 4대 목표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진안군조차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틀 속에서, 언론을 통해 홍보되는 물질주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 마을 만들기의 방법론이 ‘왜 다른 영역으로 빨리 확산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아직 마을 만들기의 실천 경험은 아주 작고 좁은 영역에 국한되어 있다. 농촌에서는 체험마을 사업으로 오해하고, 대부분 평생학습이나 주민자치, 귀농귀촌,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의 업무(활동)와 별개로 움직인다. 행정의 ‘칸막이’ 문화가 민간에서도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셈이다. 현재 우리를 둘러싼 농업외부환경, 중앙집중형 경제구조, 성장 연합형 토박이 정치 등 구조적 장벽은 높고 험하다.
셋째, 광역과 중앙 행정에서 급속도로 도입하고 있는 ‘마을 만들기 (유사)정책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최근 들어 마을 만들기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등 유사영역과의 결합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행정이 지나치게 주도하는 경향이고 민간 영역의 실천과 논의에 개입하는 정도는 도를 넘기 시작하였다. 마을 만들기를 행정이 주도하기 시작하면 제도화되고 민간의 주체적 노력과 활력은 곧바로 쇠퇴하게 된다. 마을 만들기의 철학이 배제된 정책이 너무 남발되고 있고, 이를 어떻게든 자제시켜야 할 단계에 와 있다.
결국 상식과 원칙에 더욱 충실한 것이 농촌 마을 만들기의 핵심이어야 한다. 마을 만들기의 기본정신은 풀뿌리 주민자치의 강화, 주민 학습능력의 배양, 지역자립경제의 구축, 상부상조의 공동체 문화 복원 등을 강조한다. 이제 마을 만들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또 사업 자체가 아니라 ‘방법론’에 대한 검토를 더욱 많이 해야 할 시점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마을 리더의 지나친 희생에 의존하지 않고 정치적 외풍도 덜 타며 궁극적으로 마을공동체의 복원도 조금씩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15※필자 구자인: 진안군 마을 만들기연구소 소장. 대학에서 생태학과 도시환경정책을 전공하고 지역사회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농촌 마을의 중요성에 눈떠 일본 유학을 거쳐 전북 진안군의 계약직 공무원으로 8년간 마을 만들기 정책을 뒷받침하였다. 「생태도시와 일본지역 연구」, 「내발적 발전론」, 「자급순환경제」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