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삶의 나침반이 되다

이경희 남해군농업기술센터 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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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이 넉넉히
내려앉은 남해는 보석을 품고 있는 듯했다. 유난히 게으름을 피우는 봄을 재촉하러 내려간 3월의 남해군에는 이미, 봄이 한창이었다.
“어서오시다”라는 남해의 방언이 쓰인 팻말이 반기는 마을 입구에서 내려다보니 계단식 논이 능선을 따라 흐르듯 이어지고, 곱게 닦인 길은 저 아래 바다까지 이어질듯 가파르게 뻗어있다. 이곳이 그 유명한 다랭이마을이란다.
“예전엔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이었지. 먹고살 게 진짜로 없었어요.”
입구에서 농사지은 시금치며 쪽파를 늘어놓고 팔고 있던 한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다.
남해에서도 오지 빈촌, 소득이 제일 낮은 마을, 전기가 제일 늦게 들어온 마을, 대문을 나서면 평지를 만나기 어려운 마을, 일반농지보다 다섯 배나 힘이 드는 애물단지 다랭이논, 고령화 농촌의 표본……. 수식하는 말들이 보여주듯, 가천 다랭이마을은 온갖 악조건의 ‘종합선물세트’를 갖고 있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불과 10여 년 사이, 다랭이마을은 연간 24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10년간 가장 큰 변화를 이끌어 온 마을사람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던 이가 바로 이경희 지도사(남해군농업기술센터 체험마을팀장, 제20회 대산농촌문화상 수상자)였다.

남해군에서도 최고 오지였던 가천다랭이마을은 연간 24만 명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남해군에서도 최고 오지였던 가천다랭이마을은 연간 24만 명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경희 씨는‘농촌관광’의 개념을 오지마을에 도입하고, 도시민과의 소통 방법을 주민과 공유했다.
이경희 씨는‘농촌관광’의 개념을 오지마을에 도입하고, 도시민과의 소통 방법을 주민과 공유했다.

애물단지가 보물단지가 되다
“2002년 농촌관광이란 말도 생소했던 때였어요. 농촌진흥청에서 농촌전통테마마을 사업을 도입했거든요. 그때 다랭이마을에 와서 함께 해보자 했지요.”
애물단지였던 다랭이 논과 오지여서 개발이 되지 않아 보존할 수 있었던 경관을 이용한 농촌관광은 농외소득이 전혀 없는 마을에 주는 새로운 희망이었다.
손님 맞을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한 잠자리였다. 그냥 어쩔 수 없어 하룻밤을 때우듯 묵어가는 개념의 민박이 아니라 정말 오고 싶은 마을, 쉬고 싶은 환경을 제공하자는 것.
그래서 민박의 구조를 독립형으로 바꾸어 방에 간단한 조리를 할 수 있는 싱크대와 수세식 화장실을 겸비한 구조를 갖추었다. 그리고 지역특산물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개발해 방문객들의 입을 만족시켰다.

도시민이 다시 오고 싶게 하는 비결은 편안한 잠자리와 넉넉한 인심이다.
도시민이 다시 오고 싶게 하는 비결은 편안한 잠자리와 넉넉한 인심이다.
남해군은 농촌체험사업으로 활기찬 삶터로 변신했다
남해군은 농촌체험사업으로 활기찬 삶터로 변신했다.
마을의 발전은 리더의 의지와 사람들의 협력에 달려있다
마을의 발전은 리더의 의지와 사람들의 협력에 달려있다.
마을 주민과 정을 나누고 진심을 주고 받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경희씨는 말한다.
마을 주민과 정을 나누고 진심을 주고 받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경희씨는 말한다.

진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꾸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술술 잘 풀렸던 것은 아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의 별명은 ‘국정교과서’. 원칙을 중시하고 융통성이 없어서 지어진 별명이다. 이부자리에서 식기까지 보는 것마다 지적 했던 그녀에게 붙여진 또 다른 별명은 ‘땡삐’(경상도 방언, 땡벌)였다. 그런데 그를 그렇게 불렀던 마을 사람들이, 공휴일에도, 야간에도 마을로 출근하는 이경희 씨를 믿고 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가 공무원이니 앞서 농민들을 지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끄는 사람도 따라오는 사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좀 천천히 가더라도 방향을 제시하고 주민이 주도적으로 토론하게 하고 뒤에서 받쳐주는 방식을 택했어요.”
그렇게 하면서 주민들의 역량을 키웠고,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해바리마을도 다랭이마을과 환경이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리더의 의지와 마을사람들의 협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경희 씨는 두 마을의 사례에서 보듯, 환경을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들의 의지,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라고 말한다. 주민의식과 리더의 능력, 그 속에 오가는 정, 그리고 전통을 잘 전승하고 보존한 것이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왔고, 방문객들이 블로그와 카페에 올린 글들이 도시 사람들과의 간격을 좁혀주었다.

농촌관광이 죽은 마을을 살리다
“농촌관광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남해군은 죽은 마을이었을 겁니다. ‘남해 치고(에는) 생이알(상여알)만 산다’ 는 말이 있어요. 상여로 들어갈 사람만 산다는 뜻이지요. 그만큼 초고령 사회에요.”
그런데 이 노인들이 손자 같은 아들 같은 손님을 맞으면서 활력을 띠기 시작했다. 척박한 땅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민박을 하며 소득을 올리고, 오고가는 사람들 소리에 세상에 대한 귀가 뚫리고 시야가 넓어졌다. 밭에서 키운 쪽파며 미나리, 시금치는 그대로 직거래가 가능해졌다. 소득이 늘어나니 남해로 귀농을 하는 젊은이들도 부쩍 늘었다. 농촌관광이 단순한 농외소득 증대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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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15개 체험마을은 각각 자생력을 갖추고 먼 곳에서 오는‘손님’들을 맞고 있다.
남해군 15개 체험마을은 각각 자생력을 갖추고 먼 곳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고 있다.

마을의 성패는 ‘사람’
현재 남해군은 15개 체험마을 연합회가 조직해 활발한 정보를 나누고 화합하고 있다. 이경희 씨는 지난 해 체험마을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체험마을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통테마마을로 국한되어있던 사업의 영역을 넓혀 남해군의 15개 마을을 아우를 수 있는 역할로
그 폭이 커진 것이다.
이경희 씨는 농촌체험마을의 성패를 사람에서 찾는다. 2011년, 제20회 대산농촌문화상 농촌발전부문을 수상한 것도 마을사람들 덕분이라는 것.
“정말 힘든 일은 마을 사람들이 했고 저를 좋은 자리에 올려 놔주신 거예요. 마을사업이 성공하려면 주민들의 열정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고, 공무원들은 조금만 건드려주면 되는 거예요.”
같이 길을 찾아간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농촌체험마을 사업. 언론과 다녀간 사람들의 입소문, 그리고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던 주민의 화합과 열정이, 모두가 함께 그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 중요했다고 말하는 이경희 씨. 이제 남해군 체험마을을 진짜 ‘보물섬’으로 만들기 위한 봄날의 기지개를 활짝 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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